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9
0
뭉게구름이 서녘 하늘에서 양 떼처럼 몰려왔다 흩어진다. 서서히 몰려왔다 사라진 구름들이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여 온다.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후드득 쏟아질 것 같다.
원이 어머니는 약탕기를 올려놓은 삽지거리에서 나락 껍데기를 아궁이에 집어넣고 그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얹었다. 그리고 연신 입술에 힘을 모아 불어보지만 불이 살아나지 않고 연기만 피어오른다.
“이 무슨 징조인가.”
원이 어머니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훔치다 말고 서러움이 북받쳤다.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이 약을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해서 문경새재를 넘어 물어물어 한양까지 가서 임금님께 올리는 약을 지었다는 노 명의에게 부탁해 조제해 온 약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몸종에게 약을 끓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원이 어머니는 몸종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약을 정성을 다해 끓여 원이 아버지에게 먹이면 원이 아버지가 씨익 웃으며 일어날 것만 같았다. 원이 어머니는 다시 입술을 모아 몇 차례 다급하게 입바람을 불었다. 드디어 불길이 살아 올랐다.
“여보, 내요. 내, 원이 아부지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원이 아버지가 원이 어머니를 껴안으려 두 팔을 허둥거렸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었다.
“아, 원이 아부지.”
놀란 원이 어머니가 하마터면 약탕기를 껴안으려다 말고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드디어 약탕기에서 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래, 그래, 이제야 끓는구나.”
원이 어머니는 약탕기에서 뿜어 나오는 김이 마치 원이 아버지가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로 들렸다.
“원이 아부지. 정신이 들었니껴?”
깜짝 놀란 원이 어머니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아니, 이건, 원이 아버지가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환청이었다.
“뭐지 꿈도 아니고.”
원이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소리에 놀란 ‘워리’가 꼬리를 흔들며 원이 어머니에게 달려왔다.
원이 어머니는 흐르는 땀을 치맛자락으로 닦으며 사랑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원이 아부지, 약 가주 왔어요. 이 약 드시면 낫는다 카니더.”
원이 어머니는 큰 소리로 깨웠지만 원이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이 어머니는 얼른 원이 아버지 뒷목에 팔을 넣고 순식간에 일으켜 세웠다.
“원이 아부지, 어서 이 약 드시소.”
원이 어머니가 숨을 몰아쉬며 속삭이듯 말했지만 원이 아버지는 꼭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원이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에 힘을 주어 입을 벌리자 원이 아버지의 입이 조금 열렸다. 원이 어머니는 얼른 원이 아버지의 목을 젖히고 약사발을 들고 입에 흘렸지만 삼키지 못하고 턱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떡하나, 원이 어머니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정신을 차리도록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약탕기가 싸늘하게 식어 갔다. 이 일을 어쩌나, 원이 어머니는 다시 삽지거리에 있는 화덕으로 달려갔다. 노 명의가 꼭 약을 따뜻하게 달여서 먹여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원이 어머니는 다시 군불을 지피고 약이 쫄아들지 않게 물을 조금 붓고 끓였다. 비지땀이 흘러내렸지만 남편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힘든 줄 몰랐다.
약탕기를 들고 다시 돌아온 원이 어머니는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원이 어머니는 눈을 부볐다. 안개가 원이 아버지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게 뭐지?”
원이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며 원이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원이 아부지.”
원이 어머니는 섬뜩한 기운이 들어 원이 아버지의 가슴에 귀를 살며시 댔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원이 아부지! 원이 아부지!”
