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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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속의 새라도 종달새는 종달새다
—피천득, 「종달새」
자아라는 말을 목울대 속에서 웅얼거리며 승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통상의 자아(自我)가 아니다. 인싸(인사이더)의 반대말, 적극적인 반대말로서 내놓았다. 그냥 반대말은 아싸(아웃사이더)이겠지만, 자발적 아싸인 점을 들어서 자아(싸)라고 명명한다. 모태솔로인 그가 핵인싸에 대항하는 뜻으로 지어낸 말이랄까.
어째 박사까정 하고 대학교 선생이랑 한담시롱 장가를 안 드남. 자석을 낳아놔야 산소 감시롱도 떳떳할 것 아녀라우.
냅두쇼이, 나가 얼만디….
나 묵었다고 어메가 이라고 태평인께로 여태꺼정 여자 한나 안 데꼬 오제라. 우리 광식이넌….
광식어머니가 와 계셨다. 입만 열면 승욱 걱정으로 도리어 승욱어머니를 괴롭힌다. 애당초 누군가 괴로워할 마음을 헤아리는 분이 아니다. 만취한 광식아버지 성정을 돋우는 데도 한몫하시곤 했다고. 그러고는, 오메 나 죽겄네, 두어 집 건너 승욱네 마당으로 애들을 끌고 도망오시곤 했다고. 동네에서 그리들 수군거렸다.
40이 넘고 50이 넘고 그러고도 혼자면 동서남북에서 걱정을 듣는다. 승욱네 마을에서야 더욱 그렇다. 공부 열심히 해서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장이 되어 처자식 잘 먹여 살리는 능력을 갖추어야 그것이 한국 남자에게 주어진 근본이요 원칙이요 시금석이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가톨릭 아닌 성서공회 본으로는 조금 다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처음 태초부터 창조되어서 있었던, 있어온 수많은 것들, 그중에서도 수많은 가르침들은 무궁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무엇보다도 신의 가르침! 이어지는 부모의 가르침, 학교의 가르침, 사회의 가르침… 그 가르침들은 타부요, 시금석이다. 그러니까 태초에 시금석이 있었다. 현생 인류의 역사의 시작점부터, 약 19만 5천 년 전부터.
그 위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온갖 장면에서 시금석은 점점 더해지고 어려워진다. 요즘에는 인싸의 최소조건에 외모의 매력까지도 포함된다. 남자라면, 능력으로 잘 나가면서도 외모도 멋진 사람!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주변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어야 사람이다. 그중 모두에게 무의식적으로 지배되는 특성, 오, 여성에게 어필! 어쩌면 그것이 전부이다.
울 아들 우량아대회 나갈 만하네! 신생아 몸무게부터 시작된 경쟁, 경쟁이 밥 먹여준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그래, 큰 야망을! 그런 포부로 자라서 유능인들 또는 선생님들이 되셨다. 그런 어른들에게서 배운 앰비션 2세대들은 두 배, 세 배, 수십, 수백 배의 압박에서 자랐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봐라, 앞집 옆집 갑수 을수 병수를 보라고! 부모들은 그렇게 아들들을 다그쳤다. 그다음 팔꿈치세대는 더 끔찍했다. 팔꿈치사회(Ellenbogengesellschaft)라는 독일어는 승욱이 제대 후 복학을 미루다가 도망쳤던 독일에서 배운 요상한 단어이다.
이를테면 앰비션세대는 자신의 꿈을 세로로만 무한정 높이면 되었다. 팔꿈치세대는 그것에 더해서 두 팔꿈치로 옆 사람의 꿈들을 찍어내리누르면서 가로마저 확보해야 했다. 하늘 뾰쪽한 높이로는 부족했고, 거기에 넓은 바다 면적까지 차지해야 했다. 그러니 인싸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아닌가. 하늘에 별이라니! ‘창백한 작은 점’에서 어찌 감히 우주의 별들을!
