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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절 사이의 시간

한국문인협회 로고 안정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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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움을 참기 힘든데도 머릿속에서는 족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더 극성스러웠다. 긁지 않으려고 손을 엉덩이 아래로 밀어 넣었다가, 위로 올려 흔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옆구리와 팔을 긁고 말았다. 참는다는 것은, 어쩌면 강박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근에 다녀온 병원의 의사는 육류와 어패류를 피하라고 했다. 피하라는 말이 떠오를수록 족발 생각은 오히려 더 간절해졌다. 피부는 긁은 자국으로 붉었고 좁쌀만 한 뾰루지가 온몸을 채워 가고 있다. 그런데도 위에 구멍이라도 난 듯 알 수 없는 허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대책 없는 충동적 식탐과 몇 날 며칠을 굶어도 허기로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징후는 그가 떠난 뒤 생긴 일이었다. 그는 어떤 말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를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없었다.
최대한 꾸물대며 몸을 일으켰다. 휴대전화 화면을 밀어 음식 광고를 뒤적였다. 유명하다는 족발집을 찾아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광고용 족발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맛있어 보였다. 전화번호를 눌러 가장 큰 것으로 주문했다. 주문 후, 이십여 분이 지나자 인터폰이 울렸다. 해피가 현관으로 달려가 꼬리를 흔들었다. 족발에 음료수와 메밀국수가 따라왔다. 메밀국수와 음료는 식탁 위에 올려두고 포장한 랩을 뜯어냈다. 해피는 코를 벌름거리는 게 먹고 싶은 눈치였다. 앞발을 예쁘게 모아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앉았다. 기다리겠다는 몸짓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릴 줄 아는 해피가 사람인 나보다 나아 보였다. 족발을 펼쳐 놓고 통통한 발가락 하나를 집었다. 해피가 다시 바라봤다. 나는 해피 눈을 외면하고 장식장에서 술을 가져왔다. 느끼한 음식을 술과 함께 먹을 참이었다. 족발을 입으로 가져가자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허기가 진다고 느꼈던 감정은 분명 가짜였는데 맛있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물어뜯다가 둘로 갈라진 발가락을 살폈다. 언젠가 나를 피해 혼자 있던 그는 족발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주 도수만큼 기울어진 자세였다. 내가 그때 퍼부은 악담이 되살아났고 족발이 되어 내 앞에 배달된 돼지의 삶까지 생각하게 했다. 족발이 되기 전 몸뚱이는 나름의 삶이 있었을 것이었다. 오물이 가득 찬 우리 안에서 필시 똥을 밟고 다녔을 발목이었다. 어느 새끼돼지거나, 수컷의 발정을 받아 준 씨받이였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육이라도 되던 놈이었을까?
족발을 보자 그의 생각으로 다시 우울해졌고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다가도 그가 문득 떠오르면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날 수 없었고 총알이 지나는 것처럼 심장이 휑했다. 건널목을 건너다 빈 자루처럼 무너져 내릴 때도 많았다. 신호가 바뀌어 곁을 지나가는 차가 수없이 경적을 울렸지만, 발작처럼 일어나는 증상으로 집을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 병원 치료와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다. 소용없었다. 미친 듯 거리를 헤매다가 유리창에 언뜻 비친 내 모습은 나와 전혀 다른 노숙자 꼴이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정신병으로까지 옮겨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 후 거리를 헤매지 말자고 다짐했다. 집에만 처박혔다. 종일 갇힌 삶은 무료했다. 그와 지냈던 시간과 오지 않는 그를 생각하면 괴로웠다. 그때 우연히 마신 술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잠시나마 그를 잊게 했고 잠들 수 있었으며 나의 과거는 아득히 멀어졌다가 나타났다. 술 힘을 빌리자 바닥이 꺼지고 기분이 붕 뜨는 그 시간만큼은 모든 상념이 정지되었다. 급하게 뛰던 심장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비록 혼자 말하고 답하는 일방적인 시간일지라도 기분이 좋았다. 술 힘의 매력은 또 있다.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었다. 그가 갔을 만한 장소를 무작정 다시 찾아갈 용기도 생겼다. 찾아간 장소에 그의 흔적이 있을 리 없었다. 허탕일지라도 술기운은 희망이 있었고 위안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공원 벤치에 종일 앉았을 때가 많았다. 집에 홀로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이 저무는 것도 잊은 채였다. 그때마다 꾀죄죄하고 눈빛이 멍해 보이는 개 한 마리를 만나곤 했다. 목줄도 이름표도 없는 개는 사람을 좋아해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경계하는 듯 보였다. 그때마다 “오늘도 있네”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만나는 개가 반가워서 저절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는 길을 가다 개를 만나면 주인이 있건 없건 ‘너 어디 사니?’라고 했다. 나도 그때가 생각나서 똑같은 말로 인사를 건넸다. 개는 내 소리를 듣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제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가가고 싶은 거리와 멈춰야 할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보았다. 그와 나의 거리는 그동안 어느 만큼이었을까? 십오 년을 함께했다면 좁혀질 만큼 좁혀진 게 아니었을까? 그때 팔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방을 열어 물티슈를 꺼냈다. 팔을 긁는 대신 톡톡 두들겼다. 긁지 않으려고 애쓰는 손을 개가 가만히 보았다. 개는 어딜 보아도 유기견처럼 보였다. 바라보는 개를 향해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 했다.
