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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역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수정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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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스크린 도어문에서 「정년퇴직」 시를 읽었다. 그 시를 읽는데 마음이 울컥해졌다.
“정년퇴직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가슴에 묻고 부화를 꿈꾸며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며… 타인의 삶을 곁눈질하며 펼쳐보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 새롭게 도전하는 환승역이다.(2025년 시민공모작 김화순)”
3월 첫 주일, 교회에서 장로 은퇴식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단상에 앉았다. 담임목사님은 “멈춤이 아닌 새로운 출발로 하나님 앞에 서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교회에서 선물로 금뱃지와 꽃다발을 주셨다. 그리고 축하선물과 감사편지도 교우들에게서 받았다.
이제 만 70이 되어서 시무장로의 직무을 내려놓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평생대학, 예배부, 경조위원회, 새가족위원회, 주방위원회 등, 늘 곁에서 협력해 주었던 교우들이 있었기에 이 사역들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결혼할 때는 남편이 교회에 잘 다닌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주일에도 직장에 나가는 일이 많아지더니 점점 교회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자주 다투기도 했었다. 남편과 교회에서 봉사도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점점 멀어져 갔다. 남편의 온전한 주일성수를 위해서 아이들과 가정예배를 자주 드렸다. 1988년 2월, 설날 무렵에 남편이 중고 자동차를 사 와서 당신이 그렇게 다니고 싶어하는 용두동교회에 같이 나가자고 했다. 우리 가족은 다시 10여 년 만에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다니는 교회로 다시 나갈 수 있었다.
남편이 임원으로 승진이 된 2년 차에 IMF가 터지고,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20여 년 다니던 직장을 연말에 그만두어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 당시에 딸은 고2, 아들은 중3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다시 해야만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남편은 다행히 1998년 1월 지금의 직장으로 열차를 잘 갈아탔지만, 몇 년 동안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심각한 고민도 많이 했던 남편은 그 당시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위기를 잘 넘기고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남편은 직장 환승열차를 잘 갈아탄 편이다.
간석역 근처 음식점에서 시이모님들, 시누이, 시동생과 점심 약속을 했다. 봉천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려고 안내 표지판을 따라 이동했다. 바로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았다. 몇 정거장이 지나서 ‘석수역입니다’ 하는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인천 방향으로 가는데 ‘왜 석수역이지?’ 옆자리에 있는 분에게 이 전철은 인천행이 아닌가요, 물었더니 수원행이라고 한다. 지하철이 가는 방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바로 들어오는 전철을 탄 것이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음식점에 도착했다. 환승역에서 제대로 갈아타는 일도 이렇게 쉽지 않으니, 인생에서 갈아타야 하는 환승역은 더 힘들었다. 지하철을 잘못 탄 것은 환승을 해서 늦게라도 다시 약속 장소로 갈 수 있지만, 인생의 환승을 잘못한 것은 되돌리 수 없으니 말이다.
은퇴식이 있던 날 아침, 남편은 내가 그동안 늘 긴장하고 바쁘게 살아서 다른 사람보다 젊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장로 사역을 정년 은퇴로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제부터는 주변 사람 살피는 것보다 본인 건강을 잘 살피고, 함께 여행이나 자주 다니자고 한다. 나는 가정과 교회의 일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야만 할까 늘 고민이 많았다. 교우들의 어려운 일에 더 마음을 함께하려고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장로의 직분을 어떻게 감당을 해야 되는 것인가를 퇴임을 할 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책임 맡았던 봉사와 가정에서도 맏이의 역할에서 이제 해방이 되었다. 시 「정년퇴직」 내용같이 나도 젊은 날 꿈꾸었던 것을 향해 도전해 보고 싶다.
저기 나의 환승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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