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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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였다. 또래의 다른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구분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단박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화면을 되돌려 정지하자 그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색 보정을 다소 과하게 한 탓에 술 취한 사람처럼 안면 가득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깊고 커다란 두 눈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호기심에 지난 세월의 영상을 몇 번 보고 난 뒤, 비슷한 유형의 것들이 유튜브에 연이어 떴다. 대개는 그 당시 거리 모습이나 생활 풍습을 기록한 내용이었으나, 시사 프로그램의 일부분 같은 영상도 더러 끼어 있었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산업체 부설 학교에 다니는 여공들의 일상을 짤막하게 담아낸 것인데, 그 중간쯤에서 그녀가 스치듯 지나갔다. 선도반 완장을 찬 여자가 교문에 들어서는 학생들을 붙들고 이런저런 지적을 하는 사이,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카메라를 피해 가는 모습이 잡혔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긴 것 외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 그대로였다. 요즘은 방송국에서 이런 것도 만들어 올리나 싶었는데, 영상 말미에 제작사가 YH 미디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 친구인 영우네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다. 초인종을 누르면 멀리 안채에 있는 영우보다 그녀가 항상 먼저 뛰어나왔다. 쪽문을 열어주고 난 뒤 내외하듯 재빨리 들어가 버리는 탓에 제대로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만, 인상만으로도 굉장히 예쁘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한 학년 낙제한 영우와 동갑이었으니, 사실상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셈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만 보면 멀찍이 피해 다니는 걸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둥에 적힌 교명을 확대해 보았다. 지금은 사라진 기업체 이름이 앞에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오래전 늘 불콰한 얼굴에 고집스러운 입매를 하고 있던 그 기업 회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은행에서 발간하는 사보 프리랜서 기자로서 거래 기업의 주력 상품과 사주 인터뷰를 싣기 위해서였다. 섬유를 발판으로 전자 쪽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한 그는 회장실 곁에 방을 하나 따로 두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아들에게 경영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아직 채 학생 티도 벗지 못한 젊은 친구가 내게 실장 명함을 불쑥 내밀었을 때, 별 이유 없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5년 뒤 우연히 행사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젊은 친구는 고혈압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계열사는 열두 개로 늘어나 있었고, 200만 호 주택 보급 사업으로 한창 붐을 일으키던 건설 쪽에 주력하는 눈치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IMF 사태를 전후해 건설업을 시작으로 그 계열사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져 버렸고, 회장 일가는 일반고로 전향한 예의 산업체 부설 학교만 움켜쥐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그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자, 세상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인연의 끈들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발코니에 서서 저물어가는 강을 내려다봤다. 지금은 양 가로 곧게 뻗은 도시 순환도로가 나 있고 그 안쪽에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구절양장의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수풀이 우거진 자연 습지 그대로였다. 강 동쪽은 전쟁 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집들로 자연 부락을 이루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둑방을 따라 듬성듬성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 허름한 식당과 술집 몇 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밤이 되면 꿈인 듯 아련하게 홍등들이 어둠 속을 둥둥 떠다녔다. 대학에 다닐 때 가끔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둑방에 나와 있는 어린 여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짧은 휴식 시간 동안 햇볕을 쬐기 위해 삼삼오오 풀밭에 넓게 퍼져 앉아 있었는데, 파리한 얼굴색과 달리 표정이 무척 밝았다. 간간이 바람을 타고 강을 건너오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갈 길 바쁜 내 시선을 오랫동안 붙들곤 했다.
