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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성배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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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굵은 빗줄기를 퍼부어 땅바닥을 때리는 소리 같았다. 다시 눈을 감았으나 잠은 짧고 생각은 깊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는 사람의 잔영만 어른거렸다. 몸과 정신이 엎치락뒤치락했어도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나, 몸뚱이와 의식은 말짱했다.
나는 홑이불을 슬며시 빠져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바깥은 캄캄했으나 어둠을 가르는 뇌성과 번개가 빗줄기와 합세하여 문을 두드렸다. 왈칵 틈입하려는 꿉꿉한 빗소리를 닫았다. 유리창에 되비치는 늙은 사내의 비루한 몸뚱이라니. 몸을 가누어 거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NASA의 웹 망원경이 찍은 외계의 행성 WASP-96 b에 관한 뉴스의 화면. 지구별로부터 160만 킬로미터 허공의 궤도에 설치된 웹 망원경은 우주를 관찰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1,150광년이나 떨어진 그곳의 구름, 연무, 물 따위의 특징을 파악했다는 것.
이 지구별의 껍데기에는 자그마치 70억이 바글거리며 살고 있다.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천적도 없이 오직 사람의 족속끼리 싸우고 죽이며. 죽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땡그란 눈을 뒤집고 떠봐야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따위 행성과 강퍅한 현실의 거리는 너무나 아득하여 애매모호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내가 돌아오지 못할 블랙홀로 빨려간 후 나는, 애들의 의견대로 집을 바꿨다. 임대아파트의 계약기간은 앞으로도 5년. 학교 지킴이를 그만두고 지하철 안내자의 일도 해보았다. ‘나이 칠십이 넘으면 누구나 날마다 몇 종류의 약은 다 먹습니다.’ 혈압약 처방전을 내미는 간호사가 그랬던가. 그래, 약국에서 가져온 약을 식량처럼 먹고 있으니까. 일흔이 넘었으니, 나는 저승사자에게 할 말은 없으렷다.
충전을 시켜놓았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보았더니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입력한 지 오래된 그녀의 번호였다. 몇 년 전부터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터.-시간 나시면 한번 오셔도 좋고요.
무슨 일일까?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유혹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전 중에 비가 그치리라는 일기예보까지 나를 떼밀었다. 몸을 씻었다. 밤새 몸뚱이별에서 죽었을 세포의 찌꺼기들. 피하조직의 땀구멍에서 흘러나와 죽은 쓰레기를 비누 거품과 물살이 씻겨 내렸다. 끼니가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한들, 점점 죽어가는 세포가 더 많아지겠지. 몸이 개운하다 함은, 버림에서 얻는 마음인가.

 

*
나는 다림질해 놓았던 회색 린네르 재킷을 꺼내 입었다. 쨍쨍한 빛살의 그늘 속으로 가을은 살며시 찾아왔다. KTX 고속열차는 속도를 내어 시간을 앞으로 당겼다. 승객들은 뱀처럼 긴 열차에서 쏟아져 나와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다시 지어진 철도 역사는 훨씬 커졌으나 광장은 그대로였다. 수십 년 동안 움츠러들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톡톡 튀어나왔다.
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본 것은, 대학 3학년으로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사업을 한다는 외삼촌이 몇 개월 동안 사무실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 아닌 배려였다. 서울역에서 무궁화 열차를 탔다. 겨울의 끝자락을 떨치려는 듯 우르릉거리는 디젤기관차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맨 앞칸에서 경유를 태우는 시커먼 연기가 이따금 새들어왔다. 레일의 이음매들을 덜커덕덜커덕 구르는 쇠바퀴 소리를 들으며 평야와 야산들을 지나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어스름이 스며들고 네온사인의 불빛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종착역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은 철로를 지나 오래되어 낡은 역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역을 빠져나와 광장에 서 있었다. 멀리 피라미드처럼 뾰족한 산이 실루엣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큰길에서 광장으로 걸어오는 여성에게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해말간 얼굴로 들고 있는 여행가방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대한통운으로 가려면 어느 쪽이죠?”
“오른쪽인데, 조금만 더 가세요.”
