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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울고 싶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정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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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제비꽃을 짓밟은 발꿈치에 꽃이 뿜어 주는 향기’(마크 트웨인)라고 말했나? 어느 발 아래 짓밟히고 존재가 허물어지는데, 분노와 모멸감 너머를 바라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우리 안의 위대함이 있어서 제비꽃처럼 용서의 향기를 뿜을 수 있다면? 세상은 날더러 ‘미움과 분노’로 삶이 고통스럽다면 사랑과 용서라는 카드를 좀 꺼내 써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용서는 없다. 용서가 강한 자의 미덕이라 해도.
피를 나눈 가족이 생판 남보다 못한 것이 아닌지, 가족이 사랑이란 이름 아래 서로의 가슴에 쾅쾅 대못을 박는데…. 사랑에서 광기까지 큰 진폭을 보이는 형제간, 나는 절망감에 빠져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추운 겨울날 성당문 안으로 들어섰다.
“신부님 저는 죄악으로 들끓는 암흑의 바다에서 커다란 삼각파도를 만났습니다. 악의 쓰나미가 태풍처럼 몰려와 내 조각배를 에워싸고 삼켜 버릴 듯 덤벼듭니다. 제 아버지는 돌입니다.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죠, 나를 아프게 걷어찼습니다.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있다면 신부님 믿으시겠습니까? 저의 아버지란 사람은 딸인 제 재산을 강탈해 갔습니다. 일억 원이란 거금을요. 일억이면 서울 변두리에 웬만한 집 한 채 값입니다. 이십 년 가까이 부모의 생활비를 댄 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은 인간도 아닙니다. 그 탐욕과 이기심 교활함 그 천박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끔찍합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 짓이나 다 하고도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내 안의 끔찍한 두 얼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아요. 꼭 복수할 거예요. 신부님, 도와주세요. 저는 어쩌면 좋습니까? 용서하라는 말씀만 빼고 다 말씀해 주세요.”
“용서, 용서는 결코 쉽지 않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용서라는 덕목입니다. 되로 받았으면 말로 되갚으려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용서는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고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매님, 저는 용서라는 말 빼고는 신부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사랑하는 가족은 서로에게 한 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 때문에 헤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잊자고 되뇌어도 다시 화가 치밀고 놓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원망이 되살아나 견딜 수가 없어요. 복수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용서? 말로는 쉽지요.”
저는 선박 회사에 다니는, 정직하고 성실한 남편이 벌어오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부모 생활비 대느라 허리가 휘청거렸지만 다달이 생활비 부치며 즐거웠습니다. 부모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그리고 안 먹고 안 입으며 하고 싶은 것 꾹 참으며, 푼돈을 아끼며 피나게 절약하며 살았습니다. 전 재산을 큰아들에게 몰빵해 주고 시골로 쫓겨나, 생활비 한 푼 안 대주는 아들이 미웠지만 칠십 대 부모의 곤궁을 생각해 어쩔 수 없이, 큰딸인 저를 유별나게 사랑하신 엄마를 생각해 기꺼이 봉양해 왔습니다. 이런 세월이 십 년쯤 흘렀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조상에게 물려받은 선산을 팔은 돈이라며 2천만 원을 내놓았습니다. 형제들에게 다 나눠 주고 그것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노후 대책을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 그 당시에도 최소한 일억은 줘야 경기 인근에 조그만 상가라도 장만할 수 있었죠. 할 수 없이 제 돈 3천만 원을 합하고 나머지 5천은 전세를 끼고 살 수 있었어요. 다달이 월세는 안 나왔지만, 제가 여전히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성이 잔뜩 난 아버지가 그 가게가 두 배로 올라 2억이 됐으니 당장 그 절반인 일억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갑자기 냉혹한 킹콩으로 변한 그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빨리 안 주면 소송을 걸겠다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저도 인연을 끊어버릴까 별생각을 다 하다가 엄마를 생각해서 참았지요. 아버지가 맡긴 2천만 원의 두 배인 현찰 4천만 원을 싸들고 하나뿐인 여동생과 함께 시골로 갔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랫방에서 이불에 둘러싸여 간신히 벽에 기대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저를 애타게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왜 그런 돈을 싸들고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요? 몇 년 전엔 각서를 쓰라더니 이젠 소송까지 걸겠다고, 내 참 기가 막혀서. 엄마가 어떻게 좀 해봐요.”
