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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도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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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다. 적막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방으로 둘러봐도 푸른 숲과 초지 그리고 6월임에도 녹지 않은 눈이 보인다. 스위스 여행은 삼십여 년의 직장생활을 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는 일부러 로밍을 하지 않았다. 전화에서 놓여나고 싶었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몇 년 전부터 몸은 지쳤고, 지친 몸은 번거로운 것을 거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타인에게서 멀어지려고도 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명상을 해 보기도 하고, 종일 몸을 부리기도 했다. 불면을 극복하려는 의지였다. 몸이 지쳤기 때문인지, 어느 날부터 컴퓨터의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책을 봐도 활자들이 여러 겹으로 번졌다. 안과에서는 초점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 상태라 안경을 새로 맞추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안경을 써도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물의 선명도가 자꾸 변하니 편두통이 생겼다. 어떤 이는 시력이 여러 겹으로 보이면 초기 치매 증세라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벌써 치매라니. 어떤 이는 백내장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퇴직하면 남는 것이 시간이니, 그때 가겠노라고 답했다.
스위스는 온 세상이 초록이다. 마테호른에는 아직 눈이 남았고, 들판에는 키 작은 꽃들이 피었다. 초록 들판에 작고 앙증맞은, 희거나 노랗거나 분홍인 꽃들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피었다. 바람의 손길에 응대하듯, 카우벨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리듬을 타고 종을 울린다. 맑은 공기처럼 맑은 소리다. 공장은 보이지 않고,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호텔 방의 방음이 잘 된 것인지 옆방의 소음도 없다. 방이 넓거나 침대가 고급스럽지는 않다. 건물은 오래되었고, 침실도 세월이 묻어 있다. 작은 침대는 편안하고, 오래된 듯하지만 삐걱대지 않는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내 60년의 삶과 앞으로 남은 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한다.
호텔 조식은 간단하다. 세 종류의 빵과 요거트, 삶은 계란 그리고 소시지가 있다. 나는 빵과 요거트를 챙겨 먹고, 야채가 없음을 서운해한다. 커피 한 잔을 덤으로 마셨다. 첫날은 리기산이다. 리기산은 산들의 여왕이라는 뜻이다. 산을 향해 달리는 철길은 끝을 모르고 달려온 내 인생처럼 이어지는 듯했다. 차창으로 햇살은 들고, 키 큰 침엽수들은 우람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산 아래에는 초지였다. 풀은 스위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라고 했다. 소똥 거름으로 키운 풀을 일 년에 여섯 번이나 수확을 한다고 했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초지는 광활하고, 농부들이 크레인을 움직여 수확했다. 수확한 풀은 건초를 만들어 수출한다고 했다. 풀이 수입원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을 베지 않는 것 같았다. 들판에서 자유롭게 제멋대로 자란 꽃밭을 한참 봤다. 꽃밭을 빙 둘러 산책로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야생화라고 불렀고, 그 꽃밭을 자랑했다. 풀은 보기 싫고 없애야 할 것으로 여겼는데, 풀도 꽃이지 하는 마음이 다시 생겼다.
리기산은 병풍을 친 것 같은 풍경이다. 여느 산처럼 눈은 쌓여 있다. 꽃길을 따라 능선을 넘고, 또 능선을 넘었다. 햇빛은 따가웠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눈은 모처럼 초록으로 휴식을 가졌다. 끝이 없는 능선에 정해진 시간으로 더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중에는 산악자전거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무리들도 있다. 나도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싶었는데, 일정에는 없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리기산은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키 작은 꽃을 바라볼 때는 내 키를 낮춰 바라봐야 한다. 낮게 엎드려 꽃을 가만 바라봤다.
루체른은 중세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카펠교는 루체른의 상징이다. ‘빈사의 사자상’은 전사한 스위스 용병을 기린다. 스위스의 GDP는 현재 8만이다. 그러나 항상 눈에 덮여 있는 산악지대라 예전에는 살기 척박한 곳이었다. 스위스를 선진 스위스로 만든 것은 용병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들의 목숨값을 밟고 일어선 것처럼.
융프라우는 3454m 인터라켄의 명물이자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설경의 명소이다. 아이거 익스프레스(곤돌라)와 산악열차 중 택일하여 오를 수 있다. 아이거 북벽과 그린델발트의 경치를 감상한다. 해마다 수많은 스키인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만년설이 녹아 걱정이라 했다. 산 정상에는 레스토랑이 있었고, 한 번도 녹은 적 없는 설산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었다. 얼음동굴이 녹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내 걱정은 불필요한 것 같았다. 정상에 도착했고, 스위스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스위스는 EU에 가입하지 않았고, 난민도 수용하지 않아 안전하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더불어 사회주의에 더 가깝고, 증여세가 없으며, 대신 소득세가 차등 부과된다고 했다. 부자는 소득의 70%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저소득층은 20% 내외의 세금을 낸다고도 했다. 부자들의 소득세가 많음으로 상속세가 없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소득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교육이나 그 사회가 지탱해 오는 관습의 영향일 것이다.
휘르스트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의미다. 이곳은 거의 산 정상에 가깝다. 온천지역으로 유럽 관광객이 좋아하는 지역이다. 물가가 너무 비싸서 유럽 관광객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펜션이나 작은 호텔을 이용하는 유럽인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곳의 호텔은 대리석 바닥에 방의 크기도 다른 곳에 비해 넓고 깨끗했다. 가이드는 숙박비만 1일 오십만 원가량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과일이 조식에 나왔다. 무지 반가웠다.
라보마을에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다랑이논을 보는 듯이 포도밭이 층층이었다. 제네바 호수를 바라보는 포도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주로 화이트 와인을 80% 생산하고, 로제와 레드가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한다. 풍채 좋은 포도밭 주인을 만나 와이너리 체험을 했다. 그 집의 오크통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제일 큰 오크통은 포도주가 500개 정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여기에서 얼마큼의 포도주를 생산한다는 것일까. 화이트 와인은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향기로웠다. 로제는 조금 더 거칠었고, 레드 와인은 보통 와인과 다르게 느껴졌고 특히 텁텁한 맛이 끝에 오래 남았다. 화이트 와인은 18프랑, 로제는 20프랑, 레드는 22프랑이었다. 숙성기간의 차이라지만, 어쩌면 떫은맛을 내는 레드 와인처럼, 나의 지난 30년도 뜨거운 볕을 더 오래 견뎌냈기에 이토록 묵직한 끝맛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체르마트는 전기차만 가능한 청정마을이다.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마테호른(4478m)에 간다. 마테호른은 황금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는 석양이 질 때 그 빛이 마테호른을 비치면 마테호른 봉우리가 노랗게 물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악열차를 타고 오르는 내내 언뜻언뜻 산은 그 모습을 보여주며 위용을 뽐냈다. 열차에서 늠름함을 사진에 담으려 했으나 키 큰 전나무의 방해로 제대로 담지 못했다. 또한,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을 가슴에 남기고 싶었으나, 때아닌 드론 출몰로 물결이 흔들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호수가 잔잔해지길 기다리는 나를 비웃듯 떠 있는 드론의 주인에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테호른은 아무리 걸어도 항상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어, 사진으로는 그 늠름함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스위스 여행으로 나의 직장생활도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두 번째 입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두 번째 입학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몰입해 보기로 한다.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기로는 담을 수 없었던 마테호른의 늠름함처럼, 이제 내 삶도 여러 겹으로 번진 활자가 아니라 눈앞의 선명한 초록으로 다시 쓰일 준비를 한다. 오직 나만이 치를 수 있는 나의 두 번째 입학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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