팔꿈치사회, 경쟁사회, 무서운 외로운 사회다. 일찌감치 수학을 잘 못하는 수못자가 수포자로 불리고, 수포자는 이중 의미가 된다. 수학에 이어 수능까지 포기한 아싸. 턱걸이로 어찌 대학은 들어갔다 해도 갈 길은 아득했다. 스카이(SKY)는 아니더라도 인(in)서울은 다녀야 사람이더라. 그냥 대졸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이토록 능력도 맘대로 안 되는 것을, 외모까지는 또 어쩌라고! 키‘도’ 크다-예전부터도 그것이 최고라 했다. 화려한 스펙만으로는 여성들 눈높이에 어림도 없다. 키를 못 키우니 얼굴이라도 눈높이로! 군필 복학생, 안면미용수술 중에 피가 온통 소실되어 죽어나간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실제로 있었다. 와우, 수술실의 피범벅 밀걸레가 뉴스 화면을 붉게 채웠다. 평소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살고 싶었다던 그의 이름을 딴 ㄱ**법이 생겼다. 수술실 CCTV의무법, 그런 이름의 법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 세상은 아이러니의 뒤범벅이다.
포기해야 할 것들은 쌓여만 간다. 자존심 완전 깨지기 전에 인싸 포기! 새로운 유행어 인셀(Incel)이 등장한 지도 오래다.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라나. 토론토였던가, 시내 번화가에서 렌트 차량으로 무차별 살상을 저지른 범인은 범행 전 페이스북에 인셀들의 반란 시작을 알려 소동이 났다. 그때 10여 명 사망자 등 희생자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왜 하필 여성들을?
여성을 동경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성에 다가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다 다른 곳 그 섬이 인셀의 자리란다. 증오범죄가 폭발한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동서고금이 마찬가지 소리 같네. 그렇다고 여성을 대량 살상하면 기회가 더욱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이미 이론적으로 접근할 단계를 넘었다.
잘 나가던 오 대위가 왜 죽었겄어.
쉿, 누가 듣겄네이. 쌩으로 엎어분 가시내의 원한 아니겄어!
승욱이 어렸을 때 집안에 어른들이 북적거리던 어느 날 듣게 된 무서운 말이었다. 더 커서 그 뜻을 알게 되고는 정말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월남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먼 친척에 관한 해괴한 뒷말. 그도 그럴 것이 남녀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일제 말에, 둘을 키우면 동티 난다고(?) 여아를 엎어버렸으니 그 한이 끝내….
우리나라의 성비 부조화는 그토록 뿌리 깊었던 남아선호사상이 범인 맞다. 거기다가 80, 90년대에 폭발적으로 발전한 의료기술, 초음파기술이 못쓰게 쓰였다. 이미 성별을 갖춘, 단순한 핏덩이 뭉치가 아닌 한 인간을 버리는 기술. 잔인한, 최소한 박절한(!) 선택이었다.
어이, 노 교수, 울 엄니 고만 성가시게 해라이. 니 장가 안 가는 걸 인자 내 탓까지 허신다. 친구람서 승욱이 왜 그래 놔두냐고! 남녀 성비인가 뭔가, 쉽게 10명과 12명이라 한들, 한참 돋보이시는 교수님 아녀!
교수는 무슨. 계약직 신세구만. 뒷부분은 숨은 말이다.
물려받은 집안 살림을 봐, 똥그라미가 몇 개냐고! 안죽 자석 세대까정은 암 꺽정 없겠다. 말하고 본께 웃기구만이. 없는 자석을 두고 무신. 암튼 뭣이 모지란디. 허우대도 멀쩡허고, 이 몸짱한테야 비할 수는 없제마는.
숫자놀음 그만 두쇼이, 소방공무원 나으리.
말은 그리하면서도 광식한테는 조금 미안한 느낌도 있다. 아버지 술버릇에 승욱네로 도망쳐오던 것도 그렇지만, 광식네는 사실 좀 힘겨운 형편으로 살아낸 때문이었다.
내가라우, 광식이 저거 안죽 젖멕일 때, 시상에, 데꼬 나가서 큰 낭구에다 띠로 묶어놓고 종일 일했어도 쌀 한 됫박 받었어라. 그때 받어묵은 일당이 새삼 눈물나요. 시방은 일만 나가문 하루 10만원잉께, 쌀로 치문 40키로 한 가마 값 아닌감. 근디 아까와 죽겄어라우.
아깝다니 뭔….
광식이 갸가 알문, 엄니 시방도 일 나간다고 난리낭께 못 허제라. 소방관이란 것이 낮에도 쉬는 날도 많아갖고 불쑥불쑥 들링께로. 내가 좀 이 쑤신당께라.
한번은 마루 끝에서 어머니랑 참외를 깎던 광식어머니의 말씀이셨다. 광식아버지가 지병으로 떠나신 뒤에는 자주 집에 오셔서 옛날이야기를 나누신다. 참외 먹으라 기어코 불러세워서 마루에 앉았다가 듣게 된 말이었다. 광식이 빨리 독립하여 장가를 간 배경에는 괜찮은 가정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강했을 터. 광식은 폼내고 잘 살아야 했다. 멋모르고 멍하니 살아온 내가 두 어머니들의 걱정거리가 된 편이 낫네, 승욱은 생각했다.
