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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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에 있는 화구(畵具)를 빼주셨으면 합니다.”
H대학교 평생교육원 행정실에서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까지 등록하지 않으니 당연한 요구인데도 왠지 야박스럽게 여겨지고 서운했다. 혹시 어깨가 회복되면 다시 등록하게 될지 몰라 그대로 둔 것인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사물함 정리를 위해 아내의 뒤를 따라 들어선 평생교육원 강의실 안에서는 옅은 유화 물감 냄새가 났다. 아내는 빈 강의실에서 설렘과 열정으로 출렁였던 지난 10여 년간의 기억을 더듬는 듯 이젤 앞에 말없이 서 있다. 사물함에서 화구 가방을 꺼내려는데 아내의 미련이 버티는지 제법 무겁다.
아내의 열정이 멈춰 섰다. 큰 훼방꾼이 나타난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는 아직 치료법이 없는 뇌 신경 계통에 이상이 생겼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뼈가 부스러져 큰 수술을 하고는 그 후유증으로 붓을 들기 힘들게 되었다. 아내는 1년 넘게 재활 운동을 했는데도 회복이 더디니 점점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 같았다. ‘왜 하필이면 내 아내에게 이런 일이’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스쳤지만, 아내의 마음은 오죽할까를 생각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비 내리는 한강을 묵묵히 바라보는 아내, 저 침묵의 의미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오는 마음의 정리 과정이리라. 나의 깊은 한숨을 아내에게 들킬까 봐 애써 누르며 아내와 함께한 그림의 여정을 뒤돌아봤다.
20여 년 전, 아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림과는 인연이 없는 아내가 갑자기 웬 그림을? 사실은 젊은 시절에 화실을 드나들었던 내가 언젠가는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품고 살아왔는데…. 아내는 집 근처 기성 작가의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망의 부피만큼 꽤 오랜 기간 꾸준히 다녔는데도 그림의 진행 속도가 더디고 어설픈 것 같았다. 나의 조급함인지 아내가 소질이 없어서인지 혼란스러웠다. 기본이 약하면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 시작한 일, 이건 아니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가는 길에 동행하기로 했다. 동행은 함께 걷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도 같이하는 것일 테니까.
미대 입시 전문 학원으로 옮겨 기초 데생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내는 자식보다 어린 입시 준비생들 틈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적응해 나갔다. 6개월쯤 지났을까. 학원 선생님이 마른 가지에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을 그린 아내의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다시 붓을 잡아도 되겠다고 했다. 마른 나뭇잎이 바로 내 앞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언제 이 수준까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나도 놀랐다. “하산해도 된다는 거죠?” 하며 함께 웃었다.
다시 H대 출신 화가 작업실에 새롭게 둥지를 틀더니 H대 평생교육원에 등록까지 했다. 야간 강의가 끝나면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오라고 할 때가 있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와 자랑하는 어린애처럼 강의 중 들은 이야기를 혼자 묻고 혼자 답을 하며 좋아했다. 그럴 때면 환갑 지난 할머니가 맞는지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고흐는 밤하늘을 파랗게, 별빛은 노란색으로 칠했잖아. 색채 조합에서 보색은 원래 피하는데 파란색과 노란색은 보색 관계야. 보색끼리는 서로를 밀어내는 특성이 있거든. 그래서 고흐가 그린 파란 밤하늘을 보면 별빛이 훨씬 선명하게 반짝이는 거야. 당신 알고 있었어?”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피곤하지 않아?” 하고 물으면 “피곤하기는 해.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견뎌져” 하고 대답했다.
아내가 전시회 출품을 앞두고 그림 제목을 물어 올 때가 있다.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거기에 답이 있지”라고 하면 눈을 흘기며 “한번 더 생각해 봐” 한다.
한 작품이 끝나면 그걸 나에게 보여주며 “이 그림 어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깔린 물음이다. “으음. 2%가 아니라 10%쯤이 부족해 보여. 아직 마무리가 덜 된 것 같거든.” 끝까지 붙들고 매달려 좀 더 완성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쇼크 요법 대답이다. 둘만이 사는 노부부의 지루한 일상에 자극을 주는 순간들이다.
그림 그리는 일이 일상화되어 가는 아내를 보며 나도 나만의 영역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림 그리는 아내와 글 쓰는 남편’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꽤 괜찮은 조합 같았다. 나도 덩달아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아내는 세 번의 개인전을 하고 공모전에서 몇 차례 입상하더니 초대 작가까지 되었다. 경력이 쌓이니 한국미협의 회원도 되었다. 아내는 주로 풍경화를 그리는데 보는 이마다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받는다. 녹색을 주제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며 네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번의 전시회가 끝날 때마다 대표작을 명함에 넣어 새롭게 자기소개를 했다. 전업 주부이면서도 누군가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화가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열정 하나로 여기까지 온 아내가 뜻밖의 사고로 붓을 들 수 없게 되었으니, 아내의 막막한 심경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여보, 유튜브에서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것을 봤는데 나도 해볼까? 오른팔이 불편해도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워낙 기계치라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림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는 아내의 열정이 놀랍고 고마웠다.
“안 돼도 상관은 없어.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그럼 됐지 뭐. 당신한테 항상 고마웠어.”
망설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의지를 내비치는 아내.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의 그런 열정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열정과의 동행, 아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든 공감하고 응원해 주며 남은 삶을 동행하겠다고 내 마음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