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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는 집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원명화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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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길었다. 인내의 한계점에 다다른 그즈음, 맑은 하늘에 온몸을 맡겨도 좋을 만큼 하늘은 바닷빛처럼 파랬고 태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도시를 벗어나자 너른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늑하고 아련하고 몽환적인 흔적을 지워 가며 기차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빛을 향해 달려갔다. 대지도 하늘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완연히 푸른빛으로 풍성했다.
기차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랐다. 드넓은 평야는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했고 하늘은 헐렁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길이 밭두렁 논두렁 사이로 이어졌다. 농부의 삶이 빼곡히 채워진 들판을 지나 작은 숲길로 들어섰다. 산이 지나면 또 산이 나타나고 들을 지나면 또 들이 나타났다. 더위에 지친 풀잎들이 늘어진 채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가 지난 뒤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간간이 들어선 집은 모두가 비어 있는지 사람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갔을까. 낯선 집 앞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차가 멈추었다.
도시에 부는 바람과는 사뭇 달랐다. 가을이 찾아온 듯 시원했다. 아니 이곳엔 이미 가을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사방팔방 시원한 바람소리로 가득했고 나무는 신이 난 듯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랄까, 나는 호흡을 가다듬어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셨다. 파, 고추, 호박, 배추, 가지, 상추, 비름나물에 이르기까지,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빛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산속 집은 울타리도 대문도 없었다. 문도 잠그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여기서는 무사태평 평화로웠다. 의심과 걱정으로 길들여 살아서인지 나는 뭔가 불안했다. 하지만 나의 노파심은 오로지 나만의 감정 낭비였을 뿐, 사람들은 금방 자연에 물든 것처럼 이내 시골 아낙네가 되어 격의 없이 웃고 떠드는 재미에 빠졌다.
햇살이 서산 너머로 기울이면서 성찬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산속은 어슴푸레 흐려져 가고 산도, 집도 잘 보이지 않았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산속 나물반찬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향 냄새, 어머니의 체취, 어릴 적 먹던 입맛이 혀끝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며칠을 굶은 듯 소리도 없이 젓가락이 분주히 오갔다. 성찬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운 것 없는 뿌듯한 포만감이 밀려왔다.
별꽃이 만발했다는 주인장의 말에 모두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마당의 풍경은 이미 어둠이 삼켜버렸고 흐릿한 등불만이 작은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어둑한 터널을 지난 것처럼 별들이 총총히 제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의 불을 밝혔다. 반짝반짝 은빛을 여기저기 뿌려 놓는 걸 보니 고대라도 큰 잔치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햇빛 쏟아져 내리는 대낮에는 제 세상을 휘젓듯 사람 속을 헤집고 다니며 성가시게 굴던 하루살이가 밤이 되자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은은하고 고요한 별빛은 내 가슴에 이미 감성의 불을 질렀다. 동시에 내가 잊고 있었던 시어가 스멀스멀 떠올랐다. 별 하나에 추억이, 별 하나에 사랑이, 별 하나에 쓸쓸함을 노래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윤동주의 마음이 비로소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서로 별자리를 찾아가며 이름을 불러주었다. 한여름 밤은 그렇게 표표히 흘러갔다. 저 멀리 안개 젖은 허공 위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서로서로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목소리에서 오래 삭힌 친근한 정감이 흘러나왔다. 신선이 산다는 별유선경이 이랬을까. 여름밤은 그렇게 고즈넉하게 흘러갔다.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 어둠이 짙어질수록 산속의 밤은 적막했다. 별이 쏟아지는 깊은 밤, 시계는 벌써 자정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누구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슴에 묻어 둔 감성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글쟁이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는지 산속에서 느껴지는 진솔한 모습과 섬세한 눈썰미와 감성의 리듬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이렇듯 자연을 보고 문학적 소회를 형상화할 줄 아는 그들의 입이야말로 수필가의 존재가치로 충분했다.
‘야외에서 걸어야 한다. 그래야 공기를 쐬고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이 풍성해지고 새로워진다’라는 세네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들은 어디서든 글 속에서 그리고 글 밖에서 저마다의 붙잡아야 할 주제를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마치 작가라는 이름이 타고난 숙명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처럼.
별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했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흐트러진 영혼까지 차분하게 다독여준 밤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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