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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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은 잠들지 않았지만, 응급실의 밤은 깨어 있다기보다 비명에 가까웠다.
56세,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둔 서울의 S종합병원의 수간호사 서영은 스테이션의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빨간색, 노란색으로 분류된 환자들의 리스트가 가득했다. 벌써 30년째다. 서영의 발바닥은 늘 굳은살로 딱딱했고, 종아리는 하지정맥류로 인해 지도처럼 실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수 선생님, 3번에 심정지(CPA) 들어옵니다! 5분 전이요!”
후배 최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자동문의 육중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들것이 들어오는 순간, 응급실 특유의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서영은 익숙하게 장갑을 끼며 환자에게 달려갔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흉부를 압박하는 리듬에 맞춰 서영의 머릿속에는 기계적인 수치들이 나열되었다. $SpO_2$, 혈압, 심박수. 하지만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기계 수치가 아니었다. 보호자의 절규, 욕설 섞인 재촉, 그리고 차갑게 식어 가는 육신의 무게였다.
서영의 하루는 환자 명단을 훑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간호사에게 응급실은 진료의 공간이자 고도의 심리전이 벌어지는 베드 컨트롤(bed control) 현장이다.
소진(Burn-out)이라는 이름의 파도 새벽 4시, 잠시 숨을 돌리려 탕비실로 들어간 서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 종이컵을 놓치고 말았다. 바닥으로 쏟아진 갈색 액체가 마치 오늘 본 누군가의 피처럼 보였다.
그녀를 무너뜨린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다.
“왜 우리 애 먼저 안 봐줘요? 지금 세금 받아먹고 뭐 하는 거야!”
오늘도 예외 없이 교통 환자를 비롯해 이런저런 류의 환자들로 응급실은 북적이고 응급도에 따른 분류를 설명해도 돌아오는 건 삿대질뿐이었다.
인력은 부족한데 환자는 쏟아졌다. 간밤에 들어온 환자들이 퇴원하지 못하고 응급실 복도까지 깔려 있는 상황, 서영은 스테이션에 서서 각 구역의 ‘중증도 분포(Triage)’를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고 있었다.
응급실 베드가 비어야만 119구급차를 새로 받을 수 있는데 입원 병실은 이미 꽉 차 있어 서영은 어쩔 수 없이 각 병동 수간호사들과 ‘밀당’을 시작하는 것이다.
“김샘, 우리 3번 베드 환자 상태 스테이블(Stable)해졌잖아. 병동으로 좀 올려주면 안 될까? 지금 밖에서 심정지 환자 들어온대.”
서영은 다급히 신경외과 닥터 최와 협의 후 뇌 CT 검사 결과 뇌경색 증세가 의심되고 있는 60대 남자 환자를 급히 8층 준중환자실로 입원 조치코자 하였다.
응급실은 독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병원의 모든 과가 모이는 교차로인 것이다. 환자들에 시달리고 이것저것 스트레스로 후배 간호사들이 울면서 사직서를 던질 때마다, 서영은 자신의 심장 한 조각이 같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죽음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 어느덧 슬퍼하기보다 사망 선고 후 서류 정리를 먼저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가뭄이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나는 돌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죽음을 처리하는 기계인가?’
결심의 순간 퇴근길, 버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눈 밑의 그늘은 깊었고,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언가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서는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흙은 정직합니다. 당신이 준 만큼만 돌려주고, 절대 당신에게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서영은 오늘도 어찌어찌 업무를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낡은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응급실 수간호사라는 직함 대신 윤서영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언제부터인가 윤서영이라는 그녀의 이름보다는 수간호사 또는 수 선생님이라 불리우며 자기 자신조차도 자기의 이름이 생소해지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의료의 현장에서는 의사들조차 함부로 못하는 나름의 캐리어가 붙은 베테랑 전문간호인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그것은 직업에 충실하며 삶을 이끌어온 기계와 같은 삶이었다. 서영은 늘 허전하고 공허했다.
