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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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시라. 내 이름은 강현남이다. 이름부터가 얼마나 든든한가. 강(江)처럼 유구하고 현(賢)명하며 남(男)자다운 자. 내 입으로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나를 거쳐 간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를 ‘현남 오빠’라고 불렀다. 그건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일종의 성호(聖號)랄까, 아니면 ‘인생무료상담소’의 VIP 회원권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들보다 딱 반 발짝 앞서 걸었다. 왜냐고? 그래야 돌부리도 먼저 차내고, 똥물 튀는 웅덩이도 미리 발견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일종의 인간 내비게이션이었던 셈이다. 최적의 경로, 최단 거리, 사고 없는 안전한 길!
그녀 역시 처음부터 나의 이런 ‘고정밀 GPS 시스템’에 전율하며 매료되었다. 내가 데이트 코스를 분 단위로 쪼개고, 그녀의 점심 메뉴 칼로리까지 조율할 때, 그녀의 눈동자는 감동으로 촉촉이 젖어들곤 했다. 불안한 세상 아닌가.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라는 견고한 매뉴얼을 가졌다는 건 로또 당첨보다 더한 축복이었을 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아니, 이건 확신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한 팩트였다.
사랑? 그거 별거 없다. 나는 사랑을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라고 정의한다. 뜨겁게 타오르다 재만 남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지, 미래라는 이름의 펀드에 몰빵 하는 투자이자, 그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밤잠 설쳐 가며 포트폴리오를 짜는 숭고한 책임감이다. 특히나 그녀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꽃잎 떨어지는 것에도 눈물짓는 감성적인 영혼을 만났을 때는, 나 같은 능력남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법이다.
“자기야, 이번 인턴십? 그거 안 하는 게 좋겠어. 아니, 하지 마.”
내가 아주 인자하게, 마치 길 잃은 어린양을 타이르는 목자처럼 말했을 때,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건 실망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짧은 식견이 부끄러워 나오는 자기반성의 떨림이었겠지. 그녀는 그 회사가 제 전공과 딱 맞는다고 우겼지만, 이 오빠가 누구냐. 나는 이미 그 회사의 퇴사율과 야근 수당 미지급 사례, 그리고 대표의 관상까지 스캔을 마친 상태였다.
“자기는 너무 순수해서 탈이야. 거긴 1년짜리 소모품을 구하는 거야. 밤새도록 부려 먹고 버려질 게 뻔하다고. 내가 다 알아봤어. 우리가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오순도순 살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그런 데서 진을 빼서야 쓰겠어? 자기는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아는 형님네 회사, 거기 가서 경리 업무나 좀 보면서 경력 세탁, 아니, 경력 관리 좀 하자고. 출퇴근 자유롭고 커피 맛도 끝내줘.”
내 논리는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이건 억압이 아니라 ‘가성비’의 문제였다. 그녀의 고귀한 노동력을 푼돈에 파느니, 내가 설계한 안전한 온실 속에서 곱게 자라게 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 아닌가.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 역시 우리 오빠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구나!’ 하는 그 안도감 섞인 얼굴! 나는 그날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현남아, 너 참 좋은 놈이다. 너 아니었으면 쟤는 벌써 사회의 쓴맛에 절여진 황태가 됐을 거야.
나는 그녀가 꿈을 꿀 때마다 그 꿈의 유통기한을 확인해 주었다.
“자기야, 꿈은 말이야, 돈 다 벌어 놓고 나중에 에어컨 빵빵한 데서 취미로 하는 거야. 지금은 팩트를 체크해야지.”
내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걸 두고 자아를 억압했네, 가스라이팅이네 떠드는 놈들은 다 인생을 모르는 아마추어들이다. 나는 그녀에게 ‘인생 예방 접종’을 놔준 것이다. 독감이 유행하기 전에 백신을 맞히듯, 그녀의 인생에 닥칠 실패와 좌절을 미리 차단해 준 것이란 말이다. 나는 그녀를 무능하게 만든 게 아니라,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강현남’이라는 튼튼한 방파제를 세워준 것이다.
