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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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의 풍경이 낯설 만큼 새롭게 다가온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듯, 산 또한 또 다른 얼굴로 나를 맞는다. 그 변화 속에서 흘러간 시간만큼 나 또한 달라졌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젊은 날 주왕산은 친구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산에서는 자연이 품은 전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굴속에 깃든 기도는 계곡의 물소리보다 깊게 마음을 울린다.
주왕산의 굴에 관한 전설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무장굴 맞은편의 좁은 비탈길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점점 가늘어지고, 바람은 바위 모서리를 스치며 거세졌다가 이내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계단을 디딜 때마다 자세가 흔들리고, 반사된 햇살에 미간이 살짝 좁혀진다.
비탈 끝에서 바위굴 하나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연화굴이다. 여러 사람이 들어설 만큼 넓지만, 거친 바닥 탓에 몸을 기대기조차 어렵다. 사람 발길이 뜸한 이곳에서는 인기척마저 멀어진 듯하다. 굴 앞에 서면 세상 밖으로 밀려난 듯한 적막이 온몸을 감싼다.
연화굴에는 오래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이 나라를 잃고 이 굴에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다. 무너지는 세상 앞에서 그가 찾은 것은 바위굴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평정이었을 것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주왕의 모습이 아득히 떠오른다. 한때 많은 신하와 병사를 거느렸지만, 이제 그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위로 향한다. 그 순간은 더 이상 군주가 아닌 한 사람의 나그네였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권력을 내려놓는 일은 결국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왕의 발자취는 어느새 내 삶의 자리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그의 몰락이 성찰의 길이었다면, 나 또한 일상에서 비슷한 흔적을 발견한다.
작은 모임을 이끌던 어느 날, 내 고집이 모두의 목소리를 덮어버린 순간이 있었다. 그날 구성원들의 굳은 눈빛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쓸수록, 내 마음은 차분해지고 다시 일어설 힘으로 채워졌다.
굴 앞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고, 산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단풍이 물든 풍경 속에서 흙 내음과 계곡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눈을 감으니, 불안과 초조가 잦아들고 호흡이 깊어지며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 순간, 남의 시선이 아니라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
눈을 뜨자, 굴 앞의 풍경이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정적 속에서 들리던 ‘나만의 목소리’는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해 온 작고 솔직한 마음이었다. 사실은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조차, 남의 기대 앞에서는 쉽게 밀려났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연화굴의 여백은 그렇게 작은 깨우침을 남기고 있었다.
연화굴 앞에서는 바람을 가르는 새의 날갯짓마저, 숨을 죽인 공기 속에서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 고요 속에서 오래 붙들고 있던 생각들이 제 무게를 내려놓는다. 바위에 달라붙은 이끼처럼, 시련 또한 말없이 시간을 견디며 지나온 흔적이 되어 결국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남는다.
해가 기울며 굴 앞 바위에 붉은빛이 물들어 간다. 아래쪽 계곡에서 번져 오는 폭포 소리가 마음을 적신다. 잠시 멈춰 서 있는 이 순간이, 다시 걸음을 떼기 위한 숨 고르기임을 몸이 먼저 안다.
비움은 물러섬이 아니라, 삶을 다시 짓기 위해 잠시 그려보는 보이지 않는 설계에 가깝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굴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피난처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내일을 준비하는 작은 방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은신처를 마련해 잠시 호흡을 고른다.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 또한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르는 짧은 틈일 것이다. 그 많은 은신처 가운데, 오늘의 나에게는 연화굴이 가장 깊은 상징으로 남는다.
해가 저물 무렵, 연화굴의 여백은 다시 살아갈 방향을 가만히 비춰 준다. 실패와 좌절은 끝이라기보다, 삶의 방향과 리듬을 다시 고르게 만드는 어떤 문턱처럼 보인다. 그 문턱을 넘어서면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이고, 발걸음도 한결 힘을 얻는다.
오늘의 나 또한 이 자리에서, 작은 시련을 발판 삼아 다시 걸어갈 용기를 건져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