어머니 또한 쉽지 않았다. 승욱에게는 오직 또 하나의 다른 인간인 어머니가 산이고 바위였다. 아버지는 다만 까끌한 감촉으로만 남아 있었을 뿐, 실체가 없었다. 세상을 출입한다는 것은 미사포를 쓴 어머니를 따라다니는 것. 그 시절부터 그는 큰 산에 가려서 밖을 바라보지 못했다. 바깥세상을 몰랐다.
어머니의 얼굴은 미사포 아래서 가장 예뻤다. 성당 가는 날은 즐거운 날이었다. 오, 투틸로! 신부님이 승욱에게 인사를 건네주시면 어머니의 얼굴은 더욱 빛났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마음을 드높이….
마음이 어디일까 어떻게 드높일까.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성당의 시간들에 승욱은 묶였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두꺼운 사전에서 찾아본 것은 중학생일 때였다. 국어선생님한테 사전찾기를 배운 뒤였다. 성(聖)스럽고 위대(偉大)하다.-아차! ‘성스럽다’는? 거룩하고 고결하여 엄숙하다.-‘고결하다’? 성품이 고상하고 순결하다. 지조(志操)가 높고 깨끗하다.-‘지조’? 지켜 바꾸지 않는 지향(志向). 굳은 지기(志氣). 승욱이 태어난 이듬해 10판째 발행된 『국어대사전』이었다. 100쪽이 넘는 부록 빼고도 3,300쪽이니 들기도 펼치기도 어려웠지만, 설명이 더 어려웠다. 사전도 세월 따라 바뀌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컴에서 보며, 설명도 쉬운 말로 변했다. ‘거룩하다’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로 간단하다. 이상하게 성스럽다는 말은 빠져 있다.
아무튼 거룩한 성당도 큰 산이었다. 성당과 신부님은 근본이자 본보기이자 순명의 대상이었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은 큰 산들이었다. 그 너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바위산들. 피드백의 원천이었다.
한동안은 국민교육헌장이 그것이었다. 그 시시한 그것이. 승욱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포되었다는 그것의 위력은 70, 80년대에는 절대적이었다. 393자 그것을 못 외우냐! 선생님들은 393자도 못 외우는 아이들을 완전 멍청이 취급하셨다. 선생님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우고 계셨을까. 그때는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못 믿는다, 외람되게도. 안으로 자주독립… 좋아. 밖으로 인류 공영에… 공영이 뭘까.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자유란 권리란 무엇일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앵무새가 되어 잘 외우면 그만이었다.
자라면서 동급생 친구들과 그 나름 관계가 설정되면서는 시금석 외에도 뭔가 서열이 생겨났다. 보이는 보이지 않은 서열도 그 나름 산이었다. 아이들은 어떻든 서열의 윗수를 차지하고 싶어했다. 성적 순위의 서열이야 모두가 인정하고 감수하지만, 숫자로 보이지 않은 서열은 좀 달랐다. 우선 인기 좋은 녀석들이다. 생긴 것이 훤칠하거나 말끔한 옷을 입고 용돈을 제법 쓰는 것 같은. 그러나 이 모두를 제압하는 주먹이 훨씬 센 아이들. 이상하게 작은 패거리들도 생겨났다. 어디든 패거리에 들지 않으면 슬슬 위태로워졌다. 승욱은 어쩌다 보니 외톨이는 면했다. 다부진 광식의 건너 이웃집 친구인 것이 한몫을 했다. 한편 힘센 쪽 아이들은 그 나름 기본이 있기도 했다. 성적 좋은 애들은 ‘머저리 병신’이지만 봐준다거나, 그랬다. 어디든 기본이나 원칙 같은 것들이 있었다.
노승욱, 노 교수, 모태솔로, 연애도 안 하냐! 여친도 없냐고!
광식은 한참 일찍부터 어른인 척했다.
승욱이 니도 비혼주의 그런 거여? 고상한 척 말거라이. 성인 남녀의 가족건강성은 결혼일 때 높다 하더라.
가족 건강성? 너 뭐 전공 공부 새로 시작했어?
가족 간의 유대며 의사소통이 건강한 삶을 이끌어 낸다고. 요즘 소방관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적인 사고들 많잖여. 아무튼가 성인 남녀는, 성체가 된 동물 모두는 성을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여.
