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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산문 장원] 할머니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연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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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더러워진 식탁 위. 바닥에 나뒹구는 깨진 유리그릇과 음식물이 묻어 있는 숟가락. 나는 그런 난장판인 모습을 그저 한숨 쉬며 느린 눈짓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내 시선 끝엔 그릇에 담긴 볶음밥을 손으로 집어먹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총명하고 명석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치매에 걸려 어린 아이처럼 변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비교적 시간이 많은 내가 할머니를 전담하여 돌보게 되었다. 사촌동생조차 없는 나는 어린 아이처럼 변한 할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것 때문인지 할머니는 미숙한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건 내겐 너무 어려웠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 선풍기로만 버텨야 했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방학숙제를 하고 있던 나를 부른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목이 마르다며 내게 오렌지 주스를 사 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동네 마트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녹아내릴 것만 같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할머니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기에 나는 쉬지 않고 달려야만 했다.
한 손에는 오렌지 주스를 사 들고 도착한 집은 걱정한 바와 다르게 조용했다. 나는 할머니를 부르며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거슬려 귀 뒤로 넘겼다.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부르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내 책상에 앉아 한 손에는 아끼는 크레파스를 들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좀 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때 내가 본 할머니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내가 하던 방학숙제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며칠을 고생하며 한 방학숙제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유난히 더운 날이라 스트레스를 받아서였을까, 지금까지 참아 오던 게 터진 걸까. 나는 할머니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크게 화를 내보였다. 할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엄마, 나 이제 못하겠어. 할머니 요양원에 보내자.”
그 통화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끝난 통화 뒤엔 자유가 찾아왔다. 부모님은 바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버렸다. 며칠 동안 식탁 위에서 방치되던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내 몸에 쌓인 답답함이 한 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더위도 점점 저물어갔다.
푸르던 나무들이 붉은빛으로 물들고, 짧았던 옷들이 길어졌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가 요양원 건물 내부를 소개시켜 주었다. 건물 복도에는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는 큰 게시판이 있었다. 게시판 상단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눈알을 굴리며 할머니의 이름을 찾았다. 할머니의 그림엔 내가 예상하던 부모님이 아닌 내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거친 크레파스 자국이 남은 그림을 보며 나를 생각하며 그렸을 할머니를 생각했다.
야외로 나가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더니 방긋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는 내 손에 오렌지맛 사탕을 쥐여 주며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울먹이며 할머니를 끌어안았다. 할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나를 오래도록 사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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