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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앞에서 핸드백을 들어준 남자

한국문인협회 로고 유헬레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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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던 당신이 내게 핸드백을 건네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붉은 잇몸에 하얀 건치를 드러내면서.
난 참고 참았던 배뇨의 시원함도 더없이 좋았지만, 당신의 미소에 그만 옥죄었던 마음이 스르르 무장해제되었답니다. 미리 입국비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 라파스공항에서의 입국 절차는 왜 그리 까다롭고, 한없이 느리던지요. 게다가 하필이면 내 바로 앞사람이 비자 없이 입국한 외국인일 게 뭐랍니까.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 소통으로, 그 외국인의 입국 절차는 한없이 길어집니다. 모든 게 굼뜨고 느리지만 함께 간 성지순례 일행 삼십여 명은 여차여차 절차를 밟고 벌써 입국장을 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줄을 잘못 선 바람에 나만 더 한정 없이 늦어진 것입니다. 수십 분을 기다려 겨우 입국심사를 마치니 긴장도 풀리고 비행기에서부터 참았던 화장실 용무가 너무나 급했습니다.
한데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너무 이른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은 출입국장 말고는 불이 모두 꺼져 있습니다. 화장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입국장에서 가까운 화장실은 공사 중이라 문이 폐쇄되었고, 좀 많이 떨어진 곳 하나만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까다로운 입국 절차로 마음이 많이 지치고 졸아 있는데, 동료들은 이미 입국장 밖으로 다 나가 있어 동행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나는 뭐 마려운 강아지 꼴로 엉거주춤, 두리번두리번 화장실을 찾았죠. 그때 멀찍이서 상황을 눈치챈 당신이 나를 바라보곤 “바뇨(bano)? 바노, 바∼?” 뭐라고 하며 뛰어왔습니다. 난 잘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필요한 “토일렛, 토일렛(toilet)!”만 다급하게 외쳤지요. 그 말이 그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던지 당신이 어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장서 갔습니다. 내가 몹시 급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매우 빠른 걸음으로. 그리곤 화장실 앞에 도착하자 조금 멀찍이 물러나며 손으로 ‘저기’라고 화장실을 일러주었습니다. 나는 “씨(예!)” 하고 들어가려는데 당신이 다가와 손을 내밀며 가방을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난 멈칫했죠. 다름 아닙니다. 초면인 당신이 낯설기도 했지만, 화장실 가는데 남자에게 가방을 맡기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거든요. 들어갈 땐 너무 급해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맡기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로부터 가방을 건네받으려니 왠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화장실 앞에서 남자로부터 가방을 건네받는 일은 난생처음이었죠. 그것도 국내도 아닌 낯선 외국에서. 그러니 내겐 정말 생경하고 색다른 경험 아니었겠어요. 물론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당신은 단지 가이드로서 여행자를 도울 뿐이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내가 멋쩍어 웃으니, 당신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코파카바나 티티카카호수 태양의 섬에서는 당신을 매우 당황스럽게 했지요. 태양과 달이 태어난 곳이라는 티티(퓨마)칼라(바위) 동굴을 찾아가는 길, 일행 셋이 사진을 찍다 후미를 놓치곤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헤맬 때였습니다. 당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우리를 보자 긴장이 풀렸는지 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너무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당신이 바로 털고 일어나며 밝게 웃어주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찾아주었고, 화장실 앞에서 친절하게 내 가방을 받아 들고 기다려준 아름다운 청년 페르난도, 당신은 우리 일행의 <중남미 성지순례>를 돕는 볼리비아 현지 가이드로 갓 스무 살이 넘었을 것 같은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순례 일정 내내 35명 순례단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말이 통하지 않는 쇼핑을 친절하게 도우면서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았지요. 아참! 그뿐 아니었지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볼리비아는 관광지라도 가는 곳마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꼭 그 나라 동전을 기계에 넣고 자동문을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이 늘 앞서 뛰어가 화장실 앞에 서서 일일이 동전을 건네주며 이용 안내를 해주었지요.
마지막으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페루 푸노로 국경선을 넘을 때였습니다. 어가에서 나타난 어린이들이 수레를 끌고 앞다투어 달려오자, 당신은 아이들에게 고루 우리의 짐(캐리어)을 나누어 실어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국경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국경을 넘는 여행객의 짐을 페루 쪽으로 옮겨 주고 동전 몇 푼을 받는 것이었어요.
페르난도, 당신은 그렇게 여행객을 위한 볼리비아에서의 모든 임무를 마치곤, 우리 일행이 페루 입국 절차를 밟고 버스에 오를 때까지 하염없이 국경선 언덕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안타깝게도 당신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대신 재미있고 유능한 진짜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했지요, 지금은 보조 가이드지만. 페르난도, 당신은 친절과 미소, 서비스가 몸에 배었으니 충분히 성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도 친절히 여행객을 돕고 있을, 무엇보다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준 페르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꿈을 반듯하게 키워 가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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