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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시인의 3권 시집을 통해 살펴본 북한의 현실 —— 이명애론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승하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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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애 씨는 1965년 8월, 평안북도의 탄광 마을에서 태어나 1981년 8월, 평안남도에 있는 개천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2005년 8월에 탈북하여 1년 만인 2006년 8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2016년 2월, 숭실사이버대학 방송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12월에 『K-스토리』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20년에 시집 『연장전』을 등대지기에서, 2022년에 시집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를 곰곰나루에서, 2025년에 시집 『환승』을 곰곰나루에서 펴냈다. 두 번째 시집 뒷부분에 14쪽에 이르는 수기를 실었다.

 

그 땅에서 사람다운 삶을 바란다는 건 죽어도 바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탈북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 보자. 내 아이들만큼은 나라다운 나라에서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게 하자. 이것이 바로 내가 탈북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다.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 명의로 된 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행복은 자유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172쪽)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다고 탈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녀는 여기에 덧보태어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고 고백한다. 이명애 씨 외에도 탈북인들이 이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무렵에 발생한 이산가족은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3만 5,000명이 넘는 탈북인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명애 씨가 증언하는 북한의 실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꽃제비’라는 말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생겨났음을 『연장전』을 보고 알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6년간 계속된 대기근으로 인해 많은 인민이 죽은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한민국 통계청은 최소 48만 명이 아사했다고 추정했다. 유엔은 인구 센서스를 바탕으로 아사자를 33만여 명으로, 미국 통계청에서는 50만에서 60만 명으로 추정했다. 북한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이라 하지 않고 식량 배급이 끊겼기에 ‘미공급 시기’라 부른다.

 

하루 장사 마치고/ 지친 몸 이끌고 돌아온 저녁/ 딸아이가 문밖에서 기다린다// 엄마가 준 5원 아끼고 아끼다가/ 두부밥 하나 사 들고/ 딱 한 입 물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 손이/ 순식간에 덮쳐 달아났다고// 실룩거리던 아이의 입술이/ 마침내 터져 버린다(「5원」 전반부)

 

장사하는 엄마가 주고 간 5원을 아끼고 있다가 아이가 두부밥이라는 것을 사서 막 먹으려는 순간 ‘까마귀 손’이 나타나 낚아채 간다. 저녁에 집에 온 엄마에게 아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우는 아이를 엄마는 달래지 않고 쥐어박는다.

 

엄마가 꽃제비 주의하라고 했어? 안 했어?/ 그땐 없었단 말이야// 이 반 푼아, 눈은 거죽이 모자라 째 놓았냐/ 장마당에 널린 게 꽃제비인데/ 돈 달란 소리 다시 했단 봐라!/ 한 대 쥐어박으니 내 손이 아프다// 또 한 대/ 나를 향한 울분이/ 또 한 대/ 세상을 향한 울분이/ 폭포처럼 쏟아진다(「5원」 후반부)

 

한두 대 쥐어박는 데서 끝나지 않고 폭력 행사 단계에 이르면서 시가 끝난다. 시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인 듯한 이 시는 북한의 식량 사정을 단적으로 들려준다. 아래 예시하는 시도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이라 여겨진다.

 

하루 일 마친 아버지가 들어선다/ 쪼르르 달려 나간 세 아들// 엄마가 서둘러 저녁상을 차린다/ 물 한 사발, 죽 한 사발, 시래기 김치 한 접시// 종일 공장 일에 기운 빠진 아버지/ 후루룩후루룩/ 마지막 한 숟가락 들다 말고/ 빤히 올려다보는 애들에게 눈길 준다// 너희들 저녁 먹었지?/ 침은 꼴깍 머리는 끄덕(「아버지의 저녁식사」 전반부)

 

종일 노동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귀가한 남편에게 엄마는 죽 한 사발을 저녁밥으로 내놓는다. 그것을 닥닥 긁어먹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저녁 먹었지?”라고 물어보는데 아이들은 머리를 끄덕이지만 거짓말이다.

