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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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천병만약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병이 천 가지라면 약이 만 가지라는 뜻이다. 그만큼 약과 치료 방법이 여러 가지란 말이다.
앞서 밝힌 대로 병의 증세에 따라 약과 치료 방법이 많은데 그중의 처방 하나가 고부간의 갈등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건 치료라기보다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해야 옳을 텐데 암튼, 나는 이 신통방통한 처방 아니, 방편을 감히 소설이란 이름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침 요법 중에는 담배를 끊는 금연침도 있고, 공부 잘하는 침, 부부 금실 좋아진다는 등등의 갖가지 신기한 묘방이 난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먼저 소개하고자 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그건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의 하나로 효도 사상이 으뜸임에도 불구하고 고부갈등으로 인한 가정파탄이 해마다 늘어나는 작금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갈등을 치료한다고 하다 보니 갈등의 원인 자체가 무슨 악성 전염병처럼 인식되기 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치료라는 말보다는 해소라는 용어로 순화시키는 것이 좋겠다. 다시 말하면 오래전부터 악습의 대물림처럼 꾸준히 이어진 고부갈등을 단번에 해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명 ‘돌팔이 찬가’라는 제목 아래 갈등을 해소하는 침에 대한 객쩍은 소리부터 해야겠다. 옛날부터 ‘일침이구삼약(一針二灸三藥)’이라는 말이 있다. 이건 첫째가 침이고 둘째가 뜸이란 말에 이어서 마지막 세 번째가 약이라는 것이다. 부언하면 급성에는 침이 첫 번째로 단번에 병을 다스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음식을 먹고 급체했을 때 손발에 있는 합곡(合曲)과 태충혈(太衝血)에서 녹두알만큼의 피를 빼주는 방법을 흔히 사관을 딴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가 마른 쑥을 좁쌀 크기부터 콩알만 하게 똘똘 뭉쳐서 혈 자리에 놓고 불을 붙이는 온구법이다. 흔히 만성병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어서 세 번째가 약재를 가지고 병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뭐니 뭐니해도 침이 첫 번째로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말하기 좋아 침 한 방이지, 사실은 여러 번 맞아도 쉽게 풀리는 일이 아니다. 아니,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고부간의 깊은 감정의 골을 단번에 메꾼다는 건 정말 비방(秘方) 중의 비방이다. 그걸 여기서 공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나, 어쩌랴. 이미 소설이란 이름으로 공개하기로 약속했으니 말이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고부간의 갈등을 치료하는 데는 아니, 해소하는 데는 반드시 고부가 함께 침을 맞아야 효과가 좋다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서론이 너무 길었다. ‘쓰키다시’가 푸짐하면 그만큼 주메뉴가 부실하듯 서론이 길면 비방도 속방(俗方)으로 변하기 쉽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말하는 내용을 압구정동에 사는 한 가정을 일례로 들어 말하면 이해가 빠르고 설명하기도 편할 것이다. 후에 알게 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정의 고부갈등이 어느 정도냐 하면, 오십 평의 넓은 아파트에 같이 살면서 각자 식사를 따로 해결할 정도라면 더 말해 뭘 하랴. 칠십이 넘은 시어머니는 현관 쪽에 있는 방에서 부루스타를 놓고 혼자 입맛에 맞게 식사를 해결한다면 알 만한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쓰는 방에는 욕실을 겸한 별도의 화장실이 붙어 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진종일 그 방에서 볼일을 보고 TV를 시청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았다. 며느리 역시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구실로 아예 들여다보기도 싫었다. 말하자면 손님은 국이 싫은데 주인은 된장이 없으니 서로 아쉬울 게 없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더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갈등의 장본인을 그 장남의 이름을 붙여 상준이 엄마라 하고 그 시어머니 역시 손자 이름을 붙여 상준이 할머니라고 부르자. 할머니의 아들도 상준 아빠라고 해야겠다.