생각해 보라. 박물관의 박제들이 왜 그렇게 아름답고 영원한지. 바람에 깎일 일도, 썩을 일도 없이 가장 찬란한 순간에 멈춰 있기 때문 아닌가.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내 세계 안에 아주 예쁘게, 아주 완벽하게 박제해 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를 나쁜 놈이라고 할까? 참나, 억울해서 원. 나처럼 헌신적인 구원투수가 또 어디 있다고!
보시라. 여기 한 남자의 찢어지는 가슴이 있다. 바로 나, 강현남이다. 나는 지금 몹시 서운하다. 아니, 서운함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자고로 은혜를 입었으면 제비처럼 박씨라도 물어와야 하거늘, 나의 그녀는 박씨 대신 의심의 눈초리를 물어왔다. 내가 누구인가. 그녀의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유일하게 북극성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험한 파도를 막아주는 굳건한 방파제 아니었나.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녀는 나라는 완벽한 보호막을 자꾸만 뚫고 나가려 하는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우리 회사 B대리였다. 아, 그 여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능력? 물론 있었다. 외모? 객관적으로 훌륭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사회적 물리법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사내 정치라는 게 뭔가. 줄을 잘 서고, 때로는 굽히고, 때로는 못 본 척 넘기며 자신의 파이를 키워 가는 고도의 심리전 아니던가. 그런데 B대리는 상사들의 그 유서 깊은 ‘농담’이나 ‘부당한 요구’에 매번 찬물을 끼얹었다. 정색하며 반발하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
“B대리님, 이게 다 대리님 잘 되라고 하는 소린데, 사회생활은 말이죠, 일종의 유연성 테스트예요. 그냥 허허, 웃으면서 넘기면 모두가 편해지는 걸 왜 자꾸 부딪쳐요? 잃을 게 많은 건 결국 대리님뿐이라니까?”
하지만 그녀는 멍청하게도 내 이성적인 가이드를 거부했다. “강현남 씨는 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해요?”라니. 세상에, 이 얼마나 유아적이고 감상적인 질문인가.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는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우는, 조직 내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결국 사달이 났다. 부서 회식 자리였다. 부장님이 기분이 좋아 B대리에게 술을 좀 따르라고, 그게 뭐 대수라고 몇 번 권했다. 업무 외적인 일이라며 정색하는 B대리에게 부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띄우려 했지만, B대리는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 사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아, 저 비합리적인 영혼이여! 지난 몇 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고작 저런 ‘기분’ 때문에 쓰레기통에 처넣다니. 그건 정의가 아니라 자폭이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부장님은 내일도 출근할 것이고, B대리만 길거리로 나앉을 뿐이다.
그날 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B대리와 몇 번 안면이 있던 그녀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B대리님이 회사를 그만뒀대. 상사가 심한 말을 했다는데, 오빠도 알고 있지?”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보시라, 이 연약한 존재를. 내가 이래서 그녀를 정글 같은 사회로 내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의 어둠을 마주하자마자 곧바로 공포에 잠식당한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인생의 스승이자 구원자로서 입을 열었다.
“자기야, 잘 들어. B대리? 정의롭지. 근데 그게 다야. 현실성이 없어. 이 세상은 말이야, 이성이나 도덕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회전목마 같은 거야. 자신의 감정 하나 통제 못해서 소리 지르고 나간다고 세상이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고 바뀔 것 같아? 아니, 그냥 자기만 루저가 되는 거야. 상사들은 내일이면 다른 대리 불러다가 똑같이 술 따르라고 할걸? 그러니까 자기야, 그런 쓸데없는 정의감에 휩쓸리지 마. 나처럼 계산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나는 나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생존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녀의 불안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사건이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함이라며 머뭇거렸지만,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감상주의는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바이러스였다.