 

아버지 죽그릇이 바닥을 드러낸다/ 울음을 터뜨리는 두 살 막내/ 엄마가 달래도 막무가내다// 아빠 저녁 넘볼 시/ 맹물도 없다는 엄한 훈시/ 아버지의 자비만을 바랐지만/ 그 애절한 희망이 사라진다// 죽 나발만 불게 한 죄스러운 엄마는/ 또다시 사정없이 매를 든다(「아버지의 저녁식사」 후반부)

 

자식 셋과 엄마는 저녁을 굶은 채 식사 시간을 넘겼는데 엄마는 왜 남편만 밥을 먹게 했을까? 내일 또 일터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살짜리 막내가 바닥을 드러낸 죽그릇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자 또다시 사정없이 매를 드는 데서 시가 끝난다. 이 2편의 시만 보더라도 고난의 행군 무렵 북한의 식량 사정이 잘 드러난다. 시어 중에 ‘고난의 행군’이 나오는 것이 있다.

 

황해남도 봉천군에 여태/ 에디슨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감나무마을이 있다// ‘고난의 행군’을 비껴 가는 외진 곳/ 이 마을은 6·25도 모른다/ 이승만의 고향이라/ 폭탄 한 방 안 떨어졌다는 전언이다(「구들 농사」 전반부)

 

북한에는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가는 곳이 있나 보다.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펼쳐지던 1970년대에 웬만한 오지가 아니고선 전기가 들어가 호롱불이 자취를 감췄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은가? 이명애 씨가 북한을 떠나온 지 20년이 더 되었으므로 황해남도 봉천군이란 곳의 전기 사정이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의 봉천군이 일제강점기에는 금천군과 평산군이었으니 이 시의 내용이 맞다. 전쟁 당시 미군기가 북한을 공습할 때 평산군은 뺐다고 전해 내려오는 얘기가 낭설이 아닌 것 같다. 평산군이 1952년에 평천군으로, 1990년에 봉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늑한 골짜기/ 가을이면 온 가족이 달라붙어/ 밤새워 감을 깎는다/ 나무 꼬챙이에 끼워 곶감을 만든다// 복 받은 감나무마을에 평온이 깃든다/ 긴긴 겨울밤 등잔 기름 아까워/ 해 떨어지자 잠 청한다// 밝은 줄 모르는 새벽을 탓하며/ 구들 농사만 짓는다/ 집마다 아이들만 수두룩(「구들 농사」 후반부)

 

봉천군에서는 감이 많이 나 가을에는 곶감 만드는 것이 주민들의 주요 일과인 모양이다. 그런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주민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고, 그러다 보니 구들 농사를 열심히 짓는 바람에 여성들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 시의 마지막 연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거나 전기가 안 들어갈 정도로 낙후된 곳이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지 않고 시인은 농담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 시는 앞의 두 시와는 다르게, 해학적으로 끝난다. 대한민국은 만경강 최상류에 있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운용마을 일곱 가구에 전기가 안 들어가 2020년에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곳에 아이들이 많은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원치 않았는데 임신했을 경우, 낙태 수술을 통해 중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보고/ 죽어라 달려도 보고/ 짐을 잔뜩 진 채/ 수십 리 걸어도 보았지만/ 끈질기게 붙어 있는 생명// 궁여지책으로/ 낙태 수술을 받아 본 적 있다는/ 옆집에 부탁한다// 마취 없이 하는 소파 수술/ 차가운 집게로/ 자궁 속에서 뜯어낸 핏덩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낙태」 전반부)

 