그로부터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 그녀는 결심했다. 이제는 심전도의 날카로운 ‘삐-’ 소리가 아니라, 이른 아침 숲의 새소리를 들으며 살아보자. 피 냄새가 밴 알코올 솜 대신, 비 온 뒤의 흙 내음은 얼마나 구수할까? 누군가의 생사를 붙들며 기도하는 손으로 이제는 작은 모종을 심어 보며 살기로 했다. 서영은 더 늦기 전에 사람 같은 삶을 살아보며 그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서영아, 너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며 너의 주어진 삶과 직장 일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왔어 너도 이제는 노후를 놀멘쉬멘 살아봐야 하지 않겠니? 꽃도 가꾸고 새소리도 들으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작은 향기도 맡아 보며….’
서영은 더 이상 우무쭈물 인생을 끌려가듯 살아서는 안되겠다, 결심을 굳혔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오랜 그간의 번민을 뒤로하고 병원 총무과에 과감히 사직서를 제출하는 그날이 다가왔다. 간호부장을 비롯 원장선생 그리고 고락을 같이했던 많은 의료진과 간호사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서영은 이미 결심한 마음을 흔들림 없이 추스려 나갔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비로소 처음으로 병원 뒤편 산책로를 걸었다. 늘 존재했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연분홍색 철쭉이 보였다.
‘그래, 이제야 나를 돌볼 시간이 왔구나. 56세, 전직 응급실 수간호사.’
그녀의 두 번째 인생은 ‘귀촌’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응급처치로 시작되고 있었다.
2
서영은 어릴 적부터 똑똑하고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충남 서산의 한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녀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십 리가 넘는 시골길을 오가며 성실히 학교 한 번 빠지지 않고 개근을 하는 동안 성적조차 우수한 그녀를 선생님들은 그녀가 큰 인물이 될 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영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이 많아 항상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무리가 있었다. 시골에서 초·중학교를 마친 서영은 대전으로 나와 친구와 하숙하며 당시로서는 명문인 D여고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는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대전의 한 변두리에 살게 되었는데 버스가 자주 있지 않아 한 번 차를 놓치면 20∼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자칫하면 지각인지라 서영은 늘 아침마다 서둘렀다. 그래서 아침밥을 건너뛸 때가 많았었다.
1970년대 대전의 아침은 늘 매캐한 매연 냄새와 함께 시작됐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큰 도로 옆, 604번 버스 정류장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남색 교복의 남학생들, 회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통학 방향이 같은 한 남학생이 반복적으로 차츰 서영의 시야에 들어왔는데 그도 당시 대전의 명문고인 D고를 다니고 있었고 이름표에는 강석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석준과 서영은 늘 같은 시간대, 같은 위치에 서 있었다. 준수한 외모에 교복도 멋있었다. 가방은 책으로 가득 담겼는지 늘 빵빵하여 보였다.
가끔은 교련복을 입고 나오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헌칠한 키에 까만 숯덩이 눈썹에다 피부는 하얗고 귀가 귀공자처럼 잘생겼으며 어린 나이에도 몸가짐은 신중해 보였다. 그런 석준도 서영을 의식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이미 만원이 되어 두 사람은 도저히 올라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지라 두 사람은 체념한 듯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만치 서 있던 석준이 서영에게 다가와 용기 내어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우리 차라리 조금 걸어가서 대흥동에서 604번 버스를 타 볼까요? 저랑 방향이 비슷한 것 같으신데….”
처음엔 우연이었다. 다음엔 습관이 되었고, 그다음엔 서로를 찾는 눈빛이 생겨났다. 석준은 버스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괜히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서영은 그럴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구두 앞코만 바라보았다. 말을 걸 이유는 없었지만, 말을 걸지 않기엔 서로의 존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붐볐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고, 문이 닫히기 직전 석준과 서영은 동시에 한발 늦었다.
“아!”
