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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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구름은 산마루를 넘나든다. 소유권이 개인으로 되어 있던 없던, 세상 떠날 때에는 동전 한 닢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간사다. 그것은 나라 상감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동호 역시도 세상사 모든 일이 허상들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느낀 지 오래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유권은 없지만, 저 청산이나 시냇물 소리도, 저 끝없이 흐르는 은하수도, 세상에 머무는 동안 많은 것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동호는 오래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무엇인가 세상이 좀 변하는가 싶었는데 그 밥에 그 나물들이다. 고속도로 현장에 누워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지를 않나, 밤에는 은밀한 곳에서 양주를 퍼마시고 낮에는 공권력과 돌팔매로 맞서던 패거리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잡범들이 설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여의도에는 지금 동물의원이 성업 중이다. 그곳에서는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소수는 항상 다수에게 밀리기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호는 지금 짓고 있는 공사가 끝나면 바로 중동 건설현장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중동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뵙고 싶었으나 그곳은 갈 수가 없다. 그의 고향은 개성 송악산 밑이라 휴전선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강 망배단이라도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럴 때는 예식을 올리지 못한 송이 생각에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동호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밖에 모른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거두어 들였다. 샘물받이 논 서너 마지기와 비탈밭 하루가리가 전재산이다. 밭에는 밀도 심고 보리도 심었다. 동호는 일 년 내내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농사일을 해도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으려면 입에서는 단내가 가시지를 않았다. 동호는 건강하고 부지런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소는 기본이요, 돼지며 닭도 키웠다. 그가 소나 돼지를 키웠다 하면 종우(種牛)가 되고, 종돈(種豚)이 되었다. 때문에 근동에서는 암소나 암퇘지가 발정이라도 나면 동호는 더욱 바빠진다.
발정 난 짐승들이 질러대는 소리는 십 리 밖까지도 들릴 정도다. 조용하던 마을이 한동안 시끄러워진다. 그러면 동네 우공(牛公)과 돈공(豚公)들 또한 그 소리들을 듣고 화답을 하느라 안달복달들이다. 대부분 암내 난 소나 돼지를 동호네로 직접 몰고 와 자웅을 붙여 가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동호가 직접 종우나 종돈을 이끌고 출장 방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소나 돼지가 거사를 치를 때는 언제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물을 긷던 아낙들은 울타리 사이로 움찔움찔, 질금질금 속곳 가랑이를 적셔 가면서도 샛눈으로 볼 것은 다 본다. 특히나 돈공들의 거사 시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허연 거품을 입에 물고 헐떡거리며 도래송곳 같은 무기를 휘두르며 희뿌연 정액을 쏘아댄다. 옹기장수 마누라가 정신이 팔려 머리에 이고 가던 옹기가 박살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호는 돼지가 암내가 났다는 기별을 받았다. 산모퉁이를 돌아 과수원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과수댁이다. 그날따라 비가 부실부실 내린다. 그 과수댁은 무남독녀 외동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 그의 남편은 해방이 되기 바로 직전, 강제 징병으로 남양군도로 끌려가고 소식이 없다.
동호는 돼지가 비를 맞으면 감기라도 걸릴까 염려되어 비료포대로 덕석을 만들어 등을 덮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돼지 지들끼리는 통하는지 소리를 지르며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 과수댁이 영 보이지를 않는다. 동호는 과수댁 대문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아니, 돼지를 불러놓고 얼굴도 볼 수가 없다. 동호는 할 수 없이 주인을 불렀다.
“아주머니! 안 계세요? 돼지를 몰고 왔어요.”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 있기는 한데 영 내다보지도 않는다. 과수댁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참으로 이상하다. 동호는 대문을 흔들며 이번에는 큰소리로 불렀다. 그래도 대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돼지들은 급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할 수 없이 동호는 돼지와 함께 발길을 막 돌리려 하는데, 그제서야 대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반쯤 열린다. 그런데 정작 과수댁은 없고 그 집 딸 송이다.
