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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같은 울음 ——이근배, 「겨울 자연」

한국문인협회 로고 문영현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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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중에서 사유의 깊이가 가장 깊은 시를 고르라고 한다면 「겨울 자연」을 들고 싶다. 이 시는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난해한 시도 아니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리하여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작자는 익히 알고 있는 천재 시인 이근배 선생이다. 1960년대에 5대 일간지에 신춘문예 장원으로 뽑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시인으로 그의 천재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시가 바로 「겨울 자연」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어디 갔느냐 
해체되지 않은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따슨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광막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너는 무광의 죽음,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
허나 세상을 깨우고 있는
잠 속에서도 들리고 있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이근배, 「겨울 자연」

 

시의 감상을 위해 먼저 전체 시에 대한 필자 나름의 ‘풀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본시는 제목 그대로 ‘겨울 자연’을 읊고 있는 동시에 ‘사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겨울 풍경을 읊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겨울 자연’을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쓰고 있다. 어쩌면 ‘망자와의 대화’인 듯한 암시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해를 돕고자 풀이 마지막엔 간단한 어구 해석을 붙였다.

 

「겨울 자연」(사후의 세계를 은유)
나의 자정에도 너는/ ‘나의 자정’(적막의 시각)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깨어서 울고 있구나(나의 자정이 너에게는 ‘아침/시작’인가 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너의 세상에선 산도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맨다./ 들 역시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매는 듯 혼미한가 보다.
나의 풀과 나무는 어디 갔느냐/ 내가 애써 가꾸었던 ‘풀과 나무’는 어디 가고 보이지를 않는구나
해체되지 않은 영원/ 죽음이 남긴 것(삶이 남긴 유폐물 영혼)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지워지지 않은 꿈(욕망, 바람)은 어디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옮겨 다니는 꿈(欲,望)은 어디에 살아남아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 나의 자정을 깨우는가, 나의 자정(적막, 한겨울)을 깨워내려 하는가
따슨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따뜻한 감정을 나누던 ‘사랑’이(한 생명이) 
광막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광막한 자연처럼 되기까지는(욕망의 ‘풀과 나무’가 돋았다가 사라져, 무욕의 상태가 되기까지는)
너는 무광의 죽음,/ 너는 빛이 없는(무의미한) ‘죽음’〔‘죽음’: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수동적 존재(헛된 존재)〕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 쉽게 흩어질 ‘구름’이거나 너의 존재 이전에는 한갓 폐기물에 지나지 않았지만(무책임한 사랑의 흔적이었을 뿐이지만)
허나 세상을 깨우고 있는/ 허나 사람들의 기억(본능)을 일깨우고 있는 
잠 속에서도 들리고 있는 저 소리는/ 무의식 중에도 들리고 있는(욕망이 꿈틀거리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높고 낮은 귀천이나 소유의 구분이 무의미한)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기쁨 같은 울음’을 불러오고 있는 것일지니…

 

* 너: 겨울 자연/죽음의 세계, 겨울 사랑의 연인 (나: ‘너’에 대응하는 상대) (비유) 오래전에 죽어 ‘겨울 자연’이 된 ‘겨울 사랑’의 연인
* 산: 높고 낮음이 있어, 높은(귀한) 것과 낮은(천한) 것을 상징함.
* 들: 구획이 있어 네 것 내 것의 구분이 있음. 즉 ‘소유의 구분’이 있는 세계를 상징함.
* 풀과 나무: 소중하게 가꾸어 온 재물, 명예, 사랑, 우정 등등
* 꿈: 소원, 희망, 욕망, 바람 겨울바람
* 무광의 죽음: 생동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무의미한 존재’
* 기쁨 같은 울음: ①새로운 탄생(‘울면서 태어남’에 대한 비유) ②‘사랑’의 은유(기쁨으로 시작해서 울음으로 끝나는 것)

 

