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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한국문인협회 로고 황보정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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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문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아주 오래 전의 소문도 그랬다. 매사에 시답잖은 구설수로 인해 연결고리는 끊이지가 않았고 한동안 고요함도 많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또 다른 소문에 휩싸여 옥신각신하는 날은 난리법석이 따로 없었다. 그런 과정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으나 심각함이 따를 때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핵심을 분석하자면 어느 시점에서 사건의 실마리는 물거품이었다. 그때처럼 대화 가운데 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던 일이 많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어도 처음은 복잡하였고 그러면서도 나중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신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준의 선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현이 다가와 따져들었다. 집에서도 없었던 말이 와전되는 일이 많았다. 매사에 의논도 못 하고 속상해하는 현이다. 한동안 많은 과정이 지나갔으나 서로의 의중은 무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대출을 받아야 집을 짓겠지. 대출이 아니면 무슨 수로 집을 짓겠어?”
준이 한동안 구상하고 있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신은 아무런 자본도 없는 이 판국에 집을 짓겠다는 거예요? 요즘 인건비가 만만찮을 텐데, 하필 이런 시국에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현의 속상함은 기가 막혀 어리둥절하였다. 이런 사사로움은 밖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준의 일방적인 결정에서는 매번 죽 끓듯 하는 문제가 대다수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현의 생각은 좀처럼 참고가 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준의 일방적인 선택이었으며 현은 늘 불만이 쌓여가는 입장이다. 그는 전혀 여유롭지 못한 성격으로 마음은 몹시 다급한 편이다. 오늘도 처음 보는 길에서 그와의 대화는 일방적인 말이 많았으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떤 문제든 현의 생각은 뒷전이었다. 그런 결단을 무작정 따라나섰던 현으로서는 항상 후회스러웠다.
“날씨가 싸늘한 것이 벌써 겨울이 오려나….”
준은 현의 눈치를 살핀다. 먼 산을 바라보더니 옷매무새를 만지작거리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준의 일방적인 결단으로 인해 현은 습관처럼 주눅 들어 하였다. 오래전에도 그랬듯이 현의 생각은 쉽게 포기만 했을 뿐 준을 따르는 편에 속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에 맞게 길들여져 가는 짐승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그가 마곡사로 함께 가자는 의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여기까지 온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의 선택은 아주 갑자기 이뤄지는 상황이 많았으므로 당연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는 차 시동만 걸면 무작정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그의 생각을 넘볼 수도 없고 상황은 좀처럼 변함이 없었다. 어느 경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목적지는 형편에 따라 바뀌는 일정이 많았다. 그런 기억들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적응이 되어졌다. 그런 까닭에 현의 시선은 사물만 뚫어지게 바라보면 흡족하였다. 여려 군데의 실개천이 모여드는 곳에서 물줄기는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는 듯했다. 울긋불긋한 단풍 빛깔처럼 사람들의 차림새도 울긋불긋한 옷들이 많았다. 준과 함께 한꺼번에 몰려든 인파들 속에서 물결처럼 걷고 있었다.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된 마곡사는 틈틈이 눈여겨볼 곳이기도 했다. 사사로운 감정은 함고하는 쪽으로 결정짓는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둘은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마곡사로 향하는 쪽으로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본당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만 가는 즈음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색색의 단풍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도 보게 되었다.
“여기는 복잡한 느낌이 없어 좋군요.”
현의 느닷없는 말은 바람만 엿듣고 있을 뿐이었다. 준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현의 말은 듣지를 못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어디서 몰려왔는지 길이 미어터지는군….”
준의 음성은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사라졌다. 대다수가 중년들만 모여든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을 닮은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으며 무표정들만 가득이었다. 준의 머릿속은 항상 번뇌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길목을 가던 생각이 복잡하였다. 이런 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시시콜콜한 말들은 인파 속으로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
오래 전의 기억을 여러 사람이 말해 주었다. 이런 이야기는 틈틈이 참고가 되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 찾아가는 일은 하지 못했다. 자식이 태어났어도 출생신고를 직접 못하고 동네 구장을 통해서 부탁을 하는 형편이었다. 그맘때는 동네 구장이라면 한 집 건너 아이가 태어나고 그러면 출생신고를 대신해 주었다. 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은 한 집 건너 이웃은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하였다.
“아재, 오늘 면소에 갈 거요?”