그 무렵, 갈대숲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발가벗긴 채 등에 칼을 꽂고 있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여자의 신원이 둑방에 있던 술집 작부라는 것과 탐문 결과 하루 전 그녀와 다투고 갔던 남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범인이 금방 밝혀졌지만, 그 뒷이야기는 오랫동안 안개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온 그 여자는 대개 다른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잦은 잔업과 야근으로 손마디가 굵어져 가던 중 우연히 한 대학생을 만나게 됐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곧 그 남자의 자취집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임신으로 배가 불러오자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궁핍한 생활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애를 유산해 버렸고, 여자는 그 충격으로 인해 남자를 떠나 술집으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4년이 흐른 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여자는 모처럼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같이 살았던 그 남자를 보게 됐다. 그에게는 어느덧 아내와 아들이 있었고, 한껏 상심한 채 돌아온 그녀는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취해 있었다. 동네 양아치들이 술집에 와서 패악을 부리는 일쯤은 일상다반사인데도, 그날만큼은 그녀가 참아내지 못했다. 양아치들 역시 그날따라 손에 살이 올랐던지 그녀를 흠씬 두들겨 패고 나서도 채 성이 풀리지 않자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한동안 무성하던 그 여자에 대한 소문이 잦아들어 갈 때쯤, 강 끝에 산업단지가 생기면서 공장들이 하나둘 그리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식당과 술집도 덩달아 문을 닫는가 싶더니, 대신 그 자리에는 저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내가 마을을 떠났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또 옛날 생각해요?”
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아내가 소파에 앉으며 웃고 있었다. 작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글이나 쓰면서 살겠다고 하자, 아내는 선뜻 이곳을 권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잉크 밥만 먹고 살아서 남들처럼 귀농이나 귀촌을 해봤자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데다, 잡초와 벌레 등을 쌀에 배겨내지도 못할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아내는 연애 시절 몇 번 이야기해 준 적이 있는 이곳을 용케 기억해 냈다. 개발로 상전벽해가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도심에 비해 한적했고, 어릴 때 제법 많은 추억이 쌓여 있는 곳이라 내겐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었다. 게다가 영우처럼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은 친구들까지 덤으로 얹혀 있어서, 심심찮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는 저쪽이 황량한 들판이었는데 말이지.”
강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마천루들이 환하게 밤을 밝히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자, 아내가 또 물색없이 웃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은 데가 어디 있으려고요.”
“그런가?”
“그렇죠, 그럼.”
아내는 내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TV 화면에 눈길을 주었다.
카운터에서 카드 전표를 정리하던 직원에게 사장의 위치를 묻자, 눈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밖으로 나와 건물을 돌아가자 화로 앞에서 불을 붙이고 있던 영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삼복염천에 숯불이라니. 보란 듯 쓴웃음을 잔뜩 입에 문 채 곁으로 다가갔지만, 그는 화로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내가 가까이 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언제까지 그 짓하고 살 거야?”
영우가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나는 그만 무안해지고 말았다. 영우 역시 머쓱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짜내며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언제 왔어?”
“그만큼 돈을 벌었으면 이제 좀 장사를 접든지, 그도 아니면 편한 가스로라도 바꾸든지 하지.”
“상호가 숯불갈비 집인데?”
영우가 자조 섞인 얼굴로 예의 글자가 붉고 선명하게 강조된 간판을 가리켰다.
때마침 나타난 직원에게 화로 앞을 비워주고 영우와 나란히 내실로 들어와 앉았다.
“생각나? 예전에 문간방에 살던?”
“누구…? 아, 순애!”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영우가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고 머리를 쥐어짜는가 싶더니 그녀의 이름을 쉽게 토해냈다.
“이름이 순애였어?”
“정말 몰랐단 말이야? 그때 서로 둘이 좋아한 거 아니었어?”
“좋아하긴. 언제 그럴 기회가 있었나.”
의심 가득한 영우의 눈초리를 피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그 때문에 자네가 우리 집 대문이 닳도록 찾아온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장사하는 사람이 싱겁기는….”
대화가 요점을 잃고 공전하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나는 말을 이어가는 대신 서둘러 휴대전화를 켜고 영상을 보여줬다. 한참 동안 곰곰이 화면을 되돌려보던 영우가 탄성을 질렀다.
“맞네, 순애!”