얼굴에는 산딸기처럼 빨간 여드름꽃이 탐스럽게도 피어 있는 송이의 얼굴이 담박에 홍당무처럼 빨개진다. 그의 앞에는 총각 동호가 장승처럼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그를 본 송이는 가슴이 갑자기 울렁거린다. 그러기는 동호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정작 돼지들보다도 그들의 마음이 더 두근거릴지도 모른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처녀 총각들이다. 송이는 내외를 심하게 했다. 언제부터서인가 그의 앞에서는 고개도 마음대로 쳐들 수가 없다. 그러기는 동호도 마찬가지다. 동호는 용건을 말을 해야 하는데, 돼지에 대한 그 말은 차마 하지를 못했다. 돼지가… 돼지가… 동호는 더듬더듬하면서도 거기까지였다. 그런 동호를 보고 송이는 덩달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송이는 서울 이모 댁에서 여고를 다니다가 주말이 되어 잠시 내려온 것이다. 동호는 말은 하기는 하여야 하는데, 뭐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저, 돼지 때문에 왔는데요, 어머니 안 계세∼요?”
동호의 그 말에 송이는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한다. 얼마간 지나서야 송이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한다.
“어머니 지금 안 계신데요.”
동호는 당황했다. 그는 재차 물었다.
“안 계시다니요?”
“어머니 지금 안 계세요. 갑자기 배가 아프시다고, 방금 병원으로 급히 실려가셨어요!”
“네?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고요?”
“네!”
그 말을 들은 동호는 난감했다.
“그러면 혹 어머니가 무슨 말씀 안 하시던가요?”
그제서야 송이는 알아차린 듯 대답을 한다.
“아네, 얼핏 듣기는 들었어요. 누가 돼지를 몰고 올 거라고만 하시던걸요.”
송이의 대답은 거기까지였다. 큰일났다. 이야기가 더 이상 진전이 되지를 않는다. 발정 난 돼지의 자웅이나 교미라는 그 말만은 그들은 차마 하지 못하고 송이도, 동호도 속으로 끓탕들만 한다.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 결국은 동호가 빗대어 말을 한다.
“돼지를 시집보내신다고 걱정하시길래 총각돼지를 몰고 왔어요!”
이번에도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답답하기는 동호뿐이 아니고 송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송이는 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 더듬더듬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묻는다. 송이의 물음에 동호도 얼핏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간 있더니 동호가 기어이 말을 한다.
“우선 돼지들끼리 맞선을 보게 하려면 우릿간의 돼지를 풀어놓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지들이 알아서 하겠죠, 뭐!”
그 말을 들은 송이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돼지우리간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문이 열리자 돼지들은 대번에 서로가 달려들어 뒤엉킨다. 송이는 여전히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송이네 암퇘지는 너무나 어린 데다 덩치가 큰 동호네 수놈이 어찌나 설쳐대는지 감당이 되지를 않는다. 동호네 돼지가 송이네 돼지 등에 올라타려 하자 비실비실거리다 맨땅에 코를 박고 쓰러진다.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다. 보다 못한 동호가 말한다.
“내가 암놈을 잡고 있을 테니, 그쪽에서는 수놈의 거시기를….”
순간 송이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총각 동호가 그 일을 자신 보고 하란다. 아니 그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건가.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돼지 두 마리가 어찌나 소란을 떠는지 마당가에는 그새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송이만을 바라본다. 큰일이다. 송이는 죽어도 못한다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짜증을 낸다.
“엄마는 왜 하필이면 이런 날 병원에 가실 게 뭐람!”
병원에 누가 가고 싶어 가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 말이 송이 입에서 툭 튀어나고야 말았다. 할 수 없이 송이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밖으로 나왔다. 돼지들은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쳐댄다. 동호네 수퇘지가 벌겋게 성이 난 물건을 과녁을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다 비벼대며 정액을 뿌려댄다. 송이는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것이 당장이라도 죽고만 싶었다. 그런데다 동호는 퉁명스럽게도 말을 한다.
“그러다가 수놈 힘이 다 빠지겠어요. 이번에 실패하면 또다시 오기란 어려워요. 이번에 어떻게든 일을 끝내야 돼요.”
그래도 송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보다 못한 동호가 이번에는 송이의 손을 강제로 끌어다 수놈의 물건을 쥐어주며 말을 한다.
“그래요, 맞아요 거기요, 그렇게, 그렇게 집어 넣으면 된다고요.”