서영의 짧은 탄식이 바람에 섞여 흘렀다. 버스는 매연을 남긴 채 멀어졌다. 정류장에는 몇 사람만 남았고, 묘하게 조용해졌다. 석준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 말을 걸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저기….”
서영이 고개를 들었다.
“버스 놓쳤네요.”
석준은 자기 말이 너무 평범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서영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의 침묵. 석준은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 같았다.
“이따 오는 건 또 많이 붐빌 것 같아요. 저쪽 골목으로 가면 다른 버스가 하나 더 있어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이게 제안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요?” 하고 물었다. 그 한마디에 석준의 어깨가 조금 풀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정류장을 벗어났다. 보도블록 사이로 자라는 풀잎, 먼지 낀 상점 유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가 거리의 배경이 되었다. 학교 이야기, 시험 이야기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버스가 얼마나 자주 늦는지, 아침마다 정류장이 얼마나 춥게 느껴지는지 같은 사소한 말들이 오갔다. 다른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석준은 갑자기 용기를 냈다.
“오늘 수업 끝나고… 시간 있으면, 중앙로역 부근 부루빵집이라도 갈래요?”
서영은 뜻밖의 제안에 가슴이 콩콩 뛰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난생처음 받아든 데이트 신청에 놀란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요.”
그날 오후, 학교 근처 빵집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마주 앉았다. 유리잔에 담긴 달콤한 빵과 주스,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서로의 교복 소매 끝. 말은 많지 않았지만,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604번은 여전히 같은 길을 달렸지만, 정류장에서의 풍경은 달라졌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졌고, 버스를 놓치는 일은 더 이상 불운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석준 집은 시내 고위 공무원이던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이신 어머니 덕에 비교적 안정된 가정의 모범생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후에 만남을 지속하다 대학입시를 전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후일 어찌 어찌 석준이 서울의 명문 K대 전자공학과를 졸업 후 대기업 임원으로 있으며 좋은 가정을 꾸리고 당시 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 서영은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서영은 그러한 관계로 졸업 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했다. 바로 간호전문대였다. 등록금이 저렴했고 수업 연한이 짧고, 바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의 어려운 가정환경은 그녀의 꿈에 늘 걸림돌이 되었다. 어린 서영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값비싼 학비와 재료비는 꿈만 꾸게 했다. 대신, 서영은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현실적인 선택을 받아들였다.
겨울 찬바람이 불어치면 서영은 지금도 우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가슴 한구석이 시려 왔다. 1960년대 후반, 서산의 K동 도축장 근처의 겨울은 유독 붉고 추웠다. 서영의 아버지 석병은 도축장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붉은 생혈을 양은 통에 담아 리어카로 실어 나르는 인부였다. 시장 바닥의 언 땅 위로 아버지가 끄는 리어카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붉은 핏물이 점점이 박힌 얼음길이 만들어졌다.
어린 서영은 학교가 끝나면 멀리서도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늘 낡은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그의 몸에서는 씻어도 가시지 않는 진득한 피 냄새가 났다. 친구들이 ‘피비린내 나는 애’라며 코를 막고 지나갈 때마다 서영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그 비루한 냄새를 지우려 매일 밤 독한 소주를 들이켰다.
“서영아, 나는 이 바닥을 못 벗어나도 넌 꼭 하얀 사람으로 살아라.”
아버지는 평생 모은 돈으로 작은 정육점을 차려 ‘수레꾼’ 신세를 면하려 했으나, 동업자의 배신으로 보증을 잘못 서며 그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차압 딱지가 붙던 날, 아버지는 도축장 구석에서 쏟아진 핏물처럼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서영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하얀 옷을 입고, 독한 소독약 냄새로 아버지의 비린내를 덮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둘의 만남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어지다 대학 진학이 이루어지며 서로의 다른 진로와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지속되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서영에게는 석준과의 만남이 첫사랑이었던 셈이고 삶이 괴롭거나 각박할라 치면 풋풋하고 순수했던 석준과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었다.