“봐봐, 자기야. 내가 소개해 준 그 회사 얼마나 좋아? 내 선배가 운영하니까 자기 능력 다 인정받지, 이상한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지. 내가 왜 자꾸 편한 길로 가라고 하겠어? 내 모든 판단, 내 모든 설계는 오로지 자기를 위한 최선이자 최적의 경로라니까.”
그녀는 한동안 침묵했다. 아마 나의 그 서슬 퍼런 이성적 논리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이윽고 들려오는 힘없는 대답.
“응, 오빠 말이 맞아.”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오늘도 나는 한 어린 영혼을 불필요한 고통과 사회적 좌절로부터 구해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자 헌신 아닌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내가 그녀에게 가르치는 것은 유일무이한 생존 방식이었다. 박제된 나비가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듯, 나의 통제 안에서 그녀는 비로소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구원투수이자, 영원한 현남 오빠니까.
자 여러분, 여기 한 남자가 서 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해진, 그야말로 이 시대의 참된 보살핌의 아이콘, 나 강현남이다. 나는 지금 몹시 유감스럽다. 아니, 유감을 넘어 일종의 인류학적인 회의감마저 느끼는 중이다. 내가 그녀를 위해 쏟아부은 그 정교한 인생 매뉴얼과 완벽한 가이드라인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왜 그녀는 나라는 1급 청정구역 안에서 자꾸만 ‘의심’이라는 곰팡이를 피워 올리는가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규연이었다. 아, 이름도 참으로 규수답고 유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의 그녀는 이 규연이라는 변수를 두고 혼자만의 장르물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질척거리는 3류 치정 멜로로. 그녀는 내가 규연이와 무슨 은밀하고도 위대한 비밀 결사라도 맺은 양 나를 몰아붙였다.
“오빠, 규연이랑 무슨 사이야? 오빠가 자꾸 규연이와 나는 과가 다르다고, 내가 오해하는 거라고 우겼잖아!”
보시라.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건 분노라기보다는 일종의 길 잃은 어린양의 비명에 가까웠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성인(聖人)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암, 그렇고말고. 무릇 스승이란 제자의 감정 과잉에 휘둘리지 않는 법이니까. 그녀는 너무나 투명하고 순수해서, 이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의 층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제 머릿속에서 ‘현남 오빠의 배신’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주 차분하게, 마치 유치원생에게 1 더하기 1은 2라는 것을 가르치는 노련한 보육 교사처럼 입을 열었다.
“자기야, 제발 팩트에 집중하자. 규연이는 그냥 동아리 후배야. 그리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걔랑 나랑은 전공이 달라. 소속과가 다르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진실이잖아. 과가 다른데 어떻게 바람을 피우니? 우리가 아는 게 맞다니까?”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불안의 파도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감정’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자발적 수감자였다. 나는 결단해야 했다. 이 불쌍한 영혼의 가슴속에 핀 ‘불신’이라는 잡초를 뿌리째 뽑아버리기로.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길 건너 카페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말하자면, 이성의 최후 법정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규연이를 만났다. 그리고 증언을 청취했다. 규연이는 아주 맑고 고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다, 자신은 오빠와 과가 다른 동아리 후배일 뿐이며, 우리 관계와는 무관한 일종의 ‘육체의 친구, 아니 실수, 영혼의 친구’ 같은 존재라고.
자, 판결은 끝났다. 진실은 승리했고, 나의 논리는 완벽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꺽꺽거리며,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이.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규연이를 만나러 가면서 ‘정말 내가 틀린 거면 어떡하지, 내가 헷갈리는 거면 어떡하지’라며 자신을 의심했기에 눈물이 났노라고.
나는 그 눈물을 보며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보시라, 이 얼마나 나약한 자아인가! 내가 화가 난 건 그녀의 의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왜 나라는 완벽한 정답지를 곁에 두고도, 그 보잘것없는 ‘직감’ 따위에 휘둘려 스스로를 괴롭히느냐는 말이다. 나의 헌신을 믿지 못하는 그녀의 그 비합리적인 태도야말로 나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모독이었다.
