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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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년을 병원에서 일해 온 간호사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응급실을 거치며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셀 수 없이 보았고, 피와 통증, 두려움이 가득한 병원의 풍경도 담담하게 넘길 정도의 연륜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치과만 가면 내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물론이며 두렵고 긴장까지 하게 된다. 드르르 울리는 기계 소리만 들어도 어깨가 굳고, 입 안으로 들어올 차가운 금속 기구를 떠올리면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
십여 년 전, 처음 그 치과를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가 욱신거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지만 마음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진료 의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십 대의 치과의사였다. 얼굴은 단정했고 눈빛은 차분했다.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많이 긴장하셨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천천히 하겠습니다.”
그 말은 아주 짧고 평범한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고, 필요한 말만 차분히 건넸다. 치료를 받는 동안 여전히 아프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편안했다.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긴다는 느낌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었다. “자, 이제 바람이 나옵니다”, “기계 소리는 크지만 아프지는 않을 겁니다”로 순간순간 나를 안심시켜 주는 그의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나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진료 의자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치과의 단골이 되었고 그 세월이 십 년을 훌쩍 넘었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은 생각하지 않는다. 예약 환자가 많아 기다리는 날이 오래 걸려도 결국 그 치과로 가게 된다.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는 나를 안심시키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가 욱신거려 얼굴을 찡그리고 병원으로 향하다가도 그 치과 건물 근처에만 가면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다.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마음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일까? 병원 건물 입구를 바라보는 순간 묘한 안도감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흰머리의 그가 생각난다.
우린 특별한 사이는 아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몇 마디 안부가 전부일 뿐. 오늘은 어디가 불편한지, 치료가 끝나면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 삶에서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은 아니다. 최소 내 치아에 대한 모든 권한은 그에게 있으니까.
사람의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인연이 있다.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는 굳이 나를 포장할 필요도 없고, 체면을 지킬 필요도 없는 사람. 그가 그런 사람이다.
치과 의자에 누우면 나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모습이 된다. 누군가에게 내 속을 이렇게까지 보여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해진다. 그것은 그가 나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단순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라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그것은 오랜 시간 쌓여 온 신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임주환 원장은, 세상에서 몇 안 되는 ‘내 마음을 맡겨도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사람에게 가는 길을 걷는다. 여전히 드릴 소리는 무섭고 진료 의자에 누울 때면 긴장이 되지만 진료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고 모든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진다.
아마 내 인생에서 속을 그렇게까지 보여주어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남자는 그 치과의사 한 사람뿐일 것이다. 우린 무슨 인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