인생사를 황량한 겨울 벌판에 비유하여 읊은 시로서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사후의 세계를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풍경 즉 ‘겨울 자연’으로 묘사한 것으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사색을 담아내고 있다. 푸르름과 온갖 채색으로 가꾸던 자연은 겨울이 되면 색깔을 잃고 흑백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눈 쌓인 광막한 벌판은 산도 낮아지고 들판조차도 혼미하게 만들고 있으니 사람의 인생살이도 이와 같을지니… 사람의 일생은 치열한 삶을 추구하다가 스러져서는 결국 ‘겨울 자연’으로 남게 된다. 우리가 정성스레 가꾸던 풀과 나무도 다 사라지고, 높고 낮은 귀천도 또한 소유로 나누어지던 경계도 다 사라진 광막한 벌판이 사후 세계일지니, 무슨 일을 해야 의미가 있을까…. 그저 ‘무광의 죽음’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니, 돌이켜 보면 너와 나 모두 쉽게 사라질 ‘구름’ 같은 존재이거나, 또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책임한 사랑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니, 인생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빈부귀천이 높고 낮은 산과 들처럼 펼쳐져 있지만, 곧 겨울이 오고 광막한 ‘겨울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인생 철학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겨울밤 세차게 부는 바람(風/欲) 속에는 봄의 꿈이 서려 있듯 모든 생명체의 욕망은 사후의 세계에까지 뻗쳐져 있어 한겨울에도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고 있으니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새로운 탄생을 잉태하고 있음을 읊고 있다. 이는 ‘겨울 자연’의 이면을 읊어낸 시적 묘사이다.
인생무상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것이 있으니 아주 의미 없는 삶은 아니잖은가. 삶이란 ‘사랑’을 얻기 전에는 무의미한 존재였을 뿐이지만, 광막한 겨울 자연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를 곳곳에 품어 새로운 욕망을 배태하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이승에서의 ‘빈부귀천’이나 ‘소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오직 ‘사랑’만이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겨울 자연의 광풍도 사랑의 열매인 씨앗이 바람(欲)을 싣고서 떠다니며 내는 소리가 아닐는지…. 겨울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사랑의 결과물일지니,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욕망의 덩어리 ‘사랑’의 잔해가 겨울 자연을 빚어낸 것일지니…. 그 ‘욕망’이 바람1)을 남겨 이 겨울을 저토록 휘몰아치고 있는 것인가.
시인은 먼 기억 속의 ‘사랑’을 떠올려 본다. 우리의 초라했던 ‘사랑’도 부끄러울 것 없는, 돌이켜 보면 그것이 바로 삶의 의미를 부여한, 그리하여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너는 아직도 나의 자정을 깨우고 있는 것인가 보다. 초라했던 사랑은 ‘겨울 사랑’이며 겨울 자연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 겨울 사랑은 나만의 추억이 아니다. 수많은 ‘겨울 사랑’에 수많은 ‘겨울 몸부림’이 있었음을 깨닫고 보면, 본 시는 인생사의 ‘겨울 자연’을 웅변으로 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구(結句)의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는 묘한 울림을 주고 있다. ‘겨울 자연’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하고 있으니 짧은 몇 마디로는 풀어낼 수 없는 긴 울림을 주고 있다.

 

본 시는 ‘겨울 자연’을 읊고 있지만 이는 소재일 뿐, 숨겨진 주제는 ‘겨울 사랑’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시 감상을 ‘겨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얼마나 춥고 시린 사랑이면 ‘겨울 사랑’일까.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절한 사랑을 읊은 시라면 필자는 여요 「만전춘」과 소월의 「초혼」을 들고 싶다. 「겨울 자연」을 감상하는 데 이 두 시의 정서적 공감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이 두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처절한 사랑 노래는 여요 「만전춘」이다. 절규와도 같은 첫 연의 노래 가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연케 한다. 이것이 어찌 본 시와 정서적으로 통한다고 할 수 있을까. 춥고 시린 ‘겨울 사랑’은 바로 ‘겨울 자연’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2)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둔 이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 댓닙 자리: ‘까칠한 자리’의 상징적인 표현〔댓닙은 뽕닙(부드러운 입)에 반대되는 말임.〕