“얘야, 어미가 죄인이다. 이렇게 앉은뱅이 병신이 돼서 한 발짝도 못 떼는데, 아버지 수발 받고 죽이라도 얻어먹는 처지에 무슨 힘이 있어야지, 너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게 한스럽구나. 사람이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몰라. 죽을 때가 돼서 그러나 원참. 우리가 너무 오래 살았구먼.”
그때 찌렁찌렁한 아버지의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약속한 돈 가져온 겨? 일억 알지?”
“아버지, 억 소리 나는 돈을 어떻게 쉽게 구하겠어요? 아버지가 투자한 돈의 두 배, 4천만 원을 드리고 전처럼 생활비 계속 대고 병 나면 병원비도 틀림없이 댈 테니 이걸 받으시고 화 푸세요. 소송, 그런 살벌한 말씀 하지 마시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내놔라이. 애비가 큰돈 좀 만져 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배 아픈겨? 원 참, 딸 잘 살아 봤자 아무 쓸짝에 없다니께.”
“아버지, 말이 그렇지 일억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사정 좀 봐주세요.”
“사정은 무슨 놈의 사정? 안 돼, 이게 애빌 물로 보나?”
그때 탕탕탕 소리가,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의 얼굴이 무섭게 아버지를 쏘아보고 있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엄마가 어떻게 마당을 가로질러 안방 마루까지 올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마술인가, 기적인가? 손에 지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여, 고작 이천만 원 맡겨 놓고 4천을, 원금 두 배를 얹어 주고 생활비 계속 댄다는데 안 된다고? 그러고도 당신이 애비여? 얘야, 우리 같은 늙은이가 오래 살아 내 금쪽 같은 딸을 괴롭히고 있구나. 우린 부모도 아니다. 앞으로 생활비고 뭐고 돈 대지 마라. 온 재산 다 물려준 아들 며느리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뭐 하나 해준 거 없이 애먼 딸한테 화풀이여? 왜 그렇게 사람이 변했어? 만날 고마운 딸이라고 노래하고 다니더니 어찌 그리 망측하게 변했남? 내가 딸 때문에 이때껏 살았지 왜 살았게? 보따리 열두 번도 더 싸서 벌써 도망쳤을 겨. 혹독한 시집살이에, 남편이라고 번번한 인물 갖고 바람이나 필 줄 알지, 식구 먹고사는 문제엔 담 쌓고, 대체 이런 지옥을 왜 살았는데, 그저 딸 하나 보고 참고 살았지. 애비라는 사람이 내 살 같은 딸 가슴에 못질하려 들다니, 이게 사람은 고사하고 애비가 할 짓이여? 우리 같이 죽어 없어집시다.”
“원 참, 딸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께. 그럼 네 말대로 생활비는 계속 대는 거지? 에잇, 늬 에미 생각해서 내가 참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니께.”
이렇게 일이 일단락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 후 2개월이 지나갈 무렵 아버지는 서슬이 시퍼렇게 나를 또 협박했습니다. 나머지 돈, 일억 채우라고. 악덕 채권자 마냥 나를 다그쳤어요. 80 노인이 무슨 힘으로, 뭘 믿고? 아무래도 불순한 배후 세력이 있어 조종당하는 것만 같은 의혹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일억이라는 거금을 쥐어 주고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어요. 딸한테 다섯 배 남겨 먹은 장사꾼 모리배, 며느리 손에 놀아난 허수아비, 멍청한 꼰대, 추악한 늙은이, 어리석은 늙은이 ‘지옥으로 떨어져라’고 날마다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누가 종이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였을까? 누구? 의혹의 인물이?
