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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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에 수록된 「풀 뽑는 사람」 한 편이 잠 못 드는 밤 내 시선을 끌었다. 노트 세 페이지에 꾹꾹 눌러 필사를 했다. 시인의 섬세한 관찰로 묘사된 문장 행간에서 고향의 풀냄새가 푸르게 났다. 시 한 편에 이름이 불리어진 풀들이 반가웠다.
쇠뜨기, 애기똥풀, 개비름, 개망초, 도꼬마리, 바랭이, 애기땅빈대. 고향을 등지면서 잊혀져 가는 풀들의 이름이 나를 금세 고향집 언덕배기로 데려갔다. 엄마와 여동생, 나와 셋이서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호밋자루 들고 여름 한나절을 보내곤 했던 그 시절이 눈앞에 그려졌다. 풀과의 전쟁을 하며 저 긴 밭고랑이 언제 줄어드나 연신 땀방울을 훔치던 두 딸들을 보며 ‘아이마다 사람 눈처럼 게으른 건 없단다’ 하시던 어머니 말씀에서 풀비린내가 진저리 나게 했다. 돌아서면 다시 풀들은 처음 호미질 시작했던 그 자리에서 제각각 명함을 들이밀었다. 가뭄에 논밭이 쩍쩍 갈라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들은 밭이랑에서 기세등등 영역을 넓혔다.
풀과의 전쟁을 벗어나는 길은 고향을 떠나는 일이다. 즉 유학이라는 빌미로 객지로 나가는 일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집을 떠날 구실이 없었던 나는 팔남매 중에 무, 배추 솎음 당하듯 교육도 솎음을 당해야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영리하다며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두 오빠들도 제때 공부를 놓쳐 만학도가 되었다. 시절을 잘 타고나야 그나마 솎음에서 제외되었다.
불우물에 심술이 가득 들어 있어 가뜩이나 넙대대한 얼굴에 입이 툭 사발처럼 나와 있다며 엄마한테 가끔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서운했다. 호밋자루 내던지고 발뒤꿈치로 밭두렁을 밀어내며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렇게 엄마 속을 헤집어 놓고도 날 저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군불 지펴 가마솥에 저녁밥 지으러 밭두둑을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이래저래 고단했던 시절 들춰내 보면 참 많은 불효로 엄마 가슴을 아프게 훑었다.
엄마는 그랬다.
‘니가 이유 없이 실실 아프고 의욕이 없는 거는 하고 싶은 일을 못 해서 그런 거다. 읍내 학원 근처라도 가 보라’며 매고 다닌 전대의 쌈짓돈을 어느 날 바지춤에 질러주셨다. 나는 곧바로 그 쌈짓돈을 받아들고 읍내 가정집에서 가르치던 피아노를 배우러 갔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모습은 하얀 집시 치마가 잘 어울릴 것 같아 옷맵시부터 챙기고, 짧은 손가락을 쭉쭉 잡아 빼면서 읍내를 오갔다. 짧은 직장생활 퇴직금으로 중고 피아노를 시골집으로 들였다. 산동네에서 피아노가 있다는 것만도 이웃집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예식장에서,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잠깐 했지만 결혼 이후로 내 이 화려하고 폼 나는 취미생활은 끝이 났다.
여름날 하루해가 너무 길다며 진저리쳤던 일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글 행간에 빛바랜 꽃무늬 몸뻬바지에 수건 두른 엄마의 얼굴엔 진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아가, 잘 사냐. 통 바빠서 못 와 보제, 왔다 갔으믄 조으끄인디 서울이 좀 멀어야제. 기름값은 또 엥간찬도 안 하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시 한 편을 필사하면서 엄마와의 소소밀밀한 추억을 꺼내어 보니 내게 정을 듬뿍 주셨던 엄마가 아직도 밭이랑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 엄마는 내 옆에 없다. 불러도 대답 없는 슬픈 메아리가 된 지 올해로 3년째다.
저 지겨웠던 풀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다가와 글밭에 시라는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니 더없이 푸르고 정겹다. 연중행사가 모두 끝나고 긴장이 풀려 정신이 느슨해졌는지 감기치레에 종일 기침을 달고 있던 중에 정신 가다듬고 시 한 편 필사를 했다. 필사 중 어머니도 만나고, 두 볼 뾰루퉁한 불만투성이였던 나를 만났다. 때로는 엄마의 가슴을 헤집어 아프게 했지만 지금이라도 그 불효에 다시금 가슴 뜨거워지는 시간을 가졌으니 늦은 나이에 이도 감사하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지천명을 한참 지난 후에서야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안도현 시인을 모시고 2025년 예술씨앗사업 일환으로 문협에서 문학 특강을 가졌다. 시인이 학생들에게 ‘북어 한 마리를 일주일 동안 책상머리에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묘사를 해 보게 했다’는 강의 대목이 귀에 들어왔다. 남다른 시상으로 묘사를 끄집어내라는 뜻일 것이다. 오늘 이 시 한 편에 줄줄이 명함을 들이밀고 올라온 풀들의 글 행간에다 엄마를 모시는 기쁨을 누렸다. 늘 손톱 밑이 풀물 들어 지울 틈 없었던 손끝에서 땀 냄새 대신 정겨운 풀냄새가 코끝에 스미는 듯했다.
모과차 한 잔 마주하며 필사를 하는 동안 과거와 현재로 자유로이 공간 이동을 했다. 덕분에 추억의 앨범을 펼치며 잊혀져 가는 고향도 다녀오고, 쪽진 낭자머리에 수건 두른 엄마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독자의 시선이 오래 머물게 하는 맛깔나는 시 한 편 나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