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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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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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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
낮은 동녘 하늘에 애드벌룬만 한 달이 아래가 조금은 일그러진 채 떠 있다. 아니, 정말 달이 아닌 애드벌룬인지도 모른다. 저처럼 큰 달을 본 적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유리창에 비친 여자는 아름다웠고 남자는 잘생겼다. 그야말로 선남선녀를 뛰어넘는 용모의 소유자들이다.
둥근 달이 환영처럼 차 앞유리창에 가득 찼다. 안으로 두둥실 들어올 것만 같은 달은 이내 주행 속도에 반비례해 고층빌딩 허리 옆에 달려 천천히 오르고 있다. 순간 젤리를 흡입하듯 차는 달을 보고 달렸다.
오늘따라 왠지 차도가 길게만 느껴진다. 초가을인데, 가로수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매미 울음소리 옥타브가 절정에 다다르면 녀석들의 생명이 다해 간다는데 정말 그럴까?”
“자연의 섭리겠지. 미물이라 그게 행복인지도 모를 거야….” 
“죽음을 향한 단말마는 아니고?”
“무슨 단말마가 합창해대냐?”
얼마나 달렸을까. 남자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자, 터널을 벗어난 것처럼 세상이 환해졌다. 짙게 선팅한 유리창 하나 간격으로 명암이 갈리고 있다. 자동차라는 협협한 공간! 이 비좁은 공간은 어둠의 장막으로 덮인 곳이다. 아니, 남자와 여자에게 넓게 펼쳐진 유일한 무대이다.
“우리의 관계는 사랑일까 사련일까?”
“사랑이면 어떻고 사련이면 어때. 만나서 좋으면 그만이지, 안 그래?” 
“매미의 운명 같아서 불안해!”
“우리가 7년을 사귀어서?”
“하긴, 7년 동안 응달에서 굼벵이처럼 지냈지….”
“그래도 지금 우리는 한바탕 노래를 즐긴 매미가 되었잖아. 어쩌면 걔들처럼 살다 가는 것도 클라이맥스한 삶이 아닌지 몰라.”
“근데,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긴 달나라지.”
“저 달나라?”
“그래!”
“그런데 달나라는 있는데 왜 해나라는 없을까?”
“해는 뜨거워 갈 수 없고, 달나라는 옥토끼가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도 이제 저 달처럼 가까이도 멀리도 못하는 사이가 되려나.”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우리가 밀레의 만종 속 부부처럼 경건하게 살 날이 올까?”
“그건 그림 속의 환상이야. 미켈란젤로가 천주교 신부가 되는 것처럼 불가능해.”
“웬 미켈란젤로?”
“아, 내가 말하는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린 화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야, 동명이인. 말이 나왔으니까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
“미켈란젤로가 또 있어?”
“맞아, 그 유명한 메두사의 머리를 그린 미켈란젤로야. 그는 자연인으로서는 살인자에 갖가지 악행을 일삼은 존재지. 보통 카라바조라고 불러.”
“카라바조? 이름이 야릇하네. 그동안 우리는 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모르고 화가로서의 명성만 보고 있었구나.”
“지금 같으면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한 방에 날아갔겠지.”
“악마한테 선한 삶을 주고 대신 재능을 받은 거구나.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지. 그동안 학교에서는 피에타를 조각한 미켈란젤로만 가르친 것이지.”
“세상 교육이 그 화가만 부각한 것이군! 그동안 모르고 살았네.”
“그렇지, 당시에는 개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지금보다 덜 엄격했었나 봐.”
“신약시대 같으면 우리는 돌로 맞아 죽었겠지….”
“맞아. 카라바조의 삶을 우리가 닮았는지도 몰라. 겉으로 보기엔 나는 번듯하고 자기는 어엿하잖아. 실상은 사련의 장본인이면서.”
“우리의 사랑도 윤리적 기준을 떼어내면 숭고한 거겠지. 한낱 육체적 교감에 지나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련은 면목 없는 짓이 분명하잖아?”
“페르소나! 상관없어! 해와 달이 왜 존재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플라토닉이니 에로스니 따질 필요가 없거든.”
“우리의 사랑이 절대선이라면, 왜 불안해하고 갈등하며 두려움에 죽으려는 거지?”
“우리가 서로 묻고 답할 것까지는 없어. 사랑은 종족 본능의 또 다른 형태일 테니… 죄의식을 가질 것도 없고. 그 누구도 우리의 사랑에 대해 단죄할 권리는 없어. 당당한 건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야! 스스로 연민을 가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무리 변명해도 지금 우리는 죽으러 가는 거잖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뭐가 있어?”
“…그렇다고 죽음을 놀이로 삼아야 해?”
“놀이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겠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사랑이란 단어는 고유어잖아. 순수한 한글… 그러고 보니 진짜 좋은 건 모두 고유어네, 밥, 하늘, 땅, 물, 별, 아! 꿀….”
“꿀? 그럼 우린 달콤한 밀월여행?”
“여행이,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

