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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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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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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74살의 미선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도림천변을 천천히 걸어간다. 그녀의 살아온 세월이 평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살아왔다고 자위해 본다. 험한 산도 무사히 잘 넘었고, 혼자 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도 결국
버티어 냈음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위기는 수시로 문 앞에 놓여 있었지만 결국은 연기처럼 소멸했다. 다시 찾아온 임대업자의 수난도 그렇게 소멸할 것이기를 기대해 본다. 아니 넘어갈 것을 믿는다. 아무리 경제가 나쁘고 환율이 올라간다 한들 세월은 유유히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니까. 몇 년 전에도 미선은 망할 뻔한 고비를 현명하게 넘겼음을 기억한다. 하늘이 도운 거지. 암, 하늘이 도운 거야. 아름다운 삶이란 순리를 따르고 내 이익을 챙기기 전에 상대를 배려할 때 따라온다는 걸 배운 사건이었지. 미선은 그때를 떠올린다. 아직도 계단을 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복도에서 기어 다니던 구더기.
7년 전의 일이다. 외손녀를 학교에 태워다 주고 집에 온 미선은 급하게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간다. 숨이 찼다. 3층에서 숨을 고르며 잠시 서 있다. 난간을 붙잡고 가쁜 숨을 내쉬며 발아래를 보고 있는데 3층 복도 바닥에 하얀 쌀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웬 쌀이? 하며 주변을 바라보니 쌀은 301호와 303호가 있는 복도 앞으로 가면서 더 밀도가 높아진다. 누가 아깐 쌀을 흘렸지? 미선은 오르던 계단에서 내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오늘 시작하는 한글서예 수업이 10시에 있다. 쌀을 흘리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한다. 5층 집에 도착한 미선은 개수대에 쌓여 있는 아침 먹은 그릇을 씻어 놓고 마른 행주로 싱크대를 훔친다. 바람을 일으키며 안방 화장대로 가서 로션을 손에도 바르고 얼굴에도 바른다. 붉은색 루즈를 들어 입술에 묻히듯이 쓱쓱 바른다. 화장 끝이다. 오랫동안 쉬었던 서예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날인데 늦지 않게 가려 했다. 붓과 벼루가 든 검은색 천가방을 들고 시계를 보니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미선은 비로소 여유를 갖고 집을 나선다. 평생교육원까지 30분이면 가는데 시간은 9시를 조금 넘었다. 4층 계단을 내려가는데 더 많은 쌀이 3층 복도 바닥에 떨어져 있다. 아까 봤을 땐 점점이 흘린 것처럼 보였는데 그동안 쌀을 들고 이동했는지 한 움큼씩 뿌린 것처럼 더 넓게 더 두텁게 펼쳐져 있다. 특히 303호 방 앞은 한 사발이나 될 듯한 쌀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아니 무슨 쌀을 이렇게 많이 흘렸지? 칠칠맞게. 그때까지만 해도 미선은 하얀 것들이 쌀인 줄만 알았다. 303호 방문 앞에서 미선은 손을 뻗어 쌀을 집으려고 허리를 숙였다. 순간 센서등이 켜지면서 복도가 밝아졌는데 하얗게 쌓인 것은 쌀이 아닌 벌레였다. 자세히 보니 된장 항아리에서 나오는 구더기였다. 구더기들은 꼼지락거리며 복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으으윽∼ 미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뻗었던 팔을 들어 올리며 뜀뛰듯이 물러섰다. 음식물을 얼마나 방치했으면 구더기가 이렇게 많이 나올까. 미선은 구더기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303호 방 문을 급히 두들겼다. 방에서는 기척도 없고 대답도 없다.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문자를 한다. 전화도 안 받는데 문자의 회답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들긴다. 기척이 없는 것이 외출했는가 보다. 휴가철이 가까운데 휴가를 갔나? 휴가를 갔을지라도 전화는 받아야지 왜 안 받는 거야? 미선은 계속 전화를 한다.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전화기에서 멘트가 나온다. 삐- 소리가 나면 음성 녹음을 하라고 한다.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미선은 급한 마음에 짜증을 낸다. 전화를 하는 동안에도 구더기들은 출입문 아래로 하나 둘, 혹은 여러 마리가 뭉치로 쏟아져 내린다. 미선은 급한 대로 빗자루를 가져와 바닥에 깔린 구더기부터 쓸어 낸다. 구더기는 쓸어내고 뒤돌아서면 하나 둘 여기저기서 기어 나오는데 그 양이 자꾸만 많아진다. 아무래도 오물덩이가 집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나 보았다. 사람이 없는 것 같은 303호를 집중적으로 두들긴다. 끝내 기척이 없다. 진짜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쓸어 놓은 구더기를 쓰레기 받이에 담으니 한가득 찼다. 구더기를 버리고 올라오니 언제 치웠냐는 듯 또다시 하얗게 깔려 있다. 바닥의 먼지와 함께 쓸어 낼 땐 잘 쓸리던 구더기가 다시 쓸려니 살아 있는 것이라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다.