사람들은 여전히 송이만 바라본다. 송이는 이판사판이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그는 달려들어 동호네 수놈 거시기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너무 세게 쥐었는지 수놈은 아파 죽겠다고 길길이 날뛴다. 송이는 동호 총각네 수놈의 거시기를 자기네 암퇘지 그곳에다 기어이 집어넣어 주었다. 암퇘지는 아프다고 앙탈을 부리듯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면 그럴수록 수놈은 더욱 신바람이 나는지 사람들 보란 듯이 게거품을 흘리며 용을 쓴다. 동네 개들도 달려나와 짖어대고 닭들도 구구거린다. 그렇게 해서 돈남과 돈녀의 흘레식은 성대하게 끝이 났다.
그때 송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동호에게 말을 한다.
“자세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말씀드릴 거예요.”
그것은 다름 아닌 수퇘지의 출장비와 수고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황소야 한 번 행사를 치르는 데 콩이 한 말이지만, 돼지들의 수고비는 돼지 새끼 한 마리다. 그것을 확실하게 받아야 하는데, 당사자인 과수댁이 없기 때문이다. 동호는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돼지 그 녀석도 한 번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는지 자꾸만 힐끔힐끔 뒤돌아본다.
그러다 보니 해는 어느덧 오후로 설핏하게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을에 초상이 났다. 장터에 있는 병원으로 실려간 송이의 어머니가 개성 시내 큰 병원으로 이송 도중 급성맹장이 곪아 터져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큰일이다. 송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혼자서 장례를 치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식구라고는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돼지의 인연으로 알게 된 동호가 앞장서서 장례를 치르는 수밖에 없었다. 부고도 찍어 돌려야 하고, 상포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는 동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한마디씩 한다.
“동호는 천상 이 집 데릴사위가 되겠구먼. 송이네는 그래도 고래논 열 마지기에 밭도 하루갈이가 더 되는데…. 어디 그뿐인감. 야산도 수백 정보도 더 되는데, 안 그래요?”
어머니의 삼일장을 치른 송이는 할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송이는 집안일은 그런대로 할 수 있지만 소나 돼지는 물론, 바깥 농사일은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동호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날 때면 송이네 일을 거들었다. 논도 갈고 밭도 갈아야 한다. 그런데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서울 사는 송이의 이모가 시골에 있는 모든 땅을 팔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성화란다. 그런가 하면 기왕지사 이렇게 된 일, 아예 그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면 되지 않겠냐고 노골적으로 동호의 등을 떠미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동호도 송이도 자신들 스스로 나설 수가 없었다.
사실 송이네는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자주 끓여 먹지만 동호네는 그러지를 못했다. 일 년 내내 잡곡밥도 겨우겨우 끼니를 이어가며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자신이 나서서 송이와의 청혼을 한다면 사람들은 송이네 재산이 탐이 나서 그런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기는 송이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동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양반집 가문에다 사람이 진실되고 건강하고 참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쩌면 동호를 사윗감으로 이미 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호의 나이 스무 살에 송이 나이 열여덟이다. 마침, 마을에 드나드는 방물장수가 있었다. 방물장수는 입담이며 넉살도 좋았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사람들은 그를 변호사라고도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송이네를 들렀다. 광주리 안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올망졸망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물감이며 세숫비누 그리고 바늘쌈지에 실타래도 있었다. 시골이라 현금은 없고 대부분 외상이다. 여름 내내 물건을 외상으로 깔아 놓고 가을이면 참깨나 녹두, 팥 또는 콩 같은 알곡으로 받아 갔다.
“아주머니,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아주머니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요. 혹시 어머니 외상값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아, 아니야 아니야. 어머니께서는 원래 외상은 딱 질색이셨어. 경우도 밝으시고 만사가 분명하셨지. 실은 말야, 나는 오늘 송이 처녀한테 물건을 팔러 온 것이 아니고, 다른 일로….”
“다른 일이라니요?”
송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야.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
“그래 맞어, 송이 처녀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 부지런하고 이제는 살림꾼이 다 되었네. 집 안도 깨끗하고, 그런데 송이 처녀 혼자 살기 무섭지 않은감. 더운다나 이 큰 기와집이 적적할 테고. 그래서 말인데 내 주변에 인품 좋고 부지런하면서도 참한 신랑감이 있는데, 어떻게 다리를 한번 놓아 볼까?”
그 말을 들은 송이는 단박에 얼굴이 빨개졌다.
“아주머니도 참, 제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지금은 상중인데?”