식구들의 혹독한 시선의 동그라미 속에 갇혀 있는 의혹의 포로로 등장한 주범(主犯)은? 바로 며느리, 그녀는 갈수록 돈의 노예가 돼 가고 혹독한 사람됨의 시험대에 올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지요. 자신의 사악한 꿈을 이루기 위해 시아버지란 외세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신부님, 저는 일찍이 이렇게 미워하고 증오한 사람은 생전 처음입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밉습니다. 그 악한이 내 삶을 갉아먹은 생각을 하면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울화가 치밀어 폭발할 것 같아요. 인간의 탈을 쓴 그런 짐승과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입니다. 하느님이 지으셨다는 이 세상은 돈으로 미쳐 돌아가고, 불의만 판치고 강물처럼 흘러야 할 정의는 이미 죽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거나 그러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보면 상대를 죽이고 싶은 원망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그러나 마음속에 그런 감정을 갖게 되면 괴로움을 겪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용서하면 그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내가 됩니다. 용서란 타인을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분노와 원망이라는 사슬에서 풀려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됩니다.”
‘신부님 말씀 백번 옳지, 그런데 복수의 칼날을 가는 절박한 내겐 한가한 설교에 불과할 뿐. 신부님이 뭘 알겠어? 단맛 쓴맛 시궁창 맛까지 다 본 속인의 인생사를.’
신부님의 말씀은 계속됐다.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을 수 있어도 자기 재산의 손실은 여간해서 잊기 어려운 법이라고 했지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인간은 악하고 이기적이라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남을 희생시키는 게 바로 인간이라고, 돈에 대한 욕심은 부자나 형제 사이도 갈라놓을 수 있지요. 돈의 위력 때문인지 인간의 존엄성은 간데없고 오로지 생존 본능만이 무성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요. 사회는 결코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고대 제단인들 중세의 첨탑인들 그 아래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흐르지도 않았고 사랑이 파도처럼 철썩대지도 않았습니다. 신(God)과 마몬(Mammon;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의 신)이 싸우면 대체로 마몬이 이긴다고. 그래서 신앙이 깊은 나라는 대체로 가난하다고 하지요. 인간사 참변 뒤에는 늘 돈을 부르짖는 이념과 추악한 뒷거래가 한 몸을 이루고 있어요. 우리 안의 욕망 때문에 만족이 없고. 천하를 얻어도 부족한 게 인간이죠.”
‘참말로 인간이라는 함수는 점점 더 해독할 수 없는 난수표란 말이 맞는 걸까, 절망이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 늑대인가.’
“신부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꼭 복수를 해야 합니다. 방법을 알려주세요. 용서나 화해 같은 말은 말고요. 저들 흉악한 시애비 며느리의 끔찍한 범죄를 어찌 쉽게 용서할 수가 있겠어요? 마땅히 천벌을 받아야 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신부로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요? 용서와 화해 말고는.”
“사람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범죄도 아니고, 도둑질이나 살인보다 더 나쁜 죄인데, 가족을 살리려고 빵을 훔친 장발장이 나쁜가요? 그건 죄 축에도 못 낍니다. 모멸감에 순간적으로 저지른 살인도 그보단 낫지요. 그러나 이 일은 하느님도 용서 못할 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 마음의 성역(聖域)을 침범하는 죄라고 했어요. 통상 시부모를 구박하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어요. 이건 아니죠. 시아버지를 범죄에 연루시켜 제 잇속을 챙긴 천인공노할 만행을 어찌, 쉽사리 용서하라고만 하십니까?”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상대를 향한 미움과 원망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입니다. 인간은 지나간 쓰라린 과거를 잊어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용서 못할 죄는 없습니다.”
‘뭐 세상에 용서 못할 죄가 없다고? 용서받지 못할 범죄가 바로 부모를 범죄에 연루시킨 죄라고 공자님도 말씀하셨는데, 신부님은 앞뒤가 꽉 막혀 소통이 안 돼! 완고한 신앙은 신성화한 질병이라더니, 신부님이 복잡하고 추한 인간사를 어찌 다 알겠어? 그저 용서하라고만 하니.’
나는 공자님 말씀은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그만 일어섰다.
