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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사람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동근(파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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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지입차 형태로 직영 인부 10여 명을 수송한다. 12인승 봉고 승합차 기사 박두호 씨, 아침에 인부들을 내려주고 나면 그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해서 현장 곳곳을 쑤시고 다니며 무료한 시간을 최대한 무료하지 않게 보내려고 나름 애를 쓴다.
새참 준비에 여념 없는 함바에 미리 가서 죽 치고 앉아 함바 종업원들과 노닥거리는가 하면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한창인 펌프카 옆에 붙어 서서 구경 삼매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들락날락하는 레미콘 트럭을 유도한답시고 꽁무니 쪽에 서성이며 오라이 오라이 운전대로 꺾어요, 반대로 반대로 오라이 하고 마치 콘크리트 팀의 필수 관계자라도 되는 양 교통정리를 자처한다.
위험해요, 차에서 떨어지세요. 조정기를 들고 스위치를 조작하는 펌프카 기사의 날카로운 주의가 떨어지면 일시 그의 동작은 멈춘다. 그리고 슬며시 자리를 벗어난 그의 발길은 곧장 인근 공터의 철근장으로 향한다. 절단한 철근 도막을 대·중·소 크기별로 나누어 기역자, 혹은 디귿자 형태로 가공해 반듯하게 쌓아 놓은 결속 부품은 그 자체로 레고 블록과도 같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보다 의외의 사실은 철근장에 상주하며 부속을 가공하는 두 여자의 존재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지도 모른다. 중국 교포이다. 자매지간이며 그중 언니 쪽은 연변에 어린 남매가 있고 남편은 협동농장 소속으로 농사를 짓는다. 같이 일하는 동생은 미혼이다, 라는 따위의 얻어들은 사실을 박 기사는 퇴근길 차 안에서 죄다 털어놓았다.
동네 산책할 때나 보일 법한 박 기사의 그 같은 발걸음이 과연 무료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까. 되었으면 좋겠으나 계속되는 행보로 보아 한동안 그의 따분함은 속 시원히 풀릴 것 같지 않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언제부터인가 그는 시나브로 변신을 시도했다. 아침 조회 때 각 동의 담당 기사나 주임이 탈의실로 와서 오늘 하루 필요한 인원을 뽑아갈 때, 박 기사도 슬쩍 끼어들어서 어디론가 휩쓸려 가곤 하는 것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한다. 이는 누가 보아도 만인의 본보기가 될 만한 참다운 노동자상임에 틀림없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의 자발적이고도 회사를 위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회사 측에서 마냥 두고만 볼 리 없다. 당연히 그의 선한 의도에 값하는 보상이 따랐다. 어느 때부턴가 그는 사무실 출입이 부쩍 잦았고, 또 얼마 안 가 공사장 가림막 내에서는 다들 알아보는 인물, 하다못해 하청업체 직원들조차도 모를 수가 없는 소문난 인물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 그를 특채했다. 대흥건설 일산 현장 직영 반장이 된 것이다. 그가 출퇴근시키는 파주 방면 직영 인부를 따로 관리 감독하는 게 새롭게 주어진 그의 임무였다.
반장이 되더니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졌다. 달라진 게 눈에 확 띈다. 대흥건설 현장, 소장, 과장, 국장, 총무, 대리, 주임, 기사까지 모두 회사 유니폼 잠바를 걸쳤는데, 풍채 좋은 박 반장 또한 당연하게도 유니폼 대열에 합류했다.
“아, 아 사무실에서 알립니다. 직영 박두호 반장님은 지금 속히 사무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직영 박두호 반장님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이렇게 그의 달라진 위상은 그를 찾는 방송으로도 확인된다. 각 동의 담당 기사가 찾는 마이크 소리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는 방송을 탔다. 반장을 호출하는데 굳이 확성기까지 동원했다면 뭔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용무가 생겼을 터, 예컨대 103동 담당 기사가 설계상 작업 일정에 따라 반장에게 열거하는 금일 오후 2시쯤의 방송 이유는 다음과 같다. 콘크리트 양생 끝난 103동 3층 302호 거푸집 판넬 해체해 놓았으니 직영 아저씨 세 분 보내서 위층 402호로 올려주시오, 하는 취지의 메모가 반장에게 전달된다.