결국 그녀는 울음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아, 나의 감정은 이토록 쓰레기 같구나. 나의 직감은 이토록 오류투성이구나. 오직 현남 오빠의 이성만이 태양처럼 빛나는 진실이구나! 나는 그녀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다. 네가 느끼는 감정은 믿을 게 못 되니, 오직 나의 논리 정연한 가이드에 네 인생을 위탁하라고.
사람들은 이걸 두고 ‘가스라이팅’이니 뭐니 하는 상스러운 외래어를 갖다 붙인다. 참나, 기가 차서 원. 이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인생 세척’이다. 그녀의 눈에 씌워진 ‘감정’이라는 뿌연 필터를 내가 친히 걷어내주고, 가장 선명하고 안전한 ‘이성’의 렌즈를 장착해 준 것뿐이다.
그녀가 흘린 눈물은 미성숙한 자아가 파괴될 때 나오는 일종의 부산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구원투수로서, 그녀가 더는 제멋대로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녀의 인생을 아주 단단하고 보기 좋게 박제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자, 이제 보라. 내 곁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논리적으로 변했는지. 이게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자, 보시라. 여기 한 남자의 장엄한 ‘처세’가 있다. 내 이름은 강현남. 이제 곧 한 가정을 책임질 가장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매끄럽게 돌아가야 할 정밀 부품이다. 이 시점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정의? 양심? 그런 건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나 안주 삼아 씹어 먹는 껌 같은 거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안정, 평판,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재정 상태다. 나는 가장이다. 가장이란 말이다, 자기 앞가림을 위해 때로는 정의감 따위는 분리수거함에 과감히 던져버릴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자를 뜻한다.
과거, 우리 동아리의 그 교수님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래, 인정한다. 그분은 훌륭한 학자였고 나 역시 그분을 존경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소문이 터지고 이사회가 이미 작두를 대고 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배는 이미 침몰 중이라고. 그때 내가 ‘교수님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맨 앞줄에서 깃발을 흔들었던 건, 일종의 승객용 구명보트를 선점하는 행위였다.
“오빠, 어떻게 그래? 오빠도 교수님이 그럴 분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녀는 울먹이며 나를 비난했다. 아, 그 얼마나 투명하고도 무거운 순수함인가. 나는 그녀의 그 비합리적인 눈물을 보며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기야, 제발 현실의 해상도를 좀 높여 봐. 학교 이사회가 이미 도장을 찍었어. 우리가 여기서 정의를 외친다고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니? 우리가 그분 편에 서는 순간, 우리는 학교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거야. 취직? 결혼? 다 물 건너가는 거라고. 내가 이렇게 총대를 메고 악역을 자처하는 건, 결국 우리 둘이 올라탈 구명보트를 구하는 일이야. 이건 배신이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한 눈물겨운 헌신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내 ‘비겁함’이 사실은 얼마나 ‘숭고한 전략’인지를 주입했다. 그녀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내 완벽한 논리에 대한 굴복이자, 현실의 냉혹함을 받아들인 성숙의 증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결혼을 코앞에 둔 시점에 그녀가 뜬금없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우리가 틀렸다고, 교수님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며,
“우리는 분명 잘못된 판단으로 한 사람을 매도했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모함하고 나락으로 보냈잖아요.”
메일을 읽는 내내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 이 철부지 이상주의자여! 그녀는 여전히 감정이라는 끈적한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복잡한 역학 관계와 처세의 미학을 그녀는 1퍼센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이득이 전혀 없는데도, 그저 ‘옳고 그름’이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며 과거의 판결을 뒤집으려 하다니.