또렷한 말씨로 뒤돌아서 팔을 들어 길을 가리켰다. 경쾌한 느낌이 들었던 그녀는, 내가 우물쭈물한 틈에 고개를 약간 수그리며 역 건물을 향하여 멀어졌다.
외삼촌은 원래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해운회사를 인수하여 대한통운과 연계된 운송업까지 확장했다. 나는 회사에 빌붙어 주로 외삼촌의 잔심부름을 맡았다. 그리고 저녁 무렵이면 발길이 닿는 대로 혼자서 도시의 아무 데나 어슬렁거렸다. 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도시의 퇴락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항구도시는 반도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부두에서 산자락까지 조개껍데기처럼 자잘한 집들이 골목길들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 도시의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라치면 낡고 허접한 집들은 금방이라도 바다로 날아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섬들로부터 몰려든 고깃배들과 비릿한 어시장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도시는 바다에 펼쳐진 크고 작은 섬들의 중심지였다. 역사를 비켜나가지 못한 슬픔을 지닌 곳이었다. 수백 년 전 강토를 침략했던 왜군을 장군께서 처참하게 수장시킨 근처이며, 일제의 식민지였을 적에 수탈한 쌀과 목화 따위를 배로 실어 나르는 출발지였다. 한때 커졌던 도시는 해방이 되자, 점점 퇴락했다.
연안에는 깃발을 단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개펄에 다닥다닥 기어다니는 게처럼 붙어 있었다. 부두에서 내리면 빨간 칠을 뒤집어쓴 작은 버스들이 딱정벌레들처럼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좁은 도로는 지프 택시들이 행인들과 마구 뒤섞여 무질서하게 북적거렸다. 그렇지만, 썰물이 물러간 갯벌에서는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었으며 끈질기게 이어지는 사람들의 삶은 거칠었다.
외삼촌의 회사에 나다닌 지 겨우 열흘쯤 지났을까. 외삼촌과 대학 동창이면서 부장의 직함을 가진 이는 훤칠하고 눈썹이 짙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랐으며 서글서글한 성품으로 내게도 친절했다. 퇴근이 가까울 무렵, 나는 환적할 물량의 목록을 작성해서 백 부장실 문을 열었다. 그의 책상 앞에 서 있던 연회색 코트 차림의 여자가 뒤돌아보았다. 아, 그녀였다. 이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그 여자. 그녀도 나를 읽은 듯 놀랐다가 웃는 눈빛이었다.
“한 군? 그거 그냥 여기 놓고 가라. 아, 아니지… 이쪽은 내 조카야. 인해야, 서로 인사해라. 한상근 씨라고, 우리 사장님 조카.”
그녀는 교육대학 2학년생이었다. 날씬한 체격의 백인해는 목이 길고 가량가량한 얼굴로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
몇 번의 우연이 겹쳐 암암히 떠올렸던 그녀를 만났다. 봄의 햇살이 퍼지는 날이었다. 피라미드 산과 정반대 쪽에 있는 교육대학은 커다란 철탑을 이고 있는 야산 자락이었다. 그쪽은 도시가 뻗어가는 신개발 지역으로 하숙집과 가까웠다. 집 안에는 그녀 말고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서점에서 산 책 봉투를 마루에 내려놓은 내게 잠깐 기다리라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까딱거렸다. 스쳐 지나가는 그녀에게서 럭스 비누 냄새가 났다. 향기가 강렬하게 내 콧속으로 헤집고 들어와 뇌리에 똬리를 틀었다. 이국적인 냄새는 그녀의 상큼한 모습과 묘하게 겹치며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책을 잘 골랐는지 모르겠네요?”
“저기요?”
그녀가 말해보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참나리꽃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해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책을 좋아하는 것 맞죠?”
“그냥 심심해서 읽는 편입니다.”
“거짓말! 내가 다 알아요.”
딱히 묻고 대답하는 게 왠지 어설픈 느낌이 들었다. 섬마을이 고향이라는 그녀를, 여객선을 타고 갈 때가 아니면 주말에 극장 앞이나 도심지 빵집 같은 데서 만났다.