“얼씨구. 한집에서 그렇게 같이 오래 살아놓고 나보다 더 못 찾으면 어떻게 해. 난 대번에 알아보겠던데.”
내 말을 핀잔하는 것쯤으로 여겼는지, 영우가 때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집에서 이사 간 지도 30년이 넘어. 너보다 먼저였지, 아마?”
“그랬었나?”
세월이 지나 과거를 반추하다 보면 선후가 뒤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런 걸 잘 아는 까닭에 나는 영우의 말에 달리 토 다는 법 없이 쉽게 수긍했다.
“그럴 거야. 애 낳고 채 2년이 안 되었으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사를 간 것도 아니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연히 연이 끊긴 거니까.”
“그래, 할머니가 한 분 계셨어!”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 낮게 신음을 뱉어냈다. 언젠가 마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할머니가 내게 삶은 옥수수 하나를 불쑥 건네준 일도 있다. 그런데도 내 기억 속에는 신기하게도 순애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는 사실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생각나, 순애 할머니?”
“응. 그런데 그 할머니가 왜?”
“뭔지 모르게 귀티가 나지 않았어? 조선시대 사대부집 안방마님처럼 말이야.”
영우는 이야기가 길어지는지 물로 입부터 적셨다.
“실제로도 그랬던가 봐. 고향에선 행색 깨나 하고 살았다는데, 그놈의 나라라는 게 뭔지…. 순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대. 그 내용이야 뭐 당시 애국지사들이 겪은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아버지까지 함께 엮이고 말았으니 문제였지.”
“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거야?”
“이런, 나이가 몇인데! 그건 한참 뒤의 일이야. 해방이 되고 순애 할아버지가 독립군을 고문하고 죽인 친일 경찰 하나를 반민특위에 고발했는데, 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경찰 간부로 복귀해 순애 할아버지에게 온갖 수모를 안겨줬다더군. 순애 할아버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북으로 넘어가 버렸고.”
영우가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는 남은 가족이 고초를 겪게 된 거지. 6·25가 터지자, 순애 아버지가 예비검속인가 뭔가 하는 데 걸려 생매장을 당한 거지.”
“죽었단 말이야?”
“그런 건 아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시체 구덩이에서 구사일생 운 좋게 살아 나오긴 했어도 남은 삶을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십여 년을 더 살다 가긴 했지만, 겨우 순애 하나만 이 세상에 남겨 놨다더구먼.”
“어머니는?”
“독재 권력에 편승해 반공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던 그 엄혹한 시절에 주위의 조롱과 핍박을 견뎌 내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겠어? 겨우 젖을 뗀 순애를 할머니에게 떠맡기고 친정 피붙이들이 데려가 버렸다더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에게 개가했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튼 그쪽과는 완전히 인연이 끊어진 거지. 할머니는 세상 물정 하나 모르던 분이셨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는 어찌어찌해서 겨우 순애를 먹여 살렸는데, 나이가 드시니까 그것도 녹록지 않았나 봐. 생각 안 나, 순애가 중학교 마치자마자 공장에 취직한 거?”
“한동안 자네 집에 들를 때, 그녀를 보지 못했어.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보다도 먼저 뛰어나오곤 했던 그녀였는데 말이야.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물어보지 못했네. 그러다가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집에 다니러 온 그녀를 보았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 왠지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그게 우리보다 한 걸음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네. 뭐랄까, 갑자기 제 몸보다 큰 옷을 걸쳐 입은 것처럼 말이야.”
동네 슈퍼에서 나오다가 맞닥뜨린 그녀는 놀라는 것도 잠시, 늘 그렇듯 얼굴을 붉히며 재빠르게 내 앞을 지나갔다. 그사이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었으나, 이제껏 익숙하게 보아 온 교복 차림보다 사복이 훨씬 더 편해 보였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 뒤로는 웬일인지 그녀를 전혀 볼 수 없었는데, 3년이 더 지나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다시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는 그녀와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났음 직한 애를 안고 있어서 그녀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내게서 줄곧 떨어지지 않던 눈이 곧 그녀임을 깨닫게 했다. 버스가 지나가는 것도 잊은 채, 내가 얼마나 황망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지. 여전히 맑고 깊은 그녀의 두 눈이 그때는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자넨 그 집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나?”
