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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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를 끝내고 식구들과 마주 앉은 저녁상 위로 거실의 TV가 거친 소식들을 쉼 없이 내뱉고 있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함께 진행한 이란 공격으로 화면 속 뉴스는 온통 중동의 포연으로 가득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대한 무차별 공습,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절규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표정들이 밥상머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낮 동안 상공인 모임에서 나누었던 경제 혼란에 대한 걱정보다 화면 속 아이들의 겁에 질린 눈망울이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입 안의 밥알이 모래알처럼 껄끄러워질 무렵, 문득 20년 전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2006년 1월, 내가 발을 디뎠던 베이루트는 ‘동양의 파리’라는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하듯 찬란했다.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프랑스풍 건축물과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의 미나렛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던 도시. 길거리 카페에서 풍겨 나오던 진한 커피 향과 지나가는 이방인에게 스스럼없이 미소 짓던 현지인들의 친절함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선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라우셰 바위’였다. 우리네 독립문과 꼭 닮은 그 거대한 바위는 마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 땅을 지키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박물관에서 마주했던 수천 년 역사의 궤적들은 외세의 숱한 침략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레바논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웅변하고 있었다. 평화롭던 그 거리, 내가 새로운 기쁨으로 거닐던 그 보석 같은 도시가 지금 무차별적인 포격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화면은 이제 피난 행렬을 비춘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정처 없이 걷는 부모들, 트럭 짐칸에 몸을 싣고 멍한 표정으로 뒤편의 연기 나는 고향을 바라보는 이들. 그들의 분노와 슬픔이 서린 얼굴 위로 자꾸만 우리의 1950년대가 겹쳐 보였다.
6·25전쟁의 총성이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해,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참으로 궁핍하고 참혹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가장 흔한 풍경은 때에 절어 반질반질해진 남루한 옷차림의 아이들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하나 없는 흙길, 이른바 ‘신작로(新作路)’였다. 군용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누런 먼지가 자욱하게 일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배고픔을 견디며 내일을 꿈꿨다.
전쟁의 후유증은 온 천지에 널려 있었지만, 우리네 부모들은 그 척박한 흙길을 다지며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 길고 긴 세월을 지나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수없는 파도가 이 땅에 몰아쳤고, 때마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우리 민초들은 단결하고 현명하게 위기를 돌파해 왔다.
베이루트의 피난 행렬을 보며 내가 느끼는 동병상련의 아픔은 바로 우리가 걸어온 그 고통의 길을 그들이 지금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이루트의 시민들 역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낸 저력이 있는 이들이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는 수천 년간 비극과 영광을 동시에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섰던 선조들처럼, 무도한 전쟁의 불길을 끄고 다시금 화려한 역사와 아름다운 도시를 재건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이다.
먼 훗날, 다시 베이루트의 라우셰 바위 앞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포연 대신 지중해의 맑은 바람이 그들의 웃음소리를 실어 나르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쟁의 먼지가 가라앉은 그 자리에, 우리가 신작로를 닦아 고속도로를 만들었듯 그들도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