시어머니의 까다로운 꼴이 처음부터 보기 싫었던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입장이 가장 난처할 상준 아빠는 교활하다고 할 만큼 처신이 현명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내를 당장 죽일 것처럼 으르렁대다가도 아내한테는 금방 어머니를 내버릴 고물 취급을 했다. 한마디로 카멜레온처럼 시의적절하게 색깔을 변형시켰다.
상준 할머니는 일찍 청상이 되어 아들만 보고 살다 보니 자식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반면, 부유한 가정의 고명딸로 자란 며느리는 그런 시어머니를 이해하긴커녕 매사가 마땅찮게 느꼈다. 상준 엄마로서는 자식을 낳으면 잘 기르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자 의무이므로 자식 키운 공치사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싹수없는 계집이었다.
상준이 할머니는 아들 하나 잘 키울 욕심으로 등판에 소금꽃 질 날이 드물었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을 잘 아는 아들은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외국에 나가 박사학위까지 받아 왔다. 더 바랄 것 없는 아들이었다.
상준 할머니는 처음부터 며느리와 함께 살 생각은 없었다. 고향에서 아들 잘되기만을 바랐으나 아들은 명색이 대기업의 부장으로 평생 고생한 어머니를 시골에 홀로 둘 수 없었다. 상준 할머니는 시골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같이 살자는 아들이 고마웠다.
그러나 아들의 말속에는 몇 푼 안 되는 시골 땅을 팔아 오라면 남의 눈이 껄끄럽고 두려운 만큼 무조건 그냥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시골 땅을 둬봐야 몇 푼 안 되니 아파트 시세가 좋을 때 부동산에 투자하면 몇 배는 이득이라는 속셈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아들이 결혼할 때 신혼집을 마련해줄 돈이 없었다.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녔다지만 적은 농토에서 얻어지는 소출과 푸성귀로 용돈을 만들어 보내기도 빠듯한데 집 마련할 자금이 어디 있겠는가. 사윗감의 딱한 형편을 건너다보니 절터인 걸 뻔히 아는 처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다른 사위 하나 보고 딸을 보내는 친정에서는 신혼부터 셋방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반포에 25평짜리 주공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장만했을 때만 해도 썰렁하게 컸으나 20년이 지나 아이들이 크고 살림이 늘어나다 보니 집이 콧구멍처럼 좁아졌다. 대기업의 부장에서 머잖아 임원이 될 사람이 최소한 40평대 아파트는 살아야 체면이 설 텐데 벼룩도 낯짝이 있지 처가에 또 손을 벌릴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가 사시는 시골집과 땅을 몽땅 팔아도 몇 푼 안 되지만 부족한 부분은 아내가 마련하겠다는 말에 상준 아빠는 만만한 어머니를 졸랐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 뜻에 따라 농토를 팔고 고향을 떠났다. 만에 하나라도 돌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허름한 집이지만 김장밭 몇 두둑을 묶어두는 건데 아들의 성화에 모두 팔아버린 게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후회막급이었다. 그러나 땅뙈기를 판 돈이 얼마 안 되지만 그나마 아파트를 늘려 가는 데 보탬이 된 게 큰 위안이었다.
상준이 할머니가 침을 맞기 시작한 것은 열흘 전이었다. 그때 상준이 할머니는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 만큼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 상준 엄마도 헬스장에서 체중 감량에 무리한 탓인지 애 낳을 때처럼 허리가 끊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할머니는 아픈 무릎을 끌고 정형외과에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이라 인공관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수술을 받기가 무서워 여기저기 침 놓는 곳을 찾아다녔다.
“오래된 관절염이 침 몇 번으로 쉽게 낫지 않아요. 아주머니.”
나는 할머니에게 우선 말로라도 환심을 사려는 뜻에서 가당찮게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썼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걍 한 번 놔줘유. 연때가 맞으면 침 한 방에도 씻은 듯 낫는다는 말도 있잖유?”