나는 그녀의 그 설익은 정의감이 가엽기까지 했다. 그래, 이래서 내가 옆에 있어야 하는 거다. 나같이 유능하고 계산 빠른 남자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그녀는 당장 내일이라도 세상의 거친 풍파에 찢기고 발길질당할 게 뻔했다. 그녀가 꿈꾸는 그 ‘정의로운 세상’은 사실 내가 밖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며 쌓아 올린 ‘가부장적 방파제’ 안에서만 가능한 판타지였다.
나는 그녀를 가둔 게 아니다. 격리시킨 것도 아니다. 나는 그녀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피난처를 설계했을 뿐이다. 어설프게 세상 밖으로 나가 페미니즘이니 정의니 하는 위험한 장난감을 만지다가 손을 베이지 않도록, 내가 정성껏 만든 유리 돔 안에 그녀를 모셔둔 것이다.
자, 보시라. 이 얼마나 완벽한 사랑의 형태인가. 그녀는 내가 박제해 놓은 그 아름다운 안전지대 안에서 영원히 순수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밤낮으로 처세술을 연마하며 세상의 더러운 꼴을 도맡아 보는 유일한 이유니까. 나 강현남은 오늘도 그녀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양심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진다. 이게 바로 사나이의 길, 사랑의 완성 아니겠는가?
자, 보시라. 여기 한 남자의 눈물겨운 ‘복지 정책’이 있다. 내 이름은 강현남. 이제 곧 한 여자를 제국으로 영입하려는 위대한 건국자이자, 그녀의 인생이라는 배가 파산하지 않도록 밤낮으로 가계부를 점검하는 일등 항해사다.
청혼을 앞두고 내가 무엇을 했느냐. 입술이 부르트도록 발품을 팔아 전셋집을 구했다. 그냥 집이 아니다. 보안 철저하고, 채광 좋고, 무엇보다 내 직장까지 환승 없이 한 번에 꽂아주는 ‘초역세권의 축복’이 깃든 신축 오피스텔이다. 여기에 그녀의 그 소소하고도 돈 안 되는 취미생활을 위한 뒷바라지까지! 이 정도면 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급 배려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이 평화로운 제국에 난데없는 균열이 생겼다. 그녀가 갑자기 집을 보러 다니자는 거다. 마당이 있고, 식물을 키울 수 있고, 심지어 ‘작업실’이 있는 집을!
“자기야, 이보시오. 진정 좀 해봐. 이 집이 왜? 내가 자기를 위해 뽑은 이 오피스텔, 필터로 걸러낸 순도 100퍼센트의 합리성 그 자체라고. 내 직장이 가깝다는 건 뭐야? 내가 일찍 퇴근해서 자기를 더 많이 보살필 수 있다는 우주의 섭리 아니겠어?”
나는 아주 인자하게, 마치 철부지 딸아이를 타이르는 산타클로스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 아, 그건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속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처연한 얼굴이었다.
“아니, 오빠. 이 집엔 내가 없잖아. 식물도 키우고 싶고, 그림도 제대로 그리고 싶어. 오빠 출퇴근용 정거장 말고, 우리 둘의 삶이 들어갈 공간을 찾고 싶다고.”
참나, 식물? 작업실? 나는 순간 헛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자, 여러분. 서울 하늘 아래 마당 있는 집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건 지금 당장 나보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서 붕어빵을 구워 오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능력’의 문제다.
“자기야, 우리가 지금 전원일기 찍어? 서울 집값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아? 내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서 이 정도 품위를 유지해 주는 게 얼마나 고난도 기술인지 몰라서 그래? 그림? 거실 식탁 있잖아. 거기서 슥슥 그리면 되지, 무슨 피카소라도 된 것처럼 전용 공간 타령이야. 그게 다 불필요한 사치고, 우리 가계 경제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라고!”
내 목소리는 어느새 정의로운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기어코 불만이 터졌다.