뭐야, 그럼. 내가 비정상이란 말이냐!
승욱은 대꾸하다가 놀랐다. 비정상이라니, 절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다. 다만 욕구의 과소며 방향 그런 것들에서 사뭇 다른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전통 가족관을 통째로 거부하는 그런 것도 아닌데. 그는 사실 무엇인가를 노예도덕이라고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할 위인도 아니다. 광식에게 쩔쩔매는 자신이 못났을 뿐이다. 하긴 광식은 소꼽친구라고는 해도 가끔 벽창호다.
모태 소리 그만 좀 해라! 살다 보니 그러는 걸 가지고. 이보쇼, 공무원님, 비정규직 그만 놀리쇼. 누가 비정규직한테 시집 온다더냐! 저도 여친 홀리려고 취직 시험부텀 봤으면서.
허기사. 월급 꼬박꼬박 들어가는 통장 틀어쥐고도 눈을 흘기는 것이 각신디. 참말로 이쁜께 봐주제만, 못 살겄다 싶을 때가 없간디. 이왕지사, 너는 누가 시키는 대로 살지는 말어라이. 광식이 말을 바꿨다.
누가 시키는 대로-누가, 무언가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은 기혼, 미혼, 비혼이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광식이 언젠가 승욱의 37㎡ 오피스텔 방에서 뭉개고 갔던 밤이 떠올랐다. 광식은 깜짝 놀랄 말을 했었다. 1박 자유부부 해주란다, 생일 선물로! -자유부부? -엉, 하룻밤 멋대로 놀다 오겠다고. 애들은 친정엄마한테 맡겨놓고. 나더러도 자유부부 좀 하래! 환장하겄다. 자유가 그리도 웃기게 쓰이고 있었다. 멀쩡한 부부 사이에. 전통적인 시금석대로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들 낳고 잘 살아가는 부부의 입에서. 시금석은 정직하게 말하면 없었다. 시금석의 허울뿐이었다.
지천명(知天命)이라고 불릴 나이에 오히려 천명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어떤 시금석에서의 분리, 큰 의미로는 도덕·부도덕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거리를 두겠다. 도덕 그 의미라야 여러 가지 지킬 도리들을 이렇게 저렇게 뭉뚱그려 놓은 것들인데 뭐.
첫 번째는 ‘너무나 종교적인’ 인간들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된 신앙적 냉담이었다. 속마음은 그렇다 해도 처신은 물론 잘하고 살아왔다. 고향집에 있을 때면 어머니 모시고 성당 나가기, 신부님 존경하기. 존경은 신앙과 관계없이 당연한 것이었다. 어쩌면 신부님은, 다음 다음 신부님들은 그의 냉담을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른다. 고해성사와 그에 따른 보속, 그것에서 멀어진 사람은 냉담자다, 뭐 그런. 신부님들은 아셨을 것이다.
삶을 되돌아보아도 그랬다. 집에서는 당연히 어머니의 말씀이 시금석이었다.
뛰지 마라이, 다칠라. 괜찮아, 투틸로, 욱아, 우리 승욱이, 이쪽으로 뛰어와 봐!
이리 와 씻자, 씻거야 깨끗하고 이쁘고 건강하지야.
그만 울어, 뚝! 투틸로, 울면 여자애라 놀림받는다아!
승욱은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눈물도 숨겼다. 여자애는 싫었다. 여자애가 아니니까.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다른가. 승욱이 가까이에서 아는 여자는 어머니밖에 없었다. 키도 작고 몸도 작고 목소리도 작다. 조용하고 또 조용했다. 하지만, 여자애, 그때는 아직 이름도 몰랐던 연두를 너무 가까이에서 만난 순간의 놀라움, 충격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 멈춘 간지러운 머리카락이나 팔에 돋은 솜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잠시 내려앉았던 그 뭉클한 것, 그것은 난생처음의 감각이었다. 벤치에 그대로 뉘인 채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감추고 싶었다. 어떻게 그런 풍성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 강렬한… 어떤 단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그 감각은 살 떨리는 무엇이었다. 승욱이 어렴풋이 지녔던 고정관념,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벗어나는 무엇이었다.
