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항아리 시집 보내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순영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조회수4

좋아요0

오랜 세월 서울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도시 재개발로 이곳 수지의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도 차마 주부로서 버리지 못하고 데리고 왔던 항아리가 꽤 있었다. 그걸 오랫동안 몇 년을 끌어안고 살다가 미련 없이 남의 집으로 보내버렸다. 사람도 늙어서 갈 때가 되었는데 이 항아리가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다.
장위동 단독주택에 살 때는 장독대에 올망졸망 항아리가 많았다. 이사 오면서 다 데리고 올 수가 없으니 선별해서 가져왔는데 9년여 살다 보니 아파트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천안에 있는 지인 집으로 시집을 보낸 것이다.
이삿짐을 싸며 꼭 필요하다고 여긴 항아리만 데리고 왔다. 아파트에 살아보니 주택에서 그리 쓸모 있던 항아리도 이곳에서는 무용지물이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내가 젊은 주부였다면 아파트에서도 항아리는 요모조모 쓰이며 사랑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남편과 나 단둘인데 무슨 기운이 있어 이것저것 요리를 하겠는가. 왕성하던 식욕도 사라지고,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데는 장사가 없었다.
베란다를 수리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그곳에 조르르 자리한 항아리가 뒤퉁스러워 보였다. 한때는 애지중지 내게 사랑받았는데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용기를 냈다. 그래도 다 비우지 못하고 가장 아끼는 두 개는 남겨 놓고 가져가겠다는 지인네 집으로 보냈다. 번쩍이는 승용차에 실려 가는 항아리가 마치도 딸을 귀히 대접받을 댁으로 시집 보내는 듯 안심이 되지만 마음 한편으로 섭섭했다.
우리 가족의 입맛을 내주던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품고 있던 항아리. 함께 나눴던 긴긴세월의 정을 어찌 무심할 수 있으랴. 회자정리, 만나면 언젠가는 꼭 헤어져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이니 이별은 가벼운 것이 정답일 것 같다. 나 자신조차도 버리고 싶은 판국에 무엇을 더 옆에 두고 싶어 안달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과의 이별 앞에서 애착을 가지고 욕심낼 일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터득했다.
어머니가 주지스님께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애지중지하시던 스님 초상화를,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는 내가 간직해 오다가 평생 모아둔 책들과 함께 모두 내려놓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제는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벅차, 더는 쌓아두고 살기엔 숨이 찼다.
떠날 때는 깃털처럼 가볍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마음 가벼운 순리가 아닐까. 편안한 이별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리라.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