상준 할머니는 넉살 좋게 너스레를 떨며 무릎을 걷어붙였다. 헌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 상준 엄마는 마치 얼음처럼 차디찬 모습이었다. 여느 며느리라면 시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서 지나가는 말로라도 거들었을 텐데 이 며느리는 남처럼 딴판이었다. 마치 이고 온 보따리를 내던지듯 시어머니를 밀어놓고 먼저 온 사람들과 구면처럼 부산하게 인사를 나눴다. 후에 알았지만 원래 시어머니와 붙어 있는 자체를 싫어했다.
“며느리가 참 효부네요?”
나는 건넛방 소파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문을 열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오는 며느리가 드문데 이 댁 며느님은 참 효부 같습니다.”
나는 말없이 무릎에 침을 맞는 할머니에게 재차 말했으나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더 묻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로 일이 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예 모른 척 시침을 떼었다. 그런데 한참 뒤에야 할머니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너무 효부라서 탈이랍니다.”
다분히 비꼬는 투로 입을 삐쭉거리는 할머니에게 나도 더 묻지 않고 상준이 엄마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 차례가 된 상준이 엄마를 쪽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진을 시작했다. 언제 어떡해서 허리가 아프냐고 물었다. 이어서 통증을 호소하는 압통점에 침을 놓았다.
“자상한 시어머님이 아주 깔끔하셔서….”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준 엄마의 반응이 까칠했다.
“너무 자상하고 까탈스러워서 탈이라니까요.”
“자상하고 까탈스러워서 탈이라니?”
시어머니처럼 ‘탈’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쓰는 어투가 흥미로운 내가 물었다.
“자상하다 못해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 참견하니까 짜증스럽다 못해 속이 터져요.”
“노인들이야 그게 일 아니우?”
“너무 지나치니까 문제죠. 일찍 혼자 되셔서 자식 하나만 키우다 보니까 집착이 지나쳐요.”
상준 엄마는 솔직히 시어머니의 간섭이 귀찮다는 말이었다.
“노인들은 대개가 다 그런 거 아니요? 상준 엄마는 자식에 대한 애착을 딱 끊을 수 있소?”
상준 엄마에게 시어머니의 흉을 듣다 보니 이 집에 고부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게 느껴졌다.
“상준 엄마는 허리도 문제지만 그보다 먼저 고부간의 갈등을 치료해줘야겠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침도 있나요?”
“있다마다, 한 번 맞아 보실라우?”
“저보다 우리 집 노인네가 더 급해요. 평생을 청상으로 사셔서 고집이 얼마나 센지 말도 못 해요. 그 소고집부터 고치는 침을 놓아주시면 좋겠는데, 그런 침은 없나요?”
상준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던진 낚시를 덥석 물었다.
“있다니까. 그건 어떤 침이라기보다는 침 맞는 혈자리 즉, 부위가 중요하다구.”
“그럼, 당장 좀 해 주세요. 침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요.”
상준 엄마는 한번 문 미끼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고집이 센 분은 힘이 좀 들지만 수고비를 듬뿍 준다면….”
나는 슬쩍 빼는 척하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제발 좀 부탁해요. 우리 노인네 똥고집을 꺾고 억지소리만 않게 해주시면 돈이 얼마나 들건 걱정하지 마세요.”
상준 엄마가 시어머니를 이웃집 노인 취급하는 게 귀에 거슬렸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갔다.
“듣자니까, 선생님께서 침은 물론이고 관상도 잘 보신다는 소문이 자자하시던데요?”
“누가 그런 헛소릴…? 관상까지는 몰라도 중국에서 최고 관상학의 바이블로 쳐주는, 그야말로 그림자만 보고도 속까지를 안다는 ‘상리형진(相理衡眞)’이란 책 표지만 겨우 본 걸 가지고 어찌 남의 관상을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있겠소?”
나는 상준 엄마의 말을 일소에 붙이곤 허리에 꽂았던 침을 뽑았다. 이어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침이라며 어깨의 천종혈에 꽂았다. 정수리에 있는 백회에도 한 개를 찔렀다. 이렇게 침을 아무 데나 함부로 찌르면 위험한 일이지만 수지침은 가늘고 작아서 큰 부담 없이 찌를 수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사람은 여기에 침을 깊게 찔러도 전혀 아픈 줄을 모른다구. 모기한테 물린 것처럼 약간 따끔할 뿐인데, 상준 엄마 느낌은 어떠신가?”
