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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전쟁 일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강신영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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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 오피스텔 건물 중간층인 3층 집에 혼자 산다. 지난달부터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위층에서 쿵쿵대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새로 이사 온 모양이었다. 천장이 울리는 소리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쿵쿵 뛰기도 했다. 참다 못해 관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일 저녁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으니 중재해 달라고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태가 나아지지 않아 관리자에게 다시 얘기했더니 직접 올라가 항의하라고 한다. 그러면 감정이 격한 상태로 올라가게 되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인터넷으로 여러 사례를 검색해 보니 절대 직접 대면하면 안 된다는 글이 많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이웃사이센터’에 진정을 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접수 후 방문하여 개선 요청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장비를 빌려줘서 소음을 측정하고 벌과금을 매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전화해 보니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단지만 해당되고 오피스텔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 좋게 해결하려고 해 봤으나 불가능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올라가서 불같이 화를 내고 싶지만, 절대 금기 사항이란다. 겁주려고 흉기라도 들고 올라갔다가는 오히려 구속감이란다. 다음 단계는 민사 소송인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정면 공격보다는 측면 공격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루는 내가 외출하고 나서 관리자에게 한창 위층에서 운동할 시간이니 한번 올라가 보라고 했더니, 관리자가 부부 동반해서 위층에 올라갔단다. 운동기구는 없었고 고3 학생이 체구가 크고 게임을 하면서 발을 좀 굴렀을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데 둘 다 체구가 크고 체중이 나가는 편이라 걸을 때 소리가 날 수는 있겠다고 했다.
정면 공격 전에 전초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조금씩 쿵쾅거리는 소리는 그러려니 하고 참았다.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위층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드디어 처음으로 정면 공격으로 나선 것이다. 정중하게 적절한 조처를 해 달라고 했다.
간단하게 답이 왔다.
‘사생활 침해하지 마세요.’
이젠 전쟁하자는 얘기인데 사실 나도 다른 방법이 없다. ‘참을 인(忍)’ 세 번 되뇌다가 못 참으면 결국 전쟁하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층간소음 보복 방법을 검색해 봤더니 천장과 커튼 사각 코너에 골프공 던지기, 천장에 스피커 대고 진동을 만드는 우파 설치 등이 있는데, 그것도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보복 방법이 소개되고 있지만, 법은 피해자 편이 아니라 가해자 편이었다. 문자를 자주 보내도,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등산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도, 스토커나 가해자가 되어 벌금형이 떨어진단다. 소음 유발자는 최악의 경우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고작이다.
민사 소송을 위하여 우울증의 이유로 정신병원 진단서를 내용증명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는데 우울증 진단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변호사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변호사가 있으면 해볼 만한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위층의 발걸음 소리에 시달리다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집을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4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401호 남자일 것이라며 엘리베이터를 그냥 보내고 다음에 내려가려다가 피하지 않고 3층에서 그냥 눌렀다. 단톡방 사진으로도 대충 얼굴은 알았지만, 401호 남자였다. 50대 건장한 체구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집 남자와 단둘이 마주친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올라가 문 두드리고 대면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대면이었다.
“401호지요?”
“네, 그런데요?”
“사람 좀 살려주시오. 발소리 소음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받고 있어요.”
일단 말을 텄다. 차분히 대화하려 했는데 말투가 좀 거칠어졌다. 그간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온 모양이다. 눌러쓴 검정 등산모에 날카로운 눈빛을 날렸더니 움칫하는 모습이었다.
“아이 참, 저도 스트레스받고 살아요. 관리자도 찾아오고, 문자까지 받으니 내 집에서 편히 걷지도 못하고 살아요.”
그간의 측면 공격이 효과를 준 모양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은 말발이 먹혔다는 얘기다.
“댁은 사생활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피가 마르고 가슴이 뜁니다. 울화도 치밀고요. 이웃 간에 서로 배려하고 삽시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열리자, 내 말을 무시하고 지나치던 그 남자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한 마디 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뜻밖이었다. 내 말이 큰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비장한 말투였거나, 내가 20년은 더 먹어 보이는 노인이라 숙인 모양이다.
위층은 곧바로 그날 쿠션 매트를 깔았고 소리도 잦아들었다. 소리가 아직은 작게나마 들려도 대면해서인지 그전처럼 적대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보복성의 악의적인 소음이 아니므로 이젠 좀 느긋해졌다. 이젠 마주쳐도 서로 인사하며 지낸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간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큰 고민이 사라진 셈이다. 운이 좋은 편이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사는 나라다. 종종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갈등으로 살인 사건도 나고, 원만하게 해결이 안 되면 누구라도 그렇게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이 시간에도 당사자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공사비를 아끼려고 층간소음 문제를 소홀히 한 건축업자, 적절한 해결책 하나 아직 마련 못하고 있는 무능한 행정당국, 이웃에 대한 배려보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 등, 모든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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