그녀는 삼거리 문구점 옆길에 나와 있었다. 청바지와 소매를 걷은 하얀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었던 그녀는 단발머리로 확 변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외국 여배우처럼. 헤어스타일이 바뀌니 백인해의 목덜미를 더욱 길게 드러냈다. 장미꽃처럼 환하게 밝은 그녀의 얼굴이 쏙 들어왔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당돌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앳되게 깔깔대며 어떤 때는 아무 말이나 툭툭 끼어들었다. 이름을 부르면 그녀는 뒤돌아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 그녀는 나란히 걷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민망한 듯 외면하곤 했다.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다. 우리는 한없이 펼쳐진 보리밭 이랑들을 지났다. 조금씩 멀어지던 시내는 벌써 아스라해졌다. 산들거리던 기운을 밀어내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누르스름한 보리 포기들이 파도를 치며 일제히 일렁거렸다. 구름 조각들이 짙은 잿빛으로 모아져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이 안면을 금방 가맣게 바꾸더니 어둑해졌다.
후득, 후드득. 금세 빗방울들이 툭툭 떨어졌다. 빗방울은 빗줄기로 변하여 우리를 휘감았다. 이제 우리가 떠나온 시내의 모습은 빗줄기에 가려 아득히 멀어졌다. 헐떡이는 인해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 숨차.”
뒤에서 들려온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내게는 심장 박동으로 느껴졌다. 눈빛이 부딪쳤다. 그녀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마을과 들판이 이어진 한가운데쯤이었다. 손 닿을 듯 가까운 곳에 큼직한 물체가 나타났다. 집처럼 생긴 창고였다. 나는 뛰어가 시멘트블록으로 지어진 건물의 양철로 씌워진 문을 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뒤돌아서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이끌리듯 들어왔다.
바깥의 빗줄기는 세차게 내렸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둘 다 옷은 젖어 있었다. 그녀의 블라우스가 살갗에 들러붙어 가는 허리와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을 살펴본 그녀는 난처한 눈빛을 벽 쪽으로 돌렸다.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네. 옷이 마를 동안 좀 앉아요.”
“저기, 그냥은 얼른 안 마를 텐데.”
이름 대신 저기로 부른 그녀의 말을 흘리며 나는 돌아서서 소매를 둘둘 걷어 입었던 긴팔 셔츠를 벗어 불끈 쥐어짰다.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셔츠를 탈탈 털어서 다시 팔을 끼워 입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망설이더니 그냥 앉아 있었다.
“감기 들 텐데… 나처럼 이렇게 짜서 다시 입으면 괜찮은데.”
내가 돌아선 한참 후 그녀도 돌아서서 블라우스를 벗었다. 옆 눈길에 스친 하얀 윤곽의 눈부신 살빛. 빗소리는 여전히 양철지붕을 두드렸다. 나는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펼쳐진 가마니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 침묵,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내밀한 언어의 소통과 부재. 목구멍과 입 안이 갑자기 메마른 느낌이 들었다. 슬쩍 돌아보니 뭔가 어색해하는 그녀의 얼굴빛이 발그레했다. 뛰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여 나는 그녀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던 그녀는 왠지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힘이 솟아나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둥그런 이마 아래 길쯤한 얼굴의 길고 반듯한 콧날, 두둑한 아미에 돋은 짙은 눈썹 아래 둥근 귓바퀴가 턱선에 달려 있고, 분홍빛 입술, 까맣고 긴 속눈썹이 보여주는 해맑은 눈. 그녀의 까만 눈 속으로 나는 빨려들었다. 눈을 감은 그녀의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귓전을 타고 온몸으로 짜르르 들어왔다.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며 살며시 얼른 몸을 뺐다. 나는 겸연쩍고 쑥스러워 고개를 수그렸지만, 아쉬움이 멈춰 있던 순간을 수습하여 우리는 다시 일어났다.
“비가 그쳤나?”
“소리는 안 나는 것 같은데….”
내밀한 대화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소리는 엇박자였다. 말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은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감정은 휘발성이 있는 것이므로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그렇지만 기억의 무늬는 늘 물결 위로 번지는 파문처럼 남아 있었다. 펄쩍펄쩍 뛰는 모습으로 흐뭇한 웃음이 가득한 그녀는 내게 힘이 되었다.