 

차는 도심을 벗어나 거침없이 강변북로로 들어섰다. 의외로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오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죽기로 작정한 날이다. 한 달 전, 약속한 일을 실행에 옮기려 하는 것이다.

 

여름의 한가운데, 길가 화단에 연분홍빛 상상화가 흐드러지게 피던 날. 남자와 여자는 정사(情死)하기로 결의했다. 비련의 남녀가 되기로 작정했었다. 정사가 학습도 아니고, DNA에 각인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쉽게 죽음을 선택했다.
그날, 남자와 여자는 시내 한 일식집에서 만났다. 남자는 차를 갖고 오고, 여자는 전철을 타고 왔다. 일식집에서 사케동으로 점심을 먹은 후, 남자와 여자는 차에 올랐다. 남자가 시동을 걸려 하자 여자가 손으로 저지하고는 작은 가방에서 비닐로 둘둘 만 작은 달항아리를 꺼냈다.
“웬 달항아리야? 뜬금없이.”
“집에 있던 건데, 가져왔어.”
여자는 평평한 대시보드 위를 손바닥으로 쓸고는 달항아리 밑바닥에 순간접착제를 두르고 꾹 눌러 붙였다. 신랑 각시 인형처럼 두 개의 달항아리가 대시보드 위에 나란히 섰다. 여자가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둘을 붙잡고 밑동에 입바람을 후후 붙어댔다.
잠시 후, 여자가 손으로 달항아리 몸통을 조심스레 건드려도 움직임이 없었다.
“잘 붙었네!”
“그게 뭐라고 그렇게 해?”
“나도 몰라.”
“어쨌든 귀엽네.”
“내가 잘했지?”
“그래!”

 

몇 년 전, 여자가 다이소에 들른 적이 있었다. 크고 작은 달항아리들이 판매대에서 저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시엔 집 안에 달항아리를 두면 복이 들어온다고 하여 크게 유행할 때였다.
여자도 달항아리를 둘러보았다. 큰 건 가격이 비싸고 놓을 데도 마땅찮아 그냥 어른 주먹만 한 달항아리만 두 개 사서 거실 화분대 맨 아래 중앙에 올려놓았다. 앙증맞은 모양에 복도 작게 오리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저 달을 집 안으로 끌어온 것처럼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여자는 두 개의 달항아리를 장식하고는 왠지 「달과 6펜스」가 떠오르고, 이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연상되어 의아스러웠다.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두 개의 달항아리가 소설과 영화라는 세기적 걸작을 끄집어냈다.

 