“왜 그래요?”
304호에 사는 조선족 아저씨가 나오더니 구더기를 보며 멈춰 선다. 아저씨는 구더기를 바로 알아보고 눈을 크게 뜬다.
“얼마나 썩은 음식을 집 안에 쌓아두었으면 이렇게 구더기가 많이 나온대요? 참 별일도 다 있네요.”
미선은 여전히 음식물에서 나온 구더기라고만 알고 구시렁댔다.
“아주머니, 이상한 냄새 안 나요?”
304호 조선족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구더기를 보고 또 보더니 코를 큼큼거린다.
“무슨 냄새?”
미선도 그제야 코를 큼큼거린다. 아까부터 야릇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글쎄요.”
304호는 구더기가 나오는 303호 출입문에 코를 대고 무슨 냄새인지 확인하려 한다. 코를 쥐고 물러서며 눈살을 찌푸리는 아저씨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런데 한밤중도 아닌데 왜 전화를 안 받는지 모르겠어요.”
미선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문자해 봐요.”
“문자도 했어요. 답장이 없어요.”
자전거로 택배 일을 하는 304호 아저씨는 심각한 얼굴로 출근을 미루고 미선의 옆에 붙어서며 구더기에 관심을 가져준다.
“집에 있다면 지금까지 자지는 않을 것인데 어디 갔나 봐요. 나갔어도 핸드폰은 가지고 갔을 것인데 전화는 받아야지.”
미선은 전화를 안 받는 303호가 한심해 죽겠다는 듯 똑같은 말을 거듭하고 있다.
“전 이 방 청년 안 본 지 오래됐는데요. 항상 담배 피러 나와 주차장 앞에 서 있잖아요. 그런데 근래엔 못 봤어요.”
304호는 구더기를 쓸어내며 툴툴거리는 미선한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통 못 본 것 같아요. 휴가 갔나 봐요. 여름인데 음식물 쓰레기는 버리고 나가야지 그냥 둔 채 나가면 어떻게 해. 그런데 왜 이렇게 구더기가 많이 나온대요? 고기 구워 먹은 것을 그대로 두고 나갔나 봐요. 아유 냄새! 구더기 냄새가 독하네요! 아저씨는 출근하세요. 나도 오늘부터 시작하는 서예교실 가야 해요. 문자랑 카톡 했으니까 답이 오겠지요.”
미선은 구더기를 담은 쓰레기 봉지와 같이 계단에 놓았던 가방을 들고 내려가려 한다.
“아주머니, 경찰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이상하잖아요.”
무슨 냄새인지 확인하고자 연신 킁킁거리던 304호는 내려가려는 미선의 옷자락을 잡았다.
“뭐가?”
미선은 세상물정 모르고 산 여자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하게 말한다. 그러나 304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선을 바라본다. 304호의 심각한 표정을 본 미선은 그제서야 무슨 생각이 나는지 오싹 긴장을 한다. 304호 호일 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다. 한국에 나온 지 십 년은 된다고 했다. 국경을 넘나들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터라 상황 파악이 빨랐다.
“이 냄새가 수상해요.”
“왜?”
“사고가 난 것 같아요.”
304호는 조용히 다가와 숨죽이듯 말했다.
“문 한번 따 볼까요? 마스터 번호가 입력돼 있어서 열 수 있어요.” 
미선은 입주자의 허락 없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열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러지 말고 경찰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혹 모르잖아요. 사람이….”
304호는 말끝을 삼키며 문을 열려는 미선을 막아서듯 팔을 벌리며 몸을 흠칫 떨었다.
“혹시….”
304호는 목 밑에 오른팔을 가로로 들어 보였다.
“사람이 죽었다고?”
미선은 304호를 따라 오른팔을 들어 목 밑에 대더니 몸을 흠칫 떨었다.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들고 있던 구더기 담은 봉지를 떨어뜨린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생겼어요?”
이때 301호가 신사복을 빼입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반쯤 걸친 채 출입문을 열더니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굴린다.
“아저씨, 요 근래 303호 방 희멀건 청년 본 적 있어요? 방에서 구더기가 나오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라 경찰 부르려고요.”
304호가 301호 아저씨한테 다가가 귀에 속삭이듯 말하며 구더기를 가리킨다.
“이것이 뭐지? 구더기 아냐? 이런 것이 왜 여기에 있지?”
나이가 칠십 고령이라는 301호 아저씨는 바닥에 기어 다니는 구더기를 보더니 문을 활짝 연다. 자기 방 문 안에도 구더기가 있는지 구두 밑창까지 확인한다. 자기 방 문 앞에는 구더기가 없음을 확인하자 안도하며 얼른 문을 닫았다.
“지금 냄새 안 나요? 썩은 냄새 같은 것.”