파주 인부들이 아침에 어느 작업장으로 배치되었는지는 배치시킨 반장이 꿰고 있다. 하니 몇 군데 찾아가 힘깨나 쓸 만한 인부 셋을 불러 모은다. 그들을 103동으로 보내며 따로 또 모종의 지시를 내린다. 혹은 부탁한다. 일 끝나면 빈손으로 오지 말고 빈 박스며 폐지, 폐전선, 고철 따위를 닥치는 대로 들고 오라는 것이다. 모았다가 팔면 그건 오롯이 직영 인부들 몫이다. 박 반장이 은근히 강조하기를 폐자재를 처분하면 파주 팀 인부들 회식비로 쓰겠다. 이렇게 건의하니까 총무과에서 두말 않고 허락했다고 한다. 아무리 못 쓰는 물건이라도 원래 회사 물건은 함부로 반출하면 안 되는 것인데, 어찌어찌 총무를 구슬려 삶았더니 어렵게 통과되었노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 그를 보노라면 그렇게 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회 일반의 인식이 절로 실감 난다. 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정도가 된 자신의 영향력을 은근히, 혹은 대놓고 과시하곤 했다.
철 스크랩이나 피복을 벗긴 구리선, 토막 난 보일러 동파이프, 자투리 알루미늄 쪼가리 등 값나가는 고철에 비하면 부피만 큰 폐지 값은 코흘리개 푼돈에 불과하다. 10층에서 15층까지의 건물을 열 동 짓는다. 그만큼 쓰고 남거나 버려지는 자재도 만만찮으니, 5톤 트럭으로 한 달이면 서너 차는 반출시킨다. 내보낸 한 차의 고철 값은 얼마나 될까? 그야 반장이 알지? 인부들은 모른다. 도대체 감을 못 잡겠어. 미친년 널뛰듯이 고철 시세가 들쑥날쑥 요동을 친다고, 그렇게만 밝히고 입을 딱 다물어 버린다 하니 궁금해도 누가 감히 물어볼 엄두를 못 내고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다. 고철 값에야 비할 바 못 되지만 폐지 값도 만만찮다 싶은, 의혹에 가득 찬 보는 눈들이 있으니 그냥은 넘어갈 수 없고, 오늘 고물 팔았으니 한턱 먹읍시다 하며, 그날은 바로 퇴근하지 않고 뭐든지 싸고 푸짐한 현장 함바에서나마 삼겹살을 굽는다.
“고기를 자주 먹네요.”
“이게 다 박 반장님 덕택 아닌가요?”
고기가 익어 가는 동안 반장을 향한 칭송이 점잖은 만찬장의 브라보 외치듯 이어진다. 그는 배가 약간 나오긴 했지만 외려 그게 바로 초로의 나이에도 원기 팔팔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도 되는 듯, 노릇노릇 잘 익은 삼겹살을 휘감은 상추쌈을 널름널름 잘도 드신다. 입담도 찰지다. 서울 파주 오가는 시외버스 기사 출신인 그가 운전대를 놓고 근무 조건이 열악한 막노동을 섭렵했을 거라곤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수십 년 현장의 밥을 먹은 베테랑 노가다 십장이라도 되는 양 걸쭉한 입담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한다.
그런 그에게 누가 과연 맞설까. 일머리 의견이 니뿔내뿔인 것을 바싹 하나로 다잡아 크게 한 방 날리는 망치 같은 반장의 지시에 감히 누가 불쑥 토를 달 수 있을까. 거의 없다. 다들 박두호 씨 소개로 일당벌이를 하고 있는 처지이고 보니 웬만하면 그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수긍해 준다. 설사 터무니없고 말이 말 같지 않다고 여겨져도 그럼요, 반장님 말이 맞지요 하고 고집불통 아이 달래듯 맞장구쳐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경우는 항상 존재한다. 쉽지야 않겠지만 콩을 콩이라 말하고 팥을 팥이라고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직설적인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파주 법원읍 갈곡천 뚝방에 납작 엎드린 단층 연립주택에 사는 이동민 씨, 예의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의 지론에 의하면, “반장님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거의 성토에 가깝다.
“망치질 한 번을 해도 말이오. 일이란 건 그렇게 대충하는 게 아녀. 반장님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얼렁뚱땅 눈 가리고 아웅 했다간 난리 납니다요. 돌아서면 사고 터져, 내가 이래봬도 영월 옥동탄광서껀 태백으로 해서 쌍용 석회석 광산도 안 가봤남. 총 이십구 년을 내 어깨로 갱목 떠받치고 했는데 집 짓는 각목이라고 뭐가 다른감. 탄 안 묻었으니 깨끗이야 하지만서도 톱 대면 잘리고 못 치면 들러붙는 건 매 한가지여. 반장님이 이래라저래라 안케도 노가다 막일은 빠삭하니까 재촉 좀 마쇼. 내 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께.”