원이 어머니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원이 아버지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원이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다 말고 달구어진 약탕기를 덥석 잡았다. 뜨겁지 않았다.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놀란 원이 어머니의 머리 위로 노란 별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노란 별들이 꽃술을 흔들며 원이 어머니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원이 어머니는 노란 별들이 원이 아버지의 얼굴에 날아들까 봐 양팔로 감싸 안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란 별들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원이 어머니는 흘러내린 머리를 다듬고 시아버지가 있는 서당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원이 아버지가 돌림병에 걸린 것은 과거의 예비시험인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최종 관문인 예부시(禮部試) 무과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갔다가 돌림병에 걸린 것이었다. 평소 잔병치레가 많고 몸이 약했던 원이 아버지였기에 원이 어머니는 돌림병이 걱정이 되었다. 시험을 보러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나라 전체가 유행하는 돌림병에 원이 아버지라고 피해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시험을 보러 가지 못하게 할까, 걱정을 거듭하던 원이 어머니는 친정아버지에게 원이 아버지가 시험을 보러 가지 않게 할 수 없겠냐고 물어보기로 하고 친정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부지, 원이 아부지 과거 보러 가는데 돌림병이 돌아 못 가게 할려고 하는데요?”
“음, 그럴 만도 하지.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친정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손뼉을 쳤다.
“지금부터 하는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방도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무슨 이야기인데요?”
원이 어머니는 귀를 쫑긋하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아버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성종 임금 때 일이지.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허종(許琮)의 이야기다. 잘 들어보고 다른 묘안을 생각해 봐라.”
친정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의 내용은 성종의 후궁이었던 윤씨가 중전의 자리에 오르자 연산군을 낳고 오만방자하기도 했지만 후궁들에 대한 시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성종이 왕비 윤씨를 찾지 않고 후궁의 침실을 자주 찾자 포악한 윤씨가 질투심이 폭발하여 온갖 계략을 쓰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인수대비의 눈을 거슬리게 했다. 그래서 갈등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성종은 그 갈등을 잠재우고자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고자 결정하는 회의를 주관하게 되었다. 이때, 영의정 허종은 예감하기를 성종 이후 폐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즉위하면 그냥 지나갈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어떻게든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지혜가 뛰어난 누님을 찾아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허종이 지혜를 구하는 조언을 부탁하자 허종의 누님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귓속말을 했다. 그 말인즉, 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종참교 돌다리가 있는데 말이 갑자기 뛰어 낙상을 한 것처럼 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허종은 입궐하는 날 종참교에 이르러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낙상을 했다며 사약을 내리는 결정을 하는 궁중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후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아니나 다를까,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린 회의에 동참한 관료들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하는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그 사화에서 허종은 형벌을 면했다. 그러니 원이 아버지에게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이와 비슷한 방법을 택해 보라고 하며 입맛을 다셨다.
친정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원이 어머니는 그럴듯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허종처럼 말에서 낙마하게 하는 위험한 행동을 꾸미기도 싶지 않았지만 원이 아버지가 그 말을 들을 리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시험날은 점점 다가오고 원이 어머니는 초조했다. 혹시 동리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또 다른 묘안이 없을까, 마실을 나가봐야겠다고 문밖을 나섰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동네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다가가 보니 꽹과리를 치며 내림굿을 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굿판을 구경하던 원이 어머니는 번쩍,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옳아,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원이 어머니는 얼른 굿판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생각을 더 정리해 보기 위해서였다. 원이 어머니가 찬찬히 머릿속을 다듬어 생각해 낸 것은 다름 아닌 무당에게 과거시험 사주를 봤다고 하는 것이었다. 과거를 보러 가면 정한수를 떠놓고 정성스럽게 합격을 빌기도 하지만 과거에 합격할까 낙방할까 점을 보는 일이 흔했다. 며칠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원이 어머니는 드디어 과거시험이 있기 며칠 전, 원이 아버지를 불렀다.
“원이 아부지, 얼매 전에 내가 원이 아부지 점을 봤어요.”
“점을 봤다고? 왜?”
“이번에 합격할까 해서요.”
“그걸 뭐 하러 봐. 이번엔 꼭 붙을 낀데.”
“음, 근데 좀 안 좋은 점쾌가 나와서.”
원이 어머니는 원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뭐가 안 좋은데?”