“송이 처녀, 그런 소리 말아. 낭랑 십팔세란 말이 있어. 그리고 어머니 상청을 말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상식도 둘이 드리면 혼자 드리는 것보다 훨씬 낫지. 그러면 저승에 계신 어머니도 아버지도 반색을 하실 거구먼. 송이 처녀, 안 그래요?”
“하지만 언감생심이지, 그런 사람이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나를 거들떠나 보겠어요?”
순간, 방물장수는 송이 처녀가 동호 총각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래, 결혼이라는 것이 인륜지대사인데 그렇게 쉽게 결정을 짓겠어? 집안 어른도 안 계시고…. 참, 사십구제 때에는 서울에서 이모님도 내려오실 것 아니야? 그때 의논드리면 되겠네. 그러면 난 이만 가볼게. 잘 있어, 송이 처녀.”
“네! 그러면 아주머니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또 오세요!”
언제 보아도 송이는 상냥한데다 인사성도 밝았다. 그 집에서 나온 방물장수는 곧바로 돌배나무집을 옆으로 끼고 돌아 동호 총각네로 달려갔다. 그러나 동호는 집에 없고 앞논 못자리에서 피사리를 하고 있었다. 방물장수는 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동호에게로 달려갔다. 마침 아침나절 곁두리 시간이다.
“아니, 아주머니가 웬일로 여기까지 다 오셨어요?”
방물장수는 광주리를 내려놓고 동호에게 말을 한다.
“동호 총각!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대충은 알것지?”
막걸릿잔을 기울이다 말고 동호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을 한다.
“아주머니, 점쟁이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아주머니 마음속을 어떻게 알아요?”
“그럴 테지, 하지만 동호 총각! 그걸 꼭 말을 해야 되나요? 척 보면 알아야지요. 내가 방금 송이 처녀네서 나오는 것을 보았을 것 아녜요? 하기는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동호 총각! 그러면 내가 직설적으로 말을 할까요? 송이 처녀를 어떻게 생각해요?”
“아주머니, 밑도 끝도 없이 송이를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송이가 무슨 물건도 아니잖아요!”
“동호 총각, 능청스럽게 시치미떼기는….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지?”
사실 동호는 방물장수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한번 해본 소리다.
“아주머니, 그 일이라면 나에게는 그림의 떡인걸요. 옛말에 뱁새가 황새를 쫓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어요. 송이 같은 처녀가 나 같은 놈 마음이나 두겠어요, 아주머니?”
그러면서도 동호는 얼마 전 돼지 일로 송이네 집에서 벌어졌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때 일을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송이는 예뻤다. 그리고 그때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어쩔 바를 모르던 모습도 어른거린다. 그 말을 들은 방물장수는 그대로 물러서질 않았다.
“동호 총각,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니, 아니! 양반집 가문에다 건강하고 부지런한데다 성격도 진국인데 뭐를 더 바란다요. 시방 시상에 그런 신랑감이 어디 그리 흔하다요. 내 인제 동호 총각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알았어요 동호 총각!”
그때부터 방물장수는 시도 때도 없이 동호네와 송이네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물건을 팔기보다는 두 사람 혼사에 관심이 더 많았다. 일이 잘 성사되면 평생 소원인 유똥 치마저고리가 양쪽 집 합해서 두 벌이나 생긴다. 그에게는 그것이 더 욕심이 생겼다. 송이의 모친 사십구제가 끝나자 예식은 내년 가을로 미루기로 하고 동호는 아예 송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1949년 가을이었다. 동호는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다 마을 청년들로 조직된 자경대의 하나인 유격대의 일원이 되었다. 마을을 스스로 지킨다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 그 당시에는 이북 공비들이 개성 시내까지 나타나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들을 퍼뜨렸다. 왠지 시국이 어수선했다. 그런데다 동호는 송이네 농사일까지도 돌봐야 한다. 들판에 벼도 베어 끌어들여야 하고 보리밭도 갈아야 한다. 그는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과로로 코피도 쏟았다. 이를 보다 못한 송이가 걱정스럽게 말을 한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녜요, 오라버니! 그러다가 쓰러지시겠어요, 쉬엄쉬엄 하세요.”
