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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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열차 위 느린 악곡이 흐른다
도레미파솔라시 일곱 가지 음정이
기억처럼 쌓여 가는 자리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생 동안 자신의 악보를 완성해 간다
어릴 적 지낸 할머니 댁에서는
내가 먹다 흘린 아이스크림 자국을 스타카토로 꾸며 내던 당신이 계셨고
그게 재미있어 자꾸만 낙서 같은 자국들을 남겼던 거야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선로가 멀어지고
자국이 무늬로 남는 동안에도 할머니의 악보는 이어졌지만
혈관에 화음이 오래 쌓이셨네요, 나이가 들면 으레 있는 일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혈액이 잘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고음혈증
손발이 자주 저릴 수도 있다는데
화음을 쌓을수록 실수하는 일이 잦아지고 냉장고의 옆구리가 빼곡해졌지
-된장찌개를 연주하는 법은
두부 반 모, 팽이버섯 적당히……
내가 모르는 악곡들을
얼마나 연주해 오신 걸까, 손의 주름과 굳은살들은
피부 아래 그것들을 새기다 난 흔적 같았다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손,
내가 배우는 나라의 언어에서 죽음은 7과 가깝고*
비눗물 머금은 할머니의 손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얇아진 혈관처럼
자꾸만 자꾸만
음표보다 쉼표가 많아지고
도돌이표를 그려도 악보는 제자리고
십 년도 넘은 냉장고 옆에서 웅웅, 웅웅
머지않은 것들에게 멎어 가는 게지
누군가의 자국으로 남는다는 건, 아가
함께 화음을 쌓는 거란다
기억처럼 쌓인 계절이 선로에 남아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고
열차 지난 자리에 우리가 있는 거야
어디선가 풀내음이 났다
얇고 정교하고, 곧고 따뜻하고, 디크레센도
열차가 멀어지며
시대의 열차 뒤 푸른 계절이 연주되고 있다
도도 솔솔 라라 솔
별 많던 어릴 적 꿈에도
지내온 시절들이 봄처럼 흐른다
*독일어. das Tode: 죽음, 명사의 성은 중성이다. 중성의 PH 농도는 7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