“근데 원이 아부지, 기분 나빠 하지 마이소. 음, 사실은 내가 아를 뱄는데 아를 뱄을 때 먼 길을 가면 당신이나 아한테 안 좋은 일 생긴다고 무당 할매가 그러네요. 그니까 담에 시험 보러 가면 안 될니껴?”
원이 어머니는 배를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그 말 진짜가? 아 뱄다고? 글치만 이번엔 꼭 합격하고 말끼다.”
“그지 말고 원이 아부지, 이번만 건네뛰고 담에….”
원이 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연일 돌림병으로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문이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던 터였다.
“안 된다. 아한테는 미안하지만 얼매나 내가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러고 그 점쟁이 할매 엉터리일 끼다. 걱정 마라.”
“그래도 한 걱정이 되니더. 담에 보면 안 될니껴? 예? 원이 아부지.”
“허, 이 사람. 십 년 공부 나무아비타불을 만들 낀가. 한 번 안 된다 카믄 안 되는 거지.”
원이 아버지는 완강했다. 드디어 시험날이 다가왔다. 원이 어머니는 온갖 상상들이 뇌리에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삼신께 빌었다. 원이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며 봇짐을 둘러매고 과거길에 올랐다. 원이 어머니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며칠을 보냈다. 마침내 원이 아버지가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버선발로 달려간 원이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이 아버지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핏기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에 걸음마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아이고 원이 아부지, 징고이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이게 뭐니껴.”
원이 어머니가 걱정했던 대로 돌림병에 걸린 것이었다. 돌아온 날부터 앓아누운 지 달포가 지났다. 원이 어머니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좋다는 약은 다 달여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행여 차도가 있을까 했지만, 급기야는 미음도 못 먹을 정도로 쇠약해져 갔다.
원이 어머니의 이름은 설이였다. 원이 아버지는 응태이고 둘은 결혼 적령기가 되어 도승지를 하는 친척의 중매로 만났다.
설이의 집안은 선조가 예문관 부제학을 한 집안으로 대대로 양반가문 집안이었다. 집에는 노비가 있었고 한문에 능한 아버지가 아녀자도 글을 알아야 한다며 설이에게 일찍 언문을 깨우치게 했다. 원래 영특한 머리를 타고났던 설이인지라 여섯 살에 언문을 깨우쳤다. 그래서 글을 쓸 줄 아는 설이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한지에 시를 쓰는 것을 즐겼다. 응태의 집안도 만만치 않았다. 가문에 좌승부지를 한 선대가 있었고 응태도 관직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기골이 장대한 응태는 무관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출중한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은 둘은 천생연분이라고 했지만 맞선을 보고 난 후 혼례를 금방 치르지 못한 것은 설이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여 이제나저제나 낫기를 기다리다 보니 차일피일 늦어졌다.
맞선을 보고 금방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설이는 귀공자처럼 하얀 피부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응태가 보고 싶어졌다. 한 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선뜻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설이는 그럴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는 시를 언문으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시를 썼지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을 하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버들강아지 살래살래 고개를 흔드는 봄이 피어나고 있어요
이녘의 눈썹이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하늘거려요
산 넘고 강 건너 달려온 봄처럼 가비야운 이녘의 손길에 하얀 망울이 맺혀 있어요
마음은 복사꽃 피는 궁전에 가 있는데 향기에 매달린 봄바람 옷깃 속에 스며들 날 기다려지네요
-설이
설이의 편지를 받은 응태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남의 이목도 있고 막바지 공부를 해야 하는 과거시험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이의 시를 읽고 아리따운 설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견디기 힘들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글씨는 보이지 않고 선 보던 날, 살포시 웃을 때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 눈앞에 떠올랐다. 참다못한 응태는 노비를 불러 원이 어머니에게 전해 주라며 한지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해질녘 신시(申時)에 정하리 정자에서 봅시다.’