304호는 다시 코를 움켜쥐었다. 301호는 목을 빼고 큼큼댄다.
“난 코가 막혀서 냄새 잘 못 맡아.”
301호 아저씨는 코를 씰룩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경찰 불러야겠어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선은 핸드폰을 열어 112를 콕콕콕 찍는다. 112는 금방 전화를 받는다.
“경찰서지요? 빨리 좀 와 주세요. 방에서 구더기가 나오는데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112 경찰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 여러 가지 묻지도 않고 주소부터 물었다.
“예에, 관악구 새로나13길 4호 세종원룸 303호입니다. 빨리 좀 와 주세요.”
“경찰 아저씨가 10분 내로 온다고 하네요.”
전화를 끊은 미선은 들고 있던 서예 가방을 창문턱에 올려놓는다. 이 상황에서 외출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십 분 내로 온다던 경찰은 옆집에서 온 듯 5분 만에 경찰차를 타고 두 사람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미선은 대한민국 경찰이 정말 우수한 네트워크 속에서 신속하게 일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두 경찰관은 바닥에서 꼬물대는 구더기를 보더니 상황 파악이 되는지 집 뒤로 가서 옆집 담을 타고 올라가 목을 빼고 창문 안을 살펴본다. 창문은 잠겨 있었지만 다행히 커튼은 쳐 있지 않았다. 젊은 경찰이 도시가스관에 매달려서 창문에 눈을 바짝 대고 안을 살핀다.
“사람이 있습니다. 이불을 덮고 있네요.”
303호 출입문 앞으로 돌아온 젊은 경찰은 같이 온 나이 든 경찰관한테 귀속말처럼 작게 말하더니 비상키를 가져오라 했다.
“마스터 번호로 열면 됩니다. 7700으로 열어 보세요.”
미선이 말하는 대로 젊은 경찰은 7700을 누른다. 문이 안 열린다. 
경찰이 다시 마스터 번호를 누른다. 여전히 안 열린다.
“안에서 못 열게 눌러 놨네요. 다른 키는 없나요?”
“없는대요. 마스터키 번호만 입력했어요.”
“강제 개방 해야겠네요.”
나이 든 경찰관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정 순경, 강 순경한테 전화해서 방화문 개방할 망치 가져오라고 해. 사망자가 있으니 시체 처리반에 연락해서 같이 오라고 해요.”
나이 들어 보이는 경찰이 젊은 경찰한테 지시를 한다. 젊은 경찰은 전화를 다급히 한다.
“새로나13길 4호 세종원룸 303호로 오십시오.”
젊은 경찰은 전화를 마치자 담배를 태우겠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나이 든 경찰관도 같이 내려갔다. 담배를 꺼내 젊은 경찰관한테 먼저 준다.
“사람이 죽었나요?”
아직까지 출근하지 않고 같이 마당으로 내려온 301호와 304호가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고 있는 두 사람 옆으로 붙어 섰다. 미선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젊은 경찰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것 같아요. 보증금은 얼마나 받았나요?”
나이 든 경찰관이 담배 연기를 날리며 미선을 보았다.
“천만 원요.”
“처리 비용은 되겠네요. 부모를 찾아야 하는데 부모 연락처는 알고 있나요?”
“몰라요. 계약할 때 직장인이라고 해서 안 받았어요.”
“이런 불상사를 대비해 직장 전화든 친구 연락처라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 찾아냅니다. 이따 계약서 하나 복사해 주세요.”
나이 든 경찰관은 깊이 빨아든 담배연기를 크게 뿜어내더니 발밑으로 던져서 껐다.
“시신은 오늘 중으로 처리합니까?”
301호 아저씨는 방문을 열면 사람이 죽은 방이 코앞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걱정 마세요. 병원 영안실로 갑니다. 나머지는 부모님을 찾아 합의하시면 됩니다.”
이때 응급 차량 소리가 삐웅 삐웅 요란하게 도착했다. 망치를 든 사람과 들것을 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났는가 싶은지 궁금해하는 얼굴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게 보인다. 하지만 출근 시간대여서인지 서둘러 떠나간다. 망치와 들것을 든 경찰과 함께 두 경찰관이 앞서 올라간다. 미선과 301호, 304호가 경찰관을 따라 올라간다.
망치를 휘둘러 두세 차례 치자 문이 열렸다. 복도에 썩은 냄새가 확 퍼졌다. 미선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5층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301호와 304호도 코를 쥐고 물러선다. 두 경찰관도 멀찍이 물러선다. 시체 처리반만 지체하지 않고 들어간다. 누가 볼세라 신속하게 시체를 마무리하여 들것에 옮기고 하얀 천으로 덮어서 들고 나온다. 그 뒤를 하얀 옷을 입고 마스크와 위생 모자를 쓴 남자가 소독약을 뿌리더니 문을 닫고 나온다. 시체 처리는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도망치듯 집으로 올라온 미선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처음에 왔던 경찰관 둘이 올라와 문을 두드린다. 사망자가 언제 죽었는지 확인한다며 CCTV를 켜달라고 했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가요?”
