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아직도

한국문인협회 로고 유혜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조회수3

좋아요0

“아직도 글을 쓴다며?”
젊어서 미국으로 이민 간 셋째 동생이 카톡 통화할 때 이따금 물어오는 말이다. 이 질문은 국내에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문장으로 쓸 때는 같은 표기이지만 동생의 말과 국내에서 듣는 말은 그 어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동생의 ‘아직도’에는 ‘도’자를 길게 빼서 노령의 누나가 그만큼 건강해서 좋다는 혈육으로서의 안도감이 들어 있다. 국내에서 듣는 소리는 좀 다르다. ‘아직도’의 ‘도’자를 짧게 높여서 의외라는 듯 말하는 이들은 대개 가정주부인 동년배들로 늦도록 고달프게 사느냐는 뜻으로 애정 있는 헤아림이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얼마 전 문단 후배의 전화에서 들은 “아직도 글을 쓰세요?”의 ‘아직도’는 내가 침체해 있어선지 딱하다는 듯, 냉소적 의미가 담긴 듯해서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도 기분이 묘했다. 같은 단어가 발음이나 고저 장단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그 후배의 ‘아직도’에는 대선배로서 수작(秀作)도 아닌 글이 번번이 수필지 맨앞에 실리는 것이라든가 우대받는 것이 못마땅했던가 보다. 이제는 양보해야 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 같이 들린 것은 자격지심에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수필 문단을 둘러보면 선배님들이 한두 분 빼곤 거의 돌아가신 것 같고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동년배 중엔 일찍이 절필한 이가 많다.
우리 현대수필의 대표자로 영문학자이셨던 금아 피천득 선생님께선 60세에 더 이상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절필 선언을 하셨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 수필 월간지 『수필문학』(1972년 창간) 발행인 김승우·김효자(『수필문학』 주간) 내외의 오랜 간청 끝에 1973년 신작 「인연」을 『수필문학』(11월호)에 주셨다. 그 작품을 게재하면서 김효자 주간이 쓴 편집 후기에서 “여기 보여주는 새로운 수법은 수필문학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새로운 의도라고 봐서 수필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될 것을 믿습니다”를 읽은 기억이 있다. 당시 등단 2년 차 신인 처지인 나로선 절필이나 휴면 작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런 새로운 수법의 걸작을 언제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갖게 되었다.
등단(1972년) 몇 년 후에야 피천득 선생님의 친구이던 윤오영 선생님의 『수필문학입문』 등 이론 책에서 ‘수필은 체험을 수기처럼 기록하는 글이 아니다. 자신이 체험한 실상(實狀), 심상(心想)을 소재로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미(美)적으로 형상화(形象化)하는 과정을 거쳐야 승화된 수필이 된다. 소설이나 다른 장르의 문학작품처럼 기·승·전·결 구성으로 주제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이론을 조금 알게 되었으나 좋은 수필 쓰기의 길은 더욱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평상시 그냥 지나치던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움직임, 들리지 않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 사람과 사건에 대한 성찰을 거쳐 작품을 쓰려 했다. 그리고 수필은 자조(自照)의 글, 자아(自我)를 나타내는 글이기에 밝고 맑은 글, 다정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다소간의 노력으로 수필적인 글을 써 봐도 작품(문학)성이 따르지 않았다. 인문학적 통찰력이나 많은 뜻을 함축한 시적인 표현, 단아한 문장도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자기 역량을 뛰어넘는 글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품성은 작가의 천재성에도 달려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노력의 일환으로 시대를 반영하여 1970년대 경제 성장과 현대화에 밀려 사라지는 한국의 미의식, 전통미를 소재로 수필을 한동안 썼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과거 지향에 갇혀 버리는 것 같았고, 그 미망에서 벗어나 변신, 변화를 추구해야 했다. 다른 이들이 쉽게 쓸 수 없는 독자적인 것을 찾아서 독자들에게 정보도 주고 흥미를 줄 수 있는 테마를 찾은 끝에 클래식 음악과 문학의 만남인 음악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음악 애호가들은 1980년대만 해도 돈이 있어도 원하는 클래식 음반을 살 수 없었고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 감상실을 찾아야 했다. 내가 음악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1990년대도 음악 정보를 얻을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었기에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남보다 먼저 써 본 참신한 시도여서 한동안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문단 후배가 다소 저돌적으로 들려준 ‘아직도’에 대해 들려줄 답을 소개하면 실소할 이가 많을 시대가 온 것 같다. 인공지능 AI가 웬만한 수준의 글을 써 내는 시대에 “내가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은 오래 쓰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글이 한 편 나오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못 버려서랍니다”라고 답해 준다면 AI가 비웃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런 꿈을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덧붙일 말도 있다. 심신으로 침체해 있어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울할 때 글을 쓰는 시간은 구원받는 느낌이 드는 위로의 시간이라고. 헤밍웨이도 종군 기자로 전쟁터에서나 여행 중 바다 가운데서 위험할 때, 호텔방 작은 책상에서… 그는 어디에 있든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라는 말을 입속으로 하면서 자신에게 힘을 주곤 했다고 한다. 그의 글쓰기는 마음속 아픔을 이겨내는 수단이었다.
이제 걸작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AI가 쓸 수 없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오래 전 컴퓨터가 나왔을 때 법정 스님이 어떤 인터뷰에서 “육필로 쓴 글이 아쉽다”면서 “요즈음 컴퓨터라든가 기계로 글을 쓰다 보니까 손가락이 너무 빨라서 무책임한 글을 쓰는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雪國)」을 완성하고도 붓으로 다시 한 번 쓰고 나서 발표할 정도로 글을 쓰는 자세가 신중했다”고 한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컴퓨터로 글은 쓰되 AI가 쓸 수 없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말도 후배에게 덧붙여 들려주고 싶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