편지를 보내 놓고 응태는 괜히 책장을 뒤적거렸다. 삼경인 시경, 서경, 역경을 다 끝내고 사서인 논어, 맹자, 대학도 끝났다. 마지막 남은 가장 어려운 중용을 공부해야 하는데 중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해가 빨리 지기만을 기다렸다. 오후의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누웠다. 응태는 몇 번씩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넣어 둔 모시옷을 꺼내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눌렀다. 뭐라고 말할까, 어릴 적부터 학습에만 전념하다 보니 동네 처녀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만날 때 말하는 옥체만강하고 가내는 두루 평온하신지요? 하고 묻기에는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경박한 말을 하면 젊잖은 양반 체면이 깎일 것 같았다. 응태는 첫마디를 무어라 말할까 고심을 거듭해 보았지만 뾰족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드디어 해가 뉘엿뉘엿 져 갔다. 의관을 정비한 차림으로 응태는 빠른 걸음으로 정자를 향해 걸어갔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여린 손을 흔들었다. 개울가에는 푸르던 잎새들이 연분홍 물감을 칠해 놓은 듯 곱게 물들어져 있었다. 응태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렇구나, 이 아름다운 자연을 음미할 줄도 모르고 공부에만 매달려 있었다니, 무릉도원도 그릴 줄 모르고 청포로 감은 처녀들의 머리 향도 맡아 보지 못한 숙맥이었다. 결혼을 하면 어여쁜 설이의 손목을 잡고 이 세상 끝까지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낮은 구릉을 넘어가자 산자락 끝 정자가 멀리서 응태의 눈에 들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보니 저 멀리서 설이의 모습이 보였다. 색동저고리에 연초록 치마를 입은 설이가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응태는 달려가고 싶었지만 매사에 신중하라는 조부님의 가훈을 되새겼다. 응태는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설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경전을 더듬어 보아도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정자 앞에 다다르니 설이는 여전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저 모습, 한 떨기 예쁜 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달려가 와락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굴면 큰 실수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응태는 머뭇거리다 말고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다.
“설이∼.”
응태는 설이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깜짝 놀란 설이가 고개를 들더니 눈동자를 크게 뜨고 배시시 웃었다. 오, 저 미소 천하의 양귀비보다 더 해맑은 미소, 응태는 덥석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응태는 갑자기 쑥스러웠다.
“저, 가내는 두루 평온….”
응태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지, 응태는 입을 다물었지만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응태는 그저 멋쩍기만 하여 저고리 매듭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설이를 쳐다보았다.
“아, 오다 보니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었디더….”
응태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설이는 대답 대신 응태를 설핏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코스모스 보지 못했니껴?”
응태가 다시 물었다.
“봤어요.”
설이가 모기 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코스모스 참 예쁘던데….”
“예에.”
설이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설이도 응태도 숫내기, 숫처녀였다.
“우리 걸읍시더.”
응태가 용기를 내어 앞장을 섰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잘 계시지요?”
어색한 공간을 해소해 보려고 응태가 또 물었다.
“예, 어매가 병이 많이 나았어요.”
“아,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니더, 곧 어른끼리 혼사 이야기를 하겠니더만요.”
응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모가 될 어른이 병이 위중해서 혼사를 잠시 미루고 있었는데 호전이 되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응태의 입에서 시조가 한 수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설이가 몇 걸음 옮겨 길 옆에 있는 강아지풀을 살며시 뽑았다. 그리고 동그랗게 말면서 응태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 이거… 손가락에 끼워 줄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설이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더듬거렸다. 응태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설이의 하얀 손이 응태의 손가락을 휘감아 왔다. 응태는 몸이 움찔거렸다. 비단보다 더 보드라운 설이의 손길이 응태의 몸을 파고들었다.
“고맙니더. 어찌 이런 생각을 다….”
