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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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 안에서 수채화 같은 서귀포항을 보니 기분이 꿀렁거렸다. 햇살을 잔뜩 받으며 부둣가를 느긋하게 산책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가이드를 자처한 지인은 자비를 베풀지 않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시동을 끈다.
‘이중섭’, 갑작스러워서 생소하게 들린다. 물과 유성 물감이 만들어낸 마블링 같다. 미항의 풍경에 취해 있던 중에 예고 없이 이중섭을 만나게 되어 그런가 보다. 조금 전에 보았던 서귀포항의 정취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중섭은 내겐 다른 질감의 장르다. ‘흰 소’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일까? 서귀포항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잔잔함과 선 굵은 황소를 그린 화가가 한물에 섞일 것 같지 않다. 포개지지 않는 이미지를 겹치려니 생각 회로가 뻣뻣해진다.
이중섭 화가가 제주에서 기거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덕수궁미술관에서 ‘이중섭; 백 년의 신화’를 관람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보겠냐는 간절함으로 그림 앞에 섰던 날,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림은 잘 모른다. 그저 교과서에 있던 작품을 실물로 보았다는 벅참과 예상보다 강렬한 붓질에 반했던 것 같다.
화가의 애절한 사연은 마음 아팠다.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다. 그 후 가족을 그리워하며 서신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 많은 사연 중에 아들 태현에게 썼던 내용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아빠가 도쿄 가서 자전거 사줄게.’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헤아려져서 그 한 줄에 마음이 감긴 것 같다. 끝내 그리워하던 가족을 보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눈 감은 슬픈 결말을 안 후엔 가족에게 보낸 편지, 종이가 없어서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들이 내 마음속에 티눈처럼 박혀 버렸다.
다행히 화가의 삶을 뒤덮었던 먹구름 속에 한 줌 햇살 같은 장면도 있다. 식구들과 제주에서 생활했던 때다. 그림 속 가족의 얼굴이 행복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거기가 여기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하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조금 더 걸으니 아담한 가옥이 나온다. 마당에는 갓 얹힌 이엉을 이고 자그마한 초가 한 채가 서 있다. 실제로 이중섭 화가가 살았던 곳이다.
‘이중섭 거주지’라고 해서 온전히 화가만의 터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소유주는 마을 이장님이고 오른쪽에 딸린 코딱지만 한 방 한 칸과 부엌이 그가 살았던 공간의 전부였다 한다. 혼자 자기에도 좁은 쪽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기거하며 바다에 나가 해초를 뜯고 게를 잡아 끼니를 연명했다는 설명에 머릿속이 얼얼하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과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게를 잡는 그림이 생각나 마음이 혼란스럽다.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민망함과 허망함이 밀려오다가 곧 애통함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측은함에 두 손이 떨린다. 그의 작품 <황소>가 옥션에서 35억 6천만 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이지만, 본질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싶었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던 남자. 그림 그리는 순간의 희열과 그림을 팔아서 여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뒤섞였을 시간들. 예술과 자본주의의 상충으로 고통스러웠을 화가의 마음이 더듬어져서 괜스레 아프다. 살아 있을 때 그림의 가치가 인정을 받고 마땅한 대가를 누릴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편으로는 어쩌면 전쟁의 포화를 피해 이 좁은 방에서 가족과 생활했던 1년이 진정 안전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겠구나,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중섭의 아이러니한 삶과 반전이 있는 그림들은 서귀포였기에 가능했을 거라 억측도 해 본다. 삶이 팍팍한 순간에도 서귀포 바다는 아름다웠을 것이고, 날마다 새로운 파도가 밀려왔을 테니 말이다. 비로소 마음속에 엇갈리게 놓여 있던 이중섭과 서귀포라는 단어가 하나로 포개진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의구심이 든다. 읽어 주는 사람도 적은데 왜 펜을 놓지 못하는가? 예술이 내게 주는 도파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서귀포의 작은 셋방에서 얻은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이중섭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림에 사로잡힌 순간마다 화가의 내면은 천천히 외부로 흘러나왔을 것이다. 기억은 선이 되고 감정은 색이 되어 고달픈 현실을 환희와 격정으로 물들이다 보면 완성되었을 작품 한 점. 그러므로 그에게 예술은 보상이 아니라 해방의 통로였으리라. 결국 예술이란, 창작자에게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도파민의 충만함으로 위로하고, 예술가의 사후에는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으로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관람객을 압도해 버리는 4차원적 생명체는 아닐는지.
글을 쓰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고통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 주는 희열이 강렬해서 나는 계속 글을 쓴다. 그리고 먼 후일, 내 몸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라도 글만큼은 소멸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을 데우고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간혹 글쟁이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면 이중섭 화가가 살았던 서귀포의 작은 셋방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도파민이 무한히 생성되던 화가 이중섭의 우주를, 그 여백에 깃든 예술가의 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