“사람 기다리는 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너.”
“못 온다는 걸 아는데도 기다린다니까.”
유기견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지 않고 갸웃거리는 이 개에게 나는 도대체 뭘 말하고 있지? 뭘 원하고 있는 거야?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위로나 공감을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어쩌면 내 속내를 풀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한곳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개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그때 문득 나와 개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피, 해피.’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해피라고 불렀다. 개는 듣는 둥 마는 둥 가까이 오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경계했다. 현재 상태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듯 간격을 좁히지 않았다. 나는 만날 때마다 말을 걸었다.
“해피, 너 여기서 뭘 먹고 살아?”
말을 건네면 까만 두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하루 이틀 한 달 오랫동안 얼굴을 익혀선지 아주 멀리 피하지는 않았다. 그때마다 가끔 준비해간 간식을 주었다. 해피는 간식 주변을 빙빙 돌다가 내가 한눈을 팔면 꼭 그때 먹었다. 나는 일부러 눈을 다른 곳에 두었다.
그날도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은 그곳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처음엔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곧 우산을 써야 할 만큼 급작스럽게 굵어졌다. 내가 천 가방에서 양산을 꺼내어 펴도 해피는 비 맞는 일이 익숙하다는 듯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가기 좀 그렇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나왔다. 해피를 돌아봤다. 비에 젖어 엉킨 털이 아래로 처지고 있었다. 우산을 옆으로 조금 기울였다. 해피는 우산 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너무 작고 초라한 개. 그냥 두고 가기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집까지 거리를 계산했다. 개가 따라올까? 애초 멀었다면 아예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루만….”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자 예전 그가 했던 말이 스쳤다. 하루는 약속이 아니라 버티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가 헤어지길 간절히 원할 때 생각할 시간을 하루만 달라고 했던 내 말의 답변이었을 것이다. 해피는 하루만이라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해피, 나랑 갈까?”
집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잡고 걷자 해피는 앞서거나 뒤서지도 않고 따라왔다. 내가 멈추면 멈췄고 걸으면 걸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젖은 해피를 어떻게 할지 잠시 망설였다. 현관문을 열자 해피는 들어가도 되는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기까지 와놓고 그냥 가게? 그건 좀 이상하잖아.”
해피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터였다. 들어오라고 몇 번 말하자 문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조용했고 나는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망설였다. 물? 수건? 사료?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서 뭘 먼저 할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해피는 허둥대는 나를 보며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젖은 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물이 채워지자 해피에게 손을 대는 것이 불안했지만, 살짝 가져갔다. 내가 몸 가까이 손을 대어도 저항하지 않고 제 몸을 맡겼다. 흙탕물이 줄줄 흐르는 몸을 씻기고 엉킨 털을 가위로 정성껏 잘라주었다.