간호전문대에 입학한 서영은 학업에 몰두했고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서영은 졸업 후 첫 직장으로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처음부터 대학병원에 근무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학과 성적과 단정한 외모 덕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서영은 흐트러지지 않는 바른생활과 몸에 밴 성실함으로 병원의 중환자실을 거쳐 정형외과실 담당 간호사로의 바쁜 업무를 잘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병원에 출입하던 S제약회사 영업직 대리 박철환이었다. 그는 늘 몸에 딱 맞는 네이비 수트를 입고, 구두는 거울처럼 반짝였으며, 말투는 봄바람처럼 온화했다. 거친 환자들과 땀 냄새 나는 진료실 사이에서 철환은 유독 단정하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서영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며 “윤 간호사님은 이 병원에서 가장 하얀 꽃 같네요”라는 싱거운 농담을 던지곤 했다. 누가 보아도 서글서글해 보이는 첫인상에 영업직에 맞게 말쑥한 옷차림에 적당한 키 그리고 부드러운 언어 제스처를 가진 그는 서영이 근무하는 정형외과 김대환 의사를 만나기 위해 자주 들르게 되었고 둘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남녀의 감정이 싹트게 되었다.
3월의 화이트데이를 얼마 앞둔 어느 날 의사를 만나서 일을 마쳤음에도 웬일인지 철환은 외래 주변을 왔다갔다 하더니 동료 박 간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서영에게 작은 사탕 꾸러미 선물을 건네고는 얼른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철환이 그렇게 병원문을 나서 사라진 후 서영은 자그마한 사탕 상자를 조심히 살펴보았다. 사탕 상자 속에는 ‘서영 씨, 뼈를 맞추는 곳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부러진 뼈는 잘 맞추시는데, 제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어진 건 어떻게 맞춰주실 건가요? 오늘 저녁, 병원 앞 카페에서 기다릴게요.’ 그의 정갈한 필체가 담겨 있었다.
‘뼈는 의사가 맞추지 내가 맞추나?’
서영은 속으로 픽 헛웃음이 나왔지만 싫지는 않았다.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예의 바른, 가난의 무질서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남자 그와 함께라면 평생 깨끗하고 정돈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생활은 처음엔 달콤했다. 영업 일로 가끔 늦기는 하였지만 철환은 여전히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곧이어 예쁜 딸 인혜가 태어났다. 하지만 행복은 인혜가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단정함은 독이었고, 온화함은 가면이었다. 철환의 그 세련된 매너와 다정한 말투는 서영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타고난 바람둥이였다.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 많아졌고, 그의 옷깃에서는 서영의 것이 아닌 낯선 여성의 향수 냄새가 소독약 냄새를 뚫고 들어왔다.
결정적인 순간은 서영이 서른다섯 되던 해 가을에 찾아왔다. 철환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다른 여자와의 다정한 사진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은밀한 메시지들. 철환은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서영에게 ‘부정(不貞)’은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오점이었다.
“당신의 그 단정한 겉모습에 속은 내가 바보였어. 속은 이렇게 썩어 문드러진 사람이었다니.”
서영은 단호했다. 그녀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딸 7살 인혜를 품에 안고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서영은 다시는 남자를 믿지 않겠다고, 오직 자신의 실력과 원칙만이 자신과 딸을 지켜줄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날 이후, 서영은 외래 간호사라는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가장 거칠고 힘든 응급실로 자원했다. 감정이 끼어들 틈 없는 전쟁터에서 자신을 혹사시키며 남편에 대한 증오와 배신감을 소독약으로 씻어내려 했다. 수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그녀가 보여준 독기 어린 원칙주의는, 사실 무너진 유토피아에 대한 방어기제였던 셈이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이제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고향과 가까운 이 시골 마을로의 귀촌이었다.