응태는 쓰러질 듯한 몸을 바로 세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공부 너무 마이 하지 마이소. 가끔씩 햇볕도 쬐고 바람도 쏘이고….”
응태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렇게 살가운 여자, 여린 듯하면서도 섬세한 설이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이 설이와 오소도손 얘기를 나누며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야지. 응태는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가슴만 두근거릴 뿐이었다. 몇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저녁 해거름이 설이의 어깨 위에도 응태의 어깨 위에도 스물스물 내려앉았다.
응태는 해가 지기 전, 설이에게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었다.
“집에서는 뭔 일 하고 지내니껴?”
응태는 말을 하다 말고 하마터면 손목을 잡을 뻔했다. 응태의 말에 설이는 머뭇머뭇거렸다.
“저, 자수를 놓고 있어요.”
“자수를요? 그런 것도 놓을 줄 아니껴.”
“예, 시집갈 때 가져 갈라고요.”
응태는 적이 놀랐다. 방 안에 다소곳이 앉아 자수를 놓는 여인, 저 여인이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내자가 된다니,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응태는 기침을 몇 번 토했다.
“어머, 어디 편찮은지?”
설이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응태에게 다가왔다.
“아니, 아임니다.”
응태는 손을 내저었지만 손을 내저은 건 기침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복숭아 향기에 취해서였다.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여인의 향기가 응태의 귓불을 빨갛게 물들였다.
응태와 설이는 비록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태양보다 더 따사롭고 달덩이보다 포근한 기분에 취해 반짝이는 벌을 따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후 몇 차례 더 응태와 설이는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보리수가 익어 가는 그늘 아래서 사랑의 싹을 틔웠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 사모관대를 쓰고 족두리를 두르고 장닭이 꼬끼오 우는 응태의 집 마당에서 백년가약의 돛을 올렸다.
그렇게 순풍이 부는 날들이 때론, 개구리 울어대는 미루나무 아래에서, 벼이삭 익어 가는 논가에서, 수수가 바람에 부대끼는 밭둑에서, 사랑의 강은 쉼 없이 흘러갔다. 화양연가를 부르지 않아도 은은한 북소리가 긴 여운으로 울렸고, 가끔씩 찾은 깊은 산사에는 댕그렁 댕그렁 울리는 풍경 소리가 둘의 앞날에 목련꽃으로 피어 백년해로의 길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그 결실의 열매는 몇 년 후 응태와 설이 사이에 달덩이 같은 원이가 태어났다.
“이 무슨 일인고?”
흐느끼는 설이의 울음 사이로 시아버지와 친척들이 몰려들었다.
“허어 허어, 기어이, 기어이, 그놈의 과거가 뭐길래 몹쓸 병을 안고 왔단 말인가.”
왁자지껄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며칠 장을 할 건가?”
“5일장은 해야것지.”
“7일장은?”
“예끼 이 사람, 7일장은 임금님이나 하는 거지.”
“그래도 관직에 오를 사람인데.”
“큰일 날 소리… 어서 상여 꾸밀 준비나 하세.”