“오빠는 내 욕심을 자꾸 불필요한 걸로 만들어. 나는 오빠가 정해준 이 안락한 새장 속에 갇혀서, 오빠가 허락한 만큼만 숨 쉬어야 하는 것 같아.”
새장? 보시라, 이 배은망덕한 수식어를! 내가 밤낮으로 상사 비위 맞추고 엑셀 더미에 깔려 죽어가며 마련한 이 특급 주거 공간이 새장이라니. 나는 억울해서 숨이 턱 막혔다. 이 여자가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자기야, 냉정하게 사실 확인 좀 하자. 내가 이렇게 판을 깔아주지 않았으면, 자기가 지금 편하게 붓이나 들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은 말이야, 자기처럼 꽃 키우고 그림 그리는 낭만적인 애들을 그냥 놔두지 않아. 내가 아니었으면 자기는 지금쯤 이름도 모를 스타트업 구석탱이에서 열정페이 뜯기며 ‘인생의 쓴맛’이라는 진국을 마시고 있었을 거라고! 내가 자기를 그런 지옥으로부터 격리해 준 거야. 이게 새장이면, 세상 모든 사람은 새장에 들어가고 싶어 환장할걸?”
나는 그녀의 눈앞에 ‘현실’이라는 이름의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들이밀었다. 내 논리는 완벽했고, 내 헌신은 투명했다. 그녀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 나는 그 침묵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비현실적인 환상을 폐기하고, 나의 고결한 통치권 아래로 다시 귀순했다는 항복 선언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 사랑은 박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가장 안전한 장소에 그녀를 딱 고정해 두는 것. 바람에 흔들리지도, 세상의 때가 묻지도 않게 내가 설계한 유리 돔 안에 가두어두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보호이자 사랑의 완성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승리했다. 이 안락한 오피스텔, 나의 완벽한 새장 안에서 말이다.
자, 보시라. 드디어 대망의 결승선이다. 내 이름은 강현남. 나는 대한민국이 보증하고 대기업이 인증한 ‘확실한 미래’ 그 자체다. 내 곁의 그녀? 그녀는 내가 정성껏 닦아놓은 유리 보도블록 위를 아주 우아하게 걷기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내가 그녀를 위해 안착시킨 그 적당히 쉬엄쉬엄한 직장, 내가 필터링해 준 인간관계, 내가 설계한 완벽한 24시간! 이건 말이지,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일종의 ‘인생 커스터마이징’이자, 한 영혼을 향한 지독하고도 숭고한 ‘매니징’이었단 말이다.
나는 자신 있게 반지를 꺼냈다. 그건 단순한 귀금속이 아니었다. 앞으로 남은 50년 동안 그녀의 모든 불확실성을 내가 대신 계산해 주겠다는 ‘종신 보험 계약서’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부처님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야, 나랑 결혼해 줘. 이제 내가 남은 평생 동안 자기를 지켜줄게. 아무 걱정 하지 마. 오빠가 다 알아서 해줄게.”
아, 이 얼마나 완벽한 멘트인가.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라는 이 말이야말로 인류가 발명한 가장 로맨틱한 지배 선언이 아닌가. 나는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쏟으며 내 품으로 침몰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울지 않는 것이다. 아니, 울기는커녕 그 맑았던 눈동자가 갑자기 냉동실에 넣어둔 동태눈깔처럼 차갑게 얼어붙는 게 아닌가.
“강현남.”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빠가 아니라, 강. 현. 남. 내 세 글자 이름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그건 일종의 불길한 예감, 내가 공들여 만든 유리 돔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참나,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내가 당신을 바보로 만들었다니? 나는 당신을 보호한 것이다. 하이에나가 득실거리는 사회라는 정글에서 당신의 연약한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기지 않도록 신발을 신겨주고 유모차를 태워준 것뿐인데! 나의 헌신이, 나의 그 밤잠 설쳐가며 짠 엑셀 데이터들이 한순간에 ‘바보 제조 공정’으로 격하당하는 순간이었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오빠의 사랑은 오빠 스스로를 유능하고 선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셀프 기만이었어. 나는 오빠의 완벽함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던 거지.”