고개 빳빳이 들고 그는 이러고 나온다. 실수한 거다.
박 반장은 그가 이렇게 심히 투덜대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공연히 곯려주고 싶은 상대, 만만한 눈엣가시를 독 안에 든 쥐 잡듯이 몰아붙일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반사적으로 외마디 기차 화통을 한 번, 꽥! 내지른다.
“당신이 반장이야? 응! 거키 일 잘하면 잡부 왜 해 왜, 뺀질뺀질 남 속 좀 뒤집지 말고 아주 그냥 대흥건설 현장 소장 해 처먹으라구. 저 반편이 나 아녔으면 벌써 쫓겨났지 뭐야. 이 씨는 안 되겠다고 말여, 볼 때마다 총무가 한 소리 한다니까 그러네. 일하는 게 뭐 그래. 몰탈 쳐발라 구멍 하나 땜빵하기를 하 참 나, 직영 아줌마가 발바닥으로 찍 문질러도 그보단 낫겠다. 어떤 직영이 일 그 따위로 하는 걸 총무가 어째 알았으까. 알고 말고지, 안 보는 것 같아도 간부들은 다 본다니까 그러네. 총무 방침은 이동민 씨 짤라요, 내보내라는 걸 말여, 내가 말했지. 내 손으로 데리고 온 사람을 내 입으론 말 못 하겠소. 사람 밥줄 끊는 그런 말은 사무실에서 직접 하슈. 이래 버리지. 반장 권한으로 내가 그렇게라도 방패를 치니까 제깐 놈이 붙어 있는 줄 모르고 말야. 일도 못 하는 게 뭘 좀 시키면 말이 많아 말이, 에휴! 꼴 뵈기 싫은 놈.”
입은 좀 험해도 흡족하게 아주머니들의 심금을 울리는 박 반장이다. 이 씨가 기고만장할수록 반장의 허세와 구라는 더욱 빛을 발하니 그 둘을 보면 안다. 앙숙도 나름 요긴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들이 결별하면 서운해할 사람이 참 많다. 직영 인부들 중에 반이나 된다. 여자들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직영 여자 일당은 남자의 7할, 이것을 수령할 때는 남자보다 한층 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태생적인 그녀들의 운명, 예컨대 약한 편 쪽의 연대 의식 같은 거.
이동민 씨를 알 만큼 알고부터 현우는 자주 술을 샀다. 현장 함바에서 주로 오후 새참 때를 이용해 막걸리나 소주 뚜껑을 딴다. 그럼 그는 한 번 사양도 않고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그리고 맥없이 고마워했다. 고마워하는 표정이 왠지 가냘프게 보인다. 동민 씨를 볼 때마다 현우는 곧잘 그런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경우를 무척 따져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분별력은 확고한 편이다. 하지만 손은 이미 한 잔 술을 받쳐 들며 그 술값의 계산은 젊은이의 처분에 맡기는 늙은 노동자의 하루는 얼마나 쓸쓸한가.

 

‘경축. 흰돌마을 입주를 축하합니다.’
도로와 면한 101동 아파트 옥상 난간에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3년 공기에 파주 방면 직영 인부들이 투입되고부터 2년 반 만이었다. 일산 현지인들로 구성된 선발 직영 인부들은 아파트 준공을 전후로 뿔뿔이 해산했다. 반면 박 반장이 인솔하는 파주 쪽 인부 10여 명은 준공 후에도 당분간 더 팀을 유지했다. 다음 현장으로 바로 연결이 됐기 때문이다. 업계의 동향에 밝은 총무가 인력의 인수인계를 주선했다고 한다. 바뀐 현장은 일산 정발산 기슭의 흰돌마을보다야 한결 가까운 파주 관내 금촌 주공아파트였다.