“토요일? 극장… 난 시간이 저녁 시간밖에.”
“저녁은 극장 앞 분식집에서.”
그녀는 깔깔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멋대가리 없이 우물쭈물 망설일라치면, 그녀는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즉시 결정을 해버렸다. 나는 빠르게 걸었다. 어두워져서 거리에는 군데군데 가로등 불빛이 돋아났다. 오거리에서 비켜나간 2층 극장 건물은 커다란 포스터를 그려 붙였다. 맑고 강렬한 눈빛과 잘 다듬은 콧수염의 이국적인 남성 옆으로 초췌한 여인들의 옆얼굴.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여배우. 외국인들의 비슷비슷한 얼굴과 금지된 사랑이 죽음을 가져온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우리는 맨 뒤 아랫줄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통로 쪽이었다. 광고들이 끝나고 대한뉴스가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영화를 화면에 투사했다.
제정 러시아의 귀족들이 벌이는 호화로움 -의사와 아가씨의 연애 -사랑의 엇박자가 물리고 -틈틈이 들리는 영화의 테마음악 -눈 몰아치는 끝없는 벌판, 볼셰비키 혁명과 1차대전의 암운이 깔린 배경, 레닌의 대형 초상화와 붉은 깃발들-도시의 군중이 열차로 몰려들고 -설원을 달리는 열차, 오마샤리프의 슬픈 눈빛과 콧수염에 눈보라가 엉키고 애달픈 사랑의 종착역은 과거의 회상.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는 열띤 나머지 그녀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을 보며 손은 놔둔 채 가만히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빵집에 들러 단팥빵에 우유를 마셨다. 영화의 여러 장면에 관한 대화가 두서없이 꼬리를 물었다. 주로 그녀가 말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편이었다. 백인해는 가끔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불쑥 꺼내며 뭐가 우스운지 깔깔거렸다. 원래 구김 없이 타고난 성격이라 스스럼없었다. 이성끼리 가까워지려면 조신하게 다가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내가 소심한 탓이기도 했다.
낯선 지방 도시의 생경함도 차츰 일상이 되었다. 무질서하게 생긴 어둠침침한 뒷골목 길들. 부두에는 고깃배들과 섬들로 떠나는 연락선들이 즐비했고, 생선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어판장이며 상가가 연이었다. 철도역 후미진 골목을 점령하고 있는 사창가. 구불구불하고 갈라진 골목길들의 밤은 시끄러웠다. 팔짱을 끼고 껌을 짝짝 씹으며 서성거리는 여인들이 불나비였으니까. 암석들로 이어져 실루엣으로 드러낸 산 아래에는 네온사인과 어둑한 조명이 뒤섞여 낡은 도시를 지켰다.
계절이 바뀌면 먼바다로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날을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내일이 막연했다. 그래서 분노였을까, 자학이었을까. 한밤중부터 새벽이 이울기 전까지 술에 취한 남정네들이나 아낙네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부두에서 노동으로 벌어먹는 이들은 힘든 삶에 끌려다녔다. 사소한 일에도 사람들은 휘발성이 강한 기름을 머금은 심지에 불꽃이 일 듯 입에 담지 못할 쌍욕부터 터져 나왔다. 암팡진 여인들은 분노의 감정이 폭발하면 상대방의 머리끄덩이를 잡거나 패대기쳐서 살집을 물고 뜯었다. 우악스러운 이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일상에 젖어갔다. 낭만과 고독이 뒤엉켰던 시기에 그녀는 외톨이였던 내게 행운의 여신이었다.

 

*
군에 입대하고 그녀와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터.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로 섬마을 어딘가로 간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뚝 끊겼다. 그 무렵은 외삼촌의 회사까지 부도 나서 풍비박산된 바람에 나는 그 먼 도시로 갈 의지도 없었다. 제대와 복학하고 회사원으로 이어진 몇 년 동안 나는 바쁜 현실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인해와 간혹 연락이라도 되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가끔은 문득문득, 바릊바릊 그녀의 해말간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른, 그 얼굴과 모습은 내가 서른이 넘어 결혼하여 쉰이 넘었어도 똑같았다. 다만, 세월이 흐름에 또렷했던 기억은 낡은 사진처럼 시나브로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
내가 쉰줄의 회사 임원이었을 적에 늙은 외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다만, 예전에 대한통운 시절의 그 친구가 죽었다는구나.’