선길은 열흘 전에 아들을 낳았지만 출생신고를 못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아, 자네도 일전에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 자네 닮아 똑똑하지?”
구장의 섣부른 생각은 선길에게 물건 던지듯 말하였다.
“그참, 앞으로 누굴 닮을 것인지는 모르지만 또록또록하게 생겼지요.” 
“아무렴, 이 다음에 큰일을 해낼 거야.”
“보리쌀 삶을 시각에 태어났으니까 시간은 대충 참고로 해주시고요.” 
“아, 그렇게 하지.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준이라고 지었어요.”
“아, 그런가? 그렇게 알고 면소에 가게 되면 신고해 주겠네. 준이라….”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산에 가서 나무 한 짐부터 해 와야 될 것 같아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길은 구장 이씨의 마당에서 자신의 말만 전하고 싸리문을 빠져나갔다. 그는 식솔들을 위해 몹시 분주한 일상이었다. 그의 등에는 지게가 항상 짊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침 친구 만길이 가쁜 숨을 내쉬며 구장 집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니, 만길이! 무슨 일이야?”
선길은 걸음을 멈추며 만길을 반겼다.
“자네야말로 구장 집엔 뭣 하러 왔어?”
만길은 상대의 근황이 궁금할 틈이 없어 보였다.
“자식놈 출생신고를 못해서 아재인데 부탁하고 가는 길일세.” 
“아, 그렇지. 자네도 며칠 전에 애를 낳았다지?”
“자네는 열흘 넘었지 않았나? 아직까지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었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자식 이름을 아직도 못 짓고 있었지 뭐야. 그러니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을 수밖에….”
“아니, 그렇다면 이제야 이름을 지었나 보군. 그래서 출생신고를 아재인데 부탁하려고 왔어?”
“아재랑 의논을 해봐야겠어.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내 머리로는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야.”
“돌림자로 하면 되잖아. 큰놈의 이름이 영수지? 항렬대로라면 수자이니까 근수라고 짓던가 뭐 많잖아.”
“아, 그렇지. 자네 말대로 근수로 해야겠어.”
만길은 걱정을 덜었다는 듯 굳었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난 그렇게 알고 감세.”
만길을 뒤로하고 선길은 바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니, 벌써 갈려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잖아. 햇살이 퍼지면 가도 될 텐데….”
만길은 멀어져 가는 선길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해 안에 두어 짐은 해 와야 할 텐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정했어. 눈여겨둔 곳이라도 있어?”
“어디로 가든 땔감이 흔한 곳이 어디 있겠어. 쉬어감서 하게.” 
“허허허….”
선길은 헛웃음을 치며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분주하였다. 그의 발길은 사람의 발길이 없는 곳을 찾아야 했다. 산 주변은 아침밥만 먹고 나면 누구나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많았다. 그런 때문에 땔감을 하기에는 힘이 들었다. 실줄 같은 산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반들반들한 곳이었다. 마치 신께서 선을 그어 놓은 듯했다. 어느 지점에서 억새라도 한 짐 할 것인지는 살펴보지만 암담한 곳이었다. 그는 좀 더 먼 골짝을 찾아서 갔다. 이웃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는 형편이라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든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곳곳을 살펴야 했다. 좀 더 먼 곳으로 가야 땔감이 있을 정도였다. 아주 먼 곳으로 파고들 참이었다. 길이 끊어진 골짝을 택하였지만 민둥산이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소여물 냄새로 가득한 아침은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각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소여물 삶는 일이 첫 번째 순서였다. 아버지는 마른풀과 볏짚을 골고루 섞어서 소여물을 삶으셨다. 소여물이 삶기면 냄새로 인해 방문 틈으로 파고들었다. 바람이 불면 문풍지 구멍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파고들었다. 준은 여섯 살 나이로 추위에 못 이겨 이불 밑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형제들과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나 먼저 일어나 방문을 열고 고개를 쑥 내밀어 바깥 동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늘은 유리알처럼 파랗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바람이 차가운 날씨였다. 햇볕은 길모퉁이에서 슬며시 파고들 무렵이었다. 쌀쌀한 바람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였다. 준의 움직임이 부산해지자 부엌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녀석들…. 당장 세수부터 하지 않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면 어떡해? 누구야, 냉큼 나오지 못해? 세수부터 해야 될 게 아니야. 계속 게으름만 피울 거야?”