시의 후반부는 처절한 비극이다. 자궁 속에서 태아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임신부가 죽고 불법 수술을 한 옆집 여인은 감옥으로 간다. 아기도 죽었을 텐데 그 얘기는 하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 문장이 “두 집 아이들은/ 세상에 내동댕이쳐진다”이다. 두 집 다 어머니가 졸지에 사라졌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험난한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낙태에 많이 사용되는 것이 “한 봉지에 오십 알 들어 있는/ 중국산 돼지 회충약”(「목숨」)인데 “두 달 된 태아를 지우려면/ 적어도 두 봉지는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나이 서른에 백 알을 먹는다”. “그러나 위로 아래로/ 크고 작은 기생충만 쓸어 나올 뿐/ 엄마도 아기도 죽지 않는다”니 사람 목숨이 질기기도 하다. 아래 시는 또 다른 낙태 현장이다.

 

굵고 뭉툭한 주삿바늘/ 여자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찌른다// (중략)//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대롱대롱 매달려 버둥거리는/ 채 여물지 못한 두 개의 작은 발// 여자가 울상이 되어 소리친다/ 선생님 아기가 나오다 걸렸어요/ 저 좀 살려 주세요(「두 개의 작은 발」 부분)

 

세 번째 들어선 아이는 원치 않는 아이였다. 키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 산모는 의사에게 아이를 지우고 싶다고 애소하자 공짜로 주사를 놓아 준다. “여자는 급하게 분만실로 달려가/ 의사가 권하는 양동이에 앉는다”. 6개월밖에 안 된 아이가 자궁에서 나오는데 “채 여물지 못한 두 개의 발”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이 작은 신생아의 목숨을 끊기로 합의했는데. 북한에서는 기형아가 태어나면 살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증언하는 시가 있다.

 

네 살배기 첫째를 가슴에 묻고/ 둘째를 얻은 기쁨/ 만나는 사람마다 싱글벙글/ 아들입니다// 그런데 모기 소리 같은 울음소리/ 축 늘어진 팔다리 움직일 줄 모른다//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났건만/ 고난 앞에 무방비로 맞선 아기/ 열 달을 채우고도/ 세상 밖에 나올 준비가 부족했다(「기형아」 부분)

 

첫째아이가 네 살 때 죽었기 때문에 부부는 이번에 임신하고선 동네방네 자랑도 하였고 기대도 컸는데 낳고 보니 기형아였다. 아무래도 이상해 뒤늦게 병원에 가보았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것도 사람이라고 일주일이나 끼고 있었니?/ 바로 엎어 놓고 말지.”였다. 이 시의 화자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아기 엄마 면박 주는 산부인과 의사”를 원망하지만 아기를 구할 방도는 찾을 수 없다. 「산부인과」라는 시에 나오는 “피임약은 없고/ 낙태는 불법이고/ 있는 아이도 굶어 죽는 판에/ 아이는 계속 낳으라네// 뇌물 바치고 태아를 긁어낸다” 같은 구절도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북한의 현실을 알게 한다. 국가의 정책은 다산에 있지만 아기를 중절하게끔 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인권 부재의 세상인 북한을 두 아이를 데리고 탈출한 이명애 씨는 1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남한에 온다. 1년이면 비교적 짧은 경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온 탈북인들의 사정을 그녀는 이렇게 대변한다.

 

정장 차림의 신사가 반긴다/ 어서 오세요/ 잘 오셨습니다/ 대한민국에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주린 창자 움켜쥐고 강을 넘었다/ 인신매매에 팔려 농락당하고/ 죽도록 일하고 돈 한 푼 못 받고도/ 신고한다는 한마디에 줄행랑쳐야 했다// 꿈속에도 쫓아오는 공안/ 포승줄에 줄줄이 엮여 고향으로 끌려갔다/ 중국 새끼를 뱄다고/ 태아가 피를 토할 때까지/ 구둣발에 차이고 각목으로 맞았다(「나도 사람이었구나!」 부분)

 