경찰관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미선은 303호 청년의 여성스러운 외모에 비해 말이 상당히 차가웠던 것을 기억하며 그때가 언제던가 하고 생각한다. 303호 청년의 이름은 방청주였다. ‘청주 씨, 봉지째 넣지 말고 분리해 주세요.’ 분리 수거대 앞을 지나다가 303호가 쓰레기를 봉지째 재활용 봉투에 던져 넣는 것을 보던 날 정중하게 부탁했을 때 303호는 가던 걸음을 멈추더니 얼굴만 돌려서 ‘나한테 말했어요?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했었다. 아주 짧게 말했는데 미선 씨는 섬뜩할 만치 날카롭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성깔이 있네. 미선 씨는 뽀샤샤하니 곱상한 303호 입에서 얼음장 같은 날카로운 음색을 들을 줄은 몰랐다. 방청주가 입주한 지는 일 년도 넘었지만 미선이 303호의 말을 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중개업자가 소개할 때 들은 정보로는 컴퓨터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지만 303호는 출퇴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친구나 여자가 찾아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언제나 하얀 바탕에 하얀 칼라가 붙은 파란 체크무늬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주차장 앞에서 외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입주한 이래 방세를 밀리는 일도 없었고 방에 문제가 있다는 등 소소한 것으로 까탈을 하며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때가 되면 계산해야 할 것은 계좌로 정확하게 이체를 했다. 쓰레기도 정확하게 분리해서 버릴 줄 아는 모범생이었다고 봐야겠다. 그날도 쓰레기를 분리해 달라고 말한 것은 봉지를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던져 넣는 것을 본 미선의 지나친 관리에서 나온 잔소리였다. 303호가 가고 난 후 보니 봉지 안에는 과자 봉투 등 비닐 외엔 분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청년 안 본 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아요.”
미선은 304호가 아침에 복도에서 말한 대로 똑같은 대답을 했다. 미선은 계약한 입주자가 들어오면 나가고 들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방세만 잘 내면 되는 거지 그 밖의 것엔 너그러우려고 노력했다. 이십 명이 넘는 입주자 호실과 이름을 거의 다 알고 있지만 아는 체를 하지도 않았다. 방세는 온라인으로 들어오니 굳이 방세 받으러 방으로 찾아갈 일도 없었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고 퇴실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보는 임차인도 있다. 예전과 달리 온라인으로 계약하고 입금을 하기 때문에 임차인과 만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303호는 담배를 피러 마당으로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대화를 할 일이 없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지만 인사하지 않았으므로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것이 서로를 편하게 한다고 믿어서였다. 밤이면 CCTV에 자주 보이는 303호는 담배를 태운 후에는 소주나 막걸리를 사 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혼술을 즐기는 것 같았다. 컴퓨터 회사에 다닌다고 했으니 재택 근무를 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두 경찰은 모니터에 눈을 박고 앉아 있다. 미선 씨도 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어야 했다. 3단 고속으로 놓고 지켜본다. 303호는 한 시간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15일째가 되어도 모니터에 안 보인다. 두 경찰은 지루한 듯 교대로 하품을 한다. 미선 씨는 한 시간째 보고 있는 경찰관한테 냉수를 갖다 준다.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303호가 모니터에 뜬 것은 그들이 냉수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저기 보이네요. 저 남자예요. 체크무늬 셔츠 입은.”
소파에 앉으려던 미선이 소리쳤다. 하얀 칼라에 파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303호는 평소의 반듯한 자세가 아닌 다소 휘청이는 자세로 계단을 올라오더니 현관문 안으로 사라진다.
“저 사람 확실합니까? 정 순경, 동영상으로 찍어요, 날짜가 언제지?”
“6월 3일입니다.”
“오늘이 20일인데 그럼 며칠 된 거야? 거꾸로 다시 봐 봐.”