한 지붕 아래 살아도 서로가 소 닭 보듯 했으므로 그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땐 솔직히 나도 몰랐지. 순애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에게 한 말을 조금씩 전해 들은 것뿐인데, 나이를 먹고 세상 이치에 밝아지니까 아 그때 그게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된 거지. 그나저나, 정말 순애하고 별사이가 아니었던 거야?”
영우가 보내는 묘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나는 그녀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지난 시절을 되돌려 보면 그녀가 내게 특별한 사람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던 그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게 일순 정지된 느낌이었다. 만약 순애 할머니가 뒤늦게 아이 장난감을 챙겨 들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견고한 침묵은 결코 균열이 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불과 대여섯 걸음밖에 거리가 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잡아타고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우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전혀 기대 밖의 일이었다. 신문사에서 기획한 예술 기행의 일환으로 함양 선비길을 답사하고 있는데, 잔뜩 흥분한 그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일행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한 뒤 따가운 햇살을 피해 농월정 그늘 밑으로 숨어들었다.
“우리 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동기들이 모임 가지는 거 잘 알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순애에 대해 아는 친구가 하나 있더군.”
안 그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녀를 추적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참에, 그 실마리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음을 깨닫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상에서 봤던 그 학교를 찾아간다고 해도 낡은 학적부 속 박제된 흔적밖에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우에게 그녀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이른바 신의 한 수가 된 셈이었다.
“듣고 있어?”
내가 놀라움에 아무런 대꾸도 못 하자, 영우가 그렇게 주의를 환기하고 나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직접 순애를 아는 건 아니고, 딸이 독립영화 감독을 하고 있다더구먼. 그쪽이라면 자네가 직접 알아볼 수도 있을 거 같아 이름을 물어봤지. 강연희이라고, 그 분야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다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강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영우의 전화를 끊고 재빨리 그때 저장해 둔 영상의 제작사를 찾았다. YH 미디어. 어쩌면 그게 그녀의 영문 이니셜을 그대로 따온 것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첨부된 인스타그램에 메시지와 연락처를 남겼다. 만약 그녀가 아니라고 해도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치부될 것이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나는 지름길을 빠르게 질러 가는 셈이 될 터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바로 답신이 왔다. 내가 다리를 건넌 일행이 멀리서 손짓하는 걸 보고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휴대전화로 문자가 들어온 것이다. 안 그래도 선생님을 한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문맥대로라면 그녀는 이미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건 굉장히 사적인 것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또한 그건 영상 제작사에 대한 내 추리가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빠른 시일 안에 약속을 잡아 만나자고 한 뒤,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정자를 올려다보았다. 오래전에 다녀간 농월정은 그사이 많이 변해 있었다. 화재로 소실되어 최근에 새로 지은 탓에 세월의 더께를 걷어낸 건물에서는 아무런 향취나 낭만이 우러나지 않았다. 작고 소박해서 양반 관료들의 질펀한 술자리보다 시인 묵객이나 처녀 총각의 은밀한 사랑의 장소로 더 어울려 보이던 정자. 거기서 나는 낡은 기둥에 기댄 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희미한 첫사랑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던가, 풀벌레 소리가 짙어 가던 밤 둑방 옆을 지나가다가 흐느끼고 있는 순애를 발견했다. 괜히 쑥스러워할 것 같아 그냥 모른 척 지나치려다, 나도 모르게 발목을 붙들렸다. 애써 슬픔을 억누르느라, 더욱 애잔했던 흐느낌. 그때까지 수없이 마주쳤지만, 한 번도 순애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인기척을 느꼈던지 순애가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일어섰다.
