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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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몸을 얻는 자리였다. 어느 작가의 고백과 성찰이 오늘은 다른 작가의 몸을 빌려 무대에 오를 참이다. 대화와 독백, 몸짓이 어우러진다.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살면서 쟁여 온 지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들으며 익히게 되리라는 예감이 객석에 잔물결처럼 번진다. 빛과 음악과 소리로 펼쳐질 세계를 기다리는 숨들이 흥분의 물결을 탄다.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흐른다.
웅성거리던 소리는 예의 바르게 접히고 숨소리만 나지막이 귀를 채운다. 암전이었던 무대에 불이 켜지고 얼굴들이 보인다. 낯설지 않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약속된 듯하다. 이제부터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묵시적인 합의. 말없이 숨을 고르는 순간, 객석은 하나의 약속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작가의 영혼은 오늘 배우의 옷을 입은 또 다른 작가에 의해 극화된다. 머리로 더듬던 문장들을 배우는 몸짓으로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낸 공간을 망설임 없이 건넌다. 그 순간 붉게 물든 뺨이 선명한 이미지로 가슴에 꽂힌다. 몰입과 긴장으로 파르르 떨던 몸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글은 더 이상 종이 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글쓴이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 조심스럽게 드러난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딸의 목소리. 유년, 피난 시절이다. 능청스럽게 유년의 꼬마가 된 주인공은 자연이 아름다운 피난지가 놀이터처럼 편하고 즐겁기만 하다. 동족상잔이 어떤 아픔인지 알 리가 없다. 배우의 몸짓과 목소리는 글에서 스쳐 지나갔던 그 시절의 장면들을 존재감을 가진 생명체처럼 불러낸다. 그러나 꼬마는 자전거에 마음을 뺏겨 넘어지고 다치지만 자기 탓으로 돌린다. 착한 딸. 아버지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딸의 웃는 모습이라 색인한다. 아버지의 행복이다.
장면이 바뀐다. 내레이터는 시간을 훌쩍 건너뛴다. 꼬마는 딸 다섯, 아들 하나를 둔 어른이 된다. 연로한 아버지가 외출하셔서 모시러 갔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늦게 도착한 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코끝에 맺힌 두 갈래 고드름이다. 떨고 계신 아버지. 사랑은 그렇게 기다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물의 포옹. 아버지의 토닥거림.
그 순간 나는 어느새 극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피난’이라는 말 하나에 기억들이 줄을 서서 걸어 나왔다. 초등학교 시절의 풍경들이다. 학교는 미군의 병원으로 내주었고 우린 용두산 허허벌판에 칠판을 걸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새끼줄을 잇고 가마니를 둘렀으나 지붕은 파란 하늘이었다. 비가 오면 공휴일이 되었고 갑작스러운 하루의 공백은 친구가 그리워 견디지 못해 몸살을 앓게 했다. 불편함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나날이었다.
선생님은 입대하셨고 수업은 옆 반의 여선생님이 그날그날 해야 할 공부를 알려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빠지지 않는 내용은 입대한 선생님께 드리는 위문 편지 쓰기였다. 숙제만 풀어 놓고 가는 게 미안했던지 여선생님은 희망의 소리를 덧붙였다. 선생님이 일찍 돌아오실 거라는 말, 이유는 우리가 보고 싶어서라는 말. 그 한마디의 환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땐 기다림의 표현으로 힘들다는 말조차 몰랐다.
연필에 침을 묻히고 편지를 썼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자기 말을 듣고 쓰라고 했다. 편지의 머리말은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서’라고 했다. 아버지한테 배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 선생님 가신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수없이 썼던 그 문장들. 훗날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 유년의 무지였다.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친구로 삼기도 했다.
고향을 지키며 우리에게 신앙과도 같았던 용두산은 끝내 선생님을 데려오지 않았다. 빌려준 학교도 다시는 들어서지 못했다. 졸업은 바다가 보이는 산꼭대기에서 치렀다. 그래도 가마니 교실을 벗어난 목조의 가건물에서의 졸업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또 하나의 이별이 있었다. 서울에서 피난 온 수송초등학교 영희와의 작별이었다. 남학생들이 서울내기라고 놀리면 내 손을 꼭 잡던 아이였다. 영희는 졸업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갔다.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을 견딘 탓인지 손을 놓기조차 어려웠다. 연락할 길도 모르면서 다시 만나자는 언약을 나눴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석양 무렵인데, 방울무늬 원피스만 아른거릴 뿐이다. 그때는 그리움이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분명 그리움의 범벅이었다.
박수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출연진들이 손을 잡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나는 여백으로 들어가 내 이야기를 꾸렸다.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이 극화된 것도 아니요, 은유와 여운을 앞세운 시가 무대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작가의 실제 체험은 배우의 몸을 통해 나의 체험으로 옮겨 왔다. 그 진솔함이 가슴을 울려 멈춰 있던 기억들을 투망질하듯 끌어올렸다. 수필극은 그런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옷을 벗은 메타세쿼이아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걸려 있었다. 아픔과 그리움이 씻긴 얼굴로 계절을 알리는 눈엽(嫩葉)을 더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