경찰은 영상을 반대편 화살표를 눌러 돌려 보기 시작한다. 303호는 주차장 앞마당에 서서 담배를 길게 태우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CCTV엔 아주 작게 보인다. 뭐가 급한지 담배를 급하게 거듭 빨더니 마트 쪽으로 간다. 영상 속은 오 분 정도 조용하다. 화면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골목길만 보인다. 잠시 후 303호가 골목길에 나타나더니 계단을 올라온다. 소주 한 병을 들고 일층 현관문을 향해 올라온다. 잠시 곱상한 앞모습이 모니터에 뜬다. 현관문을 열자 303호의 모습은 모니터에서 사라진다. 경찰은 잠시 영상을 멈추어 시간을 체크한다. 모니터에 나타난 시간은 에이엠 3시 30분이었다. 경찰관은 나타난 시간을 적고 계속 리모컨 앞에 앉아 있다. 303호가 모니터에 다시 나타난 시간은 5시 30분이었다. 딱 2시간 만에 방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에도 주차장 앞마당에서 담배를 태운다. 생각에 잠겨서 천천히 마지막까지 음미하며 태운다. 꽁초를 발밑에 던져버리고 마트 쪽으로 간다. 조금 후 소주 한 병을 들고 올라온다. 현관문 앞을 지나갈 때 303호의 곱상한 얼굴이 크게 보인다. 경찰은 잠시 화면을 되돌려 스톱시키고 사진을 자세히 본다. 미선도 다가가서 어깨 너머로 같이 본다. 303호의 얼굴은 피곤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달라붙었지만 눈빛만은 번뜩이고 있었다. 303호는 8시 30분에 또 모니터에 나타났다.
“두 시간마다 담배를 피는군.”
“잠을 안 자는 거지요.”
“계속 더 봐.”
“6월 3일 8시 30분에 집에 들어간 것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그 후 사망한 거네요. 그 후로 지금까지 현관 출입문에 나타나지 않네요.”
젊은 경찰관은 동영상을 돌려서 사진을 찍은 후 물러앉으며 기지개를 켠다.
“죽은 지 17일 되었구만.”
나이 든 경찰관은 수첩에 뭔가를 한참 동안 기록하고 모니터를 끈다.

 

오후 6시. 세종원룸 아래층 계단을 오르던 301호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303호가 하얀 보자기에 덮여서 실려 나가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하얀 천에 덮여 있어서 죽은 사람을 보지는 않았지만 현관문을 여는데 무서움증으로 몸이 오싹해진다. 집 안은 조용했다. 구더기가 기어 다니던 복도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지금 오세요?”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따라 들어왔는지 뒤에서 304호 조선족 남자가 인사를 한다.
“무슨 소식 들었어요? 그 사람 사망 원인이 뭐래요. 그동안 앞방에서 사람이 죽은 줄도 모르고 지낸 생각을 하면 오싹오싹해요.”
301호는 304호를 보자마자 죽은 303호 소식부터 묻는다.
“저도 조금 전에 마트에서 들었는데 심장마비사라고 하네요. 죽은 지 17일 되었답니다.” 304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앞서서 올라간다. 301호 아저씨는 304호를 바짝 따라붙으며 올라와 문을 재빨리 열고 들어가 문을 잠근다. 온몸이 떨리는 무서움증을 304호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 태연하게 말을 걸었지만 문 앞에 망자가 서 있는 착각에 식은땀이 났다. 301호는 달력을 보았다. 20, 19, 18,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날짜를 세어 본다. 6월 3일은 17일째 되는 날이었다. 앞방 청년이 자기와 마지막으로 술을 먹은 날은 17일째가 되기 전 날이니 6월 2일 저녁이었다. 들고 있던 술잔을 녀석의 얼굴에 뿌려주고 그 방을 나온 날 녀석은 자정이 다 되도록 301호 문을 부술 듯이 두들기다가 잠잠해졌다. 아침에 301호는 전날 녀석과 밤새 술을 먹었다는 것을 경찰에게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말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말하고 싶지 않았다. 303호는 그날 새벽까지 아니 날이 새도록 술을 먹고 죽은 것이다. 304호는 심장마비사라고 알고 있는데 301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좀 이상하다. 경찰관이 창문으로 들여다보던 날 사람이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장마비가 왔다면 그렇게 얌전하게 이불을 덮고 있을 수 있을까? 301호는 303호가 수면제를 먹고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소문 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303호의 죽음은 무서웠다. 하루 종일 색소폰을 부는데 악보를 잘못 보아 팀원들로부터 정신 차리라는 핀잔까지 받았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이 원룸에서 유일하게 같이 술을 먹었던 청년인데, 얼마나 외로운 녀석이던가. 이 원룸에 온 뒤로 외출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3년 동안 자기 아버지가 준 돈을 다 까먹고 이젠 보증금밖에 안 남았다며 혼자 비참하게 사느니 수면제 먹고 죽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래서 녀석은 지 말대로 수면제를 먹고 죽은 것이다. 죽어도 찾아올 사람 하나 없는 자기도 죽지 않고 있는데 젊은 놈이 건방지게 먼저 죽은 것이 괘씸하기도 했다. 301호는 녀석의 죽음이 자기와 무관한 것 같지 않았다. 303호는 301호를 볼 때마다 죽고 싶다고 했는데.
“헛살았지. 사람 하나 살리지 못하고. 죽게 만들다니.”
301호는 녀석과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던 날이 생각난다. 녀석은 생김새는 계집애 같아도 시건방졌다. 어른의 말을 개 짖는 소리쯤으로 알았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장가도 가고 새끼도 낳는 것이 인생의 맛이라고 하자 녀석은 술잔을 엎으며 화를 냈다.