 

제목으로 보나 가사 전체의 내용으로 보나 작품 배경은 ‘궁전’이 틀림없다. 궁중에서의 사랑 노래가 이렇게 처절하다니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얼음 위에 댓닢자리’라니 도대체 사랑의 상대가 누구란 말인가.
님은 ‘경경 고침상’에서 맞는 분이고, 나와의 만남을 시기하는 사람 또한 많다는 것이 드러난다.3) 궁중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 임금 말고는 그런 상대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임금을 상대로 ‘얼음 위에 댓닙자리 보아’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에 더하여 “님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궁중에서도 분명 그렇게 ‘추운 사랑’이 이루어졌다. 단 한 번의 사랑에 목숨을 걸 만큼 처절한 사랑, 그것은 바로 궁녀의 ‘임금과의 사랑’이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지만 분명 그런 사랑이 있었다. 궁녀로서 임금을 맞는 자리이니, 호화롭지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댓닙 자리’이고 몸과 마음은 얼어붙게 마련이니 절묘한 비유가 아닌가. 「만전춘」의 첫 연은 그러한 궁녀의 ‘임금과의 사랑’을 읊은 것이다. 제목 ‘滿殿春’은 ‘궁궐을 가득 채운 봄’이다.4) 여기서 ‘봄’은 ‘꽃다운 나이의 여자’를 상징하며 제목 자체가 ‘궁인의 노래’라는 것이다.
여요 「만전춘」은 궁인의 노래 중에서도 ‘궁녀 출신 후궁’의 사랑 노래이다. ‘경경 고침상’에, 잠은 오지 않고 서창(西窓)에 달이 비칠 때까지 과거 회상에 빠져든다. 한때는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잠깐 사이 식어 버린 것이다. 회상은 입궁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억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아련 비올하(오리여)’로 읊고 있다. 그 궁녀가 지금은 “금수산 이불 덮고, 사향각시 안고 누워” 있다. 이는 많은 궁인 중에서도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기다리는 님이 오지 않는 것을! 소를 찾아오는 비오리가 줄을 잇고 있으니, 궁은 젊은 여자로 가득 찬 ‘滿殿春’이다. 이제 나이 먹은 후궁을 찾을 리도 없고, 기다린들 소용없음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봄이 가득 찬 ‘만전춘’이 나이 먹은 후궁에게는 그렇게도 춥고 시린 곳이다. 후궁은 살아생전에 이미 ‘겨울 자연’을 맞고 있다.
궁인은 한때 얼음 위에 펼쳐졌던 ‘겨울 사랑’을 겪었고, 나이 먹은 후에는 그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겨울 자연이 된 것이다.5) 하지만 ‘춥고 시린 겨울 사랑’이 어디 그곳뿐이랴! 세상 곳곳에 널려 있음이니, 그게 바로 인간 세상의 겨울 자연이다. 그 속에 숨겨진 “봄을 다투는 아우성의 바람”6)이 이 겨울을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만전춘의 봄 역시 겨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또한 얼어붙은 겨울 속에도 봄을 다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숨겨져 있다. ‘겨울 자연’은 치열한 사랑싸움이 화석화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에는 아직도 강렬한 욕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때로는 사랑싸움이 목숨보다 중하다. 자연에서는 목숨을 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겨울 사랑’은 생명의 존재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만전춘」과 「겨울 자연」, 이 두 시를 머릿속에 그리며, 가만히 눈 감고 인생의 종착역 ‘겨울 자연’의 깊숙한 내면을 비추어 보면, 그 속에는 ‘봄’을 향한 욕망(바람)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만전춘이 겨울 자연이고 겨울 자연이 만전춘인 것이다.
겨울 자연이 만전춘이라면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니다. 뜨겁고 치열한 사랑싸움이 내재해 있는 ‘겨울 자연’은 봄이 되기 전에 이미 후끈 달아오른 상태이다. 그래서 저 바람 소리가 욕망을 가득 담고서 한밤중에 불어와 그렇게 울어대었던 것이 아닌가. 이제 겨울 자연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겨울은 한밤중이다. 모두 벌거벗고서 눈이라는 이불을 덮고 있다. 산과 들도 별 의미가 없는 듯 어둠에 잠겨 있다. 오로지 씨앗(욕망)을 실은 바람만 그 사이를 세차게 몰아치며 잠을 깨운다. 여름철 무성하던 풀과 나무도 퇴색하여 빛이 바래져 있다. 모두 하나같이 허망한 존재, 하는 일이란 모두 부질없는 짓,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삶이 만들어낸 폐기물 같은 존재였을 뿐…. 아! 그게 아니었어. 그런 겨울 자연 이면엔 저토록 처절한 몸부림이 감추어져 있었을 줄이야. 봄은 이미 「겨울 자연」 속에 잉태되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산도 산이 아닌, 들도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겨울 자연’의 질서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는 ‘기쁨 같은 울음’을 몰고 오는 것인즉, 이를 “달려드는 것이다”로 표현하고 있다. 불현듯 ‘깨달음’이 다가온 것이다.

