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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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어렵사리 빈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더라도 나갈 때 방해받지 않고 나갈 수 있어야 좋다. 선이 그어진 자리에 주차해 놓아도 다음 사람이 일렬 주차로 앞을 가리기가 일쑤다. 다음날에 새벽 골프라도 나가는 날이면 버티고 있는 앞차들을 끙끙대면서 저만큼 밀어내야 한다.
좋은 주차 자리 찾는 일이 일상적인 버릇이 되고 말았다. 거실에서 내다보다가 좋은 자리가 보이면 서둘러 달려 나가게 된다. 다른 자리에 세웠던 차를 갖고 와서 그곳에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 ‘좋은 자리’란 주차장 한쪽 면에만 할애된 공간으로, 통로를 끼고 있는 자리-일렬 주차 할 공간이 없는-이다. 이런 나에게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일쯤으로 여기지만, 새벽 시간에 앞차를 밀다가 허리가 삐끗했던 경험을 했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자리에 관한 이런 일들이 소소한 것 같으면서도 꽤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얼마 전 일본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저가 항공편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인터넷으로 왕복표를 사면서였다. 직접 좌석을 골라야 했고, 그 좌석에 따라 별도의 돈을 지불해야 하였다. 정해진 항공요금만 지불하면 끝인 줄 알아왔다가 항공요금 말고 좌석(자리) 값을 또 내라는 것에 잠시 당황했었다. 그것도 위치에 따라 값이 다르다는 것까지…. 명색이 저가 항공이라 해 놓고 자리 값까지 따로 받는구나 싶어서 괘씸한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항공 여행이 편안했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좌석 때문일 것이고, 일반석의 몇 배에 이르는 가격을 지불하고 비즈니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화장실 이용료도 따로 받지 그러냐’는 욱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같은 좌석이라도 통로 쪽은 들락거리기가 편한 만큼 효용 가치에 대한 대가를 굳이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라 스스로 받아들였다.
돈을 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좋은 자리도 있다. 지하철 노약자석이다. 어린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 임산부 등을 위해서 마련된 공간이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도 젊은이들은 노약자석에는 언감생심 앉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기특하다. 어르신 축에 끼이는 나도 노약자석 표지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노약자석은 요금 여부를 불문하고 달리는 지하철 속의 내 공간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도 확인하고, 문자를 편안하게 주고받을 수 있어 그지그만이다. 하지만 어르신 중에는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옆 사람 공간까지 침범하거나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진상도 더러는 있다. 누리는 특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꼴불견들이다.
다른 의미의 자리도 있다. 공간을 의미하는 자리가 아닌 이를테면 조직에서의 위치 같은 의미로 쓰이는 자리 말이다. 국내 대기업에 리더로 있다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지인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였다. “국내 기업의 좋은 점은 직책이 오를수록 의전이 확실히 따라온다는 것”이라고. 그는 국내 기업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의 말은 자리와 권력의 매력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자리가 정해지면 그 격에 어울리는 의전을 통해 권력의 달콤함을 즐길 수 있었던 지난 추억을 그리워하는 듯한 그의 말에서.
뇌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라는 책에서 ‘사람이 권력(자리)을 잡게 되면 호르몬이 분출되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도 견디게 한다.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자신을 오만하게 만든다’라고 하였다.
어디 기업뿐이겠는가. 높은 자리에 올라간 뒤 그 다음 행보는 녹록치 않다. 그 위상에 어울리는 더 높은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은 피라미드 같아서 위로 갈수록 문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다음 단계는 거의 대부분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에 이르면 본인 스스로 사회적 지위와 남 눈치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칫 고급 백수가 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회사든 정부든 고위직에 올라 출세한 사람일수록 품위는 물론 외로움도 잘 견뎌야 할 덕목이다. 마인드 컨트롤, 내려놓기 연습을 평소에 잘 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좋은 자리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의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연인이 노을을 보기 위해 작은 동산에 올라 쉴 자리를 찾았다. 동산에 올라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 앉았다. 하지만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던 중 위쪽에 있는 자리가 더 좋아 보였고 “위로 가면 노을이 더 잘 보일 거야”라며 위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위쪽으로 옮겨 앉은 후 또다시 옆을 보니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여긴 나무가 노을을 가리니 옆으로 가면 더 잘 보일 거야”라며 다시 옆자리로 그들은 옮겨 갔다. 하지만 이번엔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건너편으로 옮겼고 그곳에 만족하려던 찰나, 아래쪽에 아주 좋은 자리 하나가 보였다. 나무가 노을을 가리지도 않고 눈이 부시지도 않는 곳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아래쪽으로 옮겼는데, 자세히 보니 이 자리는 두 사람이 처음 앉았던 자리였다.
주말 아침나절, “지금 몇 사람 정도 대기 중인가요?”라는 아내의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들으면서 무슨 일인가 했었다. 아내가 갑자기 뻥튀기 집에 함께 가자고 한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이웃 동네에서 노점상으로 운영하는 뻥튀기 집(실제로는 봉고차다). 아이들 어릴 적 그 뻥튀기 차 앞을 지나치다가 꽝 하는 굉음에 작은 아이가 혼비백산,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던 그 뻥튀기 집. 아내의 전화 메모에 그 뻥튀기 집 전화가 남아 있었다는 것도, 그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아직도 뻥을 튀기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였다. 들고 간 콩 자루를 덜렁 받는 뻥 사장님은 머리만 희끗희끗 변했을 뿐, 여전히 친절하다. 뻥 사장님에게는 이 봉고차가 최고의 ‘좋은 자리’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