“자매님, 삼각파도가 몰려왔다는데 또 하나는 뭡니까?”
“그건, 너무 창피해 말하고 싶지도 않은데, 영원한 내 편이라고 믿었던 동생의 배신입니다. 글쎄 아버지에게 마지막 돈을 전달할 때 동생 혼자 보냈는데 배달 사고를 일으킨 거예요. 동생이 아버지에게 진 빚 2천만 원을, 도둑맞은 내 피 같은 돈에서 탕감받은 거예요. 그래서 올케와도 싸웠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올케 못됐다고 흉보더니, 도긴개긴이지요. 내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퍼주었는데, 우리 아이들한테는 왕소금 소리 들으며, 내 딸은 유학 근처도 못 가봤는데 조카딸한테는 독일 유학비까지 댔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원이 끊기니까, ‘저만 잘 산다’고 절 비난하고 다닌답니다.”
“빈민 구제는 긍휼이지만 자매님 정말 오버하셨군요. 생각 없는 구제는 상대방에게 혐오, 열등의식, 의타심을 길러 줘 도와주지 않음만 못합니다. 재물은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 권리가 없어요. 나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는 정곡을 찌르는 신부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캄캄하고 좁은 고해소를 빠져나왔다. 위로를 받고자 했던 일이 신부님의 ‘세상에 용서 못할 죄는 없다’는 완고한 신앙에, 그리고 현실에 대처하지 못한 내 처사에 대한 책망에, 씁쓸해하며 고해소를 빠져나왔다.
며칠 후 이 쓰라린 마음을 달래줄, 영원한 내 편인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딸에게 친정은 항상 어머니의 집이다. 한시가 급했다. 비록 무덤 속에 있지만 살아 계신 듯 여전히 내 위로자이며 사랑의 화신이다. 내가 꿈속에서도 찾아 헤매는 어머니가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이곳. 푸르고 푸르던 무덤이 어느새 저렇게 누런 빛깔로 변해버렸나. 무덤 속에서도 자식 걱정에 누렇게 변색돼 버렸나?
두 눈으로 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마음으로 보고 영혼으로 감응하는 것으로 우리는 함께할 수 있는데. 내 안에 어머니가 살고 있다,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애태우는 어머니가. 딸의 억울함을 풀지 못해, 천추의 한을 남기고 곡기를 끊어 스스로 굶어 돌아가신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고, 분노가 되살아나 가슴이 불화살을 맞은 듯, 죽을 만큼 아팠다.
하느님의 사랑은 흔히 추상적으로 느끼기 쉽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데, 어머니는 전쟁과 가난, 남편의 외도 무능 등 온갖 풍파에도 가정을 지키고 자신의 불행한 운명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분이셨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는 어머니, 신앙심도 깊고 신실한 분이셨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어머니였다. 마치 꿈속으로 빠져들어 마법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는 이곳. 나는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냈다.
“엄마, 나 왔어요. 그동안 추운 곳에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보고 싶었어요.”
엄마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떠오르며 반갑게 내 손을 잡았다. 
“내 딸아, 이 추운 날 어떻게 왔느냐. 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엄마, 나 엊그제 신부님 찾아가 고해성사를 받았어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야합해 딸 돈을 사냥해 간 엽기적인 사실을 어떻게 용서하느냐고 따졌지요. ‘못됐다’ 정도의 흔하게 널린 불효도 아니고, 도둑질한 돈을 또 도둑질한 최악의 장물아비 며느리를, 세상에 듣고 보도 못한, 소름 끼치는 죄를, 오죽하면 공자님이 하늘도 용서 못할 죄라고 말씀하셨나, 근데 앞뒤 꽉 막힌 신부님은 어떤 죄건 무조건 용서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잊고 용서하라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어요.”
“얘야, 신부님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험악한 세상이라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최소한의 도(道)가 있는 법. 짐승이 사는 동물농장도 아니고. 젊어서, 모질고 잔인한 세월을 겪고 나이가 들면 내 인생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웬 폭풍이 불어 집안을 통째로 풍비박산 내다니,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이야. 내가 박복해 며느리를 잘못 들인 탓이다. 억수로 못된 며느리를 들여 집안을 망치더니 기어이 사단을 내고야 말았구나.”