그녀의 입에서 ‘셀프 기만’이니 ‘주체’니 하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아, 이건 분명 내가 검열하지 못한 불온한 서적이나 이상한 친구 녀석들이 주입한 독소임이 분명했다. 그녀의 내면에서 내가 그토록 경계했던 ‘자아’라는 괴물이 부화해 버린 것이다. 내가 준 안락함을 억압이라 부르고, 내가 준 안정을 족쇄라 부르는 그 해괴망측한 논리!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녀는 욕설을 내뱉고는 반지를 내동댕이쳤다. 댕그랑, 하고 반지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는 내 완벽한 미래 설계도가 찢겨 나가는 비명처럼 들렸다. 그녀는 돌아섰다. 가차 없이, 아주 매정하게. 나는 그 자리에 박제된 나비처럼 굳어버렸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의 가스라이팅? 아니, 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사랑의 백신’이었다. 그녀가 세상의 풍파에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내가 대신 비를 맞고 대신 진흙탕을 구르며 길을 닦아준 것이다. ‘나만 믿으면 된다’는 나의 확신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꽃길을 걷어차고 제 발로 가시밭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안락한 새장을 부수고 나간 새가 마주할 건 자유가 아니라 독수리의 발톱뿐인데! 그녀는 지금 자신의 나약함을 나라는 ‘선한 권력’에 투사하여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처참하게 실패하기를 기다린다. 나는 확신한다. 저 험난한 세상에서 그녀는 머지않아 무릎이 깨지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깨달을 것이다. 현남 오빠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과 완벽한 통제가 얼마나 그리운 파라다이스였는지를.
나는 다시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다. 자비로운 목자처럼, 다시 그녀를 내 완벽한 박제실로 인도할 준비가. 결국 그녀에게 필요한 유일한 현실은, 오직 나 강현남뿐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보시라. 누가 결국 마지막에 웃게 될지. 나는 여기서, 내 완벽한 세계의 문을 열어두고 기다릴 것이다.
에필로그, 나의 완벽한 설계자에게
발신: 나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아닌)
수신: 강현남
현남 씨,
당신이 보낸 그 길고 지루한 ‘텍스트’를 읽느라 내 소중한 저녁 시간을 조금 낭비했어요. 사실 처음 몇 줄을 읽다가 그냥 창을 닫아버릴까 고민했죠. 당신의 문장들은 마치 업데이트가 멈춘 낡은 소프트웨어처럼, 지난 5년간 내가 지겹도록 들었던 자기 합리화와 기만적인 논리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여전히 나를 ‘순수하고 감성적이어서 현실의 냉정한 논리 속에서 쉽게 상처받을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두고 있더군요. 그리고 당신의 통제욕을 ‘책임감’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했고요. 하지만 현남 씨, 그거 알아요? 당신이 말하는 그 책임감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팔다리를 자르고 내민 의족 같은 것이었다는 걸.
당신은 내가 인턴십을 포기하게 했을 때, 그걸 내 미래를 위한 ‘최적의 경로’라고 확신했죠. “고생만 하고 스펙으로 연결도 안 될 길”이라며 나를 보호했다고 믿었겠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가 그 ‘고생’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 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 일에 지원하려 했던 건, 그곳이 내가 진짜로 배우고 싶었던 분야였기 때문이에요. 설령 1년 계약직이라 해도, 밤샘 야근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나는 내 힘으로 부딪쳐보고 깨지고 싶었어요. 실패할 권리조차 당신이 뺏어갈 권리는 없었다는 뜻이에요.
당신은 내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나 성공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죠? 당신의 완벽한 설계도에는 ‘자아를 가진 나’라는 변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으니까. 당신이 소개해 준 그 ‘편안한’ 직장은 내 성장을 멈추게 하는 아주 안락한 관(棺)이었어요. 당신은 나를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당신이 사랑한 건 당신에게 영원히 종속되어 고마워하기만 하는 무력한 인형이었을 뿐이에요.
