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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온 선물

한국문인협회 로고 유영희(수필)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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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포 하나를 받았다. 수신인 주소는 분명 우리 집인데 발신지는 Germany이다. 독일에서 우리 집에 소포 올 일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소포를 뜯어보기가 망설여졌다. 영화적인 상상으로 이상한 것이면 어찌할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남편에게 온 것이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열어보았다. 꼼꼼한 포장을 벗기니 장식용 접시, 사탕, 초콜릿, 관광엽서, 곰돌이 모양의 키링 등이 짧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다. 편지에는 ‘오랜만에 그리운 조국을 다녀왔다. 남해안 관광길에 베풀어준 친절에 감사하다’는 그런 글이 적혀 있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영문을 물어보니, 몇 달 전 퇴근길(거제)에 어느 부부가 통영으로 가려면 어찌해야 하느냐고 길을 물어서 오는 길에 태워주었다고 한다. 차에 오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인은 파독간호사로 일한 분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국 방문길을 나선 차였다.
안 봐도 뻔하다. 그때부터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아저씨의 오지랖이 발동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시장을 지나다 어느 가게의 도둑을 잡아 경찰의 날에 모범시민상을 받았다든지(부상으로 받은 스텐찬 합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술에 취해 강구안 바다에 빠진 남자를 물속에 뛰어들어 구조했다든지 하는 친절봉사의 천성에, 통영 구경을 하려고 온 분을 그냥 대접하면 안 되는 줄 아는 통영 남자가 아닌가. 그것도 우리나라가 가난한 시절 외화벌이로 먼 나라에 가서 온갖 궂은일을 해가며 고생한 해외동포라는 생각이 들자 한껏 애틋한 마음까지 더해 통영 한 바퀴를 안내해 드렸다고 한다.
남편은 잊고 있었는데 그분들은 독일로 돌아가서 고국에서 우연히 받은 친절에 보답하고자 바리바리 선물을 꾸려서 보낸 것이다. 드린 정에 비하면 엄청 더 큰 정을 보여주신 셈이다.
초콜릿 한 쪽을 떼어 입에 넣으며 지구 저편에서 온 정을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짝지는 그 시절 보기 힘든 멋진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독일에서 간호사로 있는 언니가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북청색 니트 원피스는 그 아이의 노란 머리색과 한껏 어울렸다. 한 번씩 독일제 초콜릿을 학교에 가져와선 연필 깎는 칼로 얇게 저며 짝지인 내게 주곤 했다. 대패밥같이 얇은 초콜릿은 입에 넣자마자 스르르 단맛의 기미만 스치듯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양초찌꺼기 같은 막이 있는 초콜릿과는 사뭇 다른 고급스런 맛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동생의 학자금을 위해 독일로 광부 일을 하러 간 덕수는 거기서 간호사로 일하던 영자를 만나 결혼한다. 영자 역시도 고향집의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낯선 대륙의 지하에서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을 위해 막장을 마다하지 않은 청년과 병원업무 중에서도 험하고 궂은일을 도맡아했다는, ‘코리아에서 온 천사’라고 칭송을 받을 만큼 내 가족을 위하듯 환자를 돌본 파독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짝지의 언니도 그 고생을 하여 번 돈으로 가족에게 선물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고생은 생각지도 못하고, 어린 우리는 멋진 옷과 달콤한 초콜릿이 많은 나라에 간 친구의 언니를 멋있게만 생각했었다.
독일 관광지가 새겨진 진감색의 접시는 거실장에 올려두었다. 민족이니 겨레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보다 이런 잔잔한 정으로 한 핏줄을 느끼는 온기가 더 따뜻한 것 같다.
얼굴은 모르지만 독일 하늘 아래 계시는 노부부의 평안을 빌어 본다. 이역에서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 보고 간 남해의 푸른 풍경이 한 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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