“1억이 무슨 애들 눈깔사탕 값도 아니고, 그 어마어마한 돈이 어디로 증발했는지.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고 명치끝이 타들어 가요.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는 만져볼 수도 없는 그 현찰이 어떻게 일 년도 못 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수가 있어요?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그 돈이?”
“딸아, 면목이 없구나.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개미 금탑 모으듯 피나게 절약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인데. 아이들 내복 기워 입히면서 네 젊은 몸에 걸칠 변변한 외출복 하나 못 사 입고, 그런 와중에도 아들이 재산만 똑 따먹고 시골로 내다 버린 부모를 위해 십칠 년 꼬박꼬박 생활비 대며 부모 목숨 살린 하늘 같은 내 딸, 나는 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단다. 네가 그 험한 꼴을 당하고 있어도 누웠다 일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어 속만 타는, 이 앉은뱅이 병신, 어미의 무능을 원망했단다. 어느 땐 무심한 하느님마저 미워지더라. 대명천지에 두 눈 뜨고 거금을 애비한테 강탈당하다니, 세상이 아무리 말세라 해도 이런 무법천지 개판이 어디 있나.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내 금쪽 같은 딸과 원수지고 받은 돈인데. 낼모레 저승 갈 날 받아 놓은 80세 노인이 돈 쓸 일이 뭐 있다고, 딸 돈을 강탈해. 그런 천벌 받을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고, 딸 돈 돌려주라고 매일매일 눈물로 호소했다. 나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하루빨리 돌려주라고 그렇게 눈물로 애원을 해도 꿈쩍도 않아, 씨알도 안 먹혀 너무나 이상했다. 앓아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말아 달라고 사정하던 사람이 어떻게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저 덤덤하니, 소름이 오싹 돋았어. 그 순간 앗차 하고 집히는 게 있더라. 가물에 콩 나듯 찾아오던 며느리가 곳간에 쥐 들락거리듯 시아비를 찾아와 안방에서 온종일 쑥덕쑥덕 쑥덕공론, 무슨 비밀 모의를 하는지 둘 다 희색이 더럭더럭 하더라. 분명히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 거야. 여기 방구석에 누워 있어도 내 촉감은 늙지 않고 만사 다 꿰고 있지. 그 돈의 종착지는 결국 악마의 손에 넘어갔다고 봐야 해. 내가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내 귀는 열려 있지. 이웃 작은댁 할머니 그리고 안골에 사는 네 고모가 소식통이지. 그래서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이 늙은 몸을 억지로 굶겨 죽일 셈이었다. 목이 말라도 도둑의 샘물은 마시지 말랐는데, 내 어찌 딸 주머니를 털어 해주는 도둑밥을 한 알갱이라도 목에 넘길 수 있겠나. 그까짓 돈이 뭐라고, 세상이 왜 이토록 미쳐 돌아가나, 이 꼴 저 꼴 험한 꼴 안 보고 하느님 품으로 가서 내 딸을 구원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렇게 며느리를 괴물이라고 미워하던 아버지가 또 괴물이 되다니. 끝없는 욕심이 인간을 뒤틀린 괴물로 만든다고 해요.”
“승냥이와 여우가 벌이는 천인공노할 음모. 돈 빼앗아주겠다고 홀려 잡힐 듯한, 일확천금의 꿈을 꿰어주는 여우야말로 남자의 사냥꾼 본능을 자극하기 충분할 테지. 여우 백단 며느리의 모략에 말려든 어리석은 늙은이. 딸 재산에 손을 댔다가 자기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채우다니. 더 어이없는 건 네 돈 빼앗아 주면 지들이 부모 생활비 댄 걸로 대봉치자고 하면서 지들도 앞으로 다달이 50만 원씩 보태주겠다고. 그래 놓고 몇 달이 지나도 50만 원은커녕 단돈 5천 원도 안 주더라.”