 

소월의 「초혼」은 떠나간 ‘첫사랑’을 죽도록 그리워하며 읊은 노래이다. 작자는 첫사랑의 연인이 어긋난 운명으로 비극적인 삶을 마치자, 그 임에 대한 그리움을 처절하게 읊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겨울 자연」에는 위 시의 정서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춥고 시린 사랑의 배경이나 죽은 연인을 애타게 부르는 심정은 모두 은유로 표현되어 있어 직접적 표현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자정에도 깨어서 우는, 끝없는 눈발 속을 헤매는 너”로부터, 작품 배경이 ‘겨울 사랑’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해체되지 않은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을 부르느냐”는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함을 읊은 것이다. 「초혼」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님을 애타게 부르고 있지만, 「겨울 자연」은 젊은 시절에 겪었던 사랑으로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읊고 있다. 초혼처럼 강렬한 어조의 울부짖음은 없지만, 사랑의 깊이로 본다면 결코 그에 못지않다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만전춘」에서처럼 목숨을 건 처절한 겨울 사랑은 그를 능가하는 골수에 사무친 사랑으로, 한때는 잊은 채 긴 세월을 지난 후에도 그 기억이 더욱 또렷이 되살아나는 긴 여운을 남긴 애틋한 사랑이라 할 것이다.
두 연인이 지극히 어려운 여건에서 만난 것도 ‘겨울 사랑’이지만 혹독한 추운 날씨에 사랑을 나누었던 ‘겨울 사랑’이기도 하다.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는 망자의 세계를 암시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겨울 사랑’의 추억의 편린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여인은 겨울 사랑 한 번으로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목숨을 건 사랑이 있었기에 “나의 자정에도 너는/ 깨어서 우는 것” 아니겠는가. 시인이 ‘어떤 상황의 사랑’을 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굳이 그것을 알아야만 이 시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 감상’이 독자 나름의 상황 설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필자는 그 배경을 비극으로 끝난 세상에서 가장 춥고 시린 ‘숙명적인 사랑’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그들은 들을 건너고 산을 넘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으며 어릴 적부터 잦은 교류와 접촉으로 잘 아는 사이였고 어느 순간부터 둘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잔인한 운명은 여자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고, 끝내 ‘겨울 사랑’7) 한 번을 가슴에 간직한 채 덧없는 생을 마감하고 만다. ‘만전춘’의 궁녀처럼 목숨을 건 ‘사랑의 흔적’을 남겼고, 남자는 그때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남자를 이제 ‘나’로 읊고 있다. 그 여인 또한 그때를 잊을 수 없음인지 ‘나’의 자정을 깨우고 있다. 자정에 깨는 ‘나’는 곧장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간다. 자욱이 눈 쌓인 들판에 산도 들처럼 낮아지고 들에는 혼미한 눈발이 날리고 있다. 그리고는 그때의 ‘겨울 자연’이 뇌리에 남아 점점 ‘사후의 세계’로 바뀌어 다가온다. 세상의 ‘높고 낮음(빈부귀천)’이 다 부질없는 그곳에서는, 너와 나의 꿈이 사라져 버렸듯 지금 내가 애써 가꾸고 있는 ‘풀과 나무’ 역시도 보이지를 않는구나.(모든 것이 부질없는 ‘절대 허무’의 세계로구나.) 죽음은 모든 것을 해체시켜 영원으로 가져가지만, 그래도 해체되지 않은 무엇이 있어, 떠다니는 꿈처럼 되살아나 나의 자정을 깨우는 것인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 생명’이 ‘겨울 자연’이 되기까지는, 초록과 더불어 온갖 색깔의 욕망이 꿈틀대던 생명체가 하얗게 바래져서 차디찬 흑백의 ‘겨울 자연’이 되기까지는, 너8)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광의 죽음’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빛 한 번 발하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쉽게 사라질 구름 같은 존재이거나, 그 ‘존재’ 이전에는 무책임한 사랑의 폐기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너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러한 존재였을 따름일지니.
그러나 겨울밤 자정에 부는 저 세찬 바람 소리는 세상의 온갖 욕망을 잠에서 깨워내는 소리일지니, 그 속에 숨겨진 욕망(바람)의 아우성이 무의식 중에도 들리는 듯하구나.9) ‘겨울 자연’은, 산도 높고 낮음이 없고 들 또한 소유의 경계가 사라진, 그리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겨울 자연은 정(靜) 속에 동(動)이 있다. 죽은 듯 서 있는 나목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바람〔欲〕이 일어 ‘나의 자정’을 깨우고 있다. 겨울바람은 인생사의 춥고 시린 겨울 사랑의 울부짖음이 아닐는지…. 자정에 깨어서 우는 저 바람 소리는, 새봄을 꿈꾸는 ‘수많은 숨겨진 욕망’들이 서로 부대끼며 뿜어내는 ‘겨울 자연’의 거친 숨소리. 그 속에는 수많은 겨울 사랑의 절규 즉 ‘기쁨 같은 울음소리’가 녹아들어 있음이니, 그 소리가 왈칵 달려드는 듯 나의 잠을 깨우는구나.

