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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한국문인협회 로고 공계열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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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안한 목소리에 앉아
한잎의푸른전등앞에저녁을켜놓고 
창을 조금 열어 연회색 하늘과 내통하려 하네 
바람의 악사들이 창문을 첼로처럼 연주하자
저녁하늘의 심장을 섬광처럼 가르며 날아가는 라트라비아타*
밤은 웅크린 내 등뼈를 뒤로하고 고양이발로 살그미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의문이 커피포트의 끓는 물처럼 끓어오르는 봄밤 
함석지붕을 하얗게 두드리며 떨어지는 감꽃 
떨어지는 감꽃은 아무것도 아닐까
무릎은 손톱은 발가락은 아무것도 아닐까
지금 컹컹 짖으며 지나가는 발정난 개는 아무것도 아닐까 
내 몸이 자주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닌 내 몸이 혁명을 원하기 때문일까
108번뇌의 눈알들이 모스 부호처럼 번득이는 봄밤 
하늘은 저녁에서 밤으로 차츰 별들을 출시하고 
당신의 편안한 목소리에 앉아
깊은 밤 라일락 향기 창틈으로 진하게 스며들면 
한 잔의 커피는 책상 위에서 자기 체온을 끌어 내리는데 
어느덧 회색의 저녁에서
봄이 녹아 흐르는 검은 휘장 속으로
순간과 순간이 영원을 만드는 봄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내 손과 발과 손가락과 손톱과 떨어지는 감꽃과 개가 짖어대네
*베르디가 작곡한 3막 4장의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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