퇴직과 새 현장의 출근 사이에는 한 달간의 말미가 주어졌다. 반도건영이라고,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곧 나간다는 소속감이 확고한 탓일까. 때문에 턱없이 긴 휴가를 받은 듯싶었다. 법원읍 장날이 되면 동민 씨와 현우는 장날만 영업하는 간이주점을 단골로 찾았다. 무싯날도 더러 만나 휴가 같은 시간을 보내는 새, 어느덧 첫 출근 날이 사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달의 마지막 장날인 그날도 만나기는 했다. 하되 주탁의 장소는 장마당 주점이 아니라 그의 집이었다. 현우는 막걸리와 오징어튀김, 부추전 등 장마당 주전부리를 포장해 두어 봉지 들고 갔다. 오늘은 집에서 보자고,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미리 그가 연락해 왔기 때문이다.
호마이카 장롱이 거실의 윗목을 통차지하고 있었다. 장롱 앞 거실 한복판에 술상을 차렸다. 술잔을 돌리기 전에 그는 장롱 맨 밑쪽 서랍을 열어 누런 서류 봉투를 끄집어내었다. 전 가족의 인적 사항이 기재된 호적 서류였다.
“한번 계산해 봐. 아들 아닌 거 맞지?”
호주 이동민과 아내 홍인경의 혼인신고 날짜로부터 6개월 후, 아들 대원의 생년월일이 그날로 되어 있다. 자세히 좀 보라고. 손가락으로 해당 날짜를 일일이 짚어 주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거 가지고 경찰서 가면 해결되겠지.”
“뭐가요?”
“고발하는 거.”
고발이라니? 누가 누구를, 무엇 때문에 등등 불시에 튀어나온 그 용무의 생경함에 현우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술부터 한잔 마시고 들어봅시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현우가 의아해하며 술을 따르자 그는 그제야 성급한 재촉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말끝마다 정말이냐? 어떻게 그럴 수가, 그게 사실인가 등등 현우가 묻는 질문과 반문에 그는,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27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날 열차편으로 동민은 몇 굽이 산길을 돌아 제천에 갔다. 제천장에서 조기와 다시마 등 부친 기일에 쓸 몇 가지 제수를 장만했다. 하고서 역으로 돌아와 영월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장 본 보따리 봇짐을 든 동민을 빤히 쳐다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나 누군 줄 아슈?” 묻자 여자는 살래살래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계집아이가 딸려 있었다. 그중 동생이지 싶어 보이는 쪽, 두세 살 되었음직한 왜소한 아이는 엄마 치마폭을 잡고도 표가 나게 다리를 절름거렸다. 여자는 두 딸을 양옆에 거느리고 몇 발짝 다가왔다. 국밥 좀, 말끝에 고개를 푹 숙인다. 뭐라고요? 동민은 여자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었다. 저기 국밥집 있어요. 그래서요? 애들 국밥 좀 사 주세요.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어제부터, 여자는 나지막이 내뱉고는 동민을 외면했다. 여자의 얼굴이 향한 쪽으로 동민은 고개를 돌렸다. 제천역 앞 큰길 맞은편에 고만고만한 식당들이 몇 집 보였다. 동민은 앞장을 섰다. 시킨 국밥을 다 먹은 후, 세 모녀는 그날 동민을 따라 영월행 기차를 탔다.
본래부터 장돌뱅이 보부상 무리와 한통속은 아니었다. 여자의 남편은 술도가 배달꾼이었다. 배달꾼 노릇을 작파한 후, 거간꾼을 따라다니며 대여섯 마리씩 소를 몰아 이 장에서 저 장으로 넘기는 소몰이꾼으로도 종사했다. 그러다 한 무리의 봇짐장수를 만났다. 그들의 일원이 되자 걸핏하면 낯선 타지의 먼 장을 돌기가 일쑤였다. 잊을 만하면 한 번, 대략 달포쯤에 한 번씩 집에 들르지만 와도 반갑지 않은 사람, 손찌검 버릇이 있어 왔다 하면 집 안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여자가 세상 물정에 쑥맥이기로서니 딸자식 둘이나 키우는 마당에 부부는 왜 그리도 진저리치며 살았을까. 동민은 그런 따위의 연유를 더는 묻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기는커녕 자세한 내막일랑은 꿈에도 알려고 들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동민은 까막눈을 면한 동네 친구를 찾아갔다. 그를 데리러 보내 호적 절차를 밟았다. 호적상 전남편과 홍 여인은 부부관계가 아니었다. 혼인 미신고 상태였다. 해서 연옥, 금옥 자매는 모친 홍인경과 함께 합법적으로 이동민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뭐가?”
