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2
0
나이 먹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하려는 일이 옛날 같지 않고 생각같이 안 되어 마음먹은 것과 다르게 흘러갈 때 속상해하며 “나이는 못 이긴다더니…” 하고 자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었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나 자신에게서 그것을 절감한다. 사람에 따라 기질에 따라 그 사람의 노력에 따라 현상은 천층, 만층이겠지만 요즈음 나로 말하면 아픈 곳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타난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진을 받아 보았는데 당장 깜짝 놀랄 만하거나 죽을 만한 병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몸의 기능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곳이 많아 관심 있게 관리를 해야 하고 그동안 먹어 오던 약도 적지 않은데 새로 먹으라는 약이 더해져 종류별로 수를 헤아리기도 민망하다.
나는 맹신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나 우연히 어느 종교 관련 서적에서 읽은 말 중에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었다. 그 말을 읽고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로 다시 생각할 바가 많아졌다. 이 글의 뜻은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남은 헤어질 것이 정해진 것이란 말이다.
영생을 말하는 어느 종교적 말이 아니고서야 이 세상에 태어나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태어나서 만나는 모두는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형제자매도, 고락을 같이한 부부간에도, 친한 친구 사이에도 그 누구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다만 죽음도, 헤어짐도, 어떤 이별이든 시간이 다를 뿐이다. 특히 죽음에 의한 이별은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뿐 아니라 모든 만물이 결국 형상이 소멸하거나 변형되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모든 것들에 해당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지구도, 나아가 우리 태양계도, 은하계도 원형은 반드시 멸(滅)할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몇만 년이 걸릴지 그 이상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이후가 될지는 몰라도 생겨났으니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시간이 다를 뿐, 언젠가는 각자 이별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가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남은 바로 죽음의 시작이다. 이 세상에서 하루 살면 죽을 날이 하루 가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 다만 문제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순탄치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도 많다. 100세를 넘겨도 아픈 곳은 없다 하고 못 하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60∼70대에 죽는 사람도 많다. 나도 70대 중반까지는 건강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쓰러지는 사연이 있었던 이후로 뒤를 이어 여러 증상이 줄줄이 밀려오면서 건강을 많이 잃었다. 내가 여기서 나의 불편함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이 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할 때 존엄사가 되도록 하여 안락사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본인이 더 살기를 원치 않는데도 무조건 오래만 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의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늙고 병들어 적어도 의사의 진단으로 회복 불가능함이 밝혀지고 고통만 계속될 때 자기가 간절히 원한다면 고통과 함께 추한 모습만을 세상에 남기는 것보다 존엄사와 함께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 인간적 존엄도 지키고 긴 고통에서 구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제도가 시행될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염려스러움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련 사항을 철저히 보충하여 다듬고 또 다듬어서 보완하여 안락사를 시행함으로 노년에 병마에 시달리고 죽음으로 가는 고통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추한 모습만 세상에 남기고 가느니 존엄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나이 먹은 사람 중에 건강하였는데 어떤 사유로 갑자기 죽은 사람에게, 나이 먹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말을 못 하고 안타깝다고 한다. 하지만 뒷전에서는 죽음 복 하나는 잘 타고났다고 부러워하는 말들을 한다. 그만큼 나이 먹은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다.
문제는 이게 자칫 잘못하면 생명 경시나 유산 쟁탈 등에 휩쓸려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굴러갈까 염려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가 선행된 연후에 논할 문제인 것이다. 정말로 어렵고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이 나라에 노인 숫자는 계속 늘고만 있다. 사람으로 한 세상 살고 가는데 이왕이면 덜 고통받고 추한 모습 덜 보이는 쪽으로 가도록 모두가 신경 써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락사의 부작용이라든가 문제점 등을 적극 찾아 보완하고 공론으로 보충하면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