엄마는 부엌문을 밀치며 나오시더니 부지깽이로 마루를 힘껏 내리쳤다. 소리에 놀란 형제들은 당황하여 방문을 열고 우르르 몰려 나가야 했다.
“요 녀석들! 준이 넌 동생들 앞세워서 그럴 거야? 냉큼 가서 세수부터 안 하고 동생들인데 세수하도록 시켰어야지. 너까지 장난질하고 있으면 어떡해. 도대체 뭣 하는 짓거리야….”
준은 엄마의 목소리에 겁먹은 채 마루에서 급히 뛰어내렸다. 뒤따르던 형제들도 신발을 찾아 신기에 정신없었다. 올망졸망한 형제들은 물오른 수박처럼 머리가 닮아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는 가끔씩 겁을 주다시피 하면서도 입가엔 미소를 띠며 지켜보고 있었다.
“요 녀석들이 장차 뭐가 될 녀석들인지….”
엄마는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띠며 살피고 계셨다. 준은 얼음장 같은 물을 대야에 한 됫박 퍼담아 얼굴을 적셨다. 그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다음 순번은 질서에 맞추어 동생들 차지가 되었다. 키순으로 씻던 물은 재사용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몸을 움츠리며 뜀박질을 하면서 순서가 더 늦게 오기를 기다렸다.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물을 길어 나르자면 조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엄마의 계산법이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걸레를 빨아 마루를 닦으셨다.
모두가 둥근 밥상 앞에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형제들의 수저가 양푼그릇에 서로 부딪칠 때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런 상황은 더 먹기 위한 수단이었다. 서로의 눈치작전은 지속적이었으며 엄마의 눈길은 형제들의 동작에만 주시하고 있었다. 구수한 된장국이 거덜나고 수북이 담겼던 양푼의 밥알도 한 톨 없었다. 이런 경우는 허다한 풍경이었다.
“그릇까지 씹어 먹을 것 같아. 다 먹었으면 나가서 놀아라.”
엄마는 소란스런 방 안을 청소하기 위함이 컸다. 형제들이 날렵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문을 밀치고 나서는 동작은 물결 같았다. 단지 뒤떨어지는 동작은 막내였다. 그런 뒷정리는 물론 준이의 몫이기도 했다. 동생이 우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사전에 방어를 해야 되는 의무감도 따랐다. 형제들은 사고뭉치나 다름없었다. 하루 일정은 어제와 똑같이 일정한 놀이가 반복되었다. 정자나무가 있는 곳에서 동네 아이들과 뭉쳐 말타기를 하거나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온종일 하루하루가 반복적이면서도 지나온 일은 중요치가 않았다. 항상 이어지는 일이지만 하루하루가 부산한 놀이였다. 엄마는 설거지가 끝나면 호미부터 챙겼다. 품앗이를 해야 하는 일에 동참하며 바빴다. 물론 할아버지도 동생들을 챙기는 일에 앞장서셔야 했다. 중참 시각이 되면 집에 있는 수저를 챙겨 들고 판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막내를 등에 업고 엄마가 품앗이로 일하는 논으로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음식이 따로 있었다. 막걸리를 최고로 여기셨고 밥은 나중이었다. 이런 날은 엄마의 몫이 줄어져야 했다. 막내를 젖먹이고 밥을 가져 나르는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다.
“준이는 집에 남아서 동생들하고 있지 왜 따라 왔어?”
이웃의 눈치를 살피던 엄마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준이의 대답은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심 웃지도 않고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별한 음식을 자식에게 먹인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기도 했다. 논가에서 먹는 풍경은 밥 냄새가 좋았고 감자조림이 맛났다. 이런 날은 할아버지 뒤만 따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
용식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창가에 나와 세상 보기를 포기한 채 고양이의 움직임만 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에게는 아주 특이한 일상이 반복되는 삶이었다. 온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욕심을 내서도 안 되는 운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햇살을 반기는 듯 움직였다. 햇살은 어제와 같은 시각에 거실을 데우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항상 굳어 있었고 웃음을 짓지 못했다. 그는 11월을 하루 남기고 있는 달력을 살폈다. 그의 몸은 지천명을 넘겼으나 일상은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산소 호흡기를 얼굴에 봉착한 후 숨을 쉬며 잠을 잤다. 오전 내내 수면에 취해 있었고 피곤함이 많았다. 그는 점심 시각이 되면 겨우 일어났다. 몸의 일부는 언어 장애와 손가락이 뒤틀려 있었으며 앉은뱅이 의자를 의지하며 움직였다.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며 햇살이 퍼지는 날에는 거실에 나와 있는 날이 많았다. 그의 눈동자는 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상황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부실하였으나 햇볕은 반가웠다. 누나와 엄마를 챙기는 걱정이 많은 장남이었다.