“천하의 나쁜 X, 사기 쳐서 훔친 내 돈 다 쓰고 없어지면 그때 가서 50만 원씩 내놓겠다고 했다면서요? 그게 언젠데? 죽은 다음, 무덤 속으로 갖다 준대요? 엄마, 저것들은 사이코패스(고장난 마음의 소유자) 거짓말을 밥 먹듯, 도덕 염치 관련한 유전자가 아예 없는, 짐승만도 못한 괴물들이에요. 내 반드시 원수를 갚아야 해, 자나 깨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어요. 하느님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계시나? 저런 악마들한테 당장 천벌을 내리지 않고.”
“사랑하는 내 딸아, 복수한다고 네 손에 피 묻히지 마라. 하느님이 단죄하실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으며, 성기지만 빠뜨리지 않는다. 악한 일을 한 자는 천벌을 벗어날 수 없단다. ‘누구든 양심의 그물은 쉬 뚫고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노자가 말씀하셨다. 그러니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라. 하느님께서 네가 잃은 것 다 보상해 주실 것이다. 너는 착하고 깨끗해 남의 곁불도 쬐지 않는 내 딸이니.”
“엄마, 제 마음속엔 용서의 씨조차 말려버렸어요. 회개조차 없는 뻔뻔한 인간을 어떻게? 하느님이 용서하라고 엄명을 내려도 절대로 따를 수 없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면 그리해라.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그 악귀와 헤어져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복수의 칼을 갈며 인생을 허비하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아야 진정한 복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용서하렴. 어쩌겠나 미워도 네 아버지가 아니냐? 어리석고 가을바람에 새털 날 듯, 원체 팔랑귀라 남의 말에 잘 넘어가, 여우 백단의 며느리의 농간에 홀라당 넘어간 거지. 여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늙은 종이호랑이가 된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종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굶어 죽었다니, 이게 무슨 변괴냐? 아버지 불쌍해서 가슴을 도려내듯 아프구나. 얘야, 그 짐승이 아버지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빠뜨렸구나. 이를 워쪄, 그런데 네가 계속 생활비 대주었는데 어떻게 굶어 죽을 수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집 현실이 소름 끼쳐요. 지옥이지요.”
엄마 돌아가시고 곧바로 아버지가 돈 한 푼 없는 거지 노인이 돼서, 풀이 죽어 있으니 보다 못한 우리 집안 흑기사인 외삼촌이 구걸하다시피 모금하러 다녔어요. 시골 땅 공동명의로 하고, 다달이 형편껏 몇십만 원씩 추렴해서 아버지 생활비 대자고. 그런데 자식이라는 것들이 눈 하나 깜짝 안 해, 할 수 없이 아버지 생활비를 장우(막냇동생)와 제가 대기로 하고 외삼촌이 시골 땅을 우리 둘 명의로 해주었어요. 근데 우리가 보낸 돈도 온전하게 아버지를 위해 쓰였으면 좋으련만, 직장 떨어지고 갈 데 없는 둘째 아들이 와서 아버지 모십네 하고 뒷구멍으로 슬슬 다 빼먹은 거예요. 처음엔 큰소리치던 아버지도 점점 늙어 힘 빠지면서 멸치 대가리 하나 없는 멀건 소금국에 맨밥 먹기 일쑤, 수수깡처럼 말라 뼈만 남은 아버지는 산송장이 돼 누워서 똥오줌 속을 뭉개다가 돌아가셨죠. 큰소리치던 아버지는 간 데 없고, 변기 수세미 수준으로 떨어졌지요.”
“아, 세상이 왜 이리 악해졌나? 하늘도 무심하지, 개돼지만도 못한 죽음을 당하다니. 그것도 자식놈들한테서, 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이런 자식들을 두었나. 내가 짐승들을 낳았지. 아버지가 불쌍해 내 감은 눈을 번쩍 뜨고 무덤을 뛰쳐나가 놈들을 패대기치고 싶구나. 내 살았을 때, 네게 며느리를 용서하라고 매번 매달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공자님 말씀이 백번 옳다. 성인도 용서 못할 극악무도한 죄인을 감히 내가 어찌 용서를 입에 올릴 수 있겠느냐. 실은 하느님도 다 사랑하고 용서하진 않으셨다. 어떻게 늙은 시아버지의 인생을 무참히 파괴할 수가 있다니. 오죽하면 성인도 용서하지 말라고 했을까. 용서 못할 악마에 틀림없다. 신경 끊어라.”