따지고 보면 승욱이 애초에 둔감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라면 봄을 의식한 신체의 어떤 태도일 텐데, 봄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다고 말해야 하니까. 이상형을 꿈꾸지도 않았고. 오히려 낯선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 아니면 저항성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너는 눈에 띄는 인물인 적이 없었지. 공부에 뛰어난 너드(nerd), 하물며 온갖 것에 능란한 채드(chad), 그런 것들과는 먼, 그렇다고 지진아도 문제아도 아닌, 그냥저냥이었다. 그렇더라도 불편하지도 않았었잖아!
연두, 여자를 물리적으로 접한 순간 맞은 벼락 같은 충격으로 비로소 그의 감각은 깨어난 것일까. 아니, 깨어나는 순간에 그대로 멎었나. 세월이 가면서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감각이 멈춘 그에게 비혼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쁜 여자, 예쁜….
연두는 예뻤나? 모르겠다. 무한히 예쁘게 보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이런 순간에는 지나간 순간은 지나갔다고 믿겠다는 결심이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못 먹는 감-그건 결코 아니다. 관심을 둔 여성과의 불화, 행복 가능성에 대한 좌절 때문에 인셀로 후퇴하여 오히려 공격적이 된다는 사회과학적·정신과학적 설명은 억지다. 내가 너를 사랑했으므로 너도 나를 사랑해야… 그런 억지는 어리석음의 극치다, 라고 승욱은 생각했다. 그가 연두를 순간에 사랑하게 되었고 연두는 그렇지 않아서 헤어진…, 이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결실을 두려워했어. 사랑을 확인하는 일조차 두려웠다는, 사랑이 시작될까 두려웠다는… 그래서 도망쳤다는 그런 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말. 집어삼킨 말. 영영 소화되지 않는 말.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느끼는 자긍심은 단 하나, 자발적이라는 단어에 근거한다, 라고 승욱은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자발적일 때 비로소 세상이 강요하는 시금석들을 벗어날 수 있다. 누구의 눈으로도 평가받지 않겠다. 그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아싸로 부르거나 말거나. 이상한 고백이지만, 그는 가끔 들으면서 못 들을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들었어야 하는데, 들은 기억이 하얗다는 것. 어머니의 이상했던 그런 태도가 나이 들면서 유전되는가.
승욱은 단 하나, 물질에서의 소외를 경험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약점을 인정한다. 밥은 먹고 살아온, 굶어 본 기억이 없는 조건은 그를 얼치기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절실한 굶주림은 따로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굶주림은 세상에서 굶주림으로 치지 않는다. 스무 해를 바닷가 근처도 피했던 그의 두려움을. 사무침을, 결핍을 아무도 모른다. 세상 아무도, 어머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은 아무도 모른다. 말했어도 모를까.
결핍을 물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글쎄. 대학 강사들은 강의 시간별 수당을 생각하면 고임금군일 수 있다. 기껏 주 몇 시간 강의로, 일반 회사원들과 노동자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시간 일하고 받는 급여이니까. 하지만 8개월분을 12개월로 나누면 월평균은 확 준다.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고 첨삭하는 시간들, 시험 과제를 내고 채점을 하는 시간들, 강의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은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평생 공부할 결심을 했으니, 죽어라 공부만 하는 시간들.
어느 시간에 인싸가 되는 사회성을 기를 것인가. 연애를 하려 해도 시간이 없다. 돈도 없다. 결혼은 무슨 수로. 운 좋은 강사들은 CC, 캠퍼스 커플들이다. 아내들이 초중등 교사인 경우는 엄청 부러움을 산다. 대부분의 미혼인 강사들은 사회적으로 살아갈 시간도 사회적으로 살아갈 물질도 부족하다. 국사 전공 승욱은 다행하게도 외국 서적들을 계속 구매할 필요는 없다. 역시 비혼인 불손-불문과 손 선생-은 늘 불평이다. 하필 현대문학 전공이다 보니 계속 신간들을 봐야만 한다고. 그의 지도교수님은 지금은 낙원인 줄 알라고 하신단다. 교수님의 초창기 시절은 듣고 보면 참 끔찍했다. 일단 프랑스 서점에 책 목록 보내고, 청구서 받고, 외환은행에서 수표 끊어 서점에 보내면, 비로소 책을 우송해 주었단다. 네 번의 항공우편! 하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학교 도서관이 신간 서적들을 다 커버해 주지 못하니까 일개 강사가 주머닛돈으로 책을 구입하는 것은 그대로라고. 그런데 돈을 유혹하는 장치들은 얼마나 더 확대되었는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놀라움을 경험하세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 여행부터 떠나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광고가 갉아먹어요. 한번은 강사실에서 불손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우린 노예야.
