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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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제민천 옆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낡은 시멘트 담벼락 위로 불쑥 솟아오른 얼굴 하나와 마주치게 됩니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그 얼굴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이자 느닷없이 열린 출입구입니다. 처음 보는 이에게 낯설고도 친근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린 그 얼굴 앞에 서면 어이없는 풍경의 반전에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마치 누군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열린 입을 통해 몸을 굽혀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은 얼굴 속으로 삼켜지듯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어린 시절 학교 뒷문 개구멍을 통해 금지된 바깥세상을 엿보던 기억처럼 익숙한 경계 너머의 세계가 불현듯 열리는 체험입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아버지의 얼굴>입니다. 프랑스 작가 프레드 마틴(Fred Martin)이 2025년 금강자연미술 프레비엔날레의 주제 ‘창조하는 이들의 길’을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그는 공주 원도심 골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낯선 땅에 내려와 공주에 정착한 한 아버지가 방직공장을 세우고 고된 노동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의 삶을 지켜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절 이 골목은 여직공들의 발걸음과 웃음으로 늘 가득 찼다고 해요. 저녁이면 공장 문을 나서는 그들의 숨결이 골목을 채웠고 삶은 비록 고단했지만 살아 있다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비엔날레 추진위원장인 고승현 작가님의 아버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대나무를 엮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그 한 분의 초상을 넘어 한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상징으로 이 얼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세워지는 과정을 이웃에 살면서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지요. 한여름 폭염 속에서 작가는 민소매 차림으로 하루 종일 대나무를 쪼개고 다듬었습니다. 그런 작가의 모습과 매일같이 조금씩 달라지는 작품을 바라보며 ‘오늘은 여기까지 완성되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응원했습니다. 작품 앞에는 “작품 제작 중”이라는 안내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담벼락 아래로 잘려나간 대나무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요. 그 사이에서 프레드 마틴은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대나무를 쪼갰습니다. 그의 어깨 위로 땀이 흘러내렸지만 얼굴에는 고단함 대신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작품은 단지 거대한 얼굴 하나가 아니라 작가의 수많은 땀방울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지요.
한 사람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가 살아온 시간과 견뎌낸 계절이 고스란히 새겨지고 그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체념이 겹겹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얼굴이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이 대나무 얼굴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시간의 결로 엮인 한 가장의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저는 이 얼굴 앞에 서면 오래전 보았던 영화 <가을의 전설>이 떠오릅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었던 아버지 러드로우와 세 아들 그리고 한 여인의 삶과 사랑을 다룬 대서사시 같은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해 몸부림쳤던 아버지의 존재를 부각시킵니다.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웅장한 자연과 함께 보여주는 영화 속 인디언 원스탭의 첫 내레이션 “어떤 이는 크고 분명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들리는 그대로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아니면 전설이 된다”는 작품 앞에 선 저를 오래 사로잡았습니다. 트리스탄이 전설처럼 살았듯 방직공장을 세우고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들의 삶 또한 우리 곁의 전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이 얼굴은 박목월 시인의 「가정」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시 속에서 아버지는 닳아 없어지는 신발처럼 고단한 일상을 견디며 가족을 위해 걸어갑니다. 신발 밑창처럼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 길 위에 사랑을 새겨 넣습니다. 닳아 없어지는 신발에 빗대어진 아버지의 삶, 온몸으로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삶을 견디며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란 그렇게 자신을 닳게 하며 길을 만드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작품인 <아버지의 얼굴> 역시 그러합니다. 대나무 틈새마다 새겨진 결은 바로 한 시대 아버지들의 주름이자 시대의 고단함이며 묵묵히 이어온 사랑의 흔적일 것입니다.
2025 금강자연미술 프레비엔날레는 골목길을 무대 삼아 쓸쓸히 가라앉은 원도심에 새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 도시와 자연, 사람과 공동체를 잇는 작업을 펼치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단연 돋보이는 상징입니다. 그것은 단지 예술작품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이자 우리 모두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기념비이기 때문입니다.
저녁 햇살이 작품 위로 드리우면 대나무 얼굴 위로 빛이 내려앉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결은 빛이 납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세월의 숨결을 봅니다. 한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시간과 말없이 견디며 살아낸 삶의 무게가 그 안에 스며 있습니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의 표정도 다양합니다. 놀람, 웃음, 추억, 경건함이 교차하는 그 얼굴들이 차례로 스쳐갑니다. 대나무로 엮인 아버지의 얼굴은 결국 그 모든 표정을 삼켜 다시 우리에게 돌려줍니다. “당신도 한 시대의 아버지였다”라고요.
사람들은 그 얼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걸어 나옵니다. 아이들은 웃고 어른들은 잠시 침묵합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에는 어딘가 모르게 느려진 시간이 묻어 있습니다. 아마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잠시 떠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 이 오래된 골목길이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따뜻해지기를 바랍니다. 예술이 머물렀던 자리마다 새로운 희망과 기억이 피어나기를.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골목에서 비엔날레가 이어져 일상의 풍경이 예술과 만나고 예술이 다시 시민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특별한 곳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오늘도 담벼락 위에 세워진 대나무 얼굴은 우리에게 말없이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얼굴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얼굴로 기억되고 싶은지. 저는 그 앞에 오래 서 있고 바람이 대나무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시대를 살아낸 아버지들의 낮은 숨결처럼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