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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결심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경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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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0대는 개판이었다. 그렇다고 껌을 씹으면서 다리를 떨고 다닌 건 아니었다. 그저 공부를 안 했을 뿐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란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 오는 게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사실 난 천재였을 가능성이 컸다. 요즘 엄마들 같으면 우리 애가 천재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게 분명했다. 100까지 쓰는 건 기본이고 구구단도 거꾸로 똑바로 다 외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왼손으로 밥숟갈을 쥐면 내 손등을 찰싹 때리면서 사람이 결심이 있어야지 하셨다. 난 결심이 없었다. 남동생을 달고 나왔고 기지배가 뭔 대학이냐고 했기에 난 일찌감치 공부를 때려쳤다. 그래서 세월아 네월아 폼만 잡고 다녔다.
어느 한 해 농사가 잘 되었다. 파란 배추밭이 바다처럼 너울너울 춤을 췄다. 시퍼렇게 자란 배추는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 금값으로 매겨졌다. 엄마는 결심을 해야 농사도 풍년이 된다고 하셨다. 배추 농사가 힘들다며 엄마는 다음 해에는 고들빼기 씨를 잔뜩 사다가 배추 대신 고들빼기를 때려 심으셨다. 고들빼기가 수확량도 적고 밭만 차지하고 비가 억수로 쏟아져 다 썩어 문드러졌다. 듬성듬성 먹을 것만 건졌다.
엄마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결심을 해야지 결심을 안 하니 농사고 뭐고 다 엉망이라고 푸념을 하셨다. 아버지는 엄마의 결심 소리가 듣기 싫어 담배만 입에 물고 뻐끔뻐끔 누렁소 눈만 응시하곤 하셨다. 엄마의 결심은 낮이고 밤이고 이어졌다. 아버지는 들은 체도 안 하시고 소구루마를 타고 냅다 밭으로 달려가셨다.
난 10대 때 꿈이 있었다. 그 꿈은 의사도 교수도 박사도 아니었다. 빨리 서울로 가서 멋진 여대생이 되고 싶었다. 양구여고를 갔다. 아무런 꿈이 없어져 버렸다. 서천 다리가 없을 때 선배들은 장마철 물이 불어나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용감한 아버지들은 딸을 등에 업고 서천을 건너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내가 입학을 하니 정림리 다리가 생겼다. 걸어서 서천 다리를 건너 언덕배기를 올라가면 산 밑에 학교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강바람도 산바람도 매서웠다. 조개탄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학교 아저씨 눈을 피해 몰래 훔쳐 오기도 했다. 풀먹여 다린 우윳빛 칼라는 조개탄 먼지로 금세 누렇게 변했다.
전학 열풍이 불었다. 공부 좀 한다 하는 애들도, 집안이 넉넉한 애들도, 군인 가족인 애들도 다들 도시로 전학을 갔다. 난 양구여고를 폭파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난 결심이 없었다. 그냥 책가방만 들고 왔다리 갔다리 했다. 책가방엔 정석 수련장 전과 대신 소설책만 가득했다. 매일 낄낄거리며 소설 삼매경에 빠졌다. 다들 학력고사에 목숨을 걸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난 먼 산만 응시하곤 했다.
나의 왼손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불편해도 오른손을 쓰는 체하고 밖에 나오면 자유다를 외치면서 왼손을 맘껏 휘젓고 다녔다. 가위질도 칼질도 바느질도 다 왼손이다. 겨우 밥은 오른손으로 먹었다. 그래서 지금도 젓가락질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엄마의 결심은 그렇게 나의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만들어 놓으셨다.
여고 졸업식장엔 밥풀떼기를 단 장교들도, 갈매기를 단 하사관도, 작대기 3개를 단 병사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고3이 되면서 군인 지역이라 연애들을 했기 때문이다. 난 도통 군인들은 쳐다도 안 봤다. 빨리 서울로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서울로 갈 결심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엄마 따라 감자 눈을 따서 감자밭으로 갔다. 새파란 하늘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중학교만 나온 친구들도 서울로 춘천으로 나가서 밥벌이를 하는데 난 참 한심하고 멍청했다. 여고 졸업한 친구들도 서울로 떠났다. 군인과 연애한 친구들은 결혼도 일찌감치 했다. 난 결심이 사라졌다. 엄마 따라 밭에 가서 감자를 심고 고추대를 꽂으며 아까운 세월을 보냈다.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싸 온 밥을 먹었다. 매운 고추를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나라는 유독 우리나라뿐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결심은 양구를 탈출하는 게 오로지 목표였다. 유아교육 붐이 일자 난 유아교육 과정을 춘천교대에서 받았다.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렇게 하여 또 양구에 매이게 되었다. 병설유치원에서 근무를 하는데 내 결심은 없어졌다. 군인 장교의 청혼도 거절했다.
엄마의 결심과 나의 결심이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늦은 나이까지 양구에 박혀 살았다. 지긋지긋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 둘도 낳았다. 난 결심이 사라졌기에 결혼은 아예 마음도 안 먹었다. 서른이 다 되어서 결혼을 했다. 서울 사람이란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둘러 결혼을 했다. 노처녀 딱지는 떼야겠기에 부랴부랴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국 결혼을 해서 서울 땅을 밟았다. 두 딸을 키우면서 나의 결심은 온데간데 또 없어졌다.
30년 서울 살이에 이젠 서울이 넌더리가 났다. 10대인 난 서울만 가면 내 꿈이 내 결심대로 이루어질 줄 알았다. 서울은 정이 뚝뚝 떨어지는 곳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으리으리한 빌딩은 그림의 떡이었다. 내가 서울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결심했던 유년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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