“우리 집 노인네가 문제지 저는 안 맞아도 되는데.”
“두 사람이 함께 맞아야 효과가 백 프로라니까.”
“그렇담 모르겠지만….”
상준 엄마는 내심 의심이 들면서도 갈등 해소라는 말에 거부감 없이 몸을 맡겼다.
“그래서 그런지 아픈 걸 전혀 모르겠네요, 선생님. 갈등이 심하다는 증거인가요? 아니, 그게 침으로 나타납니까?”
작은 수지침이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니 통증을 크게 못 느끼는 건 당연했다.
“고부간의 갈등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감정 문제니까 맞는 이의 느낌 아니겠소?”
“참 신기한 일이네요, 선생님.”
상준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요. 나도 육십 가깝게 살면서 돌팔이 노릇을 하는 동안 참 신기하게 느꼈다오.”
“선생님이 왜 돌팔입니까?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처럼 아픈 사람들을 특히, 난치병 환자들을 수없이 고쳐 주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무리 많이 고쳐 주면 뭘 하오? 쯩〔證〕이 없으니 결국 듣는 소리는 돌팔인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는 의사들도 돈에 눈이 멀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돈벌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함량 미달의 의사들에 비하면 선생님이야말로 가난한 환자들의 대부로서 봉사를 얼마나 많이 하셨습니까?”
“나도 상준네처럼 연봉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에겐 돈을 많이 받는다구. 아니, 추접스럽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주더라구. 그래야 나도 먹고살면서 없는 사람들에게 봉사랍시고 할 거 아닌가?”
“당연하시죠. 의사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명색이 의사라는 자들이 가난한 환자들은 뒷전이고 돈만 밝히는 날강도들이 판치는 세상에 선생님이야말로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땅에 꼭 필요한 약사여래입니다.”
“과공비례(過恭非禮)이듯 과찬이 지나치시군! 암튼, 오늘은 이만하고 할머니께 가 봐야겠네.”
내가 상준 엄마 허리에 꽂았던 침을 시계 방향으로 서너 번 돌려 보법을 써주고 일어났다.
“우리 노친네의 죽 끓듯 끓는 변덕과 고집만 고쳐 주시면 그깟 돈 몇 푼이 아깝겠습니까?”
“열심히 해볼 테니까 애 엄마도 잘 협조해 주구려. 그래야 효과가 백 프로란 걸 명심하구.”
상준 엄마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었다. 평소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상냥했다면 고부간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나는 상준이 할머니가 침을 맞고 있는 옆방에 들어가 물었다.
“침 맞으시면서 무릎 어디가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아뉴. 우릿하면서두 박하사탕처럼 시원허구먼유.”
“오래 아팠던 무릎이라 쉽지 않습니다. 아팠던 만큼 오래 맞으셔야 뜸해질 겁니다.”
“낫기만 한다면야 며칠이 문제겠슈. 헌데, 늙어 그런지 온 삭신이 안 아픈 데가 읎네유. 그런데 한 대 맞고 씻은 듯 낫는 침은 읎나유?”
“젊어서 몸을 혹사한 탓입니다. 연장으로 말하면 너무 함부로 써서 고장이 난 건데 젊어서는 그런대로 견디셨죠. 특히나 산달이면 조리를 못한 까닭에 몸이 무겁고 아픈 데가 많을 겁니다. 젊어서 고생하셨으니까 늦게나마 자식한테 효도 받으시는 거 아닙니까?”
“효도요? 선생님 모르는 말씀, 젊어서 자식 하나 번듯하게 키울 욕심으로 물불 안 가리고 몸 파는 일 하고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봤는디 결국 남 좋은 일 시켰지 뭐유? 죽 쒀서 개 준 꼴이쥬. 옛말에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이 꼭 나한테 하는 악담 같아유.”