B대리 사건 때 당신이 했던 말들, 기억나요? 당신은 그녀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커리어를 던진 루저’라고 비웃었죠. 하지만 내가 본 건 루저가 아니라, 부당함에 정면으로 맞선 용기였어요.
그녀의 행동은 나에게 어떤 신호탄 같았어요. “나도 부당하다고 말해도 된다”라는 허락 같은 거요. 그런데 당신은 그 신호를 감정적인 폭발로 깎아내렸죠. 왜냐하면 내가 그 정의감을 배우는 순간, 당신의 가부장적인 권위에도 금이 갈까 봐 겁이 났을 테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합리적인 생존 방식’은 결국 기득권에 기생하며 얻는 굴종의 대가일 뿐이에요. 당신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 게 아니라, 내가 겪어야 할 구조적 억압에 눈을 감게 함으로써 나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거예요. 당신의 세상은 안전했던 게 아니라, 그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 상태였던 거죠.
규연이 사건 날, 당신은 나를 카페로 끌고 가 해명을 듣게 했죠. 당신은 그게 아주 이성적인 ‘팩트 체크’였다고 뿌듯해했겠지만,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은 당신을 믿지 못해 흘린 참회의 눈물이 아니었어요.
내가 울었던 건, 당신에 의해 내 직감과 감각이 완전히 거세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내 감정이 틀렸을 거라고, 당신의 논리가 언제나 정답일 거라고 믿도록 완벽하게 길들여져 있었던 거죠.
당신은 나를 구원한 게 아니라 가스라이팅 하고 있었던 거예요. “너의 감정은 믿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5년간 주입당하며, 나는 내 안의 나침반을 잃어버렸던 거예요. 당신이 씌워준 ‘이성의 렌즈’는 사실 당신의 명령만 받아쓰게 만드는 필터였을 뿐이라고요.
당신이 고른 그 신축 오피스텔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질식할 것 같았어요. 당신에게 집은 ‘효율성’과 ‘재정적 안정’의 결정체였겠지만, 나에게 집은 내 영혼이 숨 쉬는 공간이어야 했어요.
내가 원했던 작은 마당이나 작업실을 ‘비현실적인 헛소리’로 치부할 때, 당신은 내 삶의 가능성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나에게 모든 것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그건 당신이 허락한 1평짜리 취미 공간 안에서의 이야기였죠. 내가 화가 난 건 집의 크기가 아니에요. 어떤 삶을 꿈꾸든 당신의 ‘합리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내가 항상 ‘틀린 사람’이 되어야 했다는 그 사실이에요.
당신이 청혼하던 그날, 당신의 눈빛은 마치 정복지에 깃발을 꽂는 왕 같았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그 말이 나에게는 “이제 넌 영원히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선고로 들렸죠.
그래서 나는 당신의 그 완벽한 계획을 찢고 당신의 이름을 부른 거예요.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가장 뜨거운 해방 선언이었어요.
현남 씨, 당신은 내가 세상 밖에서 넘어지고 상처받을 거라고 확신하죠? 맞아요, 나는 넘어질 거예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닦아놓은 고인 물 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진짜 아스팔트 위에서 넘어지는 거예요. 그 고통은 내 것이고, 그 상처를 통해 나는 당신이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나를 믿는 법’을 배울 거예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이 닦아놓은 꽃길을 걷지 않아요. 이제 나는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내 속도로 걸어갈 거예요. 당신이 만든 그 ‘안전한 피난처’는 나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감옥이었으니까.
다시는 나를 찾지 마세요. 당신의 깨진 거울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비추지 않아요.
안녕.
*이 소설은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의 주인공을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하여 소설의 줄거리를 현남 오빠의 시점으로 작성한 패러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