해피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집까지 데려온 것은 약간의 동정심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날 밤 혼자 있기 싫은 내 간사한 선택이 더 컸을지도 몰랐다. 해피는 캔 참치 하나를 깨끗이 비우고 거실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옆에 앉아 해피 숨소리를 들었다. 일정한 숨소리를 들으며 밤을 혼자 지내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해피는 그렇게 나와 살게 되었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옆에 있는 해피가 마음에 들었다. 까만 눈동자가 그를 보는 듯 안심이 될 때도 있었다. 해피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자신의 처지를 멋대로 짖거나 원망으로 풀어놓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나눌 수 없는 마음을 해피에게 하소연하듯 주절거렸다.
“내가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악담만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떠나지 않았을까?”
어처구니없는 물음을 늘어놓았다. 해피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다툼이 극에 달했을 때 참지 못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쏘아붙였던, 그날 일이었다. 까닭도 모르는 채 바라보는 해피 앞에 술을 따라주었다. 냄새를 맡고 뒷걸음치다 주저앉는 모습이 우스웠다. 처음으로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주저앉은 해피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하는 꼴이 우스워 나도 몰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피는 나를 보며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릇 밑바닥에 부어진 술을 핥는 시늉을 했다. 나는 해피가 자신의 나머지 삶을 위해 억지로 복종하는 개처럼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안았다.
“너는 나를 떠나면 안 된다.”
해피와 이런 날을 보내면서도 몇 날이고 몇 달이고 무기력이 불쑥불쑥 찾아오면 이길 만한 대책을 찾지 못했다. 나는 우리 속에 갇혀 살다 족발로 변한 짐승처럼 그와 나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했길래 그는 말도 없이 떠났을까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는 내가 함부로 던졌던 말이 상처가 되어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듯 떠났을 수도 있다. 짐을 던져버리듯 떠났을지라도 그의 마지막 시간 속에는 늘 내가 있다. 취기에 몽롱해진 나는 물어뜯다 만 족발을 내려놓고 소파로 가서 누웠다. 술기운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창이 훤했다. 시계를 보자 오전 열 시를 넘어가고 있다. 눈을 떴는데도 몸을 일으키기 싫을 정도로 기운이 없다. 언젠가 아침 방송에 출연한 의사가 아침 식사를 거르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잔병의 원인이 된다고 했었다. 그 뒤 아침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짐뿐이었다. 가려운 증상이 여태까지 좋아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일까?
어제 마신 술 때문에 귀찮고 식욕이 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겠다고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밥을 억지로 밀어 넣듯 먹었다. 평소 먹지 않던 밥을 먹은 탓인지 입 안이 텁텁하고 속이 더부룩했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거실로 퍼지는 커피 향은 가라앉은 기분을 조금 올려주었다. 식탁에 앉아 느리게 커피를 마시고 평소처럼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들었다. 소파에 길게 누워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팔을 올린 채 이곳저곳으로 채널을 바꿨다.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누르다가 피부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현재 긁고 있는 증세와 비슷해 보이는 그 채널에 고정했다. 아니, 마지막으로 본 그의 상처와 닮아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전자부품을 보호하는 에폭시 일을 했다. 화학약품이나 용접으로 튀긴 불똥으로 팔등에 가로세로로 난 상처를 달고 살았다. 때때로 상처 난 자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거나 가려움을 견디느라 쉴 새 없이 문질렀다. 방송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그의 팔뚝에 있던 상처가 더욱 선명해졌다. 출연한 사람들이 직접 한다는 자연식 사례는 당장 따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이 효과를 보았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내 피부병도 곧 완치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는 설마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나을 수 있을까? 의심이 갔지만, 곧 나을 수 있겠다는 깨알 같은 믿음에 다소 위안이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열심히 메모했다. 매사 아무런 의욕도 없던 내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집중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했다.
건강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바꿨다. 햇살이 베란다 창을 통해 깊게 들어왔다. 오후 두 시가 지났다.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은 투명한 주황빛이었다. 연보라색 커튼은 바랜 듯 색을 잃었다. 한동안 천장만 바라보았다. 허무하게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중대한 삶을 낭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보낸 자괴감은 물속에 깊이 가라앉은 바위처럼 종일 소파에 붙어 있게 했다. 누워 있는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발가락 사이 긁힌 자리가 쓰렸다. 발을 까딱거리자 옆에 있던 해피가 몸을 길게 늘였다.