“어머, 용식 씨!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요?”
현이 용식의 안색을 살피며 식탁을 닦았다.
“선생님, 좀 있다 식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용식은 겨우 말을 꺼내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눈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쩌지 못하여 우울증까지 겪고 있었다. 이런 날은 간혹 선 여사가 용희의 케어를 지켜보다가 짬짬이 용식을 차에 싣고 드라이브를 나섰다. 그런 날에는 용식의 우울증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녀의 배려가 있고부터 용식은 고속도로를 달리면 얼굴빛이 밝았다. 골바람이 부는 날에도 용식을 위한 나들이가 종종 있었다.
“용식 씨, 속이 편찮으세요?”
현은 용식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표정을 살폈다.
“소화가 되지 않아요.”
용식은 발음이 어눌한 상태로 자신의 증세를 말하였다.
“그래요? 그럼 죽이라도 쑤어야겠군요?”
현은 간병인으로서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현의 대상자는 용식의 모친이 대상자이지만 용식까지 살펴야 할 처지였다. 물론 누나인 용희도 누워만 있는 형편이지만 틈틈이 용식을 살피는 일을 해야 했다. 용희는 컨디션이 좋으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소통을 하는 편리함을 갖고 있었다. 현을 비롯한 또 다른 간병인과의 대화는 카카오 톡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화법이었다. 휴대폰에 깔린 앱을 이용해 상대와 대화를 하는 기법을 쓰고 있었다. 용희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음성 메시지로 용건을 묻기도 한다. 그녀는 말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데 정상인 사람과는 달랐다.
“석션! 석션!”
용희는 톡으로 위급함을 밝혔다. 현을 급히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네, 곧 가요.”
현은 주방에서 죽을 쑤다가 황급히 달려갔다. 용희는 눈동자가 흐려지면서 숨이 차기 시작하는 찰나였다. 목구멍에서 가래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어 힘들어하였다. 그 순간 현은 용희의 상태를 살피며 응급 처치를 해야 했다. 큰 병원에서 용희의 목은 기관절개관을 통해 기관지 내의 가래와 같은 분비물을 고무 호스로 제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가래가 제거되자 힘들어했던 용희의 눈동자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듯 보였다. 그녀의 얼굴빛은 금방 화색이 돋았고 사방을 살피는 여유가 있었다.
“괜찮아요?”
현이 급히 상태를 살피며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용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은 햇살이 거실까지 찾아와서 놀아주고 있군요.”
현이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용희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하였다. 
용희는 눈동자를 감추며 웃는 시늉을 했다. 동생 용식이 창가에 앉아 어딘가를 향해 살피더니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매는 언어로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표정을 살피며 대화를 나누었다. 현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할 때가 많았다. 사람마다 곡절을 안고 산다지만 이들은 특별한 경우였다. 특히 용희는 보면 볼수록 애틋함이 더했다. 벽면에 걸린 용희의 그림을 지켜보며 재능이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면에 있는 그림이 용희의 그림이라고 했을 때 너무 의아했다. 어떻게 저런 재주가 숨어 있는지 그녀의 엄마를 통해 이유를 물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렸던 그림이죠.”
김 여사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딸의 재주를 자랑하였다.
“정말 놀라운 솜씨군요. 전시회라도 해보았을까요?”
현의 물음에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 많았던 그림을 이리저리 나눠주고 이제는 저것만 남아 있어요.”
그녀는 벽을 힐끗거리며 말을 줄였다.
“그렇군요. 아까운 재주를 썩히고 있으니 안타깝군요.”