 

인생이란 결국 겨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생전의 부귀영화가 모두 부질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춥고 시린 수많은 ‘겨울 사랑’이 생명의 존재를 이어가는 원동력임을 새삼 깨닫고는, 삭막한 ‘겨울 자연’ 속에도 봄을 태동하는 의지가 숨겨져 있음을 읊음으로써 먼 추억의 ‘겨울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있다. ‘겨울 자연’으로 비유되는 죽음 또한 한 생의 결과물로서 ‘산과 들’을 허물어뜨리는, 그리하여 온전한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삭막한 겨울 자연은 그 속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겨울을 나는 씨앗은 ‘사랑의 열매’인 동시에 한 생명체의 ‘바람〔欲〕’이 집적된 것이다.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허무한 인생, 지위와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만, 그래도 ‘사랑의 욕망’은 죽음 속으로도 이어져 세찬 바람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리니,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겨울 자연’에도 보이지 않는 ‘바람’이 있어 깊은 잠으로부터 깨워내는 것이리라. 시인은 겨울 자연을 담담한 어조로 읊어 가다가는 무의식을 일깨우는 ‘겨울 바람’ 소리에 이르러 ‘기쁨 같은 울음’이 와락 달려드는 듯 묘한 감정에 휘말리고 말았다는 것이 주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겨울 자연’은 단순한 죽음의 세계가 아니라 이면에 뜨거운 욕망이 감추어져 있으며, 이러한 ‘겨울 자연’이 ‘기쁨 같은 울음’을 불현듯 깨닫게 해 준다는 말이다. ‘기쁨 같은 울음’은 기쁨으로 시작해서 울음으로 끝나는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울음으로 시작하는 기쁨 즉 ‘탄생’이 될 수도 있다. 겨울바람 소리는 불현듯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는 말인 동시에 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겨울 자연으로부터 문득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도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지만, 겨울밤을 울어대는 바람 소리로부터 ‘새로운 탄생’을 읽어내는 순간도 절로 탄성을 지르게 될 것이 아닌가. 겨울처럼 추운 사랑도 사랑 그 자체로 ‘세상 그 무엇’보다 고귀한 의미를 지니며 어쩌면 겨울 사랑으로 예고된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역설적 의미를 불현듯 깨달았음이다. 이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철학적 사유가 내재해 있다. ‘겨울 자연’은 모두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태반이며 곧이어 ‘기쁨 같은 울음’으로 새 생명이 태어날 준비를 완료하고 있음을 깨닫는 ‘극적인 순간’을 읊고 있다.