“개똥 같은 소리 작작하라고. 마누라랑 자식이 있다면서 그 꼴상으로 살면서 누굴 가르치려고 해! 널 보면 늙은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아 죽이고 싶어진다고. 난 오래 안 살 거야. 그래서 난 수면제 모으고 있어. 너 같은 쓰레기 늙은이가 안 되려고 죽을 거라니까.”
303호는 픽픽 웃으며 자기를 조롱하듯 말했다.
“얌마, 보자 보자 하니 말버릇이 싸가지가 없네. 대학까지 나왔다고 해서 정중히 대했건만 이건 초등 교육도 못 받은 놈 아녀? 천하에 쓸모없는 쓰레기 아녀! 에라, 호래자식 같은이라구!”
그날 301호는 303호한테 욕을 잔뜩 해주고 그 방을 나왔었다. 그런 것이 놈을 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 아니던가. 301호의 욕은 모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녀석은 301호가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자 밤새 술을 먹고 홧김에 수면제를 털어 넣었을 것 같았다.
301호가 303호와 술 친구가 된 것은 우연 같지만 사실은 외로운 사람끼리의 가장된 우연이었다. 어느 날 마트에서 막걸리를 사는 303호와 마주쳤다. 한 집에서 그것도 같은 층에서 마주보며 살고 있어도 소 닭 보듯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안면은 있었다. 앞방에 살면서도 아버지뻘인 자기를 무시하는 듯 아는 척도 안 하는 녀석이 항상 괘씸했지만 어느 날은 녀석이 하도 외로워 보여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이왕이면 술 같이 할까?”
방문 앞에서 말했을 때 녀석은 뜻밖에도 자기 방문을 열어줬다.
“들어오세요.”
녀석은 거만스럽게 말했지만 301호는 참치캔과 막걸리를 들고 녀석의 방으로 줄래줄래 따라 들어갔다. 그 후로 둘이는 저녁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막걸리나 소주를 들고 303호에서 술을 마셨다. 처음엔 말없이 조심하며 술만 마시던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주사가 나타났다. 녀석 나이의 자식이 있는 301호에게 너라고 맞먹지를 않나 말끝마다 씨발 좆도고 쌍욕질이다. 처음에는 술에 취해서니까 하며 봐주었는데 날이 갈수록 도가 심했다. 술잔을 벽을 향해 던지기도 하고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말이 거칠어진다. 녀석과 술 먹다가 큰 싸움이 날 것 같았다. 301호는 차츰 303호에서 술 먹는 것을 피했다. 한동안 멀리했던 추 여사를 다시 불러서 술을 마셨다. 303호가 술을 들고 와서 부르면 추 여사를 집사람이라고 속이며 집사람이 왔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303호는 추 여사가 매일 오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303호는 술만 사면 301호의 문을 두들겼다. 낮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할 것 없이 같이 마시자고 했다. 301호가 오지 않으려는 것을 눈치 챈 녀석은 나올 때까지 문을 두드린다. 301호는 견디다 못해 마지막이다 하며 그날 303호로 가서 같이 술을 마셨다.
301호는 303호를 보았다. 출입문 앞에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늬가 뭔대 날 무시해?’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꿈이었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꿈이었다. 서둘러 불을 켰지만 온몸에서 식은땀이 난다. 책장에 꽂아만 놓고 펼쳐 보지 않던 성경을 찾아서 머리맡에 놓았어도 무섭다. 301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는 집주인한테 전화를 한다.
“아주머니 넘 무서워요. 기도 좀 해 주세요.”
주인집으로 피신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했지만 외손자와 살고 있는 여주인이라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부탁한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아저씨 연세에 애들처럼 무섭다니요.”
“사람이 죽어 나간 집인데 안 무섭다니요? 아주머니는 5층에 사니 안 무서운가 봐요. 난 지금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어요. 빨리 기도 좀 해 주세요.”
“알았어요. 기도하고 있으니 너무 무서워 마세요. 하나님의 평안이 임할 겁니다. 선생님도 교회 다닌다면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하세요.”
301호는 전화를 끊고 이불 속에서 덜덜 떨면서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주기도문을 외우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은 것 같았지만 두려움을 떨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주기도문을 집중해서 암송을 하니까 출입문 앞에 서 있는 것 같던 혼령이 사라진 듯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 같았다. 301호는 겨우 진정은 되었지만 머리에 뒤집어쓴 이불을 젖히지 못한다.

 

미선은 1층 현관 앞에서 303호의 누나를 기다린다. 경찰서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새벽녘에야 고인의 부모를 찾았단다. 고인이 살던 방 퇴실 문제 때문에 누나가 보호자 자격으로 온다고 했다. 누나를 기다리는 동안 미선은 마당을 쓸고 있다. 입주자들은 집에서 사람이 죽은 사실을 모르는 듯 평소처럼 출근을 서두르며 계단을 내려간다. 더러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고 간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작금의 이웃이다. 그것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다행이다. 배달업을 하는 304호도 이른 시간에 일이 있는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얼굴이 핼쓱하다. 미선을 보자 재빨리 옆으로 온다.
