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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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에 놀라 그만 잡고 있던 노를 강에 빠뜨리고 말았다. 오늘은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채가듯 콱 붙잡았다.
“집에 붙어 있으라고 했제!”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는 몇 번이고 나를 쏘아보며 고함을 잔뜩 지르더니, 여전히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상태로 집으로 걸어갔다. 나를 집으로 끌고 갔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지만 말이다. 난 고개를 뒤로 돌려 내가 건너려 했던 강을 바라봤다. 외롭게 남겨진 뗏목과 강 깊은 곳 어딘가로 사라졌을 노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저 상을 건너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해 있었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할머니는 그런 내게 정신이 나갔냐며 욕을 해대지만 정작 이상해진 건 할머니 본인이다.
“말 좀 들어라, 제발 좀!”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강을 건너보고 싶다는 요상한 생각에 꽂힌 것처럼, 할머니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돌변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할머니는 고함 따위 지르지 않는 세상 온화한 분이었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도자기를 내가 깨뜨렸을 때에도, 할머니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다니. 퍽 신기한 일이다. 물론 몇 부분은 내가 할머니의 말을 따르지 않아서 혼나는 것도 있지만 억울한 부분도 굉장히 많다. 억울한 것을 넘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까지도.
“밥 처먹지 말라고 했제! 할미가 주는 것만 먹으라고!”
집 안에 밥상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져 있던 어느 날이었다. 빨간 나무로 되어 있는 식기들이 눈에 들어와 당연하게도 밥상 앞에 앉았다. 할머니가 차려준 건가 하고 숟가락을 든 그 순간, 방에서 뛰쳐나온 할머니가 밥상을 다 엎어버린 것이다. 그때도 잔뜩 성을 내면서 말이다. 내가 차린 게 아니라며, 정신이 있냐면서 나를 잔뜩 혼내었다. 이 집에서 밥상을 차릴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아마 그 순간부터 조금씩 짐작하고 있던 것이 확신으로 바뀌던 때였을 거다. 할머니한테 미움을 받고 있다고. 밥상을 모조리 다 엎어버리고 배고픈 내게 준 것은 찬물 한 잔뿐이었으니까.
“입지 말라꼬. 그건 너 같은 아들이 입는 옷 아이다. 어울리지도 않을 낀데. 퍼뜩 눈알 치아라.”
할머니의 옷장에서 예쁜 옷을 발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황토색의 예쁜 원피스 같은 옷이 눈에 들어와 할머니에게 입어봐도 되냐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입지 말라고만 하면 될 것을 굳이 나쁜 말을 섞어가며 말을 했어야 했나. 할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었다. 할머니가 화를 내는 것은 무서웠지만 할머니의 신경을 박박 긁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반항이 바로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강을 건너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 참에 나쁜 손녀짓이나 해보자면서. 내가 강을 건너려 할 때마다 할머니는 귀신같이 눈치채 항상 나를 집으로 끌고 가버려 강을 건너는 것은 실패로 끝나지만 오늘도 그런 나날들 중 아주 흔한 날에 속한다. 할머니 손에 붙잡혀 와서는 집에서 혼날 일밖에 남지 않은 날. 집에 거의 다 와가자 한숨이 푹 내쉬어졌다. 혼나는 것은 아무리 많이 혼났어도 익숙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내 손목이 여전히 할머니의 손에 의해 붙잡혀 있는 채로 집 앞에 다다랐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세게 붙잡고 있던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손목에 빨간 손자국이 생겨 있다. 욱신거리는 손목 통증에 몇 번 손목을 돌리며 할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뭔 냄새야?”
집 안으로 들어가자 향긋하지만 매캐한 향냄새가 훅 풍긴다. 집 내부에서 풍기면 이상한 냄새가 가득하다. 무엇이 타는 냄새도 아니고 제사를 지낼 때 나는 향냄새가 나다니. 오늘따라 집이 조금 달라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향냄새 때문인지 몰라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제, 오늘 먹은 게 한 개도 없어서 그런 건가. 피곤함을 호소하며 할머니에게 자러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전보다 더욱 흥분한 상태로 절대 자러 가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이젠 밥도 먹지 말고 옷도 입지 말고 하다 하다 잠도 자지 말라는 건가. 할머니에게 잔뜩 신경질을 내며 안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집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가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꿈이라면 이것처럼 잔인한 악몽도 없을 것이다.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했지만 정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누군가는 한없이 침착해 보였다.
“임현순, 임현순, 임현순.”
“언제 오나 했다. 빨리도 왔구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무섭게도 느껴졌다. 할머니는 천천히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사람에게 다가갔고 그 남자 또한 천천히 할머니와 둘이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할머니 어디 가? 저 사람은 또 누구고!”
다급하게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할머니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우리 아는 살려주소. 착하고 예쁜 아라 살려두면 덕 쌓고 살 거요.”
온화하게 웃으며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놀랍게도 내가 알고 있던 원래의 할머니의 모습과 일치했다. 순간 할 말을 잃어 아무 말 없이 멍하니 현관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남자가 터벅터벅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두려운 마음에 뒷걸음질을 치며 그 남자를 올려다봤다.
“왜 그러세요…?”
침이 꼴깍하고 삼켜졌다.
“아가, 눈 떠야지.”
“눈…?”
그 말을 끝으로 내 눈앞은 하얀 빛으로 점멸했다. 눈을 뜨라는 그 말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려댔다. 새하얀 빛 때문에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이민주 환자 지금 막 깨어났습니다!”
“민주야! 우리 딸!”
눈을 뜨자 시끄러운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할머니와 있었을 때에는 느껴지지 않던 소란스러움이, 하얀 병실 천장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왔고 그다음으론 차례대로 울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난 간신히 엄마의 손을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기억 안 나? 민주 너 교통사고 났었잖아. 할머니랑 같이….”
“할머니?”
“너랑 할머니랑 같이 타고 가던 택시랑 마을버스랑 충돌했었어. 택시 안에서 할머니가 너 안고 계셔서 그나마 너가 지금 괜찮은 상태인 거고. 사고 영상 보니까 할머니가 계속 민주 너 보고 눈 떠야 해 이러시더라고….”
믿을 수 없다. 난 방금까지 할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병실에 있는 거라고? 머리가 복잡해 어지러웠지만 알아야 하는 게 있었다.
“그럼 할머니는? 할머니는 어디 계셔?”
“어젯밤에 돌아가셨어. 사고 충격을 너무 많이 받으셨나 봐….”
과거 할머니가 내게 해주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누가 밥상을 차려주거든 절대 받아 먹지 말고 꿈속에서 강이 나온다면 절대 그 강을 건너지 말라고. 모든 게 죽음이랑 연관되어 있다면서 말이다. 예쁜 황토색 옷이 있더라도 그 옷을 입는다면 수의가 될 테니 그것조차 눈길도 주지 말라고 했다. 죽어도 내 손녀 자기보다 먼저 떠나는 꼴은 못 본다면서, 만약 내가 그런 꿈을 꾸게 된다면 그 꿈속까지 기필코 찾아가 모든 것을 막아줄 거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