 

겨울 자연은 이 밤에도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춥고 시린 사랑이 자연을 이어가는 역동성이며,
죽음의 세계가 곧 새 삶을 잉태하는 태반이라는 사실을.

 

 


1) 바람: 바람(風)과 바람〔欲〕. 우리말의 묘미를 보여 주는 중의적 표현.
2) 필자는 시인을 여러 차례 뵌 적이 있으며 누차에 걸쳐 여요 「만전춘」에 대한 언급을 들은 바 있고 관련 언질을 받은 바 있다.
3) 아래에 <만전춘>의 제2연 이하 전문을 싣는다.
(제2연) 耿耿경경 孤枕上고침샹애 어느 미 오리오/ 西窓셔창을 여러니 桃花도화ㅣ 發발두다/ 桃花도화 시름업서 笑春風쇼츈풍다 笑春風다
(제3연) 넉시라도 님을 녀닛景경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녀닛景경 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제4연) 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 여흘란 어듸 두고 소해 자라 온다/ 소콧 얼면 여흘도 됴니 여흘도 됴니
(제5연) 南山남산애 자리보아 玉山옥산을 벼여 누어/ 錦繡山금수산 니블안해 麝香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南山남산애 자리보아 玉山옥산을 벼여 누어/ 錦繡山금수산 니블안해 麝香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藥약든 가을맛초사이다 맛초사이다
(제6연) 아소 님하 遠代平生원대평생애 여힐 모새
4) ‘滿殿春’은 통상 ‘궁안에 가득 찬 봄’으로서 ‘지금의 치세가 태평성대’라는 임금을 칭송하는 말이다. 그에 따라 제목 뒤에 숨겨진 뜻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5) 기존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 ‘비오리(숫오리)’를 이 여울 저 여울 돌아다니는 ‘바람둥이 남자’의 비유로 보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비오리는 색깔이 고와 ‘곱게 차려입은 여인’을 상징한다. 궁중 노래에 “남자가 자러 온다”는 어불성설. 비단 금침을 깔고 님을 기다리는 건 분명 여자다. ‘사향 각시’는 사향 주머니가 달린 작은 인형으로 지체 높은 궁인이 썼던 고급 노리개이다. 〔졸저, 『고려가요 새로 읽기』, -「만전춘」, 미다스북스, 2022〕
6) 여기서 ‘봄’과 ‘바람(風, 欲)’은 모두 중의를 가지고 있다. 봄은 봄(春)과 봄(만남, 교접)의 이중의 뜻이 있다.
7) ‘겨울 사랑’은 만전춘에서처럼 ‘춥고 시린 사랑’의 은유일 수도 있다.
8) 나 자신을 ‘너’로 부른 것이며, 또한 너와 나를 포함한 인간 모두를 ‘너’로 부른 것으로도 볼 수 있음.
9) 정적인 겨울 자연 속에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으니 바로 ‘바람’이다. 시인은 밤중에 부는 ‘겨울 바람’ 소리를 무의식 중에 들려오는 ‘욕망(바람)의 소리’로 은유적으로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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