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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고래를 꿈꾸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기세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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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에서 보리밭을 지나 곡우로 가는 봄 햇살이
열린 서쪽창으로 가느다란 바람에 실려오는 오후이다.

 

늙은 보리새우 한마리
낡은 소파에 잠들어 있다
검버섯이 핀 새우는
온몸에 따개비로 뒤덮은 혹등고래가 되어
북극의 찬 바다를 꿈꾸고 있다

 

갈라진 가죽 틈새로
거품 문 바닷게처럼 드러낸 솜털도
지나간 흉터처럼 이젠 아무렇지 않다.

 

낡은 소파는 항해를 꿈꾸는 폐선이다.
불면으로 서성이며 밤하늘 별을 향한 기도들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흘러가듯
세파에 늙어 가도 청춘의 꿈은 수평선 저 너머에 늘 아른거렸고, 
지나간 추억은 밤하늘 별처럼 또렷하다.

 

눈물로 밤을 새우던 슬픈 이별아, 내 모든 것들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무색하더라
그리운 마음만 심연 깊은 곳에서 산호초처럼 자라나더라

 

원초적인 날것들의 이빨들을 피해 다니거나 
때로는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날들을 지나 
바다가 좁은 보리새우 한 마리
혹등고래가 되어 몸을 뒤집는 오후 
은빛 포말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찬 바다에 별빛 가득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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