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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의 길, 배움의 땅을 걸으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천익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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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의 막가는 겨울, 조선 시대 유배지였던 동해안의 배움터 장기초등학교를 들리게 되었다. 포항 장기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옛 기운이 서려 있는 듯 조용했다. 바다는 가까운데 파도 소리는 멀고, 산은 낮은데 그늘은 깊다.
마음의 선입견 탓인지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이곳을 유배지로 생각했던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듯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작고 아담한 장기초등학교, 교사가 천연색으로 아름답고도 나직하게 동서로 길게 들어서 있었다.
닫혀 있는 철대 교문을 살짝 밀고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골 학교처럼 보였지만, 교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이곳은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는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교정의 남쪽을 둘러싼 사적비들, 발밑의 찬 흙이 오래된 이야기를 천천히 불러내는 듯도 했다. 조선시대 이 자리는 장기현 관아와 향교가 있던 곳이다. 유배란 이름으로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 중심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멀리 보내되, 완전히 끊지는 않는 것, 그것이 조선의 유배 정치였다.
조선 숙종 대에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도 이 길을 따라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기사환국으로 모든 것을 잃은 뒤, 그는 장기라는 이름조차 낯선 고을에서 하늘과 땅을 마주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말없이 사약을 받아 마시며 여든이 넘는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마 이곳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조선 선비의 삶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관아 근처, 지금의 교정 어딘가에서 수없이 책을 펼치고 덮으며 인생을 다졌을 것이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조선 제일의 학자였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향기 서린 교정을 한 바퀴 천천히 걸었다. 백 년이 훌쩍 넘는 창학, 아이들 키보다 조금 큰 소나무들, 운동장 가장자리의 오래된 느티나무, 이 나무들이 서 있기 전에도 이 땅에는 사색이 있었다. 말을 삼킨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키우던 자리였다.
다산 정약용의 사적비도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조선 실학의 최고봉 그도 종교적 양심을 지키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의 학문을 대성시킨 이름난 유배지는 강진이었지만, 그는 이곳에서 첫 유배를 경험했다. 그의 시대의 학문과 고통은 이곳 장기와 같은 결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서 밀려난 지식인들은 각기 다른 끝자락에서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학문은 무엇이며, 인생은 또한 무엇인가.’
학교 뒤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바다가 보인다. 망망한 바다는 무심하다. 조선의 유배인들도 이 바다를 읽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바다는 탈출의 길이 아니라 사유의 끝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생각은 오히려 더 멀리 갔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관아는 사라졌고 향교의 종소리도 멎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 자리는 학교가 되었고, 유배의 땅은 아이들의 땅이 되었다.
아이들이 뛰는 운동장은 한때 침묵이 깔렸던 자리이고, 교실의 창은 유배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방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교 교정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역사를 보존한 장소가 아니라 역사를 살려낸 장소라고, 권력은 사람을 이곳으로 밀어냈지만, 시간은 이곳을 배움의 중심으로 다시 불러 세웠다. 장기를 떠나는 길, 겨울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유배와 학문, 침묵과 배움의 상념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이 길은 단순한 여행길을 넘어, 사유가 추방당했다가 다시 아이들의 웃음으로 돌아온 기나긴 역사의 혼이 이어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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