“해피! 잘 잤어?”
해피는 모르는 척 외면했다. 이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못 들은 척하는 게 우스웠다. 나는 큰 소리로 해피! 하고 불렀다. 녀석은 배를 바닥에 댄 채 양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귀찮다는 듯 눈을 치뜨고 나를 올려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바로 옆에 있는데 큰 소리로 부르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그래, 이럴 때는 내가 웃어주마. 안 그러면 언제 웃겠냐. 나는 해피와 대화하듯 중얼거리며 의식적으로 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었다.
순간 조직검사를 위해 피부를 떼어낸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허리를 곧게 펴고 꼿꼿하게 앉아 통증을 가라앉혔다. 반점과 통증이 계속되자 상담했던 의사마다 조직검사를 하자며 옆구리 붉은 반점에서 조직을 떼어냈었다. 이번에는 원인을 밝힐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걱정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머리를 흔들어 걱정을 지우고 일어났다.
하릴없이 거실과 방을 들락거렸다. 컴퓨터를 켜놓고 그 앞에 멍청히 앉았다. 잡다한 생각이 휑하니 비어버린 머릿속을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베란다 창으로 가서 기대섰다.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햇볕 아래 열손가락을 폈다. 햇살이 손가락 사이 붉은 반점을 가라앉혀 주길 바라면서. 창문 사이로 밖을 보았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있는 향나무에 동박새 한 마리가 앉아 지저귀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동박새의 지저귐이 내게 헤어지길 원했던 그의 목소리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친 새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침묵했다. 새를 보았던 순간을 느낄 틈도 없이 새는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새가 사라진 허공을 오래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피가 내 발등을 핥았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얼마나 이러고 서 있었던 걸까. 십 분, 아니, 한 시간? 최근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동물이나 사물에 감정이 이입되는 날이면 시간은 더 빨리 증발해버렸다.
“어디로 간 거야?”
날아간 새를 향해 중얼거렸다.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덤 같은 이 시간이 지옥 같았다. 새는 어디로 갔을까? 저 넓은 하늘에서 어떻게 갈 길을 찾아갈까? 사람도 새처럼 길을 알고 산다면 사는 일이 참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우지 못한 의식 때문일까, 나도 알 수 없는 허기가 또 몰려왔다. 그의 빈자리를 몇 날 며칠 굶거나 먹는 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또 채웠다. 비우거나 채워도 가시지 않는 허기였다. 허기는 속이 아니라 어쩌면 기억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래되어 소음이 심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그가 떠난 뒤에도 무언가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 내가 진심으로 미웠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어 냉장고에 들었던 음식을 모두 버렸다. 오늘도 아침을 먹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을 몽땅 쓸어 쓰레기봉지에 넣어버렸다. 냉장고 안에는 검은 비닐봉지만 덩그러니 놓였다. 어제 먹다 남긴 족발이었다. 냉장고 문을 잡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족발을 꺼내자 헐어 짓무른 상처와 피부를 떼 낸 옆구리가 씀벅거렸다. 이럴 때 진통제라도 있다면 당장 통증이 줄어들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려움은 통증보다 더 악질이었다. 손을 대면 잠잠해졌다가 더 넓게 번졌다. 생각을 멈추면 괜찮아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기억처럼. 가렵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각이 피부 아래로 돌아다녔다. 어떻게 이 증상들을 완화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심적으로 조급해지면 더 미친 듯 날뛰는 감각이었다. 손이 가는 대로 온몸을 긁었다. 사막을 헤매다 물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시원했다가, 그 시원함은 순간이었고 긁힌 자리는 더 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상처는 점점 커질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병원 의사는 내 몸 곳곳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며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처방한 약을 먹어보고 이삼일 뒤 다시 오세요. 특히 육류를 피하시고요.”