나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검정 저고리를 입은 여자들 가운데서 낯익은 그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준 며칠 뒤 손전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2층 계단을 천천히 밟으며 깊이 갈앉았던 기억을 건져 올렸다. 전통찻집 창가에 있던 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며 돌아섰다. 기억에 박힌 그녀와 전혀 다른 생김새의 여자였다. 연륜이 쌓인 둥그스름한 모습으로 예전보다 키가 작아 보였고, 귀밑 머리카락들은 희끗희끗한 빛이 섞여 있었다. 그 하얗던 살갗은 누렇고 목주름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묻어두었던 이름이 표표하게 떠올랐다. 오래전 퇴색된 채로 내게 남아 있었던 그녀, 분명히 백인해였다. 눈가에 주름이 잡힌 중년의 얼굴이 앳된 그녀의 기억을 밀쳐냈다. 비록 힘을 잃었어도 눈동자는 나를 끌어당겼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오래 전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던 장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고 종착역에서 헤어질 때 못내 서운해하던 모습까지 겹쳤다.
“상근 씨? 우리 너무 오래되었죠?”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상큼하고 발랄했던 그 목소리가 마치 오래된 책상 서랍에 든 듯 착 가라앉았다. 나는 시간이 그동안 얼마나 잔인하게 흘렀는지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그래요.”
그녀는 얼굴을 잠깐 펴며 웃었다. 하지만 그 메마른 웃음은 공허했다. 뜸을 들여 그녀가 불쑥 말을 이었다.
“그동안 잘 지내신 것 같아요.”
나는 대답하려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그 짧은 물음 속에는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꽉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그래요.”
튀어나간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자분자분 말을 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은행원과 결혼했었고, 그 항구도시에서 여태껏 딸 둘을 키웠노라고. 그리고 정년퇴직하게 되면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희망을 내게 비쳤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 긴 세월 동안 그녀를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이에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경계가 은하수처럼 넓고도 길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묻지 못했다. 그때 왜? 소식을 끊었는지. 내게서 왜? 떠났는지. 그 질문은 아직도 입 안에 맴돌 뿐이었다.

 

*
더위가 남아 있는 역 광장에서 나는 바위산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해발 228m의 높이로 여전히 도시를 지키는 피라미드처럼 우뚝 서 있었다. 바다에서 솟아난 기암괴석들은 아슬하게 허튼 산을 쌓았다. 융기된 산꼭대기의 일등 바위와 허리에 걸쳐져 낟가리처럼 둥글게 생긴 커다란 바위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평선과 산꼭대기는 둔각을 이루어 저물녘에는 온통 벌겋게 쏟아진 빛살이 바다와 산의 뒷면을 물들였다. 도시는 예전과 달리 삐죽삐죽 돋아난 아파트들로 뒤섞여 변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구도심의 거리를 걷다가 그녀와 만났던 빵집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택시가 내려준 그녀의 아파트는 10층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준 사람은 그녀를 판박이처럼 닮은 딸이었다. 부엌에서 음식 냄새를 달고 온 그녀가 알 듯 말 듯 웃음을 머금고 거실로 안내했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휑한 눈매가 예상을 단박에 뒤틀리게 했다. 그때부터 자꾸만 불길한 느낌이 나를 욱죄어 왔다. 긴 가죽 소파 뒷벽에는 소나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작은딸은 중학교 교사인데 함께 산다고 했다.
“쟤네 아빠 세상 뜨고 나서 이 아파트로 옮겼어요.”
식탁에는 제법 준비를 한 듯 많은 반찬으로 그득했다. 죽순, 고사리, 고구마줄기나물, 도토리묵이며 낙지, 조기구이, 광어회, 민어찜 따위가 잔칫상 같았다. 그녀의 뒤태는 약간 굽은 등짝을 보여주었다. 늙었으리라, 그녀와 나. 밥그릇 숫자로 보아 다른 손님이 더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와 나란히 앉은 딸은, 백인해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녀가 채워 준 맥주컵은 나 혼자 비웠다. 내가 멋쩍어 빈 컵을 그대로 놓았더니,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내일은 딸애가 운전해 줄 거니까, 더 드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제는 술도 조금씩 하게 되네요.”