“밤늦게 웬일이야?”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으므로 내가 그렇게 물었다. 서둘러 남아 있던 울음을 삼키는지, 순애의 어깨가 크게 한번 들썩거렸다.
“내가 울면 할머니가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순애는 내가 자신의 모습을 죄다 지켜봤다고 생각했는지, 굳이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처음 주고받은 대화치고는 좀 이상할 수도 있었으나, 맞닥뜨린 상황이 그러니 별수 없었다. 그나마 그동안 수없이 서로를 눈길로 익혀 온 덕에 어색함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네.”
“아니야. 그냥….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들이 왜 내겐 간절한 게 되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해서.”
그 말에 무슨 깊은 사연이 담겨 있는 듯했으나, 그녀의 사정을 잘 모르는 까닭에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순애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저문 강을 굽어봤다. 그러다 다시 설움이 북받치는지, 고개를 높이 들었다.
“나는 아직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됐는데….”
순간 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순애의 눈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안으로 슬픔을 가두고 있는 눈. 그녀를 볼 때마다 까만 눈이 끝도 없이 깊다고만 느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겪었으면 그런 눈을 가졌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순애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고요히 떨리면서 슬픔이 내게로 고스란히 번져 왔다. 나는 온몸이 까닭 모를 비탄에 젖어 드는 걸 느꼈다. 어깨를 두른 팔에 힘을 주자 순애가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간절한 그 무엇이 나를 끌어당겼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내 입이 젖은 그녀의 입술로 다가갔다. 그것이 내 첫 입맞춤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내 첫사랑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순애는 그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영우는 그녀가 어디 멀리 간 것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대신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만약 그날 밤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내가 그녀와 잠시나마 대화를 나눈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흔이 조금 지났을까, 창가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 나는 단박에 그녀가 강연희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채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 옆얼굴이 영락없는 순애의 모습이었다. 연희는 무심히 실내를 둘러보다가 풍경 소리를 울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랑 똑같군.”
차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그 말이 나왔다.
“그런 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어머니는 잘 계시지?”
카페 앞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혹시 순애가 같이 나와 있지 않을지 내심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를 만난다는 게 그렇게 부도덕한 일도 아닌 데다, 딸이라 해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연희를 보고 무슨 달갑지 않은 사정이 있으려니 짐작만 하고 말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돌아가셨어요, 오래전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환갑이 지난 나이이다 보니 주위에 세상을 버린 친구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순애는 여전히 어린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있었으므로 그쪽으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
“어쩌다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뒤, 하나뿐인 저를 키우느라 온갖 일을 다 하셨죠.”
연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방금 한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그때 버스 정류장에서 순애가 안고 있던 애가 틀림없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뜬금없는 말에 내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어차피 할 말이고, 나중에라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덟 살의 예쁜 여공을 그냥 두지 않았으니까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의 작업반장이었고, 그땐 그런 일이 드물지 않던 야만의 시대였으니까요.”
연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설명하듯 자신의 가족사를 늘어놓았는데, 담담한 표정 때문에 오히려 내가 당혹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버지는 결혼식도 없이 어머니를 반강제적으로 집 안에 들어 앉히고, 얼마 있지 않아 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기계에 끌려 들어갔다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산업재해였죠. 지금과 달리 사실혼이라고 해봤자 호적에 올라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우여곡절 끝에 받아낸 보상금이 장례비에 한 일 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머니 앞에 펼쳐진 고생이 눈에 보듯 훤했죠.”
“그럼, 학교는?”
연희가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영상에 나온 그 산업체 부설 학교. 졸업도 못한 거야?”
연희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고개부터 끄덕거렸다.
“한 해뿐이었어요. 제가 뱃속에 들어섰으니, 더는 다닐 수가 없었죠.”
나는 순간, 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한 아이를 가진 미혼모라는 뜻이 되는 셈이다. 그날따라 그녀의 눈이 왜 그토록 아쉬움 가득했는지, 이젠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요. 봉제 공장 보조에, 식당 찬모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빌딩 청소를 하셨으니까요.”