시장경제사회에서 광고는 매우 적법한 행동이요! 철강이 시니컬했다.
누구든 공격적 광고로 자신을, 자신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법. 광고주한테는 잠정적인 구매자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가능한 모든 허용되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언어뿐인가요. 현대는 각자가 자신을 파는 광고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몸과 마음을 통째로. 영박이 한술 더 떴다. 불손은 울상이 되었다.
광고학은 학문이요. 승욱이 떨떠름하게 덧붙였다. 학문이라는 단어에 모두들 기가 죽었다.
맞아요, 대학에 광고학과가 생긴 것이 언젠데! 우리가 진학할 때 이미, 그니까 80년대 말에 그런 학과, 광고창작과가 있었어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신설 학과들을 불러주셨는데….
뭣도 모르는 주제에 그때 웃긴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났다. 광고를 창작씩이나. 창작은 예술에만 해당되는 것이라 배웠던 때였다. 지금은, 언제부턴가는, 광고는 살아가는 기본이 되어 있다. 광고 전쟁, 광고끼리의 전쟁만이 아니다. 광고의 유혹, 명령에 굴하느냐 아니냐의 전쟁이 진짜 전쟁이다.
… kg만 빼실 분은 아예 사지도 마세요! -어, 얼마나 강한 효과일까.
… 병원이고 약국이고 다 망하는 영업 비밀입니다! -아, 저런 대단한 약물이 있구나.
… 이게 오늘 자정까지만 반값입니다. 내일부터는… -이상하네. 그럼 내일 팔 것이지, 왜 오늘 팔려고!
싸니까 사라! 강하니까 믿고 사라! 자존심을 긁었다 부추겼다 하면서 강매한다. 강매에 넘어가는 너는….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의 삶이 아닌 평균인의 삶을, 강요된 평균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들 먹는 oo을 먹고, 다들 하는 oo 운동을 하고. oo표 옷을 입고, oo표 운동화를 신고, oo표 배낭을 메고. oo도 한 달 살기를 하고…. 끝이 없다.
맞아,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 유일한 길이야. 스스로 내가 되는 길! 혼자 살아남기, 최소한 멋대로 살기. 그것은 광고의 습격에서 살아남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선 흘려듣기. 흘려듣고 이겨내야 한다. 소식 아닌 소식들, 광고의 헐떡거림. 지우고 또 지운다. 그래도 쉬운 것이 광고를 거역하는 일이다. 상대의 이익이 확실함을 알기에 무시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 많은 다른 가르침들은…. 유용하다는 가르침들은 별똥별도 없는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돌우박, 시금석들!
시금석, 왜 꼭 태초의 시금석에 맞추어 살아야 하느냐. 신의 계율까지도 믿음을 버리고 냉담자가 된 마당에. 나는 어느 것 속으로도 기어들지 않겠어. 기대지도 않겠어. 승욱은 혼자서 외쳤다. 신이 있음을 증명도 부정도 못 할 것이라면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파스칼. 가톨릭 청소년 승욱에게 인상 깊었던 파스칼 등은 오래전에 효력을 잃었다. 그렇더라도 말 상대가 없는 승욱에게 독서는 거의 유일한 소통이었다.
빅뱅 이론으로 -우주에 아무런 물질도 없었다가 어떻게 갑자기 생겨났을까. 수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인 대답은 신/신들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 신/신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모른다면 신/신들도 우주도 처음부터 있었다고 해야 하나. 『코스모스』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을 쓴 세이건의 질문이었다. 그것은 약과였다. 승욱에게 확신을 가져다준 문장이 따로 있었다.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 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카렌 암스트롱, (젊어서 수녀였었던) 여성의 입으로 선언된 저술 『신의 역사』의 본문 첫 문장(33쪽)이다. 인간들의 (최고의) 상상력의 산물로서의 신, 신들… 그것을 잘 알기도 전에 너무 일찍 깨우쳤나. 부재하는 실재, 훌륭한 실재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으니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신봉해 왔었던 가톨릭 세계 6,000년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인류의 존재, 그들의 신들의 존재를 가늠한 순간이면 족했다.
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 모든 영혼은 불안하다. 그래서 신에 의지하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까 상당히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렇게나 초세속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종교적 관념들이 타당한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면 슬며시 사라지는 (또는 다른 종교로 대치되는) 점을 보면 그 말이 맞다.
