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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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달려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멈춰 서 있던 때보다 달린 시간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멈추지 않는 것이 성실이라 믿었고,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빈틈없는 삶이라 여겼다.
달리기는 그런 나의 삶과 가장 닮은 행위였다. 출발선보다는 결승선에 익숙했고, 과정보다는 기록에 더 민감했다. 힘들어도 숨이 가빠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만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다는 신념, 스스로 격려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운동화 끈을 조였다.
출전 대회에서 완주를 거듭했다. 거리는 늘어났고 기록도 조금씩 단축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결승선에 도착할수록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치열하게 달린 끝에 남는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취보다는 공허에 가까웠다. 무언가 충분히 해냈다는 느낌보다는, 다음 대회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이 먼저 찾아왔다.
그 무렵, 완주하고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느낄 때, 오래전부터 받고 싶었던 피아노 레슨이 떠올랐다. 언젠가 꼭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어 왔다. 달리기처럼 멈추지 못하는 또 하나의 목표가 될까 봐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피아노 연주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예상과 달리 그곳 분위기는 달리기와 같은, 기록 경쟁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비교도 없고 속도를 재촉하는 기척도 없었다. 누군가는 같은 소절을 오래 반복했고, 누군가는 틀린 음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 시간은 성과를 요구하지 않았고, 더딤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곳은 하루의 루틴 속에 느린 구간으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 공간처럼 느껴졌다.
발 대신 손으로 경쾌한 스텝을 밟는 기분이었다. 음표를 따라 완주를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은 달리기와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감각을 불러왔다. 달리기처럼 속도를 높여 빨리 나아가는 것보다는 박자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전혀 다른 감각을 불러왔다. 피아노 앞에서는 서두를수록 길이 어긋났고, 욕심을 부릴수록 거친 소리가 났다.
어느 날 악보 속 작은 기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쉼표다. 소리를 내지 않는 음, 연주하지 않는 쉼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음이 어떻게 음악이 될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쉼표를 무시하고 연주할수록 곡은 흐트러졌다. 그 쉼을 지켜낼 때만 음악은 제소리를 찾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 삶에도 쉼표는 분명 존재했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멈춤을 패배로 여겼고, 휴식을 뒤처짐으로 오해했다. 오히려 쉼표가 보일 때마다 속도를 높였고, 공백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일을 채워 넣었다. 그 결과 삶에 리듬이 없었다. 피아노는 멈춤을 모르는 나를 깨우쳐주었다. 쉼은 멈춤이 아니라 또 다른 준비라는 것, 다음 소리를 정확히 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달린다. 다만 예전처럼 무작정 속도를 올리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 쉼표를 찍는다. 건반 위의 걸음은 나에게 속삭인다. 쉬지 않고 뛰는 삶이 최고의 삶이 아니라 리듬을 잃지 않는 삶이 최선의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