어머니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딴 데로 화제를 돌렸다.
“네가 세상없이 잘해주던 동생 순정은 잘 살고 있냐? 걔 남편 잘못 만나서 무던히 내 속을 썩이더니, 그 집구석은 죽어라 노력해도 되는 일 하나 없으니. 복도 지지리도 없지. 쯧쯧, 너희들은 여전히 우애 좋게 잘 지내지? 그렇게 사이 좋은 자매가 세상에 어디 있나, 남들이 다 부러워했지.”
“엄마, 난 왜 이리 형제복이 없을까요? ‘세상이 무너져도 무조건 언니 편’이라던 그 애가 완전히 내게 등 돌리고 적에게 붙었어. 이제는 그 애는 교활하고 악랄한 뱀에게 먹히는 개구리 꼴이 돼 버렸어요.”
“그게 웬일이라니? 철옹성 같던 너의 자매 사이가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다니, 내참, 세상이 다 변해도 너희 자매 사이는 안 변할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조화 속인가?”
“엄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어요. 악마가 아버지 다음 타자로 우리 집 가장 약한 고리인 순정에게 마수를 뻗친 거죠. 꿀 떨어지게 사이 좋은 자매 사이가 배 아파 못 견뎠겠지. 마수에 단단히 걸려들었지.”
“아! 하느님 맙소사. 제 언니가 그런 험한 꼴 당하는 거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그렇게 사리분별을 못하다니. 어리석고 못난 거. 태산 같은 언니 은혜도 모르고 그렇게 언니한테 몹쓸 짓을 한 그런 악한과 한편이 돼? 돌았구나, 네가 혼쭐내라.”
“엄마, 더 알려고 하지 마세요. 악마들이 지금 버젓이 내 이름으로 등기된 시골 땅을 빼앗아가려고 갖은 공작을 다 하고 있어요. 순정인 떡고물이라도 챙기려고 그 편에 붙었고. 돈 심부름합네 하고 내 돈 가지고 제 빚을 갚는 걸 보세요, 악마와 한통속이지. 더 나빠, 그 X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니까 그렇다 치고, 나는 한 핏줄인 배꼽 형제 아닌가요? 엄마 우리 골치 아픈 얘기 그만해요.”
“그건 그렇고,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지, 하느님이 기구한 내 팔자를 불쌍히 여겨 너 같은 보물을 선물해 주셨구나. 너무 행복해. 항상 주님께 감사드린다. 사랑하는 내 딸아,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너는 복인(福人)이다. 이쁘고 똑똑하고 건강하고 올바르고 돈도 넉넉, 골고루 다 갖췄지. 네가 우리 집 복은 다 가져간 것 같구나.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복을 주지 않는다. 복을 지은 사람에게 주는 거지. 네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고 양귀비인 양, 엄청 사랑해 주는 남편이 떡 버티고 있겠다, 아이들 잘 되고, 너도 부모에게 잘해, 하늘에 복을 쌓았으니 장한 내 딸 행복하게 잘 사는 걸 보니 여한이 없구나. 그래서 잘사는 너를 형제라는 것들이 시기하고 뜯어먹으려고 파리 떼처럼 덤벼들었지. 그러나 그따위 개의치 마라. 욕심은 죄악을 낳고, 인간관계를 파탄 내, 결국 망할 테니. 이 어미가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부턴 너를 위해 살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잘 대접해 주어라. 숨 쉬고 심장 뛰는 이 순간도 감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용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넉넉함을 알면 가히 즐거울 것이요. 욕심이 많으면 곧 근심이 오느니라.’ 명심보감에 있는 말이다. 선아, 추운데 어서 집으로 가 봐, 해 지기 전에.”