신을 창조한 인간은…, 통치자로서의 신을 왜? 인간에게는 어쩌면 시금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신이라고 하는 태초의 어떤 것에 대한, 근본에 대한 믿음, 자신이 우연적인 산물에 그침을 부정하고 싶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잘 살고 싶은… 그것은 인간의 욕심일까. 왜 잘 살아야 하는가. 우연적인 순간의 존재인 개인은 그리 잘 살 필요도 없다. 신의 눈으로, 부모, 스승, 선배, 동료, 이웃… 그들의 가르침과 희망 사항을 따라서 잘 사는 일이 왜 중요한가.
『신의 역사』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개인의 혼란에서 이론적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할지. 아차, 어쭙잖게 신학자가 되었었더라면…. 그는 ‘가지 않은 길’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가롤로 신부님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모르고 돌아가셨겠다.
장 멜리에-처음 들어본 신부님의 이름이었다. 뉴턴의 무한한 공간만이 유일 영원한 실재이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종교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장치….(588쪽) 멜리에 신부의 무신론적 표현을 볼테르가 -승욱의 독서의 출발점 볼테르가-오히려 이신론(理神論) 쪽으로 수정해서 유포했었다니. 그 정도는 아직 놀라움의 시작도 아니었다. 그런 볼테르에게 디드로가 쓴 편지글이라니.
내가 비록 무신론자들과 잘 지내지만, 나는 신을 믿습니다. … 독미나리를 파슬리로 착각하는 건 매우 중대한 문제지만,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하는 문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의 역사』, 589쪽
오, 독미나리라는 독설! 신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 속에서만 존재한다느니(디드로), 자연은 누군가의 작품이 아니며, 언제나 스스로 존재할 뿐(돌바크)이라는 생각들의 인간 친화적 입장에 눈물이 났다. 눈이 아프게 울었다. 승욱은 이제 마음 놓고 울 수도 있었다. 남자애니까 울지 말라던 어머니를 넘어섰다. 오히려 어머니를 걱정하고 지낸 지 오래다. 인간은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가르침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필요가 없었다.
노예, 나는 세상의 노예이고 싶지 않다. - 내 눈이 나를 저버리게 하겠다!
어느 순간 환청처럼 들리는 말소리가 있었다. 강사실에서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는 불손 선생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해마 속에서 튀어나왔다.
형, 조선에도 고흐가 있었어. 조선 역사에!
불손 역시 프랑스 다녀오느라 승욱과 어슷비슷한 나이였지만, 둘이만 있을 때는 형이라 불렀다.
무슨 소리! 자유 개념도 없던 조선에서 환쟁이가 무슨 자존심으로 귀를 잘라!
에고! 귀만 잘라야 고흐인가. 더 했어, 형, 눈을 찔렀다니까!
무슨 끔찍한 소리래. 화가가 눈을, 하필 눈을….
어느 대감이 미천한 환쟁이라고 질책과 폭언을 퍼붓자,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물건을 잡아채 가지고 그냥 한쪽 눈을 냅다. 세상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게 하겠다, 그리 외쳤다던가.
말도 안 돼.
숙종에서 영조 시절쯤, 족보가 있어 봤자 중인이었던 화가 최북 이야기야. 최산수, 최메추라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살아 있는 듯한 메추라기 그림이나 산수화로 유명했다던데. 도화서 근무를 마다하고 붓 한 자루 들고 팔도를 유랑하며 살았더래. 통신사들 따라 일본엘 갔을 때도 먹고는 살았대.
….
그래 봤자 차츰 현실의 벽에 갇혀서 기인이 되어 갔겠지. 말술에 절고 속세의 울타리를 벗어나….
그만, 제발 그만, 손!
승욱은 숨을 헐떡이며 불손을 말렸다. 그 순간 영박이 강사실로 들어왔다. 뭐야, 이 뜨거운 공기는? 두 분이서 썸 타시나?
귀머거리 화가는 가능할지언정 장님 화가는 불가능하지. 애꾸눈이라도 그래. 그러고도 그렸다니, 뭐. 승욱은 냉정하게 지나치기로 했다. 그런데 오른쪽 애꾸눈의 얼굴이 밤에도, 며칠이 지나도, 그를 쫓아왔다. 가끔 놀래키던, 개성의 노비 포스터에서 빠져나온 그림자를 압도했다. 오른손으로 흉기를 들었을 텐데. 아무러면. 그런데 한쪽 눈만으로 원근법을 알까. 동양화에는 원근법 아닌 심원법이라던가.
