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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의 경계에서 마주한 이정표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관수(용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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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어느 때인가부터 초등학교 교실에 숫자를 계산하는 영역으로 주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우기 시작한 주산, 주판알의 배열은 마치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켰다. 서툰 동작으로 피아노를 치듯 알을 밀어 올리거나 내리며 주산을 하다가, 전자계산기가 보급되고 컴퓨터가 일상화되면서 나는 수십 년의 짧은 세월 속에 몰아친 숱한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며 적응해야 했다. 숫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자나 문장은 ‘아래아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이 우리나라 현대사의 대부분을 책임지듯 발전해 왔다. 나 또한 그저 버전업(Version-up)의 변화를 따라가며 무리 없이 적응해 온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단순한 변화가 아닌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제25회 수필의 날 영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당동에서 전국의 수필가들과 함께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월로 향하는 버스 안, 차례로 돌아오는 자기소개 시간은 창밖의 잔잔한 풍경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그런데 몇몇 작가의 소개에서 묘한 낯섦이 느껴졌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자료를 수집한다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심 ‘창작하는 사람이 무슨 AI란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스쳤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AI의 도움 없이 오직 인간의 사유로만 창작에 매진하겠다는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관계자가 “AI가 자료를 찾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데 왜 이용하질 않느냐”라며 가벼운 핀잔을 건넸다. 순간 머쓱해지는 마음과 함께, AI를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이들 속에서 나 홀로 원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다시 한번 AI가 화제에 올랐다. 한 중견작가가 쓴 글의 맥락이 요즘 들어 중구난방이라는 이야기였다. 혹시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뒤따랐다. AI를 써서 글이 나빠진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평소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이가 AI 덕에 문장이 정교해진 것을 에둘러 비판하는 소리로도 들렸다. 글의 호불호를 떠나 그 대화의 밑바탕에는 ‘창작하는 작가가 어떻게 AI를 쓸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깔려 있었다. 과연 인공지능은 작가의 의도대로, 창작자의 바람대로 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기계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끌어올 수 있다 한들, 결국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의 능력만큼만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인간의 두뇌가 지시한 정보의 틀 안에서 한계가 생기는 법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떠올리고 명령을 내릴 때, 그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인공지능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회의 근간을 흔든다는 그 AI에 관심을 두는 것을 넘어 직접 사용해 보기로 했다. 신기할 정도로 쉽게 반응하고 답을 주는 모습이 신통했다. 어쩌면 AI는 그저 잘 벼려진 ‘연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련된 장인이 정교한 도구를 사용해 예술혼을 불어넣듯, 작가 또한 AI라는 새로운 연장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감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도구 자체가 아니라, 그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의도’와 ‘역량’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다. 잘못된 정보를 통계에 포함하거나, AI가 스스로 조합한 어색한 문장을 글 속에 교묘히 숨겨놓기도 한다. 만약 창작자가 이를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면 작품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때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세련되게 매만져 주기도 한다. 마치 노련한 편집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만약 AI가 스스로 사유하고 느끼며 독창적인 세계를 빚어내게 된다면, 그것은 사회적 파장이나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창작은 오롯이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고르고 어떤 문장을 쓰며 어떤 흐름으로 이야기를 전개할지 고뇌하는 그 순간, 창작의 씨앗은 이미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움트기 시작한다는 전제하에서다.
AI는 그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만개하도록 돕는 햇볕이나 물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결국 AI를 활용한 창작 역시 인간의 주체적인 행위이며, 창작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다만 새로운 도구의 등장이 주는 낯섦, 그리고 작가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은 당연한 정서적 흐름일 것이다. 이제 AI를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창의적인 ‘협력자’로 인식하고, 우리의 사유와 상상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한 그 낯섦과 가능성의 경계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창작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작점에서 서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시대의 변화가 이미 그곳을 향해 이정표를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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