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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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노년기를 뜻있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시간과 돈, 친구와 취미,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도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해야만 가질 수 있다.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일수록 나머지 생애를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려면 건강은 필수적이며 적당히 머리도 쓰고 가벼운 운동이라도 할 수 있는 취미 한두 가지는 꼭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시간도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음은 물론 친구도 사귀고 치매 예방과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되어 노후 생활이 보람되고 즐거울 것이다.
나는 세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수필과 시조 쓰기, 시조창 부르기, 소셜댄스이다. 세 가지 모두 노년기에 접어들어 시작한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저 하루하루 즐기며 살아가기에는 더없이 좋기만 하다. 수필은 나이 예순에, 시조 쓰기는 일흔, 시조창은 일흔한 살, 소셜댄스는 일흔여섯에 시작하였다. 어찌 보면 세 가지 모두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때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 것이 참으로 잘하였기만 하다.
위의 세 가지 취미 중 시조창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시조창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순수 민족문학인 시조(時調)에 곡을 붙여 부르는 노래로 정가(正歌)의 한 부류이다. 정가는 가사, 가곡, 시조(창)을 말하며 국악의 한 분야에 속한다. 정가는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고유의 노래로 풍류를 기반으로 한 정신문화의 유산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토록 이어가야 할 우리의 노래이다.
시조창은 창법(唱法) 또는 가사 내용에 따라 평시조(平時調), 사설(辭說) 시조, 질음(叱音) 시조, 중허리시조, 각(角) 시조, 우(羽) 시조 등 여섯 가지로 구분된다. 이 중 질음시조는 남창질음, 여창질음, 사설질음, 온질음, 엮음질음, 우조질음으로 세분되어 있다. 입문하면 평시조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점차 다음 단계로 나아가며 최고 단계인 우조질음과 엮음질음에 이른다. 시조는 팔백여 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의 문학이며 시조창은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전통문화이기에 기본적인 발성법만 익히면 누구나 부를 수 있다.
시조창의 매력은 바로 느림에 있다. 이를 느림의 미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음악은 거의 모두 빠르고 경쾌하고 율동적인 몸짓으로 흥을 돋운다. 하지만 시조창은 바른 자세로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얼굴 표정을 온화하게 하여 정해진 악보에 따라 맑은 목소리로 천천히 불러야 오히려 제맛이 난다. 그러므로 창자 자신은 물론 듣는 사람의 인품과 정서 함양에 기여하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바로 조선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선비 정신의 구현이요 사회 순화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익한 시조창이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국민이 애창하는 노래로 발전하지 못하고 극히 한정된 사람들에 의해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리 속도를 제일주의로 삼는 첨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여도 민중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보전해야만 대한민국은 문화국가로 성장 발전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온통 트롯 음악에 난리를 만난 듯 빠져 있다. 트롯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국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거대한 상금을 걸고 트롯 경연대회를 열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트롯 역시 대중음악으로 국민의 정서 함양과 아울러 가요계 지망생에게 크나큰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국악 발전에 크나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악 부분의 하나인 시조창 경연대회는 전국의 웬만한 지방에서 한 해 한 번 정도 개최되며 판소리 민요 등을 주제로 하는 두세 개의 큰 대회도 있다. 시조창의 경우 수년 또는 십 년을 넘겨 갈고닦아 최고 수준인 대상부의 장원에 입상하여도 상금은 겨우 일이백 내지 이삼백만 원에 불과하다. 나 역시 입문 열두 해 만에 전국 명인이 참여한 경연대회에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최고 단계인 대상부 장원에 입상하였지만 상금 일백오십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판소리는 어릴 때부터 십수 년 간 뼈를 깎는 인고의 수련을 거쳐 전국대회에서 최고 수준인 장인의 반열에 겨우 오른다 해도 상금은 삼천만 원에서 일억 원 내외이다. 이에 비하여 방송국 등에서 개최하는 트롯 분야 입상자의 최고 상금은 삼억 원대에 이르니 갈수록 시조창을 비롯한 국악 분야의 지망생은 줄어들 수밖에 없음이 불을 보듯 뻔하다. 트롯 경연대회의 거대한 상금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국악 분야에 꿈을 피우던 꿈나무들이 트롯 분야로 전향하여 매 대회마다 최종 입상자 명단에 들어가 가요계의 샛별로 뜨는 것을 보며 우리 국악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전에는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시조 몇 편이 반드시 실렸지만 요즈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직도 특정 지역의 몇 군데 초등학교에서 시조창을 특별 과목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지만 이 역시 그 수가 해마다 줄어 몇 년 가지 못할 것 같다. 우선 교육계를 중심으로 더 늦기 전에 후진 양성에 대한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한다.
시조창의 계승과 저변 확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대한시조협회를 비롯한 한국전통예악연합회 등 단체에도 말하고 싶다. 해당 단체의 본부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경연대회의 참가 인원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교습생이 입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단체장을 비롯한 이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은 하루빨리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면 좋겠다.
시조창은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우리 고유의 전통 예술 분야로 반드시 자손만대에 이어가야 할 노래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