연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순애가 세상이라는 격랑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덧없이 흩어져 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옹기 공방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청자나 백자와 달리 별로 대단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항아리. 하지만 그 제작 과정이 지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불순물을 걸러낸 흙에서 공기를 빼내고 점도를 높이기 위해 수없이 두드리고 펴는 작업을 반복하는가 하면, 생명체를 만들 듯 온 정성을 다해 옹기를 빚어 올리고, 가마 앞에서 밤을 새워 가며 불을 지키는 모습이 얼마나 경건하던지. 늙은 옹기장이는, 그러나 채 원기가 되지 못한 옹기들은 한 치의 미련 없이 죄다 부숴버렸다. 마당을 돌아 나오다가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파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을 터뜨렸다. 문득 도자기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옹기 같은 삶이라도 온전히 완성해 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미처 제 모습을 갖지 못하고 부서져 나뒹구는 이징가미 조각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삶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저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알고…?”
목이 타는지 그녀가 커피잔을 기울였다가 내려놓는 걸 기다려 내가 질문을 던졌다. 형식상 순서가 좀 뒤바뀐 감이 없지 않았으나, 그 물음만큼은 빼놓을 수 없을 터였다.
“어머니가 선생님 책을 가지고 있었어요. 선생님 책만요. 소설이나 영화를 한가한 사람들의 취미 정도로만 여기신 어머니에게는 좀 별스러운 일이었죠. 그래서 뭔가 있구나, 하고 짐작만 하고 있었어요. 사춘기 때 몇 번 물어본 적도 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선생님을 찾아갈 수도 없고. 가슴속에 묻어두고 하릴없이 세월만 흘려보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먼저 연락하신 거예요.”
에둘러 말을 돌리고 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나와 순애의 관계를 단도직입적으로 캐묻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넨 첫사랑을 기억하나?”
“글쎄요. 누구에게든 처음이었던 사랑은 있겠죠. 그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그럴 수 있겠군. 요즘 세상은 다들 그렇다니까. 하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그게 전부였어.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하고, 가슴 저미는 아픔에 괴로워하기도 했지. 비록 한때일지라도 말이야. 네 어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어.”
“첫사랑,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말이네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답게 꽤 극적인 상상을 하고 있었든지, 그녀가 다소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고백이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렸을 때의 짧은 기억이었지만, 네 어머니는 내 삶 속에 계속 살아 있었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혹은 좀 더 나이를 먹거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중년의 여자로 말이야. 내가 쓴 소설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지. 비록 거센 세파에 떠밀려 우린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지만. 한 하늘을 이고 있다는 게 때로는 많은 위안이 되기도 했지. 만약 우리 삶에 그런 추억이 없다면 아마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연희는 그사이 내 말을 되새김질하며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 영상은 어떻게 찾은 거야?”
“아, 그거요? 예전에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시사 프로그램에 당신 모습이 나왔다고.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변변한 사진조차 없었어요. 경황도 없는 데다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닌 탓이죠. 호기심도 들고, 막연한 책임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작정하고 방송국을 뒤져본 거예요. 거기서 수많은 얼굴을 봤어요. 어머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 말이에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은 정작 그런 분들 때문에 유지되는데, 제대로 조명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쓸쓸히 무대에서 퇴장하는 단역배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투리 천들을 짜깁기해서 조각보를 만드는 것처럼, 그들의 삶을 최대한 되살려놓고 싶었어요. 그 때문에 늦은 나이에 영화를 시작한 거예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유독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많아서 단순히 성향이 그런 줄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짓 한다고 핀잔하실지도 모르죠.”
멋쩍게 웃는 연희를 보며, 나는 문득 순애의 미소를 떠올렸다. 허물어진 가마터 근처에서 발견한 이징가미 한 조각 같은 애틋함과 처연함이 거기에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