차는 강변북로를 지나 덕소로 팔당으로…, 양평대교를 건너 국도로 접어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지루해질 때쯤 한 아담한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서 커피 한잔하고 갈까?”
“그래, 분위기가 괜찮네!”
남자는 북한강 강가의 한 카페 앞에다 승용차를 세웠다. 색다른 카페였다. 남자와 여자는 만나면 변두리 카페를 찾았다. 카페 투어나 다름없었다.
카페는 뒤편에 작은 모텔을 안고 있었다. 대형 유리창이 마치 비행기 머리처럼 타원형으로 튀어나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부는 밖보다는 약간 어두웠으나 조명이 은은했다.
남자와 여자는 창가에 앉았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유리창 턱에 자그마한 달항아리 몇 개가 나란히 서서 남자와 여자를 반겼다. 여자는 그것들을 보자, 대시보드 위의 달항아리가 떠올랐다. 이쪽저쪽 모두 달항아리였다. 그것도 똑같은….
탁자에도 손바닥만 한 달항아리에 예쁜 보라 장미꽃이 꽂혀 있었다. 화병 삼은 모양새가 운치를 더했다. 주인이 달항아리 마니아인지는 몰라도 분위기 감각이 매우 뛰어나 보였다.
달항아리가 무드등 불빛에 은은히 빛났다.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반사광이 달리 보였다. 곳곳에 달항아리 천지였다. 문득, 여자는 그것들이 월식처럼 자신들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여자는 혼잣말하듯 물었다.
“어떻게 되긴…, 저 달항아리 두 개를 동시에 바닥에 던진 것처럼 되겠지.”
“…….”
밖은 어느덧 어둠이 밤을 사렸다. 안쪽의 빛이 유리창 넘어 땅바닥을 하얗게 적시고 있다. 여자의 뇌리에, 산산이 흐트러진 달항아리 파편이 그려졌다. 끔찍했다. 하지만… 던지지만 않는다면 그대로, 그대로 영롱한 빛을 발하며 존재하겠지…. 여자는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뭐로 하시겠어요?”
젊은 여종업원이 주문을 청했다.
“네! 둘 다 아메리카노.”
여자는 화들짝 놀라 남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엉겁결에 커피를 시켰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어?”
남자가 여자의 표정을 읽곤 나직이 물었다.
“별거 아냐.”
여자가 보라 장미꽃을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보라 장미의 꽃말은 불완전하지만, 영원한 사랑이래요.”
여종업원이 돌아서며 한마디 던졌다. 표정에서 손님들이 많이들 물어보는 것 같았다.
북한강의 저녁은 고즈넉하면서도 침울했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국어사전 속에서 잠자는 정사(情死)라는 단어를 끄집어내 실현하려 하고 있다. 지난 8월에 만나 합의했었다. 정사(情事)로 끝내야 할 것을 정사(情死)로까지 이어가기로….
그때 남자와 여자는 여러 가지를 의논했다. 죽기 전에 할 일은 무엇이고, 죽은 후에 문제는 없는지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그대로 약속을 이행하기로 거듭 확인하고 남자와 여자는 헤어졌었다. 각자의 귀갓길은 참으로 무거운 걸음이었다.

 