현은 용희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더니 표정을 감추고 만다. 용희는 손가락이 뒤틀리고 남다른 운명을 갖고 있었다. 남들처럼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기가 어려워 영양공급을 위해 삽입을 시켜 먹이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이런 그녀가 손가락이 마비가 온 후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 형편에 목에는 가래를 제거하는 구멍이 있고 배꼽 부위 일부에서는 위루관을 설치하여 죽을 밀어 넣어 준다고 한다. 그녀는 시간에 맞추어 허기를 채우는 기능으로 살아가는 여자였다.
“어쩜, 저렇게라도 살아가야 한다면 어쩌겠어. 정말 안타까워 못 보겠어.”
현은 혼자서도 중얼거렸다. 용희의 모습이 안타까워 그녀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자신도 모르게 상황을 되뇌고 있었다.
“저렇게라도 살아가는 운명이라니….”
현은 용희가 방으로 겨우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 용희를 케어하기 위해 출근한 선 여사를 보았을 때 안심이 되어 숨을 크게 내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용희와 대화는 하지 못하지만 넋두리하듯 읊조렸다.
“남매는 착하고 영리한데 편마비 엄마라는 사람은 왜 저럴까….”
현은 아침에도 그랬지만 김 여사의 행동은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 이런 가정에 후원을 많이 하는지 반찬을 정성들여 차려 놓았어도 먹기가 싫다며 버리라고 앙탈이다.
“맛없는 이런 반찬은 왜 했어, 다 버려요.”
김 여사는 신경질적으로 식탁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해대었다. 이런 모습에 함께 밥을 먹고 있던 용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은 정성껏 마련한 반찬을 두고 까다로운 행위가 못마땅하여 속이 상해서 대꾸하였다.
“아니, 돈 주고 산 것을 왜 버리라고 할까요? 어느 집 재벌집이나 되는 가정도 아니면서 음식 귀한 줄을 모르시네. 옛날 같았으면 이런 대접은 못 받지. 버리긴 왜 버려요? 그러고 한국 음식이 그래요. 마땅한 음식이 어디 있다고…. 걸핏하면 버리라고 하시니 정말 왜 이러실까?”
현이 소리치며 핀잔을 주자 김 여사는 숨도 쉬지 않고 토라져 있었다. 아들 용식은 얼굴을 들 수 없다는 듯 금붕어처럼 눈만 끔벅였다. 애들 편식하듯 짜증스런 모습을 밥 먹듯 하는 김 여사다. 자식들은 영리하고 착한데 저런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어디 하나 변변찮은 구석이 없는 사람이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을까 싶어 이해가 되지 않아 현은 종종 속상함이 따랐다.
“특별나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리 말해 줘요. 선 여사가 출근하는 시간에 마트에서 재료를 사오라고 하게요.”
“그래 봐야 그게 그 반찬이지. 사기는 뭣 하러 사와.”
김 여사는 화가 덜 풀렸다는 것인지 음성이 날카로웠다.
“적당히 하시고 드세요. 애들도 아니고 어른답지 못해요.”
현은 미운 감정이 풀리지 않아 참았던 말을 겨우 한다. 법원에서도 쓰인다는 용어지만 김 여사는 가끔 갑질을 일삼았다. 자신과 자식들로 인해서 돈을 벌어 간다는 것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하였다. 이런 행태를 지켜보던 현도 맞대응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잇따랐다. 김 여사의 집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몇몇은 아부를 하려는 간사함도 있었다.
“일은 안 하고 시간만 때우고 있으니…, 종일 뭐하고 있는지…. 해놓은 건 하나도 없고 뭣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김 여사는 거실에서만 앉아 있는데 주방에서 뭘 하는지는 처음서부터 모르는 처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만이 가득하였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면서 꼬투리를 잡을 일만 궁리 중이다.
“정말 참다 참다 못 듣겠네. 왜 이러세요?”
현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소리쳤다. 반찬 한 가지를 해도 여러 양념들과 그릇들이 즐비한 상태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완성된 반찬을 그릇에 담고 흩어진 그릇을 정리하자면 설거지 용도가 엄청 많았다.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용식이 보다 못해 김 여사를 주의 주는 듯했다. 어눌한 말은 누가 들어도 듣지를 못한다. 그런데 김 여사는 아들의 말을 잘 듣고 넘겼다.
“시내서 이런 시골까지 왕래하기가 쉬운 거리인 줄 아세요? 왜 이러세요? 여기 아니면 일할 데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우리가 아닌 말로 봉사정신으로 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니고 있는데 정말 손 놓고 관둬볼까요?”