3
서영은 30년간 간호사로 일했던 서울의 복잡한 병원 대신, 경기 H시 근교의 ‘솔마을’에 낡은 흙집을 매입했다. 56세의 서영이 도시의 답답함을 뒤로하고 서울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로 떠났다. 불행도 전수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딸 인혜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그녀 역시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서영은 남은 삶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었다. 낡은 한옥을 사들여 손수 정원도 가꾸며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꿨다.
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이 나무 아래에는 낡은 평상이 놓여 있고, 그 위로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소복이 쌓여 있다.
서울의 아스팔트 열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발끝에 닿는 감촉은 푹신한 흙길로 바뀌고 있었다.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제각기 고개를 내밀며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할 즈음 이른 아침,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나는 알싸한 장작 타는 냄새는 그녀를 포근하게 감싸줬고 비 온 뒤 짙게 배어나오는 촉촉한 흙 내음이 공기 중에 섞여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피곤했던 육신과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듯했다.
집 뒤 작은 언덕에 오르면 멀리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개 짖는 소리와 지붕 위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바람이 대나무 숲을 통과하며 내는 스산하면서도 시원한 소리는 그녀의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하였다.
서영은 식사를 마치면 가끔 집 주변 솔밭길을 거닐곤 하였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투박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낮은 돌담들이 이어지고 이웃 담장 너머로는 김 할머니의 손길이 닿은 듯한 채송화와 분꽃이 줄지어 피어 있었고 마당 한쪽에서는 가을 햇살에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빨간 고추가 널린 멍석 위로 잠자리가 내려앉는 모습을 가장 평안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황금물결 너울대는 들녘 사이로 이 마을의 젊은 이장 수영 씨가 경운기를 몰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줌니,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장의 밝은 정감 어린 인사에 서영도 대답했다.
“네 방금요.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서요.”
“잘 하셨네요. 이젠 그럭저럭 시골 생활이 적응되시나요?”
서영도 밝게 인사를 나누었다.
“네, 만족합니다. 이장님이 잘 도와주셔서… 호호.”
‘그래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지.’
서영은 시골로 오기를 잘했다고 느끼며 깊은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4
처음 몇 달은 모든 것이 그림 같았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로 밥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꿈과 달랐다. 가장 먼저 찾아온 건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도시에서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었다. 해가 지면 고요한 적막만이 서영을 감쌌고, 그럴 때마다 사무치는 쓸쓸함에 가슴이 아려 왔다.
집 관리 또한 큰 문제였다. 지붕에서 비가 새고, 보일러가 고장 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쥐라도 나타나면 속수무책이었다. 전처럼 사람을 부르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서영 혼자 해결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서영을 힘들게 한 것은 주변 남자들의 시선과 유혹이었다.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 남자들은 스스럼없이 집을 찾아왔다.
혼자 사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걱정 어린 말 뒤에는 흑심이 숨어 있었다. 처음엔 순수한 호의라 생각했지만, 늦은 밤 술에 취해 찾아오는 이웃 표 씨 남자에게 서영은 위협과 공포를 느꼈었다.
이혼 후, 그녀는 이곳에서 온전한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 50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 설계에서 귀촌이 늘고 있었지만 서영은 농업보다는 여유로운 전원생활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그녀의 딸은 “엄마,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병원도 가까워야 해”라고 걱정했지만, 서영은 서울과의 접근성(한 시간 거리) 덕분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낙관했다.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웃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맞았다. 50대 이상 여성 귀촌인의 60% 이상이 1인 가구인 현실을 알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낯선 여자’는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의 독립 선언이 이방인의 고립으로 이어질 줄은 알지 못했다.