“총각이었잖아요. 총각 아니라도 그래. 생판 남을 내 집에 받아들여서 먹여 살린다는 게, 그게 보통 일은 아니죠. 술만 먹는 줄 알았더니 엄청 좋은 일 하셨네.”
“좋기는 무슨, 옛날에 좋은 건 말짱 꽝이야. 끝이 좋아야 진짜 좋은 거지. 대원이 그놈….”
갈곡천 뚝방촌 대양빌라 19호, 그의 집은 세가 3천만 원인 전셋집이었다. 그걸 깨서 전세를 월세로 돌렸다. 돌려받은 전세금 3천만 원은 어디로 갔나? 월세 보증금 5백만 원 남기고 나머지는 아들 결혼식 비용으로 거진 다 썼다.
“2천만 원 다 달라는 게 아녀. 아니나 마나 반은 받아야잖겠나. 뭉텅이 돈 빼간 게 2천이야. 식 올릴 동안 찌끔찌끔 깨진 돈도 꽤 된다구. 그건 됐어. 받을 염도 안 돼. 허나 아비 전 재산을 갖다가 저 장가 밑천으로 썼으면 약속을 지켜야 할 거 아니냐구. 다달이 적금 붓듯이 말야, 20만 원씩 통장에 넣어준댔거든.”
약속한 월 납입금을 아들이 보내긴 보냈다. 단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달랑 한 번 보내고 끝이었다. 그럼 이유를 대야지 이유를, 이렇다 저렇다 무슨 말도 한마디 없다. 조만간 5백만 원 월세 보증금에서 방 월세를 다달이 떼 나가게 생겼다. 그럼 3년도 못 가 끝장난다. 빈털터리 되는 거다. 이 빌라에서 쫓겨난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지 않는가. 몇 며칠 속앓이하다 보니 불현듯 떠오른 강력한 수단 하나, 그는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일까. 이가 맞지 않는 호적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그것에 작정하고 무슨 의미를 불어넣는 듯한 그의 저의는 무엇인가.
“칠삭둥이는 아닌데.”
“맞지, 날짜가 잘못된 거 틀림없지.”
“그래요, 열 달을 채우든가 최소한 일곱 달은 넘어야 되잖아요. 아기가 태어나려면.”
“알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랬다. 제천역에서 세 모녀를 처음 만났을 때 여자의 태중에는 이미 전남편의 씨앗이 잉태해 있었다. 동민은 나중에 알았고, 알고 나서도 무덤덤했다. 마치 자신과 친부 가운데 누구의 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연옥, 금옥 자매를 보노라면 안도의 마음이 드는 것처럼, 이 다음에 아이는 실로 얼마나 더 막무가내로 자신을 찾으며 매달리며 무럭무럭 커 갈 것인가 하는 가슴 뻐근한 어떤 기대가 하늘 저편의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하늘에 둥둥 뜬 구름을 바라보듯, 눈앞에 내일의 광경이 환희 보이는, 오직 그것만이 동민의 가슴에 가득 찼었다.
“그걸로 뭘 어쩌실려고?”
“이거 경찰서 가서 보여주면 안 될까? 내 돈 반만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말이야.”
친자식이면 안 될지 몰라도 내 핏줄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느냐. 이걸 들이밀면 경찰이 알아서 돈을 받아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씨의 상식에는 오로지 합당하다. 그는 그것을 실천해 옮기기 위해서 오늘 현우를 보자고 한 것이다. 최종 점검 삼아서 젊은 사람의 자문을 구하는 치밀한 신념, 혼사를 앞두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버지, 저 결혼해요. 2천만 원 정도만 도와주세요. 더 필요하긴 한데 모자라는 건 저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전세금 빼서라도 부탁해요. 대신 월세 20만 원은 다달이 보내드릴게요. 2천만 원 다 갚을 때까지요.”
이렇게 동민 씨의 가슴으로 낳은 아들은 굳게 다짐했다.
“들어 봐, 글쎄. 다달이 20만 원씩 부쳐준대. 보라고, 계산 하난 철저한 놈이지. 2천만 원 이자 갚는 셈 친대. 괜찮대도 그러네. 그만두래도 말릴 수가 없어. 우리 아들은 워낙 계산이 철저해서 20만 원 부쳐주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네.”