커피가 나왔다. 향이 진했다.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맛과 내음이 될지도 몰랐다.
남자와 여자가 커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마주 보고 실팍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의 의미를 그들은 말이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다. 안중근 의사 의거도, 이준 열사의 의거도 아닌 무슨 구차한 이유로 죽고자 한다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터이나, 그래도 세상 사람들에게 처절히 외치고 싶었다. 무고함이 아닌 절박함을….
“독버섯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뽑아낼 필요가 없듯, 우리는 이 사회가 제거할 대상이 아니야, 자연 생태계의 일부니까.”
“그래, 맞아!”
여자는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지만, 씁쓸하면서도 착잡했다. 처음으로 가슴이 심하게 아파졌다.
“이제, 저승사자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는 거야.”
남자가 커피잔을 무겁게 내려놓았다.
“그래, 근데 왜 난…, 저 달항아리를 보면 죽겠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거지?”
“언젠 죽고 싶어 안달하더니만!”
“내가 언제? 한데, 우리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뚱맞게 학문은!”
“궁금해, 자연 현상은 과학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남녀관계는….”
“우리가 액체가 아니라서 화학적 결합이야 안 되겠지만, 수학으로는 가능할 거야. 만일 우리 둘 사이의 거리를 미분한다면, 서로 가까워지려고 0으로 수렴하겠지. 무한대로….”
“어려워 복잡해,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나 봐….”
“그러니 헛소리 관두고 커피나 마저 마시고 가자.”
“그래.”
남자와 여자는 달항아리 두 개를 깨트려 그 파편을 한데 섞어도 결코 일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같이 죽는다고 해서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침묵이 침묵을 싸고 싸며 돌았다. 순간 고개를 든 남자와 여자의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카드로 계산을 하고 나서 괜한 걱정이 생겼다. 커피값 9천 원을 다음 달에 상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뒷머리 꼭지를 당겼다. 계좌에서 자동으로 이체되겠지, 하면서도 현찰 9천 원의 부재가 미필적 고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눈앞을 가렸다.
남자와 여자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둘은 현재 도피 아닌 잠입 중이다. 누가 쫓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스스로 파고들었다. 자신들의 죄를 문책하며, 자탄하며 단죄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문초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남녀의 불륜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아님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형틀에 가두고 옥죄다 끝내는 죄의 속량을 죽음으로 귀결지으려 했다. 쉽게 그냥 막연하게 어린 왕자나 되는 것처럼… 죽으면 훌쩍 별나라로 가려니 했다.
남자와 여자는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대로 앉아 있었다. 머무르는 것인지 주저앉는 것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방향타를 잃었다고 하는 게 옳았다.
살짝 내린 유리창 사이로 강물이 실어 온 잔잔한 공기가 부드럽게 차 들어왔다. 차 안은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들이 남의 눈치 안 보고 손가락질 안 받고 누리며 맘껏 사련의 주인공으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비록 관객은 없지만,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남자는 기어를 넣었다. 뜨악한 주차장 바닥을 타이어가 짓누르며 출발했다. 차체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북한강 47번 국도를 구불구불 얼마나 달렸을까. 직진과 우회전 갈림길에서 차는 멈췄다. 남자는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차는 알았다는 듯이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이제 평지는 끝난 듯싶었다. 조금씩 경사가 더해지는 언덕길을 차는 이리저리 올라갔다. 때마침 달도 같이 오르고 있었다. 길은 좋은 편이나 꼬불꼬불한 산길은 그들의 대화를 간간이 멈추게 했다.
산 중턱까지 차는 쉼 없이 달렸다. 중미산천문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휴양림 안내글도 보였다. 차는 잠시 망설였다. 천문대로 갈 것인가 휴양림으로 갈 것인가. 애초 목적지 없는 행로인데, 여기 와서 갈등을 일으키는 게 싱겁기만 했다.
이번에도 남자는 여자를 쳐다봤다.
“아, 천문대!”
여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목적지를 결정했다.
“거긴 왜?”
남자가 되물었지만, 이미 차는 천문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거기 가면 큰 달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달항아리를 그렇게 보고도 달을 보고 싶어?”
“진짜 달을 제대로 보고 싶어.”
“지금 가서 볼 수 있으려나?”
“글쎄, 일단 가보자고!”
“보름달을 천체망원경으로 본다고?”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달을 보러 가다니 아이러니네!”
“인생 자체가 아이러닌데 뭐!”
“근데, 우리 죽으러 가는 거 맞아?”
“그럼, 왜 여기까지 왔겠어.”
남자와 여자가 자잘한 실랑이하는 동안 어느새 차는 가파른 산길을 허겁지겁 올라 중미산천문대에 힘겹게 도착했다. 참으로 신기했다. 서울에서 채 한 시간 남짓 거리인데, 이렇게 웅장하고 멋진 천문대가 산 정상에 거대한 웅지를 틀고 있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윽고 하늘이 어득해졌다. 입구에 가서 관람 방법을 알아보니 예약제였다. 남자는 망연했다. 언젠가 얼핏 보도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여자는 예견했는지 그리 실망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까와는 달리 관람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았다.
“이대로 갈 수는 없잖아. 갈 데도 없고….”
“경치도 좋은데, 그냥 여기서 밤하늘을 보면 어때?”
“좋은 방법이네. 기온이 차가우니 차에 가서 보자.”
“그게 좋겠어.”
남자와 여자는 다시 차로 돌아가 승차했다. 차 머리를 돌려 시야가 확 트인 위치로 세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아도 보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머리 위에 별이 있으면 밖에 나가 보면 될 터였다.
산 정상의 밤이 서서히 깊어져 갔다. 때마침 하늘도 맑았다. 별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고, 달도 두둥실 떠 있다. 굳이 천체망원경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멀리서 보는 게 나을 성싶었다.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별과 달을 보면 사람 얼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징그러울지도 모른다고 자위도 해본다. 큰 달이 점점 차 안으로 밀려 들어올 듯 환히 빛났다. 진짜 보름달이다.
“엄마!”
여자가 달을 보자 갑자기 외마디를 질렀다.
“갑자기 엄마는 왜 찾아?”
“달을 보니 엄마 얼굴이 떠오르네.”
“엄마? 나는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떠오르는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요를 나지막이 불렀다. 산 정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일 터였다. 그들은 긴 세월 만났음에도 그 흔한 노래방을 간 적이 없었다. 남의 눈이 너무나 무서워 신나게 흥겹게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주로 차가 그들의 밀회 장소였다. 숨 막혔지만, 긴장감 있는 공간이었다.
“참 좋은 노래야!”
“워낙 시가 좋아. 김소월도 위대하고….”
“그래, 맞아. 금모래빛 강변만 떠올려도 행복해져.”
“쓸쓸한 감은 없고?”
“그건 아니고, 이 노래를 쓸쓸하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내 마음이 그런가 봐.”
“동상이몽이로군….”