첫 번째 위기는 장마철에 찾아왔다. 집은 서영이 생각했던 낭만적인 쉼터가 아니었다. 지붕 누수가 발생하고 보일러가 말썽을 부렸다. 홀로 수리업자를 불렀지만, 그들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거나 수시로 서영에게 불필요한 사적인 질문을 던지며 경계를 허물려 했다. 여성 귀촌인에 대한 임대를 회피하는 농촌 정서가 있듯 주거 환경 문제는 그녀가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할 짐이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마을 남성들의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사람 좋던 이장 박씨가 마을 행사 후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서인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서영에게 다가와 “서울서 혼자 온 여자라더니, 남자 손이 필요할 때가 많을 텐데”라며 어깨를 주물렀다. 깜짝 놀란 서영은 황급히 일어서며 박씨의 손을 뿌리쳤다. 그 후로도 마을 이장 박씨는 수시로 서영의 집을 찾았다.
“고칠 거 없나 보러 왔지.”
그 말 뒤엔 늘 술 냄새와 함께 서영의 사적인 공간을 훑는 끈적한 시선이 따라왔다.
여성들이 농촌에서 겪는 일차적인 위협이 성추행과 성희롱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독립적일수록, 마을 남성들은 그녀를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서영은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이 환경에서 심리적 안정을 확보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서영은 집 수리와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흙집은 사진 속에서는 예술이었으나, 현실에서는 매일이 보수 공사였다. 서영은 홀로 지붕 보수를 하려다 미끄러져 손목을 삐끗하는 사고를 당했다. 통증보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고립감이었다. 지붕이 새서 업자를 부르면, 그들은 서영이 여자라는 이유로 견적을 배로 불렀다.
“이거 여자 혼자는 절대 못 해. 우리가 해줄 때 고맙게 생각하쇼.”
잔디 깎기, 보일러 수리, 무거운 짐 옮기기 등 농촌의 일상은 철저히 남성 노동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서영은 매 순간 자신의 성별이 이 척박한 환경에서 일종의 장애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결국 몸살이 심해져 병원을 찾으려 했지만, 가까운 면 단위 보건소는 기본적인 진료만 가능했다. 전문의를 만나려면 차로 40분을 운전해 시내 병원으로 나가야 했다.
간호사였던 서영은 농촌 의료 인프라의 취약성(면 지역의 의원 및 약국 부재)을 일반 귀촌인보다 더 현실적으로 인식했다. ‘내가 간호사인데 정작 나 자신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역설적인 무력감은 공포로 다가왔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녀는 공동체의 소통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외로움은 극대화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도시물이 든 외부인’으로 평가했으며, 밤에는 누가 집 주변을 서성이는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녀의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위험에 노출된 섬이 되었다.
마음이 우울하던 어느 날은 그녀의 가슴속 첫사랑 석준의 생각도 밀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현실에 그냥 가슴속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인혜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서영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겪은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모멸감을 털어놓았다. 딸은 강력하게 귀환을 권유했다.
“엄마, 모든 것 정리하고 서울로 다시 오셔요. 왜 거기 가서 그 고생을 하며 살아? 그 정도 살아 봤으면 됐잖아!”
이혼해 힘들어하는 딸에게 부담 주기 싫어 힘들고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애썼으나 그날은 어쩔 수 없이 가슴속에 혼자 묻어 두었던 속내를 들키고야 말았다.
딸 인혜와 통화가 있은 지 얼마 후 마침내 서영은 흙집을 급히 정리하고,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서영은 무거운 짐을 싸며 깨달았다. 자신이 꿈꿨던 평화로운 전원생활은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도시의 소음과 복잡함이 때로는 사람 간의 무관심으로 위장된 보호막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결국 역귀촌 통계에 편입되었지만, 이는 도피가 아닌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도시의 응급실에서 30년을 버틴 서영에게 ‘사람’은 곧 ‘환자’였고, ‘관계’는 곧 ‘처치’였다. 하지만 솔마을에서의 3년은 그녀에게 관계란 때로 ‘침범’일 수 있음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서영이 아침에 마당에 나오지 않으면 10분 뒤 이웃 할머니가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안 죽고 살아있나 보러 왔어.”