현우는 기억한다. 일산 공사판 함바에서의 그 흐뭇했던 시간들, 그는 그때 통이 크고 화끈한가 하면 세심하기도 한 아들의 야무진 인간성에 대해서 속속들이 열거했었다. 그 아들의 그 아비라는 엄연한 사실에 절로 흥겨워하면서. 그리고 잔치는 끝났다. 약속한 그달 그 날짜에 맞추어 동민 씨는 농협에 갔다. 첫달엔 차질 없이 20만 원 잘 받았다. 통장 입금란에 아들이 보낸 20만 원이라는 액수가 그림처럼 찍혀 있었다.
두 번째 달에도 그는 푸근한 마음으로 농협을 방문해, 현금자동입출금 기기에 통장을 투입했다. 정리할 내역이 없습니다 하고 모니터에 굵은 문자가 떴다. 이상하다. 오늘은 바빠서 내일 보내려나. 당연히 그리 알고 발길을 돌렸다. 눈 말똥말똥 뜬 채 밤 지새다시피 한 다음 날, 조급한 마음을 다 잡으며 오전 늦게 또 농협에 갔다. 통장을 찍어보았다. 모니터 상의 안내문은 어제와 같고, 뚫어져라고 통장을 보고 또 보아도 맡기신 금액란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다. 가슴이 서늘했다. 가슴 한복판에서 뭉툭한 무언가가 쑥 둘러빠지는 느낌, 집에 왔지만 밀린 빨래며 설거지 등 뭘 할래도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여 재미도 없는 연속극 틀어놓고 홀짝홀짝 술만 마셨다. 그 후로도 내내 헛걸음이었다. 열흘, 보름, 한 달이 가도 돈은 아니 오고, 설마설마했는데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담배며 술, 반찬값 따위의 인출 탓에 통장의 잔액은 나날이 줄어만 갔다. 의기소침해서 그는 왜냐고 묻는 전화를 일절 하지 않았다. 아니 하긴 했다. 몇 번이고 연속으로 세 번, 네 번도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받지를 않으니 아니한 것이나 진배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는커녕 무소식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전화를 말이다, 무어라고 말을 해라 말을,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돈도 소식도 뚝 끊어버리면 아비는 어쩌란 말이냐. 아비? 누가 저의 아비냐. 친아버지가 아니라서? 그의 심중에는 불같은 의혹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새삼 호적 서류를 꺼내 놓고 아들의 출생일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아내와의 혼인신고는 합가한 지 한 달쯤 후에 했다. 그 한 달을 집어넣어도 어미 뱃속에서 일곱 달, 태어날 때 아이는 건강했다. 칠삭둥이라는 징후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전남편의 씨앗이 틀림없다. 빤히 드러난 그 사실을 죽기 전에 아내는 아들에게 발설했을까. 병약했던 아내는 아들이 식 올리는 걸 보고 나서 석 달인가 후에 눈 감았다. 아내가 출생의 비밀을 말했다면 십중팔구 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비밀은 이제 비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살아온 기막힌 세월, 초로에 접어든 꼼꼼쟁이 노인의 합리적인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오죽하면 한 동네 술 잘 먹는 젊은 사람을 불러냈을까. 긴히 할 말이 있긴 뭐가 있나. 예전에 마구 내뱉은 아들 자랑, 그거 취소하겠다는 거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거요?”
“뭘?”
“사정상 대원이가 돈을 미루면요. 혹시 못 갚으면 어떡할 거냐구요. 월세도 안 보내오고 그러면요?”
“이 자식 안 갚기만 해봐. 내가 당장….”
“당장 뭐요?”
“경찰에 고발할 거야. 콩밥 좀 먹여야 정신을 차리지.”
“말이 그렇지 고발이 어디 그리 쉽나요, 평생 살아온 인연도 있는데.”
“무슨 인연?”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더 진하대요.”
“누가 그래?”
“다들 그러잖아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팔자들 좋구만. 돈 좀 있나 보지. 부모 돈 안 뜯어가면 그 말도 맞다.”
“오히려 친부모 같으니까 손을 벌린 게 아닐까요. 정상적이라면 솔직히 2천만 원 갖고는 결혼하기 힘들죠. 당장 이 집만 한 신혼집 하나 구할래도 2천만 원 넘겠소. 그러니 좀 기다려보는 게 어때요. 대원이도 지금 신혼초라 정신이 없나 보죠. 이 집 월세는 낼모레 금촌 현장 가서 열나게 벌면 되잖아요. 삼만 원 일당이니까 삼칠은 이십일, 일주일 벌면 한 달 월세 내겠구만. 대원이도 그걸 알고 납작 엎드렸나 본데.”