상준이 할머니는 어느새 목이 메었다.
“왜, 할머니가 처지가 어때서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구, 지금은 훌륭한 자제분과 효부 며느리를 얻어서 영리한 손자 손녀까지 두셨는데 뭘 더 바랍니까?”
“왜, 우리 며느리가 뭐라구 엉뚱헌 소릴 나불댑디까?”
“시어머님을 친정엄마처럼 모시려고 해도 맘같이 안 돼서 항상 죄송하다더군요.”
나는 며느리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듣기 좋게 꾸며댔다.
“여우같은 것! 남한텐 잘도 둘러대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손주들이 할머니한테 잘하지요?”
“여우를 닮은 새끼들이 별수 있것남?”
할머니는 버릇없는 손주들의 행동을 모두 마뜩잖은 며느리에게 덮어씌웠다.
“며느님 말은 손주들이 모두 공부도 잘한다고 하던데요?”
나는 무조건 며느리를 치켜세웠다.
“아범을 닮았으면야 잘하겠지만 어멈을 닮아서…. 제 아범은 어려서부터 인사성 바르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까지 순전히 장학금으로 다녔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지요.”
상준 할머니는 아들 말만 나오면 저절로 신바람이 나서 게거품을 뿜었다.
“며느님 말은 손주들이 반에서 상위권에 든다고 하던데요.”
나는 할머니의 속을 떠보려고 엉뚱한 말을 보탰다.
“쳇! 자랑거리가 가물었나 보오. 공부는 고사하고 학교에서 말썽이나 피우지 않았으면 걱정이 없겠수. 제 새끼들만 물고 빠는 어멈이 그 모양이니 새끼들이 뭐 잘될 리가 있겠소?”
할머니는 손주들의 잘못이 모두 며느리 탓이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할머니, 새끼들만 금쪽같이 알고 시어머님은 우습게 보는 며느리를 당장 효부로 만드는 침을 좀 놔 줄까요?”
“뭐, 그런 침도 있어유? 허긴, 선생님이 침 잘 놓기로 고명하시니까 당연히 그런 침도 있겠죠. 이 늙은 몸뚱이를 팔아서라도 댈 테니 당장 좀 놔주시구려. 그럼 내 그 은혜를 평생….”
나는 턱없이 추켜세우는 할머니에게 얼굴 들기가 민망했으나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다.
“침값이 좀 비싼데요, 할머니.”
나는 할머니 속을 떠볼 셈으로 농담을 하자, 할머니는 반색했다.
“돈 걱정 마시고 놔주시구려. 내 몸을 팔아서라도 드릴 테니까 자, 이거라도 먼저 받구려.”
할머니는 괴춤에서 꼬깃꼬깃 뭉쳐둔 지폐를 꺼냈다.
“네, 할머니 뜻을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작에 침을 놨습니다. 이제 천하에 둘도 읎는 효부가 될 겁니다. 그때 가서 돈을 한목에 받을 테니 잘 보관했다가 주세요.”
“난 더도 안 바래유. 우리 집 개새끼만큼만 대접해 준다면 원도 한도 읎것슈.”
할머니 말은 집에서 키우는 치와와는 콧물만 조금 비쳐도 당장 싸안고 병원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그런데 명색이 시어머니는 꼼짝 않고 끙끙 앓아도 낯짝 한번 안 비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아무 기척이 없으면 그제야 생사를 확인하려는 듯 문을 빠꼼이 열고 한다는 말이 정 아프면 근처 의원에 가서 주사라도 한 대 맞으라며 돈 몇 푼 던져주는 게 고작이란다.
이윽고 며느리가 침을 맞는 방으로 들어간 나는 눈치껏 다시 수작을 걸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라고 하셨지?”
나는 할머니에게 들어서 아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물었다.
“네, 그런데 영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에요. 혹시 공부 잘하는 침은 없나요?”
상준이 엄마는 농담처럼 물으며 웃었다.
“왜 없겠수? 머리 맑아지는 총명환(聰明丸)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데.”