그것은 정(情)이라는 이름의 감시였다. 서영이 누구를 만나는지, 택배로 무엇을 시켰는지, 쓰레기봉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저녁 무렵이면 마을 정자 앞 평상의 메인 뉴스가 되었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익명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의 질서는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마을 남자들에게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거나, 혹은 길들여야 할 대상이었다.
서영은 마을 사람들에게 “거봐, 시골 생활이 쉽나”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짐을 쌌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삶을 끝내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복귀하는 능동적 퇴각이었다.
서영은 낯선 시골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뒤로하고, 익숙한 도시의 삶으로 귀환하기 위해 차 시동을 걸었다. 좁은 시골길을 벗어나 넓은 도로로 들어서자, 서영은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5
서울로 돌아와 딸 집 근처 작은 오피스텔을 얻은 날, 딸과 손주가 그녀를 반겨 주었다. 오랜만의 가족과의 따뜻한 스킨십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고, 시골에서 겪었던 모든 불안과 고립이 해소되는 듯했다. 서영은 서울의 불빛 아래에서 비로소 다시 진정한 안식과 안전을 되찾았다.
서늘한 바람이 서울의 낯선 공기를 실어 날랐다. 58세가 된 그녀, 이제 어느덧 사이사이 흰머리가 검은 머리와 뒤섞여 회색의 머리빛을 보이며 삶의 연륜을 보여주었다. 서영은 짐을 부린 원룸의 창가에 서서 혼란스러운 도시의 불빛을 응시했다. 귀환이라는 단어가 주는 웅장함과는 달리, 그녀의 서울 복귀는 조용하고, 조금은 쓸쓸했다. 경치 좋았던 시골 마을에서의 3년은 서영에게 일종의 도피이자 실험이었다. 서울의 종합병원 베테랑 수간호사에서 이혼 후 홀로된 삶을 정리하려던 시도. 그러나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시골 생활의 불편함과 홀로 사는 중년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호기심과 시선은 그녀의 원칙주의적인 성격과 부딪쳤다. 낯선 시골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쉽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스스로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서영은 짐 가방에서 꺼낸 성경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삶의 굳건한 기둥이자, 때로는 엄격한 잣대였던 신앙. 중상(中上)은 되는 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주변에는 늘 경계선이 있었다. 술과 담배는 물론, 가벼운 농담조차 허용치 않는 원칙과 청교도적인 생활 방식은 그녀를 존경받는 전문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32세의 역시 홀로된 딸, 인혜가 생각났다.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자, 서영 자신의 복사판처럼 닮은 딸. 모녀는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쉽게 연락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딸도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지만, 딸에게 어떤 충고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로서, 자신의 이혼 경력이 딸에게 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빈 원룸에 그녀의 낮은 한숨만이 울려 퍼졌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간호사 면허증과 경력뿐이었다. 하지만 50대 후반의 나이에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경쟁적인 서울 생활로 뛰어들 용기가 없었다. 종합병원의 고된 근무 환경은 이제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웠고, 수간호사의 타이틀은 이미 젊은 후배들에게 넘어간 자리였다.
그녀는 창문을 닫았다. 차가운 바람 대신, 서울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시골을 떠나왔지만, 이곳 역시 그녀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남들은 화려한 ‘귀환’이라 짐작할지 모르나, 서영은 지금, 텅 빈 캔버스 앞에 선 화가처럼 막막했다.
그녀는 테이블 위의 성경을 펼쳤다. 익숙한 구절에서 위로를 얻으려 눈을 움직이는 순간,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내가 가진 이 전문성과 경험을, 이제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써보면 어떨까?’
화려한 경력의 직함을 내려놓고, 그저 간호사 윤서영으로 돌아가는 길. 복잡한 종합병원이 아닌, 소외된 곳, 혹은 작은 시설에서 자신의 마지막 재능을 조용히 나누는 삶.
그것은 그녀의 원칙주의와 신앙심이 유일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귀환’의 방식일지도 몰랐다. 막막함 속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단단한 실타래 하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영은 이제야 비로소 서울에 돌아온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