“아주머니, 저 밤새 한숨 못 잤어요. 와! 넘 무서웠어요. 옆방 죽은 청년하고 얘기 한 번 안 했는데도 얼굴은 알고 있어서인지 그 얼굴이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이불 뒤집어쓰고 잤어요. 방 좀 바꿔줄 수 없나요? 죽은 사람 방 지나지 않게 위층 말고 아래층으로요.”
304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밤에 301호도 무섭다고 전화가 왔는데 야단이 났다.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3층에서 사람이 죽어 나간 것을 알게 되면 304호처럼 너도 나도 방을 바꿔달라고 하거나 퇴실한다고 할 것 같았다.
“104호가 공실인데 그리 갈래요?”
“당장 갈게요. 짐도 많지 않으니까 일 마치고 오면 바로 옮길게요. 대신 일조권이 3층보다 안 좋으니까 방세는 좀 깎아주세요.”
304호는 약았다. 방 크기가 똑같건만 일조권이 약한 것을 이유로 방세까지 깎아달라고 한다. 안 깎아주면 나갈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깎아줄까? 원룸은 일조권 상관없이 방 크기로 방세를 받는데….”
미선도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춘다.
“5만 원만….”
304호는 눈을 치뜨며 입술을 비틀어 물고 미선의 눈치를 본다. 칼자루를 쥔 상황이니 일단 뱉어 놓고 흥정하려는 태도다.
“3만 원 빼줄게요.”
이런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미선은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한다.
“감사합니다.”
304호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더 이상 보채지 않는다. 그 정도로 할인받은 것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런데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라고 하던데 젊은 놈이 집에만 있으며 담배만 피우더니 끝내 그리 죽었네요. 안됐어요.”
304호는 갑작스레 방세 할인을 요청한 것으로 인해 집주인의 맘을 상하게 한 것 같았는지 냉큼 가지 않고 딴청이다.
“심장마비래요?”
미선은 쓰레기를 한데 모으다가 304호를 본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경찰관은 아직 사인을 모른다고만 했는데 어디서 들은 소문일까.
“국과수에서 그렇게 말했대요.”
“누가 그래요?”
“마트에 가니까 사람들이 그리 말하던대요. 그럼 저는 나가 볼게요.”
미선은 검은색 모자를 눌러 쓰며 내려가는 304호의 굽은 등만 보고 서 있다. 입주자들만 모르지 세종원룸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동네에 다 났음을 안 순간이었다. 원룸 운영자며 관리자인 미선은 사고가 났을 때부터 사업에 피해가 올까 봐 전전긍긍 마음이 무거웠는데 현실이 되었다. 집에 빨간 줄을 치는 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사고 수습이 조용하게 진행되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대했는데 결국 소문이 다 난 것 같았다. 두려웠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집의 입주자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퇴실자가 쏟아지게 생겼다. 퇴실자들한테 내줄 보증금만 해도 몇천만 원인데 보증금을 어디서 구한담. 보증금을 바로 안 주면 민원을 넣는 세상이라는데 원룸에서 죽은 사람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 이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누나라는 여자한테 책임을 지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과연 순순히 책임을 진다고 할까? 미선은 대빗자루를 던져 놓고 5층으로 올라가 식탁에 앉아 머리를 숙인다.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해서다.
“전능하시고 지혜와 지식에 능하신 주여, 저를 지혜롭게 하사 303호 청주 씨 누나를 만나면 협상을 잘 하게 도와주세요. 제 입에 지혜의 말을 담아주시고 사망자 누나가 제 입장을 헤아리게 도와주세요.”
미선은 머리를 무릎 사이로 깊이 숙인 채 기도를 한다. 청주 씨 누나는 주인집까지 찾아서 올라왔다. 경찰서에서 알려준 대로 잘 찾아온 것을 보니 발구하고 분별력이 있는 여자 같았다. 저렇게 발구한 누나라면 미선이 협상에 불리할 것 같았다. 미선은 따지고 우기는 사람한테 이길 자신이 없다. 마음속으로 주여만 부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피해를 끼쳐서.”
검은 정장 차림의 여자는 소파에 앉더니 짧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청주 씨처럼 뽀얀 살결에 이마가 유난히 동그랗고 눈이 까만 것이 미인이다.
“부모님은 안 오셨네요?”
“부모님은 병원으로 가셨어요. 밤에 모르는 전화가 여러 번 왔지만 안 받다가 아침까지 계속 전화가 와서 그제야 받아 보고 동생이 죽은 걸 알았어요.”
여자는 메마른 얼굴을 들어 말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고 있다. 마루 바닥에 눈물이 떨어진다.
