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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소년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태병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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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은 언제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자연현상이었다.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며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한, 예측 불가능한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연이 주는 혜택을 고스란히 떠안아 삶의 영역을 굴곡지게 할지 모른다. 미처 겪어보지 못한 지난여름의 폭염과 폭풍우가 안겨주는 재난이 그런 느낌을 또다시 던져주지 않던가. 모든 것 다 물리치고 여기에 고스란히 남은 사람은 저 뜨겁던 여름과 그것이 펼친 재앙을 잘 극복한 것에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었다.
어둡고 침침한 찜통 터널을 통과하니 푸른 하늘이 눈앞에 다가선다. 기다리지 못한 가을이 벌써 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저렇게 파란 하늘을 마련하여 숨겨두었다가 온갖 재난을 극복하고서야 겨우 볼 수 있다면 행운이 아닐까. 인간이 자연에서 얻어야 하는 순리는 사필귀정이나 인과응보인데, 저기 있는 저 하늘은 그게 맞을 거라는 듯 목화솜처럼 펼쳐 놓은 구름 속에서 내게 하얀 손짓을 하고 있었다. 견디고 잘 극복한 끈기가 저렇게 멋진 구름 꽃으로 피어 하늘을 장식한다면 그 복받치는 환희를 뉘에게 전할 수 있을까. 멋진 가을이 여기에 다시 찾아와 여태껏 지루하게 나이만 꾸역꾸역 먹던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늘어져 버린 열기는 솔솔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앞에 사라지고 영혼을 깊이 깨우는 가을이 깊이 익어가고 있지 않은가.
어느 철학자 문인은 ‘가을은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계절, 죽음을 예비하는 계절’로 정의했다. 삶을 잘 견디던 그의 사색이 어디에 꽂혀서 그렇게 단정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분명한 우리의 단정한 생활 속에서 차갑고 어두운 겨울을 앞두고 깊은 사색에 빠져 가을을 노래하는 것은 사피엔스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싶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으면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간다. 하니 자기 삶을 관조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고통을 겪으며 낙오하지 말자. 그로써 희로애락이 주는 용기를 얻어 무엇에든지 억압받지 말고 도전하여야 한다. 가을이 주는 사유의 폭은 깊고 넓어야 한다. 울긋불긋 꽃처럼 피운 단풍이 붉게 물들인 영혼을 포기할 수는 없다. 깊은 허무가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하면 낙엽 깔린 공원길 머리 숙여 걷는 당신은 나이 든 소년, 해탈의 경지를 바라볼 수 있을까.
가을 정취를 아낌없이 떠안으려는 사람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아름다운 풍경, 많은 모임과 행사가 그들을 모으려 부르지만, 억지로 훼손되고 있는 그대로 자연은 사라지고 철없는 인간의 자랑이요 본색을 감춘 눈가림 요식 행사만이 위선을 떨친다. 오라는 곳을 마다치 않고 달려갔으나 이제는 그런 욕망이 모두 사라졌다. 좌절인가 포기인가 체념일까. 나를 벗 삼아 오직 푸르던 솔 우거진 등산로의 피톤치드 자연 향, 한 모금의 커피와 어울려 굶주린 영혼을 살찌우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남겨진 생의 반려자로 삼을 수 있으니 고맙다. 시니어의 가을 단상은 그렇다. 오솔길 산책로를 먼 옛 고향 동네 등굣길로 착각하며 황혼을 노래하자니 다시 홀로이고 싶다.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날 수밖에 없는 가을의 축복인가. 낙엽 쌓인 길섶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아 깔린 낙엽의 이야기를 마냥 듣고 싶다. 황금빛 들녘을 가슴 가득히 담아 가을이 맴도는 향기를 맡고 싶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내면이 아름다웠던 사람,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까지 생존한 헤르만 헤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전쟁을 저주하고 문학과 미술, 음악을 사랑한 인류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그는 가을을 많이 사랑했다. 나도 그가 만났던 가을을 만날 수 있을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지만 그 긴 세월을 보충할 정서의 순화와 낭만은 사라지고 있다. 저 인도나라 그곳에 숨은 삶의 원시를 찾아 사색하는 인류를 만나고, 히말라야에 개발을 미룬 오지 네팔 쪽을 탐색해 봐도 거기에 우리가 누릴 꿈이 남아 있을까. 과연 우수가 깃든 가을은 아직 남아 있을까. 하지만 작은 핸드폰에 속박당하는 21세기, 그가 이 시대에 존재하였다면 정서의 불모지 인공지능 시대를 극복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다운 문학과 철학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가 누렸던 사색의 자유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또 다른 고독이 나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마치 푸른 초장과 샘터를 찾아 헤매는 황야의 유목민처럼 그들의 고독과 영혼, 원초적 생존을 만족하게 적셔 줄 먹이는 아무 곳에도 없을 것이다. 가을은 가고, 느껴야 할 외로움과 고독도 없다. 카뮈나 헤르만 헤세의 가을은 사라지고 있다. 그들만이 그 시대가 주는 사색의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로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이 가을에 들어야 하는 그 뉴스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미국의 건국이념이 뭐였나. 그 나라가 지금까지 존경과 칭찬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었던가.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자국 이익만을 위하여 달려 나간다면 그들의 조상이 내세운 자유, 평등,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모두 포기하고 세계 질서의 수호자 역할도 감당치 않겠다면, 그는 미국 대통령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모범국이 권력을 잡을 선거에 이기기 위해 쌓아온 국가의 신뢰와 전통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사람을 택하였으니 그들 국민은 바보가 아닌가. 오직 국가 우선주의가 향후 미국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온 세계를 마음껏 주무르게 되었다는 예상이다. 지구촌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의 이 나라는 어떤가. 받아 놓은 가을의 숙제는 더욱 무겁다. 머리가 가난하여 허기진 사람은 먹고 싶은 게 많다. 차라리 교만과 위선과 사치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떨어진 저 낙엽처럼 썩어 한 줌 부엽토가 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진대, 보기도 싫은 꼴사나운 저들의 모습에 얼마나 더 탄식을 쏟아야 하나.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서려 한다. 나의 삶 속에 찾아든 또 한 번의 가을이 가고 있다. 짧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시든 세월에 여위어 가기 시작하는 육신은 무엇을 기다리며 찾아야 하나. 나이 들어 늙은 소년은 사라진 향수를 찾는다. 어디에 그게 남아 있을까. 때를 그리던 그 소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착각 속에 가을빛이 눈을 가리려 하니 그는 안식할 곳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 내려놓고 가려는데, 한 줄기 저문 바람이 나를 껴안으려고 달려든다. 당신이 반갑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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