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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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직박구리의 작은 눈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눈싸움했다.
가슴이 열리고 숨통이 트이는 포근한 봄날, 화원에 꽃모종을 사러 나갔다. 꽃 몽우리가 조롱조롱 매달린 블루베리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 따먹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자꾸만 일어났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미리 생각하자, 마음은 기쁨으로 샘솟았다. 더군다나 블루베리는 세계 10대 식품이다. 두말하지 않고 꽃모종보다 20배나 되는 값을 치르고 두 그루나 덥석 안았다.
앞마당 모서리에 큰 구덩이를 파고 블루베리 거름을 잔뜩 넣었다. 장정의 힘으로도 무거운 화분을 지그재그 돌려 가며 간신히 땅속 깊숙이 묻었다. 그리고 참을성 많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흉내라도 내듯 매일 아침이면 마당에 나섰다. 촘촘히 모여 흐드러진 꽃송이들은 마치 전깃줄 위에 앉아 재잘거리는 참새 떼처럼 생동감 있게 피었다. 두어 달만 지나면 바로 이 작은 열매들이 내 입에 들어오겠다는 기대가 벅차올랐다.
소나기가 쏟아붓는 세찬 빗줄기에도 낙하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주었다.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레 보살펴 주었더니 잘 자라 주었다. 보라색 자수정처럼 뿜어내는 색감은 정신적, 심리적 안정까지 지켜 주는 보석 같았다. 골고루 잘 익어 가는 열매들은 선하디선한 순수한 모습까지 내뿜으며 내게 성큼 다가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도 선해지는 듯했다. 계절을 잘 견디고 마지막으로 풍성하게 선물을 주는 나무라 생각하니, 자연은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게 여겨졌다.
한두 알씩 익어 가던 모습을 며칠간 지켜보았다. 사흘 정도 뜸을 들이다 보면 많이 따지 않을까 싶었다. 열매를 거둘 때가 된 것 같아 소쿠리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일이야? 주렁주렁 보랏빛 블루베리가 흔적도 없이 싹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주인인데 어느 누가 주인이란 말인가? 너무나 황당하여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분명 까치 짓이라 생각하며 그 녀석들이 날아오면 적대 관계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다음 해엔 신경을 곤두세웠다. 까치가 날아올 때면 ‘산으로 가라’며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쇳소리를 내기도 했다. 블루베리가 보랏빛으로 윤기가 돌면 무조건 따서 냉장고 속에 조심스레 넣었다. 새들도 먹고 살아야 하겠지만, 왜 하필이면 집 앞마당에 단 두 그루에 모여들어 싹쓸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행동들이 너무 괘씸했다.
요즘 들어 새들의 기세가 점점 거세졌다. 까치도 부쩍 늘어나고, 참새 떼도 꽤 많이 늘어났다. 나무를 잘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잘 지키는 것이 더욱 절실했다. 체리 열매조차도 첫 수확부터 맛을 보지 못했다. 열매가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까치 떼가 미리 들이닥쳐 따먹는 모습을 보고 하얀 종이를 둘러 덮어 씌었다. 그러나 안심한 것도 잠시, 다음날 가서 보니 종이를 찢어 가며 다 따먹고 한두 개만 남겨 두었다. 까치들 탓에 몇 년 동안 수확의 기쁨은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씁쓸한 맛만 보았다. 아예 속 편하게 체리는 까치들에게 내놓으며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 해였다. 블루베리나무를 관찰하려 창밖을 내다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직박구리 식구들이 날아와 탐스러운 블루베리를 따먹고 있었다. 그동안 범인은 까치라 여기며 의심했던 내가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나, 서로서로 망을 봐가면서 교대로 따먹는 모습이 너무나 우애롭고 화목해 보였다. 그래도 주인이 나라는 것을 알려주듯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따먹었다. 큰 열매를 삼키려고 목덜미에 힘을 주어 꿀꺽꿀꺽 삼키는 모습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젖히며, “야! 내 거야∼”라고, 경고해도 날아갈 행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긴 내가 주인이라듯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눈싸움했다. 나를 응시하는 그들의 눈매와 태도를 보자 하니 나는 주인이 아니었다. 그렇게 매해 서로 주인 노릇 하려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는 경쟁을 벌였다. 말이 소통되면 한 그루씩 나누어 따먹자고 타협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은 매년 잊지 않고 날아와 열매가 익었나 안 익었나 염탐하는 모습이 진지하여 헛웃음까지 나왔다.
오래전 캐나다 퀘벡 사돈 별장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다. 자그마한 호숫가 주변은 무성하게 자란 야생 블루베리가 지천으로 펼쳐져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열매를 따먹느라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다. 추억을 생각하는 순간, 블루베리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혹시 나무의 열매들을 새들이 먹고 난 배설물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면 진짜 주인은 새들일까? 새들이 내 취미(?)에 침범하였다고 투덜댈 수 없고, 그렇다고 내가 주인이라고 내세우기도 애매모호했다. 자연의 순환 속에 소소한 기쁨 한 조각에도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깨달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사람이나 짐승은 각기 다르게 살아가지만, 그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길은 똑같이 걸을 뿐이다. 우리 속담에도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콩알 하나조차 서로 나누는 마음속에서 깊은 온기를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블루베리나무도 직박구리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오랜 시간 집착과 욕심으로 단단히 옭아매었던 마음마저 자연 속에다 놓아버렸다. 그 순간, 가슴에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버리듯 한결 가볍디가벼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