그 말은 늘 똑같았다. 병원만 달랐고 의사의 얼굴만 바뀌었다. 어떤 이는 보습을 말했고 어떤 이는 화장품을 끊으라고 했고 어떤 이는 육류를 피하라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도 병명은 분명하지 않았다. ‘지켜봅시다’라는 짧은 말만 했다. 나는 병원을 옮겨 다니며 차곡차곡 처방전을 모아 비교했다. 시간이 흘러도 가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의사들의 짧은 말투는 점점 믿기 어려웠다. 생과 사를 가르는 병을 다루는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해 보이는 증상 하나를 잡아내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경증이라는 말이 특히 못마땅했다. 그럼 뇌 치료라도 하란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반점은 커지고 가려움은 깊어지는데 신경증으로 설명하는 듯한 태도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삼일 약을 먹고 기다리라는 말은 곧 나을 것이란 말처럼 들렸다가 실망하고 말 진단이었다. 쇼핑하듯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았지만 명확해진 것은 없었다. 의사의 짧고 미진한 대답을 듣고 쫓기듯 진료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시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헤어져달라고 애원했다.
“부탁이야.”
나는 헤어질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는 마주 불어오는 바람 속을 걷듯 휘청대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어미를 찾아가는 새끼 오리 같았다. 언젠가 개천에서 보았던 오리 떼를 떠올렸다. 새끼를 거느리고 미끄러지듯 헤엄쳐 가던 어미. 그 어미는 뒤처진 새끼에게 다가가 부리로 밀어 대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보살폈다. 오리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서 완벽한 가정의 평화로운 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와 나는 애초 찾아오는 가족이 없었다. 둘 다 어린 나이에 부모 이혼으로 보육원에서 자란 사이였다. 하여 부부거나 서로 오누이처럼 위하고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끔 나와 네가 가족이 맞느냐고 묻곤 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농담처럼 들렸다. 살 맞대고 살면 가족 아닌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가족 아닌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과묵하고 성실한 그는 작은 키에 갸름한 얼굴 온순한 눈동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시시콜콜 조잘대는 나보다 문제점이 생기면 행동으로 해결했다. 술도 못 마시는 천연기념물이라고 했을 때도 그는 씩 웃는 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술에 집착하는 일이 생겼다. 회사 일이었다. 모든 일을 온전히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듯 회사 일에 헌신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회사 일은 정해진 시간만큼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도맡아 하는지 따져 물을 때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는 ‘이 사람은 이런 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그 말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그 말은 뭐든지 잘한다는 뜻이었다. 머리로 계산하여 움직이는 일보다 몸에 익숙한 기술, 그 일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일이 좋다고 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만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이나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자기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지위가 높은 명함보다는 칭찬 한마디가 그리운 사람이었다. 학벌이나 배경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일, 말 대신 자신이 해낸 일로 평가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람. 나는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상상도 못 할 이상한 마음이라고 했다.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좋지 않나? 그는 크게 돈을 벌거나 성공을 꿈꾸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닥친 것은, 긴급 구조조정이었다. 다 잘려나가도 자신만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내게 큰소리쳤다. 회사가 새로운 기계를 도입해서 감원할 것이란 소문이 돌자 두세 배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 썼다. 허사였다. 그가 하는 일이 자동화 기계로 대신할 순번 일 위였다. 그는 다른 부서로 옮겨졌다. 그러자 명퇴를 결정했다. 수차례 이력서를 들고 다른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사람이 하는 일은 줄었다. 직업 갖기를 포기한 그는 다시 일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실력이면 어딘들 못 가겠냐고 그보다 더 작은 회사 더 낮은 임금을 제시한다면 분명 찾는 곳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수없이 말했다.
그는 따지듯 말하는 내게 말주변도 없었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싫고 현재 상황과 급변한 사회 시스템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되지 않는다고만 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뉴스를 보거나 듣지 않았다. 내가 하는 설명도 싫어했다. 대신 있는 듯 없는 듯 한마디씩 했다.
‘나 없으면 안 되는 일도 있어.’
자신만의 세계 속 이야기를 툭 내뱉기도 했다. 그 말은 자랑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졸업장이나 배움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쓸모 있게 버티겠다던 그는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 읽기를 싫어했다. 자신의 처지를 내게 이해시키려고 하면 변명 같아지고 침묵하면 포기처럼 받아들이는 나 때문에 자기 말을 접는다고 했다. 나는 세상이 변하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변한 만큼 새로운 공부는 필수라고 고집하며 내 말대로 하라고 강요했다.