사람들이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설이는 흐르는 눈물을 저고리 섶으로 닦으며 방문을 살그머니 닫았다. 무엇을 해야 하나 설이가 준비할 것은 없었다. 남편의 죽음에 아내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설이는 멍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엄연한 현실이 눈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설이는 가위를 찾았다. 먼저 먼 길 보내는 원이 아버지 옷에 솔기가 있으면 말끔하게 다듬어 주고 싶었다. 얼마 전, 이불 홑청을 자르고 반짇고리에 담아 둔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 보니 화장대 앞 면경 뒤에 있었다. 혹시 원이가 만질까 봐 숨겨 두었던 것이었다. 설이는 면경을 들여다보았다. 원이 아버지 먼 길 가는데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었다. 그 사람 곁에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설이는 원이 아버지 입었던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고 원이 아버지가 예쁘다고 했던 치마저고리도 찾았다. 손으로 주름을 펴 쓰다듬으며 곱게 접었다. 그러고 보니 원이가 입던 저고리가 보였다. 원이가 보고 싶을 때 원이 옷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그렇게 한 벌 두 벌 개어 놓다 보니 제법 많았다. 원이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 예쁜 옷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서랍을 열었다. 설날이 되면 입었던 원이 아버지의 마고자가 보였다. 손잡고 눈길을 걸어가던 설날, 누가 볼세라 주위를 살피며 설이의 손을 살그머니 잡아 마고자 주머니에 넣어 주었던 그 온기가 서려 있다. 설이의 눈에서 눈물이 송글송글 맺혔다. 남 앞에 쉽게 내색을 하지 않던 설이였지만 참을 수 없어 목놓아 울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 누구도 설이의 방문을 열지 않았다.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창문 밖으로 별이 총총 떠올랐다. 설이는 긴 울음을 그쳤다. 누군가 설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천장에는 원이 아버지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여보….”
설이는 순간, 두 팔을 휘저으며 원이 아버지를 불렀다. 원이 아버지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창문 밖 별빛을 따라 떠나 버렸다. 정신을 차린 설이는 머리를 빗으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원이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머리를 자르지 못해 머리가 제법 길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보자 아픈 와중에도 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원이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렇지, 이 머리를 잘라 미투리를 만들어 보아야겠다. 그리고 이 미투리를 원이 아버지 곁에 두면 만지작거리며 좋아하겠지. 설이는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래,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이 머리카락, 내가 저세상으로 갈 때까지 원이 아버지가 미투리를 만지며 기다리고 있겠지. 설이는 멈칫거릴 틈도 없이 머리를 싹둑 잘랐다.
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거세게 불어왔다. 그 바람 속에 원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원이 엄마, 원이 엄마, 자르지 마. 자르지 마.’
원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설이의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괜찮아요. 원이 아버지, 영원히 함께해요.’
설이는 울부짖으며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집어 들었다. 그리고 뜨개질하듯 천천히 정성을 다해 미투리를 엮어 나갔다. 설이의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겨우 미투리 한 짝이 만들어졌다. 미투리 한 짝을 다 만들고 보니 또 한 짝이 있어야 짝이 맞을 것 같았다. 설이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밤이 이슥해서야 나머지 한 짝을 만들 수 있었다. 설이가 미투리를 만드는 동안 가끔씩 문을 열고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오늘은 그냥 가만히 둬.”
“괜히 건드리면 더 힘들어 해.”
설이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이 미투리가 원이 아버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몇 시가 되었을까, 미투리를 다 엮은 설이는 살며시 미투리를 가슴에 품었다.
‘잘 있어. 내가 갈 때까지 변치 말고.’
설이는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짙은 안개가 조금씩 흩어져 내렸다. 시야가 차츰 또렷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또 무엇을 보내 줘야 할까. 설이는 마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빠트린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보다 책꽂이가 눈에 띄었다. 그렇지 책읽기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설이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중용을 꺼내 들었다. 중용의 이치만 제대로 알고 행하면 품위 있는 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원이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설이는 화선지를 꺼내 원이 아버지의 손때 묻은 책을 포장했다. 책 속에서 원이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막걸리 냄새가 스며 있었다.
‘너무 보고 싶어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방바닥에 눈물이 흥건히 고일 정도로 설이는 소리 없이 울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나간 시간이 꿈만 같았다. 방 안에 있는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데 원이 아버지만 보이지 않았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설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설이는 얼른 앉은뱅이책상 위에 있는 연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벼루의 뚜껑을 열고 물을 부어 먹을 갈았다. 물빛이 점점 검게 물들어 갔다. 설이는 붓집에 나란히 있는 붓을 골랐다. 그중에서 족제비 꼬리로 만든 붓을 집어 들었다. 설이는 호흡을 가다듬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붓글씨를 배울 때 서당 선생님이 붓글씨는 손 힘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온몸의 정기를 다 모아 써야 하기 때문에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설이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저고리 소매를 걷어붙였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망설여졌다. 원이를 잘 키운다고 할까, 부모님을 잘 모신다고 할까, 그러면 원이 아버지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아니야, 그냥 보고 싶다고 쓸까. 설이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머뭇거렸다. 그렇게 망설이는 설이의 귓속을 파고드는 원이 아버지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설이야 나 좀 안아 줘.’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원이 아버지는 흔적도 없다. 그제서야 설이는 붓 끝에 힘이 살아났다.