“얼마나 놀랐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저도 이렇게 맘이 아픈데 그쪽 부모님은 얼마나 애통할까요. 무어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미선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청주 씨 누나의 손을 잡는다. 미선의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나온다.
“동생이 이런 원룸에 살고 있는 줄을 부모님께선 모릅니다. 지금도 영등포 오피스텔에서 사는 줄 알아요. 방세는 밀린 게 있나요?”
303호 누나는 미선이 눈물을 쏟고 있자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며 북받쳐 울더니 이성을 찾은 듯 눈물을 거두고 묻는다.
“방세 밀린 것은 없어요. 청주 씨가 부모님과 자주 안 만나나 보네요.”
“2년 동안 집에 온 적이 없대요. 직장을 그만둔 후 오피스텔을 얻어나가더니 부모와 결별하고 살았대요. 청주 방 보증금이 얼만가요?”
“천만 원이에요.”
“다 까먹었나 보네요. 집 나갈 때 아빠한테 오천만 원 가져갔다는데.”
“우리 원룸에선 일 년 정도 살았어요.”
“계약 기간은 얼마나 남았나요?”
“십 개월 남았어요.”
“10개월치 방세는 드릴게요.”
“아유! 사람이 죽었는데 그럴 필요까지.”
미선은 사망자의 잔여 기간 방세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그래도 받아야지요. 사고 난 집은 방이 금방 안 나갈 건데.”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애통하게 저세상으로 갔는데 도리가 아니지요. 우리가 부조해야 할 판인데, 과분합니다. 다만 방을 잘 수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천장까지 구더기에 뒤덮였다니까요.”
미선은 303호 누나와 합의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기도까지 했지만 막상 만나자 죽은 사람의 비애 앞에 자기 손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위로하고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수리는 당연히 해야지요. 경찰서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처리해 주는 전담팀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모두 맡기기로 했습니다. 버릴 것은 다 버리고 장판 도배까지 일체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방세도 드리겠습니다. 너무 큰 피해를 끼쳐서 죄송해서 그럽니다. 그냥 받아주세요. 3층에 방이 몇 개인가요? 다른 층은 몰라도 3층에 사는 분들에게는 한 달치를 저희가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303호의 청주 누나는 구더기가 기어 다닌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같은 모든 옵션도 전담팀을 통해 교체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303호 누나와의 합의는 물 흐르듯 조용하게 진행된다. 예상외로 303호 누나는 세종원룸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충분한 비용을 지불할 것을 약속한다. 미선은 사업상 손해가 날 후일을 걱정했지만 이상하게도 누가 입을 막는지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선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303호 누나는 보증금 천만 원으로 방도 수리하고 옵션도 교체하라고 한다. 덧붙이길 사고 때문에 퇴실하는 방이 있으면 세가 나갈 때까지 공실 비용도 내주겠다고 한다. 천만 원으로 부족하면 더 보내준다고 한다. 섬뜩할 만큼 까칠하던 303호였지만 사는 동안 방세 밀리는 법 없이 살던 청년이더니 법도를 잘 아는 집의 자녀였음을 느끼게 했다. 304호는 3만 원 할인된 1층으로 내려가고 무서움으로 밤을 못 잔다는 301호 아저씨는 그래도 자기 방이 좋다며 그대로 살겠다고 하여 사는 날까지 3만 원을 깎아주기로 한다.
“무섭기는요, 같이 술도 먹고 해서인지 정 떼려고 무섬증을 준 것 같아요. 무서움은 주기도문을 외우니까 괜찮아졌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밤마다 술 대신 성경을 펴놓고 읽습니다. 그동안 내가 나이롱 신자였다는 것을 회개했습니다. 303호 청년한테 전도하지 않은 것도 회개했습니다. 어른답지 않게 술병 들고 가서 술이나 먹었지 본이 되지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진즉에 교회에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그 녀석이 나를 잘 못 만나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리쳐 울고 싶습니다.”
어느 날 301호는 울컥하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3층의 사망 사건은 예상 외로 조용히 끝이 났다.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 주가 가고 이 주가 흘러도 예상되던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집이라는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궁금해하던 이웃들마저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잠잠하니 묻는 사람이 없다.

 

미선은 303호 계약서를 일 년 반 만에 썼다. 방 수리를 하여 새집이 되었지만 그 방은 일체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방을 내놓았을 때 첫 손님이 아이유처럼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303호를 보자 바로 맘에 든다며 계약을 한다고 한다. 건장한 남자가 입주해 살기를 바라던 미선은 아가씨가 계약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아가씨는 그 방으로 기어이 계약을 했다. 아가씨는 계약 기간인 이 년을 잘 살더니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한다며 퇴실 신청을 한다. 퇴실하는 날 미선 씨는 승진 축하 꽃다발을 주며 말했다.
“결혼 날짜 잡히면 꼭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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