그러나 농사일이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무엇보다도 동호는 추경(秋耕)을 서둘렀다. 상강(霜降)이 지나고 입동(立冬) 전에는 어떻게든 보리밭을 갈고 심어야 한다. 서리가 내리고 산에는 단풍이 곱게도 물들어 가고 있었다. 가을해는 짧았다. 일꾼들은 다 가고 동호 혼자만 남아 하던 일을 끝내야 한다. 뿌린 보리씨를 괭이로 덮으려니 온몸에 땀이 흐른다. 겨리로 갈아엎은 밭고랑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새로운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새로 갈아엎은 대지는 수많은 새 생명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흙이 새로운 씨앗의 모태가 된다. 이제 며칠 있으면 새로운 생명인 보리가 싹을 틀 것이다.
오늘따라 달빛이 휘영청 밝다. 이제 남은 세 고랑만 덮으면 집으로 간다. 그런데 마침 송이가 광주리에다 밥고리를 머리에 이고 내왔다.
“아니, 곧 갈 텐데 뭐 하러 나왔어? 더군다나 으슥한 밤이잖아. 요즈음엔 이북 스파이들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이 깜깜한 밤에 당신을 강제로 업고 갈지도 모르잖아!”
송이는 자기를 걱정해주는 동호가 고마웠다. 하지만 송이는 차마 말은 못 하는 사정이 있었다.
“몰라서 물어요, 나도 그 정도의 행맹이는 있다고요. 다른 일꾼들은 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라버니만 해가 져도 안 오니,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다고요. 기다리는 사람 마음도 생각해 주셔야죠. 안 그래요 동호 오라버니?”
송이의 뾰로통해하는 모습을 동호는 처음으로 본다. 왜 안 그러겠는가. 가뜩이나 송이는 며칠 전, 연분홍 색깔의 장미꽃을 탐스럽게도 피어댔다. 건강한 여인들이라면 가장 목말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다 말이 신혼부부지 아직 동호와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머니 상중이기 때문이다. 동호는 달려가 송이가 이고 온 광주리를 받아내렸다. 연두색 치마저고리에 행주치마가 밤인데도 달빛이 반사되어 잘 어울린다. 오늘따라 그가 더욱 예뻐 보이는 데다 이따금씩 말은 못 하고 혀끝을 입술 사이로 낼름거린다. 그럴 때마다 송이의 그 앙증맞은 모습은 아직도 소녀티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걱정도 되고 우선 시장하실 것도 같아서요. 그리고 사실은 이렇게 해서라도 오빠가 일하는 모습을 한번 보고도 싶었고요. 그런데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오빠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 그건 송이 말이 맞아. 그럴 만도 하지, 왜 안 그렇겠어. 미안해. 어머니 돌아가시고 가을걷이하느라 내가 송이를 멀리한 것 같아. 앞으로는 신경을 많이 쓸게.”
순간 달빛에 비춰진 송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는 사이에 송이는 머리에 이고 온 광주리에 베보자기를 벗겼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에 드문드문 반밑콩도 들어 있었다. 구수한 밥냄새가 동호의 시장기를 부추긴다. 동호는 숟갈로 밥을 떠서 고수레부터 올렸다.
“고수레! 풍년과 아들을 낳게 해주십시오!”
동호의 그 모습을 보면서 송이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고수레는 들판에서 음식을 먹을 때 제일 먼저 대지신께 바치던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다. 동호는 송이가 따라주는 농주를 연거푸 석 잔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햇콩으로 빚은 두부조림과 시뻘건 깍두기 국물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동호는 송이에게 술잔을 권했으나 한사코 사양을 한다.
“오리버니도 참! 저 술 잘 못하잖아요. 그리고 밥고리도 이고 가야 되고요. 또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또 보면 어때, 우리가 남이야? 우리는 신혼부부잖아. 그리고 지금 여기는 보는 사람 하나 없고, 우리 둘뿐이라고, 안 그래요! 이 우주 모두가 당장은 다 우리 꺼라고!”