승욱은 어느 순간 최북의 그림을 찾아보고 있었다. 메추라기를 보았다. 놀랐다. 산수화를 보았다. 잘은 모르지만, 터치가 남달랐다. 아니지, 그림의 예술성 문제가 아니잖아. 대세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권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신념인가, 맹신. 그의 선택! 나 너희들에게 굽히고 녹을 먹진 않겠어! 옳고 그름을 초월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굶주림, 알코올중독, 성벽 아래 눈 속에 파묻혀 맞은 죽음. 50도 못 살았다지. 더 어떻게 살아.
술은 흔히 도피의 가능성으로 꼽힌다. 승욱은 그 세계를 잘 몰랐다. 그러니까 그것도 몰랐다. 아는 세계가 없었다. 술은 처음부터 잘 배워야 하는 법이지…. 술 마시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아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득한 승욱은 술을 잘 배울 기회가 없었다. 대학 새내기 때의 입장권 같기도 체벌 같기도 했던 술문화는 일찌감치 응급실에 실려 간 뒤로 면제받았다. 군대에서도 비슷했다. 약간 머저리 취급당하는 것으로 때웠다. 성당과 교회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워낙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라는 핑계로도 통용되었다. 교실에서의 모범생도, 그렇다고 대학문화에서의 매력남 근처에도 못 가는, 그냥 보통인 사람. 술만 보아도 보통도 못 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남자, 노승욱이었다.
나는 세상의 노예이고 싶지 않다. 좋다. 그런 마음먹기는. 승욱은 한동안 최북에 빠졌다.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 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태초에 우리는 통치를 받는 노예였다. 태초의 노예, 태초를 향한 노예, 태초에 있었던 어떤 것들의 노예, 태초에 있었던 어떤 것들에 다가가야 하는 노예. 줄을 끊으면 되리라. 이를테면 화가 최북처럼. 둥둥둥! 아니 최북의 북은 북녘 북자다. 툭. 탁. 뚝. 무섭기는 하다. 줄이 끊긴 뒤가 더 무섭다. 무엇을 시금석으로 삼나. 시금석, 아니, 다시 시금석이라니. 시금석의 존재를 믿는 노예, 믿음의 노예, 믿음의 존재 자체를 믿는, 믿음의 가치를 믿는 노예인가. 환승 이별도 아니고, 대체.
우주 행성 태양계 지구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어느 작은 바닷가일 뿐이다. 바다를 무서워하고 가까이 가 본 적도 없다가 바닷물에 처음 발을 적시던 순간. 무서웠더냐. 그것은 그냥 바닷물이었다. 발아래 모래알 중의 하나, 너, 노승욱, 아버지는 바닷물에 쓸려 간 모래알. 두 모래알은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기준 5년쯤을 함께 볼을 비볐다. 아들에게 까끌한 감촉으로 남은 아버지. 그것이면 되었다. 산처럼 자리한 어머니, 어머니도 모래알처럼 사라질 것이다. 승욱도 모래알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기에 남은 시간, 시간들…. 인간이 생명을 부지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 초초초미세 순간일 뿐이다.
신들의, 타인들의 시금석들에 기대지 말자. 이 코스모스에 시금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누군가의 작품일 리가 없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우주 그리고 지구만이 실재한다. 그러니까 천국도 지옥도 없다. 승욱은 검회색의 천장에 대고 말한다.
앗, 그렇담 단테의 「지옥」 편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전무후무 탁월한 창작, 맞다. 다른 훌륭한 시인이며 철학자들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신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지옥에 갔다. 단테가 그렇게 지옥에 보냈다. 이를테면 헤라클레이토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심지어 단테 자신을 안내한 시인 베르길리우스도 지옥행이었다. 그렇담 단테는, 그리고 어쩌면 단테도…. 아냐, 실제로는 그들 모두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무한한 무생물들의 한 알갱이로서.
그렇다. 지구상의 동물들, 인간들은 찰나의 존재이다. 실재이지만 찰나의. 시간의 총량으로는 모래알에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한다. 어느 바닷가에 서 있건 발아래 모래알은 모래알이다. 어느 곳에서 숨을 쉬건 노승욱은 노승욱이다. 그는 입을 다물고 외친다. 그래, 조롱 속의 새라도 종달새는 종달새다. 어디에 갇혀 있건 종달새는 새다. 살아 있는 종달새. 종달새이기 위해서는 높이 날고 있다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조롱에 머리를 까이더라도 날자. 어디로. 어차피 멀리는 날 수 없을 것이니까 무서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