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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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나 흘렀다. 여물 냄새로 하루를 맞이하고 등이 익을 것 같아 잠을 설치던 밤이었다. 코뚜레를 한 황소는 고픈 배를 알리며 새벽을 깨웠다. 그곳에선 마치 기차가 콧김을 품어대듯 온 마당이 흐물흐물 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흙담이 길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시야의 폭이 좁았다. 부모님은 방학을 맞이하면 큰집 나들이를 지금의 현장 체험처럼 보냈지만, 표현을 잘하지 못하던 내게 그 방학은 늘 곤욕이었다. 문짝조차 제대로 없는 시골 화장실의 정경 또한 골칫거리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새벽의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그 짙은 어스름이었다. 나를 마치 흔적도 없이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괴물만 같아 문고리를 밀었다 다시 닫기를 그 얼마던가. 교통편이 원활하지 못하던 때라 쉽게 떠나오지도 못했다. 방 안에서 밤새 땐 군불로 살을 델 것같이 까맣게 타버린 온돌 바닥의 누런 장판과 하얀 창호지 사이로 쉼 없이 덜커덩거리던 바람 소리 또한 무서워서 안달을 내던 기억마저 또렷하다. 큰아버지 부부가 기거하는 곳은 허우대가 멀쩡한 기와집이었고 사랑채로 마당 가운데에 들어앉은 할아버지 방은 초가집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할아버지와 백부 사이에는 묘한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느껴지는 빈부의 격차만큼이나 깊고 멀어 보였다고나 할까.
부산으로 이사 온 아버지가 처음으로 마련한 집의 구조는 아주 특이했다. 아버지가 기거한 본채는 기와지붕이었고 그 나머지는 슬레이트 지붕에다 플라스틱 재질로 물결무늬로 잇대어 놓은 하늘색 처마에는 비만 오면 멜로디가 제법 예술이었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럽게 운치가 있다. 내 마음이 어수선하면 그 소리가 왠지 사납게 들리고 신경질인 소음으로 전락하지만 침잠된 마음에는 호수의 동심원처럼 파동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그 집에서는 참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나름의 쳇바퀴를 돌며 살았다. 생선 장수 허씨 아지매, 구멍가게 우야네, 식당에서 일하던 명수네, 원양어선을 타던 영도 형부네 등 다양한 가족들이 방 한 칸씩을 차지하며 마치 벌집 모양의 공간에서 고된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일용노동자의 딱한 시간이 늘 악다구니란 알람으로 시작해 부부싸움으로 일몰을 맞이하기도 했다. 항상 열려 있던 양철 대문에서는 고된 시름이 한숨을 품어내고 있었다. 세상사 녹록지 않은 비바람의 설움이 녹슨 담벼락의 시멘트 위에도 묻어나고 있었다. 그때는 그 시절이 왜 그렇게 싫던지 나는 우리 집만 오롯하게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날마다 투정을 부리곤 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우리 집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마치 인정의 파수꾼처럼 늘 이웃들을 품어주었다. 잡기로 배운 장구가 장기가 된 아버지는 봄가을에 가던 꽃놀이도 다 챙기는 동네 일꾼이었다. 설장구를 가슴에 품고 하늘을 가를 듯이 고운 자태를 뽐내던 아버지의 한 서린 까치발을 여태 난 잊지를 못한다. 바다 위를 거닐 듯 살포시 내디디고 하늘 위를 날아가듯 하늘하늘 가벼이 이리저리 춤사위를 보이던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아른거린다. 아버지에게 장구는 살풀이의 매개체였고 하나둘 모여든 고향 사람들과 객지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지지대 같은 버팀목이었다. 결코, 멋들어진 집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방과 마당을 중심으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사람 간에는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리 가까이하려 해도 세입자와 임대인 간이라는 미미한 계층에서 오는 알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건 세월이 지나도 좀체 내려놓아지지 않았다.
참 희한한 구조였다. 손닿을 듯한 기와지붕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지붕에서 금방이라도 박덩굴이 굽실굽실 담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은 시골 느낌이 물씬 들었다. 도심 한복판에 어쩜 이런 집이 아직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담하고 단순한 구조였다. 아직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1920년대의 마당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장독대도 보통의 크기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장독들이 즐비했다. 블록의 숭숭한 구멍조차 시대를 넘나드는 옛 추억에 잠기게 해서 좋았다. 시골 교장이 오래 전에 마련해 살다가 병환으로 팔게 된 집이라고 했다. 그 무엇보다도 마루 바로 앞에 큰 그늘목으로 자리한 등나무의 울퉁불퉁하게 굽은 허리가 고된 역경을 여실히 보여주며 힘겹게 서 있는 모습이 맘에 와 닿았다. 또한, 마당 한켠에 슬레이트 지붕의 셋집이 유년 시절 아버지 집과 닮아 있어 묘하게 끌렸다. 물론 이 집에서도 기와지붕이 시대를 건너 아련한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기와의 그 원색은 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낯선 이의 방문조차 달갑게 받아주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 할아버지의 그 집도 아버지의 그 집도 기와는 왠지 묵중한 위치를 반영하며 내 마음을 갈리게 했다. 딱히 표현되지 않아도 분류가 되어버리는 현대의 취향처럼 기와는 집집이 각각의 문양을 가진 채 그 집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할아버지의 무기력한 가장의 권위는 두 집 살림을 한 백부의 자손 번성의 열망을 담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나 보다. 아흔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무게를 잃고 농사일에 지쳐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후에야 백부보다도 컸던 할아버지의 자식 사랑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기와의 낡은 이끼 속에서 소소한 세월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듯이 말이다. 기와의 형체와 곡선은 하늘에서 너울대는 파도처럼 그 선의 조화는 정말 한 폭의 풍경화임에는 분명하다. 세월의 바람과 구름과 햇빛 그리고 비란 자연의 섭리에 발맞추어 적당한 옷을 입은 그 고고한 상흔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릿한 슬픔이리라.
기와가 그리는 곰삭은 시간과 추억과 풍광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저 담담히 닮아가면 참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