그때 마침 하늘에는 은하수가 찬란하게도 흐르고 있고 기러기 떼들이 끼룩끼룩거리며 따듯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숲속에서는 들벌레들의 향연이 가을밤을 수놓고 있다. 목가적 풍경 그대로다. 이 얼마나 로멘틱히고 낭만적인가? 동호는 시장했던 터라 이것저것 게걸스럽게도 먹는다. 그가 한참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그리스의 신화가 떠오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보리밭을 갈고 씨를 뿌리던 젊은 농군 부부가 새로 갈아엎은 밭고랑에서 천지신명으로부터 승락을 받아 남녀 간의 성스러운 성관계를 의식으로 치른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하늘로부터는 천기를 내려받고 땅속으로부터는 뿜어대는 대지의 기운을 몽땅 받아 이듬해 풍년과 다산은 물론 마을의 안녕과 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동호는 그 신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불같이 타오른다. 그러면서도 동호는 이 성스러운 자리에서 단군왕검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일어나 합장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천지신령께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빌었다.
동호는 대청마루에 차려놓은 장모님의 상청(喪廳) 때문에 그동안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는 우주의 기운을 받은 새 생명들을 싹틔우는 광활한 대지의 생명력이 철철 넘친다. 이토록 따듯하고 보드러운 흙의 촉감은 화려하게 수가 놓아진 모본단(模本緞) 이부자리보다 더욱 아늑하고 포근한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동호는 송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어쩌면 동호가 그러기를 송이는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동호는 밭고랑 사이로 송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하늘에서는 천기가 내려오고 밭고랑에서는 따듯한 땅기운이 솟아오르며 젊은 그들의 성적 감흥을 불러일으켜댄다. 새로 갈아엎은 깊은 밭고랑은 둑이 가려 외부로부터 쉽게 노출이 안 되는 것이 천연 요새와도 같았다.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을 못하는 신의 영역이라고 동호는 믿었다. 송이는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동호에게 맡겼다. 동호는 서서히 송이를 가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를 탐했다. 동호는 처음 가져보는 여인이다. 그러기는 송이도 마찬가지로 동호가 처음이다. 동호의 탐색은 아래로 아래로 서서히 옮겨지기 시작했다. 탐스러운 송이의 유두 산맥에서 잠시 행군을 멈추었다. 농익은 산딸기처럼 빠알간 송이의 유두를 마치 젖먹이 아이들처럼 앞니로 옹알옹알 잘강잘강거렸다. 그럴 때마다 송이는 간지럼을 타는지 아니면 전신을 움찔거리며 자지러질 듯한 신음을 연발한다. 영롱한 달빛에 비춰진 송이의 발가벗은 육체는 아름답다 못해 오묘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것이 가히 몽환적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마치 도공이 관요에서 갓 빚어낸 청화백자 같았다. 백자도 보통 백자가 아니다. 생명력이 있고 향기까지 있으니 도공을 넘어 경지에 오른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걸작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품이다. 동호는 끝내 청화백자를 품에 안았다.
드디어 천지신명께서 점지해주셔야만 소유할 수 있는 송이의 궁전(宮殿)에 다다르자 송이도 동호도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곳은 위대한 새 생명이 잉태하는 성스러운 궁전이다. 그 궁전에서는 꿀이 샘솟듯한다. 동호는 그 꿀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쇠 소리가 나도록 싹싹 부셨다. 동호는 장대한 보습으로 대지를 갈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송이는 감격과 감동으로 신음을 토한다. 그 신음 소리는 마치 숲속 밤새들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그들은 격렬했다. 드디어 둑이 터지고 용암이 범람을 한다. 새로운 대지의 생명력을 가득 담은 흙기운이 젊은 그들을 감싸안았다. 어느새 송이는 빠알갛게 아람벌은 석류 속에서 앵혈(鶯血)이 터지면서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지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 황해도 봉산 구월산에는 공비들이 자주 출몰하여 우리의 유격대들과 충돌이 잦았다. 가끔씩 총격전도 벌어졌다. 개성 시내를 순찰을 돌던 중, 동호는 뜻밖에도 공비들에게 납치되어 이북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다. 집으로 기별도 할 수 없다. 그 길로 동호는 바로 인민군에 편성이 되어 전선으로 투입이 되었다.
동호는 파죽지세로 남진을 거듭하던 중 낙동강 전투 중 투항하여 우리 국군에게 인계가 되었다. 목숨을 걸고 투항한 동호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이번에는 대한민국 해병대에 지원을 했다. 자신의 고향 개성을 직접 탈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해전술로 덤벼드는 중공군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는 사천강 전투에서 하마터면 중공군들에게 포로가 될 뻔했다. 백병전까지 치르던 동호는 탈출에는 성공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부상을 당했다.