현의 다그침에 김 여사는 숨도 쉬지 않고 있었지만 용식의 한마디가 효과를 본다는 것은 당연했다. 이를테면 현의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 여사는 성격의 변화가 요지부동이다. 생각의 깊이가 얕아 냄비 현상이 다분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간병인들은 김 여사에게 아부를 하거나 갑질의 원인을 하도록 빌미를 제공한다.

 

*
현은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셨다. 가을은 커피의 진중한 맛을 음미하기에 좋았다. 거실에 앉아 베란다 쪽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게 된다. 은행잎은 작년처럼 짙은 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럴 때 준과도 마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그는 커피를 거부하는 성격이다. 조금이라도 현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였다. 그는 이런 현의 기분을 모른 척 엉뚱함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기분에 따라서 조금씩 음미하는 정도는 좋겠다고 하였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다는 입장이다. 어쩌다 바다를 볼 수 있는 한적한 카페에서도 그랬다. 주문한 라떼는 머그잔이 넘칠까 말까 할 정도로 용량을 많게 준다며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음은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라는 것을 쉽게 설명하지만 불만이다. ‘어쩜 이렇게 많은 양을 마시라고 하는지…’ 결국 라떼는 남기고 말았음을 기억한다.
“오늘은 어디로 가 볼까….”
준은 느닷없이 일정을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생각을 불쑥 꺼낸다.
“목적지도 없이 왜 그래요?”
현은 짜증스런 기분이 들어 준을 마주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준의 성격은 항상 일방통행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현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살았다. 그래서 현의 기분은 더욱 난처할 때가 많다. 현은 항상 혼자서 자신의 기분을 달래는 쪽이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말을 멈추면 한참 동안 침묵이 따른다. 준과는 대화의 요지가 없는 것이 문제가 되는 때가 많았다. 그런 문제가 따르자 현이 혼자서 마당으로 나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느낀다. 가을이 저물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시들어진 꽃대를 뽑고 있었다. 한여름의 작물은 꽃도 그렇지만 성장하기는 어려운 날씨였다. 그렇지만 가을 마당은 꽃이 많아 좋았다. 메리골드가 만발하고 그 사이로 국화꽃이 바람결에 향을 뿜어주고 있었다. 여름은 피부가 따갑도록 강했던 햇볕이었으나 가을이 되어 꽃은 강한 향을 뿜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예쁜 꽃이 있어 다행이야.”
현은 혼자서도 상상의 깊이가 다분하다고 여기며 중얼거린다. 이런 절호의 찬스는 그동안의 불만이 치유되는 것이라 여긴다. 가슴에 담은 불만은 가득했어도 자리를 옮기면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어디서든 내 살길을 찾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것이지만 난 내 마음을 잘 알지. 나 스스로 이렇게라도 치유를 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현은 이렇게라도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담장을 기둥 삼아 오래된 대봉나무는 잎만 무성하여 제 역할을 다한 탓인지 마당 한 귀퉁이로 쌓여 있었다. 현은 이런 절호의 기회가 흡족했다. 적당한 소쿠리를 가져와 손으로도 주섬주섬 긁어모을 수 있었다. 해마다 대봉감 뿌리 부분에 쌓아두면 밑거름이 되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수 있도록 영양제 역할이 된다.
“올해도 두 접이나 땄으니 효자 역할을 한 거야.”
현은 대봉감 나무를 바라보며 감사함을 전했다. 주변에 찾아오는 이가 없어도 대화의 창은 많았다. 준이 피해 마당에 나오면 즐거운 안식처가 된다.
“혼자서 뭘 하는 거야?”
준이 갑갑한 탓이었는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현의 꿍꿍이를 파악한 때문인지 표정을 살피는 듯했다. 그는 분명 자신을 흉보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뭐하긴! 눈이 있으면 봐요. 바람결에 구석구석이 나뭇잎이구만. 당신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좀 치워 봐요.”
현은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뭐 얼마나 된다고….”
준은 현의 일을 하찮게 여겼는지 대문을 나섰다.
“쳇, 그런다고 따라나설 나도 아니지. 하기 싫음 말고….”
현은 화를 발끈 내었다. 그러잖아도 진지한 대화를 거부하는 저 남자가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차라리 계절마다 색색의 조화로 꽃을 피워주었던 꽃나무를 정리하는 것이 화를 치유하는 일이라 여긴다.