그는 내가 다그치는 일에 지쳐 입을 닫기 시작했다. 대신 차분히 고민해볼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어떤 대화도 나와는 통한다고 믿었는데 집요한 나를 힘들어했다. 좋다고 믿었던 어느 부분이 언젠가는 결국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헤어지길 원했다. 나는 십오 년을 함께했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헤어질 수 있는지. 단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가 직장을 못 구한 것보다도 어쩌면 둘이었다가 혼자 되는 세상이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를 붙잡아 둘 직장을 들먹거렸는지도 몰랐다.
그 일 이후 그는 어디로 갔는지 떠난다는 말조차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가 떠난 시간이 길어지자 기다림이 습관처럼 되었다. 낮에는 별일 없이 지낼 때도 있었다. 빨래를 널고 바닥을 닦고 텔레비전을 켜두었다. 화면 속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인터폰 소리가 들린 것 같아, 하던 일을 멈추면 윗집으로 올라가는 발소리거나 밖에서 떠드는 소리였다. 저녁 무렵 노을빛이 지면 그가 떠난 시간 같아 가장 멍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이미 수십 번도 더 열었다 닫은 메시지창을 들락거렸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밤은 더 길게 느껴졌다. 밤이 되면 그의 발소리를 상상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열쇠를 찾는 소리 문이 열리기 전 잠깐의 침묵 그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상상은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왔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기다리는 것이 그를 향한 사랑인가, 아니면 남겨진 나만의 마지막 습관 같은 것인가 생각해보았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변명도 없고 설명도 없다. 그런 밤이 지나면 또 아침을 맞고 나는 기다리며 이때까지 왔다.
식탁 앞으로 갔다. 허기로 꺼냈던 족발을 앞에 두고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가위로 잘라 해피 그릇에 조금 주었다. 한참을 멍하게 식탁 앞에 앉아있자 가려움은 더 심하게 나타났다. 피부가 아니라 어디의 간지러움인지 종잡을 수 없다. 나는 가려움과 함께 싸워보자는 듯 한약 향이 밴 족발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씹을수록 가려움은 자리를 바꿔 이동했다. 족발이 물어뜯기고 씹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식감이 쫀득했다. 콜라겐이 되어 내 피부 어딘가로 가서 붙을 것만 같다. 족발을 씹던 입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해피가 엎드린 채 내가 하려는 말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숨소리를 낮추고 나를 봤다.
“해피, 오늘은 올까?”
해피는 대답 대신 까만 두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흐르지 않는 내 시간 속 그에게 물었다.
“언제 올 거야?”
“…….”
대답이 없다.
다음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키가 크고 콧날이 날카로운 젊은 의사였다. 진찰 순서와 과정은 다른 의사와 비슷했다.
“결절성 양진입니다. 심부 온도 저하에 의한 피부 온도 상승입니다. 어려서 수두를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잘 나타납니다. 또 인체 내에 독소나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아 그대로 염증이 되어 발병하는 것이지요. 특히 스트레스를 먼저 놓으십시오. 식이요법과 운동하고 수분을 많이 섭취하셔야 합니다. 면역체계 교란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진찰했던 다른 의사들도 분명히 그렇게 알려주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말은 들리지 않았고 오늘 내 귀에는 또 다른 말로 들렸다.
“사람 사이에 인연은 약이 되기도 독이 되는 관계도 있습니다. 독이란 끝내 흘러가지 못한 말과 감정이 쌓여 배출되지 못해 굳어버린 염증 상태, 결절성 양진입니다.”
피부 아래 단단하게 만져지는 덩어리, 결절과 결절 사이의 가려움증 그것이 결절성 양진이었다. 독이 쌓여 배출되지 못한 염증! 죽어버리라고 퍼부었던 그 말이 독이 되어 찾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떠나버린 그. 자신의 길을 만드느라 끊임없이 앞만 보던 그의 팔등 상처가 한꺼번에 눈앞으로 쏟아졌다. 만날 수 없는 그의 명복을 빌었다. 옆구리나 발가락 온몸이 아니라 정수리가 가려웠다. 원래 가렵던 자리가 아닌 다른 가려움이었다. 그의 부재가 내 시간 속 기다림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상처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덩어리처럼 뭉쳤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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