어느 틈엔가 어머니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는 배신의 악몽 때문에 형제와 불신의 벽을 쌓고 살았다. 5∼6년의 암묵적 휴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둘은 자매처럼 성당을 들락거리며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악한들이 거룩한 성전에서 무얼 빌겠나? 위선의 냄새가 풀풀 났다. 이건 하느님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늑대들에 둘러싸인 용서, 진퇴양난, 어찌해야 하나.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 했던가. 불쾌한 사건의 세세한 상황까지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도 끔찍한 고문일 것이다. 행복한 망각이 이어졌다. 형제를 안 보고 사는 게 천국이었으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십 년쯤 지났을까. 순정이가 9순이 넘은 시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고, 그 후 일 년도 안 돼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왔다. 아들 3형제가 두 달씩 뺑뺑이 돌리다가, 집에선 쉽사리 죽지 않는다며 서둘러 강원도 후미진 양로원으로 보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분개했다. 장례식장에선 누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사가 난 듯 묘한 웃음들이 피어올랐다. 또 늑대들인가.
내 기억을 헤집고 그때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세를 부리던 어느 날, 순정을 찾아갔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딸이라도 만난 듯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고 사돈, 얼릉 오시오. 웨매 반가워라.”
외진 구석 문간방엔 온통 헌 옷들이 잔뜩 널려 있고 옛날 골동품, 손재봉틀이 넝마 속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할머니, 이 더운데 뭘 그렇게 열심이세요? 옷 고치는 수선집 차린 것 같네요.”
“사돈 그렁께, 내 생전 가야 말 하나 섞을 사람이 있나, 심심해 죽겄소이. 돈은 먹고 죽을래도 읎은께 뭘 혀? 꼼짝없이 버리는 헌옷 갖고 뜯었다 박았다 함시롱 세월을 죽이고 있어라우. 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딸 하나가 없다고라? 딸 하나 있으믄 소원이 읎을낀디. 무신 놈의 팔짜가 요렇코롬 박복하다요? 딸 하나 있으문 딸네 집 가서 며칠이고 놀다 오고, 딸하고 밤새 야그도 할틴디 당최 무슨 재미가 있어야제. 얼릉 죽었으면 쓰겄소.” 이런 하소연이.
나는 항상 성당에 가서 빌었다.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순정이가 이름처럼 순진하고 착하게 해달라고도 빌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순정이가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 순정의 희끗한 머리, 무척이나 예뻤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칠게 일그러져 있었다. 50고개를 한참 넘어 60을 넘나들며 무언가 눈부신 햇빛 아래 서기가 스스로 두려워지는 나이, 노화(老化)가 그녀 곁에 바짝 따라붙은 모습에 나는 적이 놀랐다.
우리가 벌써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끌 수 없는 나이가 되었나? 예쁜 옷 입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언니, 이것 봐.” 하고 내민 것은 20년 전에 아버지가 내게 쓴 편지 한 장. 아버지가 내게 준 시골 땅의 4분의 1을 순정에게 주라는 내용의 그 편지가 어떻게 20년을 장롱 속에서 묵다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간 허물을 용서하고 잘 지내보려던 내 결심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나는 묻지도 따지기도 싫었다.
“올케도 아버지한테서 훔친, 언니 돈 갖고 주식하다 다 날렸대. 빈털터리가 되어 내가 언니 돈에서 탕감 받은 2천만 원을 도루 내놓으라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만 나왔다. ‘늑대는 이빨을 잃어도 그 천성을 잃지 않는다’고 했던가. 인생이 이렇게 하찮고 시시하고 서글프고 한편 불쌍한 인생도 있구나 싶어 나는 쓸쓸히 돌아섰다. 가까스로 찾아온 용서가 울고 갈 것만 같다.
‘손에 잡힐 듯 멀어져간 그 바닷가 파도의/ 솟구치던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라./ 담담하게 아침을 보낸 그날처럼 곧 다가올 저녁만찬을 위해/ 우리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과 손을 잡자. 남아 있는 날들을 위해/ 우리 함께 살아온 날들의 아픈 사슬을 끊자.’
어디서 들려오는 듯, 이 시구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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