나는 서서히 나의 그물에 걸린 상준 엄마에게 허튼수작을 부렸다.
“그게 어떤 침인가는 몰라도 한번 놔 주실 수 없나요?”
반색하는 상준 엄마를 보고 마른침을 삼킨 나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누구 부탁이라고? 허나, 단 몇 번으로 효과를 보긴 어렵고 적어도 하루나 이틀 걸러서 여남은 번은 맞아야 효험이 있을까 말까 몰라.”
“어려우시겠지만 한번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상준 엄마는 애가 타서 거듭 사정했다.
“침을 맞기 전에 침에 대한 원리를 먼저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나는 책임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비상구를 마련할 셈으로 미리 방어진을 쳤다.
“……?”
나는 침에 대한 오죽잖은 논리를 펴면서 어디까지나 방편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은 누구나 몸이 따뜻해야 집중력이 향상되는 거요. 대체로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은 수족이 얼음처럼 찬 반면 머리는 뜨거워요. 몸이 허약한 사람은 쓸데없는 허열(虛熱)로 때문에 책만 펴놓고 앉으면 자꾸 졸리고 머리가 무겁지. 그래서 집중이 안 되는 거요. 공부 잘하게 하는 방법은 우선 수족을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서늘하게 만드는 거지. 머리에 열이 많으면 공부는 고사하고 만사가 귀찮아서 집중이 안 돼. 그러니 뭐가 머리에 들어오겠어. 게다가 기억력이 감퇴되는데 무슨 공부가 되겠냐고? 그래서 옛날부터 두한족열(頭寒足熱)을 강조했지. 머리는 시원하고 발은 따뜻해야 혈액순환은 물론 체온조절이 잘되어 두뇌가 명석해진다는 거지. 한마디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안 되면 몰두가 안 되니까 공부가 될 턱이 없지.”
나의 장광설에 벌써 싫증이 난 상준 엄마는 중간에서 버릇없이 말을 끊었다.
“저는 그런 깊은 이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여러 가지로 힘드시더라도 한 번 놔 주세요. 내년에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할 놈이 진종일 컴퓨터에만 붙어 있으니 사람 미치고 환장하겠어요. 게다가 고집은 제 할멈을 닮아 쇠고집이라니까요.”
“할머니를 닮아 황소고집이라구?”
“말도 마세요. 씨도둑은 아무나 못 한다는 말처럼 제 할미의 못된 것만 쏙 빼다 박았어요.”
“사내라면 고집이 좀 있어야지. 그게 바로 사나이 배짱인데, 줏대 없이 흔들리면 어떡하겠수? 할머니의 억척과 고집이 결국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원동력 아니겠소? 아들이 할머니를 닮아서 뚝심과 고집이 있다면 그 배짱 두둑한 사내대장부로 이담에 도둑이 돼도 큰 두목이 될 테니 아무 걱정 마시구려.”
“하이고, 선생님 말씀대로만 되면 누가 쌩으로 걱정하겠어요?”
상준 엄마는 어느새 나의 호언장담에 흠뻑 젖어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고부갈등을 해소하는 기막힌 처방을 꺼냈다. 그건 그동안 양쪽에서 얻은 정보를 잘 버무려서 말랑하게 만든 처방이었다. 가령, 시어머니는 오십에 가까운 아들이 가지고 있는 허술한 약점을 건드릴 때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예컨대, 아들이 이만큼 성공하기까지는 불여우 같은 며느리의 복인 데다가 헌신 봉사하는 내조의 힘이라고. 게다가 아들의 액운을 며느리가 대수대명(代數代命)해 준다면 시어머니는 아무리 며느리가 불여우 같더라도 고슴도치가 제 새끼를 함함하다고 하듯 귀하게 여겼다.
나는 이쯤에서 며느리에게 말했다.
“상준네가 불자라고 하셨지? 절에 가서 아들 잘되라고 기도하는 것도 좋아. 그러나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이 친할머니를 생불처럼 생각하고 부처님같이 받들어 봐요. 그럼, 할머니의 길운이 동기감응되듯 손자에게 은연중에 빼다 박는다구.”