 

*
골바람이 불고 해가 지더니 겨울은 어둠이 빨랐다. 온종일 무슨 일을 하면서 보냈던지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동안 얼마나 긴 시간을 이렇게 하며 살아왔을까…. 얼굴에서 나른함이 있었지만 온갖 생각을 해본다. 허송세월을 보내다 불현듯 겨울이 닥쳤다. 얼굴을 스치고 가는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그렇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생각하기조차 여의치 못한 삶이었지만 이 또한 모든 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사춘기 시절을 못 버리고 있군?”
준은 느닷없이 현의 기분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 그만 좀 내버려둬요. 요즘 같아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사춘기가 아니면 뭐야? 갱년기라도 찾아왔어? 무슨 내용을 알아야 간섭을 하든 말든 하지.”
“그냥 냅둬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현의 대답은 매몰차기만 했다. 최근에는 자꾸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식은땀이 났다. 어떤 간섭도 자신을 위할 것 같지가 않았다. 어디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준의 행동은 현을 위한 일이라면 집을 나서고 싶어 하였다.
“그러지 말고 마곡사나 다녀오면 어떨까?”
준은 현의 기분을 확인하고는 무조건 집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현의 표정은 그대로다. 어떻게 구슬려야 할지 고민이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
현은 기분이 무거웠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꾸 처지면 어떻게 해. 그렇게 살다간 우울증이 온다고 하잖아. 아무 소리 말고 당장 나갈 차비나 해.”
“싫다니까 왜 자꾸 그래요?”
현의 목소리는 나무토막 갈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준은 힘껏 현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현관문을 밀치고 나섰다. 현은 준의 힘에는 감당이 어려웠다. 어디를 가든 준을 따라 나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준은 차에 시동을 걸더니 쏜살같이 달렸다. 아무런 방어가 필요치 않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감당이 어려워 힘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눈의 초점은 없었다.
“드라이브나 하면 기분이 풀리잖아. 무슨 고민을 혼자서 하고 있어. 기분 풀어.”
준은 단순 명료한 말만 하더니 말이 없었다.
“자꾸 짜증이 나고 온몸에서 땀이 쏟는 것 같아요.”
“왜 그렇지? 그럼 병원에라도 가보든가?”
준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의사의 처방이 해결책이라 여겼다. 들판은 황량한 기운만 감돌았다. 사람들과 트랙터만 오고가던 자리가 휑하였다. 콤바인으로 타작을 하던 자리는 알곡이 떨어진 곳이 많았던지 새들이 오르내리며 만찬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한꺼번에 몰려와 한꺼번에 하늘을 치솟는 곡예를 하고 있었다. 저런 풍광이 새롭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저 새들을 좀 봐! 장관이 따로 없군.”
준은 새의 무리를 보며 환호성을 지었다. 저런 광경에 깊이 빠진 나머지 복잡한 기운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준의 눈길은 현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은 아무것도 내세울 수가 없는 형편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과한 욕심은 하지 않는데 마음만 앞서갔다.
“군무는 정말 장관이야. 저 무리들을 보면 생동감이 넘쳐 보여.”
준은 현에게 말을 해보라는 뜻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도 현의 표정은 그대로다. 그는 평평한 길에서 사람들의 어깨를 스치며 갔다.
“잎은 떨어졌지만 앙상한 나무만 보아도 괜찮지?”
준은 대답 없는 현에게 자꾸 말을 건네기도 한다.
“조용히 가시죠?”
현은 정색을 하며 준에게 충고하듯 한다.
“사람 참, 뭔 말을 못하게 하는군!”
준은 힐끔거리며 현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을 아꼈다.
“이제 살 것 같아….”
현은 느닷없이 말문을 열었다. 평소처럼 감성이 풍성하던 탓인지 기운이 났다. 주변은 맑은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현의 기분은 복잡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일상의 흐름이란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마곡사는 그야말로 조용한 곳이었다.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들이는 특별한 장소였다. 소소한 곳을 눈여겨보다가 아름다운 숲길이 보이는 곳을 따라 걸었다. 큰 마당에 들어서니 새삼 느끼는 충동은 없었으나 여유로움이 더했다. 마곡사는 평평한 길이 좋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방이 고요하고 새들의 지저귐만 왁자하다.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내심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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