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4
0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우아한 점심을 마치고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영화롭던 옛날의 자랑으로 분위기는 타오른다. 남편의 화려했던 과거, 자신의 꽃다운 아름다운 시절 이야기다. 손주들 칭찬부터 온갖 자랑으로 이야기는 옹달샘처럼 마르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도 화려한 시절에 취해 이야기하느라고 침이 튀고 밥알이 튀기도 했다.
모처럼 일상의 틀을 벗어난 친구들과의 만남이 잔잔했던 내 일상의 틀을 흔든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읽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전구는 빛날 때만 가치가 있는 법이다. 불이 꺼지고 나면 그게 10W였든 100W였든 전부 타버린 전구일 뿐이다.”
친구들도, 출세했던 그녀들의 남편도, 모두 꺼져 가는 전구인 것을…. 봄의 새싹처럼 피었다가 가을 단풍처럼 지는 인생, 꺼진 전구는 겨울의 침묵처럼, 모든 빛을 품고 고요히 잠이 든다.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살았던 나는 크게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그래도 분필 가루 날리던 칠판 앞에서, 아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이제 그 빛들은 각자의 전구가 되어 자신의 가정을 그리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으리라.
세상에는 꺼진 전구이지만 사라지지 않을 빛을 남긴 위인들이 많다. 빛의 천사들을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가까이 살았던 이태석 신부가 생각난다. 의사, 교사, 음악가였던 그는 오지마을인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말라리아, 결핵 등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 무지를 일깨웠다. 또 섹소폰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으로 웃음을 찾아주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어두운 곳에 빛을 선사한 화려한 전구였다. 전구의 불은 꺼졌지만 그 뒤에 숨은 빛은 수많은 의사를 배출하고 웃음과 희망을 전하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암흑의 땅에 새로운 빛이 되었다. 짧은 생으로 마감한 꺼진 전구였지만 새 빛을 토해내는 희망의 전구가 되었다. 꺼지기 전에는 물론 꺼진 후에까지 빛을 발하는 위인들 덕분에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서도 희망을 본다. 전구는 꺼졌어도 그들이 남긴 빛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라도 부안에 있는 신석정문학관에 간 적이 있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숙소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오색으로 물든 서해의 저녁노을이었다. 시인이 고향인 부안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노을 때문이라고 하는 말에 공감했다. 언젠가 여름휴가에 가족과 남쪽 여행을 마치고 오는 길에 서해의 노을을 만났다. 북극의 오로라를 만난 것처럼 가족이 환호하던 기억도 새롭다. 그토록 아름다운 빛들은 생생하게 내 안에 살아 있었다. 우리도 누군가의 뒤에 숨은 빛이 될 수 있을까? 동녘에 떠오르는 찬란한 빛이 아니어도 좋다. 시인의 글감이 되어 명시를 탄생시키는 화려한 저녁노을빛이 아니어도 좋다. 여름밤에 시골 마당에 모습을 드러내고 가끔씩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이어도 좋겠다. 영원히 꺼져버린 전구가 아니라 작은 빛이라도 남겨 누군가에게 소박한 기쁨과 희망을 안길 수 있으면 좋겠다.
카페 창가에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친구들의 은빛 머리카락을 따뜻하게 감쌌다. 꺼져가는 전구 이야기로 열을 올리던 친구들의 수다가 잦아들고 해님이 서산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의 빛도 노을처럼, 꺼져버린 전구처럼 그렇게 사라지리라. 내 존재의 무게를 다시 느낀다, 그리고, 꺼진 전구는 어둡지만 그 뒤에 남겨진 사랑의 빛은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