 

가로등 불빛 말고는 사방은 어둠에 침잠돼 있었다. 차 안은 아늑했고 편안했다. 마치 우주정거장에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의 저주를 피해 위태위태하게 여기까지 달려온 그들이다. 모든 걸 잃기 전에 모든 걸 버리려는 사련의 당사자였다.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더는 올라갈 데가 없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겠지….”
“아, 배고파!”
“엉뚱하기는, 죽으러 온 사람이 배가 고파?”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어야 하는 거 아냐?”
“배고프기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우리 모든 걸 작파하고 스테이크나 먹으러 갈까?”
“스테이크?”
“왠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 이태원 그 집! 드라이에이징한 거 레어로….”
“그럼, 서울로 가야 하잖아?”
“왜, 서울로 가기 싫어?”
“우린 이제 끈 떨어진 연이잖아?”
“그게 서울하고 무슨 상관이야?”
“죽으러 왔다가 다시 가긴 싫어.”
“…스테이크 레어! 드라이에이징이라… 고기 맛보면, 죽고 싶지 않을걸.”
여자가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어떻게 하지?”
“우리 운명에 맡기자! 근데, 우리 어떻게 죽기로 했지?”
“아! 그 생각을 안 했네.”
“…우리,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낫지 않아? 밤마다 꿈속에서 지구와 달처럼 만나는 건 어때?”
“그럴 거 같으면, 우리가 여기 왜 왔게. 헤어지지 못하니까 죽어 함께하려는 거 아냐?”
“죽는다고 함께한다는 보장이 어딨어?”
남자의 말에 여자가 심드렁한 말투로 따지듯 짓궂게 물었다. 
“우린… 갈 데가 없어,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남자와 여자는 한동안 말을 잃고 앉아만 있었다.
얼마 후, 남자가 침묵을 깨고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우리 내려가자. 천문대에서 죽을 수는 없잖아.”
“…….”

 

차는 경사진 길로 들어섰다. 내려가는 길을 달이 좇아왔다. 아니 차가 달을 따라갔다. 달은 휘영청 하나인데, 남자와 여자는 달 하나씩을 가슴에 품었다. 대시보드 위의 달항아리가 달빛에 윤슬처럼 빛났다.
“자기 생명보험 들었어?”
“아니, 그건 왜?”
“둘이 죽으려다 우연히 한 명이 살아나면, 오해받을까 싶어서 그래.”
“그런 자기는?”
“나도 없어.”
“불행 중 다행이군….”
남자와 여자는 대화 끝에 자조 섞인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생명보험 하나 들지 않고 살아온 무심함이 그들의 척박한 삶을 대변했다.

 

남자는 차를 몰고 굽잇길을 내려오다 곡선형 난간 안쪽 공터를 발견하고는 브레이크를 급히 밟아 차를 멈추었다. 여자가 깜짝 놀라,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여자를 힐끗 보고는 잠시 불빛 휘황한 양평 시내를 내려다봤다.

 

남자는 여자를 만난 이래 신에게 기도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동네 교회를 잠시 다닌 적이 있었을 뿐, 아버지가 오랜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신의 은사를 믿지 않았다. 인간사에 기적은 없다고 단정했다. 나름으로 신에 대해 편집하고 정리해서 주관화했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질서 밖의 일에 대해선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손가락 여섯 개를 갖고 싶다고 밤낮으로 울며불며 기도한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여섯 개가 될 리 만무하다. 교통사고나 산재로 손가락 한 개를 잃을 수는 있어도, 여섯 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 손가락 네 개는 인간의 소관이고, 여섯 개는 신의 소관이다. 그러니 위배는 모순이고, 모순은 카오스다.’
남자는 성인이 되고서도 이런 관점을 거두지 않았다. 기적은 특히 큰일에서는 더욱 안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무리 신에게 간구한들 손가락이 여섯 개가 될 수 없듯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올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평생 그를 지배해온 신념이자 철학이다.