나는 풍수에 관한 얄팍한 상식까지 총동원해서 설명을 보탰다. 그래도 이해가 힘든 듯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상준 엄마의 그늘진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나의 처방이 약발이 받는 표시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바로 손자의 기가 꺾이면서 사람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는 데야 며느리가 어떻게 드센 고집을 피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앞치고 뒤쳐 며느리를 어르고 시어머니를 달래면서 며칠간 침을 놓다 보면 어느새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다루기 쉽게 말랑거렸다.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하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마치 깨진 똥 항아리처럼 위하기에 바빴다. 만약 고부간의 갈등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별도의 처방이 필요하겠으나 십중팔구는 이쯤에서 효과를 보는 게 통상적인 예였다. 최악의 경우 백발백중 효과를 장담하고 보장할 수 있는 메가톤급 극약처방은 구태여 여기서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개의 눈치 빠른 독자들은 굳이 선견지명이 없다고 시침을 떼겠지만 조금은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칠일 동안 고부가 열심히 갈등 해소 침을 맞았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상준이 엄마는 침을 맞고 특효를 보았다며 뭔가를 한아름 사들고 왔다. 고맙다는 인사말 끝에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웃에 사시는 분의 시어머니가 눈만 뜨면 허구한 날 우는데 그것도 침으로 고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얼결에 가능하다고 말했더니 그날로 당사자를 데리고 왔다.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는 노인은 팔십이 넘은 분이었다. 그 며느리도 상준 엄마 또래로 초면이지만 고부의 조촐한 모습이 제법 여유가 있어 보였다.
“자녀분은 몇이나 두셨습니까?”
나는 매일 운다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할머니는 왠지 잠시 머뭇거렸다.
“하나는 주워 오셨습니까?”
나는 초면에 웃자고 한 소리지만 할머니는 어떻게 아느냐는 듯 의외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큰아들이 작은 집에서 양자로 왔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할머니의 말은 대충 이랬다.
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위안부로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님이 강제로 시집을 보냈다. 신랑은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고 있는 노총각이었다. 부부는 의가 좋았으나 십 년이 넘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없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해서 불과 십 년 만에 천수답일망정 전답 여섯 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아기를 기다리다 지친 그들은 어려운 살림에 자식을 줄줄이 낳은 작은집에 논 세 마지기를 떼주고 여섯 살짜리 아들을 양자로 데려왔다. 양엄마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양아들 용철이 무럭무럭 자라서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촌에서 머슴살이보다는 날품을 팔아먹어도 서울 생활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과 아들의 교육을 빌미로 상경을 서둘렀다. 서울에서 용철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양어머니가 뜻밖에 아기를 갖게 되었다. 쉰에 가까운 나이에 낳은 아들과 양자의 나이 차이는 십오 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산동네에서 배운 거 없이 남는 건 힘뿐이라 지게로 연탄 배달을 했다. 힘은 들어도 열심히 하다 보니 산동네에서 무허가지만 방 네 개짜리 집도 한 채 장만했다. 방 두 개만 쓰고 나머지는 월세를 놓았다. 그런대로 재미를 붙이고 살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떴을 때 막내 용화는 겨우 중학생이었다.
상고를 나온 용철은 제대 후 결혼해서 십 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 두 칸을 헐어낸 자리에 플라스틱 사출기를 들여놓았다. 문구용품을 조립하는 가내공장을 차린 것이었다. 사십줄에 든 나이에 시작한 공장은 점점 확장을 거듭해서 재미를 볼 때쯤 그 산동네 지역이 재개발사업으로 확정되었다. 용철은 우선 공장을 성수동으로 옮겼다. 이어서 재개발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조합에서 우선 원주민에게 배정된 사십오 평짜리 중형 아파트에 욕심을 내다 보니 입주에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 입주해서 일 년이 되었을 때 군에서 제대한 동생 용화가 펜팔로 사귄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임신 삼 개월 된 아가씨와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자신의 혈육이 낳은 친손자를 안아볼 욕심으로 앞뒤 재지 않고 결혼식부터 서둘렀다. 문제는 결혼식보다 살림집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새 아파트로 입주할 때 무리했던 터라 솔직히 번듯한 집을 마련해줄 형편이 못 되었다. 돈이란 돈은 닥닥 긁고 빚까지 내서 시골 처가 근처에 허름한 집을 전세랍시고 얻어주며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했다.