캄캄해진 바깥을 보면서 내가 대답했다. 텔레비전에서 <100세 건강>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녹차를 마시며 화면에 건성건성 눈길을 보냈다. 이부자리를 펴놓은 작은방을 보고서야 나는 서늘한 기분이었다. 나갈 궁리를 막아버린 그녀에게 뭐라 할 것인가. 그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다가 요도가 꽉 찬 느낌이어서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화장실로 갔다가 나왔다. 반쯤 열린 커튼으로 달빛이 틈입한 거실은 어슴푸레했다. 그런데, 어두운 소파에 누군가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우뚝 섰다. 그녀는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것일까.
“어디… 아픈가요?”
“췌장암이라고 그러네요.”
깜냥으로 던진 말이 되돌아와 나를 깊숙하게 찔렀다. 아니,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스치는 기억 하나가 그녀의 실루엣을 가로질러 겹쳤다. 고통스럽게 머리를 박박 밀었던 아내의 마지막 초췌한 모습이.
“아주 오랜만이어요.”
그녀, 백인해는 힘없이 내 손을 잡은 채 한참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게 바로 어제 같아서… 늘 미안했어요.”
무겁고 깊은 어둠 속에서 쑥대머리의 귀신 형상을 했다던 춘향이가 그랬을까. 마음의 감옥이 따로 없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한단 말인가. 나는 가슴이 시리게 아려 왔다.
날빛이 창문에 어른거렸다. 모녀는 벌써 깨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녀가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딸은 어두운 얼굴로 내게 살짝 귀띔했다.
“엄마가 떠나실 준비를 하시는 거 같아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잿빛 재킷과 검정 바지 차림이었다. 운전하는 딸이 차량의 뒷좌석을 권했으나 나는 조수석으로 탔다. 눈부시도록 환한 빛살이 쏟아졌다. 시간이 바람처럼 우리를 또다시 끌고 왔구나, 이런 날도 있었다니.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 채 못 되어 국도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바닷가가 가까운 사찰 주차장에 멈췄다.

 

*
마치 붉은 안개가 나무들을 감싸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풍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먼발치에서 볼 적에는 붉은 물결이 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 차츰차츰 발걸음을 옮겼다. 핏빛인 양 헤아릴 수 없는 꽃무더기가 막돌들로 쌓은 둔덕의 숲 그늘 아래를 뒤덮었다. 나무 그늘 속에서 무더기로 피어난 그것들은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쭉 뻗어나 매끈한 푸른 꽃대에서 이파리 없이 불꽃처럼 갈라진 붉은 꽃잎들. 붉은 실처럼 가늘고 여린 꽃잎들이 말려져 감싼 더 굵은 잎들을 하나의 봉우리로 만들었다. 가냘픈 꽃술들은 애잔한 그리움처럼 붉디붉게 타올랐다. 딸 뒤에 처져서 불편함을 애써 참으며 걸어가던 백인해가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봄에 나온 푸른 잎이 떨어져 먼저 사라지니 서로를 못 보는 거라죠. 그나마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저 꽃마저 떨어진다는 것을.”
“어긋난 시간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 뿌리에서 나오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남도 없이 못 보다니.”
“그래서 그리움은 아픔이 만들게 되나 봅니다.”
그녀의 감정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왜? 생기발랄했던 그녀가 저렇게 되었단 말인가. 나는 가슴이 아릿하며 뭔가가 쥐어뜯는 아픔을 느꼈다.
그녀들을 뒤따라 단청이 바랜 대웅전에 들어가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그녀는 오랫동안 절에 다닌 듯 의례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나와서 신발을 꿰신었다. 참식나무는 활엽이 울창한 아열대성 수목이었다. 고목 앞 게시판에 전설이 소개되었다.