상처가 너무 깊어 동호는 반년간이나 병원 생활 끝에 퇴원을 하고 다시 전선으로 출정을 희망했으나 무리가 있다는 담당 군의관의 소견대로 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한 동호는 앞길이 깜깜했다. 남한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앞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런데다 고향 개성의 송이 생각이 밤낮없이 떠오른다. 송이는 피란을 나왔을까, 아니면 고향에서 그대로 살고 있을까? 살아 있다고 해도, 땅과 재산은 몰수당했을 것이고, 부르조아라고 심한 고초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경기도 개성은 전쟁 전만 해도 38선 이남이었던 것이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지금은 이북이 점령하고 있다. 동호는 생각만 해도 피를 토할 노릇이다. 이북이든 이남이든 송이가 제발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 동호는 날이면 날마다 걱정이 태산이다. 송이도 송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것이 제일 걱정이다. 무슨 일이든 하기는 해야 하는데 농사일만 하던 동호는 모든 일이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아침이면 매일같이 나가는 곳이 있었다.
용산역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천막이 하나 쳐져 있었다. 오고 갈 데 없는 상이용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 간의 정보도 교환하고 살아갈 궁리들을 찾으려 했지만 별방법이 없다. 그들은 이미 몸과 마음까지도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나라도 가난하고 백성들도 가난하여 그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호는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인천 제물포항 하역 부두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곳에 가면 미군들의 군수물자를 하역하는 일거리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없이 부두를 향하여 걸어가고 가고 있는데, 그의 옆을 지나던 지프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누군가가 동호를 부른다. 철모를 눌러쓴 그는 양쪽 어깨에 지휘관 견장이 붙은 육군 중령이다. 절뚝거리며 걷는 동호의 모습을 뒤에서 유난히 보았던 모양이다.
“박동호! 당신 박동호 해병 맞지!”
동호는 얼떨결이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나? 나, 박윤구 중령이라고, 그 당시 박윤구 중대장이었지!”
동호는 그제서야 그가 현역 시절, 바로 직속상관이었던 박윤구 중대장을 떠올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재건!”
“후송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네. 그래, 요즈음 살기가 무척 힘든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이렇게 만나가게 되어 기쁘이. 지금은 업무 중이라 긴 얘기는 못하고, 시간이 되면 오다가다 한번 들르라고. 그래 또 만나자, 박 수병!”
그러면서 그는 메모가 적힌 종이 쪽지를 동호에게 건네주며 급한 듯 사라진다.
동호는 지난날 치열했던 사천강 전투를 떠올린다. 그 당시 동호는 박윤구 중대장 당번병이었다. 당번병은 중대장의 자질구레한 심부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시 때는 제일 먼저 중대장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당번병의 임무이기도 했다. 동호는 저격수로도 활동할 만큼 사격술에도 능했다. 휴전을 앞두고 사천강 전투 중 난공불락인 적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박윤구 중대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며칠째 밀고 밀리는 전투로 희생자가 늘어만 간다. 중대장은 고민 끝에 결사대를 조직한다. 죽기를 각오한 대원들이다. 그 지원병 중에는 동호도 있었다. 동호의 결사대 지원은 중대장에게는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동호가 삼대독자라는 것도, 그가 결혼을 하였다는 것도 대강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대장은 동호의 이름을 호명한다.
“박동호 수병!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겠네.”
그 말을 들은 동호는 그 자리에서 무명지를 깨물어 혈서를 썼다.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에 나오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이를 본 대원들의 눈빛이 번쩍거린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적개심으로 불타오른다. 그날 밤, 드디어 난공불락이었던 적의 고지는 완전히 점령이 되었다. 그 전투에서 많은 전우들을 잃었지만, 중공군 연대장이 사망을 하고 적 일개 연대를 괴멸시킨 크나큰 승리였다. 그 공로로 사단에서는 중대장을 비롯하여 그 전투에 직접 참가한 용사들에게는 무공훈장과 함께 일 계급 특진 기회가 주어졌다.
대대장 박윤구 중령은 그 당시 그들의 공로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동호는 대대장 박윤구 중령을 찾아갔다. 대대장은 반가워하며 자기의 형님이 김포 어디에선가 조그마한 건설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마침 현장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동호를 소개했다.