원이 아버님께 올림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에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도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출토된 원이 어머니 편지 원본을 안동대 임세권 교수가 풀어 쓴 글
편지를 다 쓴 설이는 읽고 또 읽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붓을 놓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 하는데 설이에게는 그 풍습이 필요 없었다. 사람이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굳이 풍습을 지키기보다 원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기억들을 원이 아버지 곁에 남기고 싶었다.
설이는 머리를 손으로 추스르고 저고리 고름을 풀고 단단하게 다시 묶었다. 흘러내린 치마의 끈도 풀고 다시 당겨 매었다. 땀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설이는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을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설이는 들창문을 열었다. 밖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설이는 얼른 들창문을 닫았다. 들창문을 닫기가 무섭게 후두둑 소리를 내며 소나기가 사정없이 몰아쳐 왔다. ‘가시는 길 기어이 비까지 뿌리는구나.’ 설이는 힘에 겨운 목소리로 하늘을 원망했다. 비가 발인 날까지 계속 내리면 안 되는데, 옷과 편지, 미투리, 그보다 원이 아버지를 빗속에 떠나보낼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잠 좀 자거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친정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손사래를 치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부지, 내 인제 어이 살라꼬요.”
설이는 아버지 품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다, 살 길이 있는 기라. 인명은 재천인 걸 어쩌것노. 아아들 생각해야지.”
“아부지이이.”
설이의 한 맺힌 소리가 빗속에 둥둥 울리는 북소리로 퍼져 나갔다.
염을 하고 난 후 입관이 시작되었다.
설이는 미리 준비해 온 옷과 미투리를 관 속에 차곡차곡 넣고 편지는 원이 아버지 무관복 가슴 위에 살며시 놓았다.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서 있던 시아주버니도 편지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허리춤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식구들이 가슴을 치며 울었다. 설이도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을 울던 설이가 시아버지를 찾았다.
“무슨 일이고?”
눈두덩이 붉게 물든 시아버지가 코를 훌쩍이며 눈을 크게 뜨고 설이를 쳐다보았다.
“아버님, 저, 저어, 원이 아부지 이 모습 변치 않게 해 주이소.”
설이는 애원하듯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음, 걱정 마라. 다 그렇게 준비해 뒀다.”
시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아버지의 말에 설이는 참고 있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장례식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꽃상여를 타고 원이 아버지는 선산이 있는 장지로 향했다. 설이는 장례법 때문에 따라가지 못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설이는 상여꾼들의 눈에 띄지 않게 먼발치에서 뒤를 따랐다. 원이 아버지가 평소 가르쳐 준 선산을 알고 있었기에 길을 몇 굽이 돌아 장지 옆산 봉오리에 올랐다.
저 먼 곳, 흰옷을 입은 요령잡이의 소리가 설이의 가슴에 서럽게 저며 들었다.
워 덜구여.
워 덜구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북망산천 멀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큰아들 원이 건강
누가 와서 지켜주나.
혼자 된 원이 어매
병 생기면 어쩔거나.
돌아보소 돌아보소.
혼자만 가지 마소.
저승길 멀다 말고 이승길 돌아보소.
워 덜구여.
워 덜구여.
다시는 볼 수 없는 원이 아버지, 원이 아버지가 구슬프게 불었던 퉁소 소리가 산을 넘어 메아리로 설이의 귓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