-인물이 수려한 스님 한 분이 더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뱃길로 수만 리나 되는 인도에 유학을 떠났다. 그곳의 왕은 유학을 온 스님을 왕궁 안의 사찰에서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랴. 우연한 기회에 절을 방문한 공주는 남달리 훤칠하고 참수행하는 스님을 첫눈에 연모하게 되었다. 왕은 공주가 스님에게 마음이 쏠려 있음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이들의 사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끊어내야겠다는 왕은, 기어코 스님을 인도에서 추방하게 되었다. 공주는 마지막으로 아버지 몰래 스님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세의 인연을 기약하는 정표로 참식나무가 심어진 화분과 씨앗 주머니를 건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다시 파도와 풍랑을 헤치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스님은 절간의 주변에 참식나무와 씨앗을 심었다. 인연이 스며든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타원형의 넓적한 잎들을 돋아 우거졌다. 스님은 참선에 열중했지만, 시름시름 병이 들었다. 스님은 마침내 그가 심어 놓은 울창한 참식나무 아래서 열반에 들었다. 잎들과 둥그렇고 빨간 열매가 매달린 참식나무 밑에서 이파리가 없는 붉은 꽃대가 솟아났다.
게시판을 읽고 불현듯 돌아보니, 그녀는 내 뒷발치에 서 있었다. 수런거리는 잎새들 아래서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스님과 공주라? 이루기 어려운 관계가 번뇌의 고통이겠지. 스님은 득시글득시글 끓는 똥통의 구더기들에게 자신이 뜯어 먹히는 괴로움에 시달렸을까. 해탈을 얻고자 하면 인연의 이끌림을 끊어야만 한다고? 공주의 아리따운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집착에서 탈출하지 못했을까. 공주를 벗어남이 스님의 번뇌와 망상을 깼을까. 도대체 바스러질 몸뚱이가 인식하는 이 넋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모르겠다, 모두가 별이 되어 견우와 직녀의 슬픔을 지닌 것인지도.
그때 참식나무 뒤에서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나는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혀 머릿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솟구치는 욕망의 늪에서 서투른 몸짓으로 그녀를 갈망했던 일이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이제 우리의 몸은 퇴색할 대로 낡아지고 지친 마음은 심연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나는 아물아물한 그림자가 시간을 몰고 오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저승사자는 어디서부터 썩어 가는 내 몸의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이려니. 닳아진 건전지처럼 몸을 충전할 길도 막연하니 이제는 달라질 일도 없다. 갈수록 두려움은 현실이 되겠지. 우리는 시간에 끌려가는 동물이어서 앞발로 버티다가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와 다를 바 없을 터. 망치로 대가리를 맞으면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육신을 떠난 정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인간 스스로 위무를 받자고 지어낸 것 아닐까 싶었다.

 

*
바깥으로 나온 그녀는 서운하다 못해 촉촉한 눈을 보였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낯익은 도시의 거리를 지났다. 운전석에서 백인해의 젊었던 목소리인 듯 딸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에 관한 말씀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들었습니다.”
“꺼내기 어려웠겠지, 엄마는 지금 어떠신가요?”
“병원에서 많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도 아주 담담하셔서 저희가 오히려 너무 무섭습니다.”
순간, 나는 룸미러에 비친 딸의 얼굴을 그녀로 착각할 뻔했다.
“역으로 바로 안 가시게요?”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좀 돌아보려고…, 내가 알아서 갈게.”
나는 그녀의 딸에게 산자락 오르막에서 고맙다며 내렸다. 노적봉을 지나니 동상은 여전히 거멓게 서 있었다. 타의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헤쳐 이긴 불굴의 성웅이었다. 그녀와의 추억에 홀려 조금 더 기신기신 올라갔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반짝반짝 불빛이 돋은 시가지가 발아래로 보였다. 저 멀리 바다로부터 소슬한 바람이 불었다. 삐죽삐죽 솟아난 바위들을 더 이상 올라갈 의미도 없었다. 발랄했던 그녀와 함께 이 도시에서 보냈던 온갖 추억들이 회오리쳐 쓸쓸함으로 밀려왔다. 슬픈 바이러스에 전염된 절망이 고통으로 오는 건 두렵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인생의 시험지에는 정답이 없구나.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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