“지네들은 아버지가 등골 빠지게 마련한 집을 독차지하고 살다가 끝내는 대궐 같은 아파트에서 처자식들과 호의호식하고 살잖아요? 유산을 진짜 받아야 할 놈은 촌구석에 처박아놓고 본체만체하니 내 복장이 왜 안 터지겠슈? 어린 새끼들을 끌고 이리저리 셋방을 옮겨 댕기는 꼴이 가엾고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만….”
할머니는 눈에 눈물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눈물만 흘리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노상 울 일만 생긴다구요. 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시는 엄니 땜에 되던 일도 자꾸 꼬여서 징징거리면 좋겠어요?”
“뭐, 나 땜에? 말이 씨 된다고, 빈말이라도 그럼 안 되지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절대로 눈물을 흘리시면 안 돼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처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속는 셈 치고 한 달만 믿어보세요.”
나는 할머니에게 침을 놔준다는 핑계로 일종의 세뇌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침을 놓는다고 해봐야 별 건 아니었다. 목뒤의 십이정경(十二正經) 중 ‘바람 풍(風)’자가 들어가는 혈자리로,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의 예풍혈(츄風穴)과 풍지(風池), 풍부혈(風府血)을 작은 침으로 살짝 찌르곤 바로 발침(拔針)했다. 그러면서 주고받은 말이 후에 좋은 이야기 자료로 쓰임새가 많았다.
반면, 며느리와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특히, 시어머니가 무심코 흘린 집안 내력을 참고로 내가 마치 미래를 점치는 박수무당처럼 넘겨짚었을 때 며느리는 ‘어머머!’ 소리를 연발하며 까무러칠 듯 놀랐다. 예컨대, 할머니에게 언뜻언뜻 주워들은 이야기를 마치 커닝하듯 윗대 가까운 조상 중에 정신 이상자가 없느냐고 슬쩍 지나치는 말처럼 흘렸다. 고개를 끄덕이는 며느리에게 보지 못한 조상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조상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면 후손에게 미치는 불미스러운 영향이 많을 것이라는 예언 비슷한 말에 며느리는 껌뻑 죽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가 그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윗대 어른 중에 누군가가 젊어서 정신 이상자로 객사했다는 것을 자기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조상에 대한 예우가 소홀했던지 현재 중학생인 막내딸이 열흘 전에 가출해서 본드를 흡입하고 떠도는 게 그와 연관된 불미스러운 일 같아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며느리의 절박한 물음에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조상을 잘 섬기라는 말과 특히 강조한 것은 동기간의 우애였다.
할머니가 침을 맞은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정신이 이상해진 노인처럼 싱글벙글하며 나타났다. 내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있다마다, 시골에서 컴퓨터 학원을 하던 아들이 밥도 먹기가 어렵다고 노상 징징거리지 않았것슈? 헌데, 이번에 컴퓨털 갈치는 기간제 교사가 됐다지 뭐유?”
“거 보세요,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마르니까 그렇게 웃을 일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말유, 선생님. 감사허구먼유.”
“제게 감사할 게 뭐 있습니까? 할머니께서 웃으니까 저절로 복이 굴러온 건데…. 두고 보세요. 더 존 일이 많을 거니까….”
“그럼, 월마나 좋것슈? 선생님 은혜가 하늘 같구먼유.”
한편, 용철 부부는 어머니가 돌팔이에게 침을 맞곤 울던 병이 아니, 버릇이 거짓말처럼 깨끗이 고쳤다는 게 정말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사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