 

남자는 결심한 듯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쿵, 덜컹!
순간, 윙 하는 소리 끝에 차가 철제 난간을 엎어뜨려 밟고는 낭떠러지 쪽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위험천만, 백척간두였다.
“악!”
여자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차체 삼 분의 일이 아슬아슬하게 공중에 떠 있었다. 앞으로 나가던 바퀴를, 엎어진 가드가 꺾여 막지를 않았더라면 그대로 추락했을 터였다. 남자의 오른발이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남자는 핸들을 힘 있게 잡고는 기어를 중립에 놓았으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차체가 간당거렸다.
여자는 숨죽이며 미동도 없었다. 그런 여자를 보고 남자가 입을 뗐다.
“에이씨, 이거 죽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지금 누구 보고 하는 소리야?”
여자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남자에게 화를 냈다.
“나 보고 하는 말이야. 차가 어중간하잖아!”
“…참! 이 차 아반떼잖아, 스페인어로 전진한다는 뜻이라고 했잖아? 근데, 왜 안 나가?”
여자의 힐책에 남자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앞으로 간다는 의미지.”
“그럼, 우린 가긴 가는 거네?”
“그건 아냐, 아반떼는 앞으로 간다는 뜻이고, 우리는 추락해야 하는 거라고!”
돌연, 차가 또다시 간당거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이따금 덜컹거렸다.
“무서워!”
여자가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벌벌 떨었다.
차는 언제 저 아래로 고꾸라질지 몰랐다. 차체는 삼 분의 일밖에 안 내밀었는데, 전륜구동이라 앞이 무거워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출렁거렸다. 여자는 태연해지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저지른 거, 죽음을 약속했던 터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남자도 그런 여자를 보고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자신도 공포감에 짓눌리면서도 속내를 들킬세라 거친 호흡을 감추었다. 겉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태도가 의연해 보였다.
“우리 이렇게 하자. 여기서 이렇게 밤을 보내는 동안, 지구의 중력에 의해 차가 저 아래로 떨어지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고, 달의 인력이 이겨 그대로면 내일 아침에 우리는 이태원 스테이크 집에 앉아 있는 거야.”
“그래. 이참에 용기 없는 우리의 목숨을 과학에 맡겨 보자고.”
“좋아!”
여자의 얼굴이 달빛에 상기돼 보였다. 좀 전에 두려워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제안에 차분한 어조로 동의했다. 남자와 여자의 운명은 지구와 달의 싸움에 걸린 셈이다. 러시안 룰렛도 아니고, 사이언톨로지도 아닌데…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거창하게 우주에 걸었다.
둥근 달은 조금씩 작아지며 서서히 올라가고 차는 이따금 흔들거렸다. 공포의 밤일지, 전율의 밤일지…. 모든 건, 이 땅과 저 땅에 달려 있었다.
갑자기 풀벌레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사위가 고요해 소리는 마냥 크게 들렸다. 귀뚜라미인지 풀무치인지 몰라도 요란스러웠다. 남자와 여자를 보내기 위한 산속의 환송곡은 아닌지 합창은 끊임없었다.
그때, 여자가 그 소리를 꺾으려는 듯 엄마야 누나야 뒤 소절을 불렀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여자의 노래에 남자는 가사를 입속으로 거푸 되뇔 뿐, 따라 부르지는 않았다. 저 강변은 어디에 있을까.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우리가 갈 수 있을까.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와 여자는 어슴푸레 잠이 드는가 싶었다. 달은 이미 차올라 차 앞유리창 위로 사라져 버리고, 언제인지 대시보드의 달항아리만이 떨어져 내려 바닥에서 뒹굴었다. 두 개 모두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달항아리의 온전함이 잠이 든 남자와 여자에게 살포시 전해졌다. 남자와 여자의 두 눈이 또다시 마주쳤다. 남자와 여자는 허탈하면서도 안도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인지를… 삶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것을….
여자가 바닥에서 달항아리를 집어 한 개를 남자의 가슴에 안기고 또 다른 한 개는 자신의 가슴에 소중히 품었다. 이제, 산속의 차 안은 정부(情夫)와 정부(情婦)의 작은 무대가 아니었다. 세상을 힘차게 밟고 각자의 무대로 되돌아가 주인공으로 살아갈 탈출구였다.

 

…암전

 

어둠이 차 뒤 유리창을 서서히 내리덮는다. 둥근 달이 밤하늘 정중앙에서 차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참으로 밝고 힘찬 보름달, 올해 두 번째 뜬 슈퍼문이다.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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