“내가 일하는 줄 아니까 돈을 안 갚을지도 몰라. 그게 더 괘씸해. 앞으로 벌어봐야 내가 얼마나 번다고 그 따위로 나오냐구, 말을 해야지 말이야 말을, 왜 연락이 안 되냐고 안 되기를.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이건 지 놈이 먼저 인연을 끊자고 나오는 거지 뭐야.”
“그러게 전세는 왜 깨서 속을 썩여요.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눈도 꿈쩍 말고 그 돈은 끝까지 지켰어야지.”
“말이야 쉽다. 누군 뭐 주고 싶어 줬나. 주구장창 쫓아와서 졸라대는 통에 그만…. 달랄 땐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예 예 하더니 젊은 놈이 그게 뭐 하는 짓이야. 늙은이 등쳐먹기를 아주 계획적이라니까.”
“아버지니까 믿었겠죠.”
“그렇다니까, 아들이라고 믿고 안 줬나.”
“그럼 됐네요. 아들이고 아버지가 맞죠. 평생 따라온 인연이 그리 쉽게 끝장날 리가 없죠. 그러니까 고발이니 어쩌니 너무 꼬장꼬장하게 굴지 말고 마음을 좀 너그럽게 잡숴 봐요. 그래야 오래 살아요.”
“먼 또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난리야. 치우고 어여 마시기나 해. 내 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디 뒀나. 장롱 쪽으로 밀어둔 호적 서류가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뒤집어져 있었다. 그 밑에 깔린 서류가 꽤 두툼하다. 비슷한 각종 서류들이 여러 통 겹쳐 있었다.
“밑에 이건 뭔가요. 좀 볼까요?”
“봐도 돼, 별거 아냐.”
별거 아닌 게 아니라 대단히 귀중한 문서, 강원도 영월군 서면 후탄리 일대에 산재해 있다는 그의 명의로 된 논밭에 대한 등기권리증이었다. 계단식 논 600평짜리가 두 곳, 그리고 400평, 300평짜리 밭자리 등 땅 문서는 총 4통이었다. 합치면 2000평에 가까운 꽤 많은 전답이었다.
그가 영월에 살 때 이웃에 두 살 아래 아우가 있었다. 어머니 모시고 살며 형제는 그때 함께 광산에 다녔다. 갱도 붕괴 사고로 아우는 생을 마감했고, 유가족 앞으로 사고 보상금이 나왔다. 떠돌이 작부 여자를 만나 아우는 그때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갓 태어난 젖먹이와 젖 뗀 지 얼마 안 된 연년생 아들을 둔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아우의 사고 보상금은 어머니 이름으로 지급되었다. 어머니는 거금의 간수를 큰아들에게 맡겼다. 동민 씨는 자신이 모아온 뭉칫돈을 보태 인근에 매물로 나온 논밭을 구입했다. 아이들이 크면 물려줄 거라고 제수씨에게 약속하고서였다. 제수씨는 동의했지만 오래지 않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방법이 과격했다. 어느 날 두 아들을 데리고 말없이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어렴풋이 소문은 들었지만 그동안 일절 왕래가 없었다. 대원의 결혼식을 두어 달 앞둔 무렵에, 제수씨는 장성한 두 아들을 앞세우고 당당하게 나타났다.
당면한 문제가 갑자기 복잡해졌다. 상속이라는 것, 이제껏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땅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나누어야 한다면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그런데 이대로 넘겨주어도 과연 괜찮을까. 아들의 처신을 이해할 수 없듯이 조카들의 존재감 또한 기억에서 말짱 지워진 것처럼 까마득하다. 혈육이 있으나 실감할 수 없고, 가슴으로 낳은 아들은 막연했던 불신감을 표가 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누구를 믿고 의지할 것인가. 외롭다. 생각할수록 허전하기 짝이 없다.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고 불안해서 도무지 잠을 못 이루겠다.
“벌써 축내면 누굴 줘. 땅 말이야. 팔아서 나누면 장땡인가. 팔고 나면 앞으로 뭘 바라고 서로 보나.”
터무니없이 비장한 각오로 그는 횡설수설한다. 비탄의 한숨으로 혀가 꼬이고 말을 더듬는 현재의 순간, 숨겨진 계시와도 같은 이 순간의 무의식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그것은 곧 쓸데없는 진실을 간파한 자의 취중독백에 다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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