동호는 부지런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녔다. 그는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시에 건축기술자 자격시험에 합격하면서 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동호는 날듯이 기뻤다. 그럴 때면 송이가 보고 싶다. 송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 있을까? 세상 어디든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동호는 지금 옛날 보리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청화백자만 같은 송이를 찾고 있다. 어떻게든 만나면 송이 머리부터 올려주는 것이 소원이다. 그리고 한 2년 흘렀을까,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은 동호는 건설공사 현장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 화곡동 화랑주택단지 조성공사다. 삼사 년에 걸쳐 그 공사가 끝이 나자 동호는 서울 동교동의 주택공사 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송 회장의 개인 주택이다. 개인 주택치고는 작은 집이 아니다. 대지도 꽤 넓은 데다 연못도 있고 정원도 꾸몄다. 지하 일층에 지상 삼층 건물이다. 지하로는 주차장도, 유사시에는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도 있다.
실내 수영장도, 헬스장도 들어선다. 보는 사람들마다 이런 집은 처음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동호는 마치 자신이 살 집처럼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회사 사장이 직접 현장에 들렀다. 그리고 동호 소장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박 소장! 박 소장도 잘 알겠지만, 이 공사는 우리 회사의 사활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요. 이 회사 송 회장님은 개성 분인데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 있네.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미혼이라는 말도 있는 분일세. 아무튼 이 회사는 우리 회사에게는 아주 큰 고객일세. 내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박 소장!”
점심때만 되면 현장에는 일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는다. 현장에는 회사에서 지정한 함바집이 있지만,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집에서 점심을 싸 가지고 오는 이들이 태반이다. 동호 소장이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보던 중, 일꾼들이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을 수가 있었다. 이 집 주인 송 회장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 집 주인은 개성 사람인데 그것도 여자라는군. 그런데 말 들으면 재벌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더라고. 하늘이 도와야지,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글쎄 전쟁 나기 바로 직전 개성의 그 많은 땅을 정리하고 서울 마포에다 땅을 산 것이 지금은 요지가 되었다는군….”
동호는 회장이 개성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 회장님의 얼굴을 아직 본 적이 없다. 동호는 그 이야기를 바람 스치듯 들었다. 어디 개성 사람이 한둘인가. 자신이 찾고 있는 송이는 그토록 대단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님의 따님이라는 분이 현장을 방문했다. 젊고 예쁜 데다 명랑하고 발랄한 것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 같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며칠 전에 귀국을 했다고 한다. 장차 회장님의 후계자라는 말도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송이의 선견지명은 신도 감탄할 만하다. 동호가 유격대로 동원이 되어 집을 나간 지 석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우리 유격대와 공비들 간에 충돌로 이쪽저쪽 희생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동호의 이름도 들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송이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다 항간에서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들이 떠돈다. 송이는 예감이 불길했다. 신랑도 없는데,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는 부랴부랴 서둘러 산이며 논과 밭 모두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마포에다 땅을 샀다. 그리고 바로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휴전이 되고 얼마 후 송이는 대학을 마치고 이모부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모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송이는 대담하게도 이모부가 경영하던 회사를 아예 인수했다. 철근과 시멘트 대리점이다.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정부에서는 제1차 5개년 경제계획을 발표한다. 김현옥 서울시장은 새로운 서울을 외쳤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여기저기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서울 장안을 울려 퍼진다. 한강 기적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철근과 시멘트가 불티가 났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를 못하자,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송이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낮에 들어온 현금 다발들을 밤이 새도록 세었다. 송이는 하는 사업마다 성공을 했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혼담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번번이 마다했다.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는 동호라는 거목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스무 해가 가까워 온다. 신랑이 살아 있다면 자신보다 두 살 위인 갓 마흔이다. 전쟁이 터지기 바로 직전 헤어지고는 소식을 모른다. 신랑이 사망했다는 소문도, 공비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런데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때문에 송이는 신랑은 죽지 않고 꼭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휴전이 되자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동호를 수소문하였으나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그러기는 동호도 마찬가지다. 사방팔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송이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호는 꿈을 꾸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 하나가 되어 한강이 시작되는 두물머리에서 뜻밖에도 송이를 만났다. 송이는 열여덟 살의 청화백자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다.
앞으로 일주일만 더 있으면 이 집 준공식 날이다. 그날은 송 회장도 참석을 한다고 했다. 이 집 준공식이 끝나는 대로 동호는 중동 건설 현장으로 떠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