강을 넘어 북한을 벗어난 뒤에 대한민국까지 가려면 대륙을 관통해 동남아 이런저런 나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중국 공안이 탈북민을 적발하면 북한으로 바로 넘기기 때문이다. 중국에 머물면서 돈도 벌어 제3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간 몇 사람이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제3국에 넘어가서는 또 몇 사람이 죽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차량, 여권, 돈, 브로커 인맥, 건강 등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야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다. 잡혀서 북한으로 송환되면 “나라를 배신했다는 죄목으로/ 지렁이처럼 밟히고 죽어간”다. “압록강 두만강을 떠도는 영혼은 얼마”인지 “메콩강을 맴도는 붉은 영혼은 또 얼마”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데 탈북을 결심한 것은 두 아이의 앞날 때문이기도 했지만 “밥 걱정 없는 세상에/ 어서 가라 등 떠밀던/ 어둠 속 엄마의 모습이 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이 집의 경우는 어머니 몰래 탈북한 것이 아니라 딸과 손자들의 행복을 화자의 어머니가 빌어 주어 탈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한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남북한 축구 경기를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쓴 시가 시집의 제목이 된다.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한 민족 두 나라의 대결/ 남북한 축구가 시작된다// 남한 선수가 중거리 슛을 날린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함성/ 역시 대한민국이야// 또다시 터지는 함성과 탄성/ 틈새를 노린 북한의 공이 골대를 살짝 빗나간다/ 조금만 더 안쪽으로 차지……// 이어지는 연장전/ 마지막 1분을 남겨 두고/ 남한 선수의 공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다(「연장전」 전반부)

 

이명애 씨는 텔레비전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을 해주어 본 적이 있었으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였다. 연장전 1분을 남겨 두고 결승골을 넣은 것은 남한 선수였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두 손 들고 환호한다/ 긴 휘슬이 울리고/ 털썩털썩 주저앉는 북한 선수들/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다// 내 손이 갈 곳을 잃는다/ 금메달은 중요치 않다/ 남한과 맞대결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저들은 사상투쟁의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전면적인 검토를 다시 받아야 할 것이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어쩌나/ 축구단에서 쫓겨나진 않을까!/ 얼싸안고 돌아가는/ 남한 선수들이 미워진다(「연장전」 후반부)

 

시합이 막 끝났을 때는 대한민국의 승리에 환호했지만 북한 선수들이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 것을 보니 걱정된다. 연장전 후반 1분을 남겨 놓고 골을 내주어 졌으니 저 선수들이 북한에 돌아가 당하게 될 고초를 아는 시인으로서는 걱정이 태산 같다. 이겼다고 얼싸안고 돌아가는 남한 선수들이 미워진다.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하는 운명, 졌을 때는 무지막지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운명, 이 운명을 도대체 누가 부여한 것인가.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아닌가. 분단 이후 휴전선 저쪽은 동족임에도 원수 같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주적’이 되고 만 것이다. 북한이 어떤 곳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가 있다.

 

달마다 주는 배급/ 거치는 손마다 떼먹고/ 절약미 명목으로 떼이고/ 닭 모이 같은 배급 자루// (중략)// 날라리 수정주의 몰아내고/ 우리식 사회주의 지켜내자/ 곳곳에 나붙은 구호// 뼛속까지 사회주의 체험한 사람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밥 걱정 안 하는 세상이면 좋겠다(「지나간 공산주의」 부분)

 

공산주의는 말 그대로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이념일 텐데 북한의 경우 배급이 아주 불공평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날라리 수정주의 몰아내고/ 우리식 사회주의 지켜내자”고 곳곳에 구호를 써 붙이면 무엇하나. 공동 생산, 공동 분배가 이뤄진다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는 말뿐이고 실제로는 당원과 비당원 사이에, 고위직과 생산직 사이에, 평양과 지방 사이에 엄청난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 북한임을 이명애 씨는 곳곳에서 증언하고 고발한다. “노동당원이 되기 전에는/ 절대 시집 안 간다는/ 당원이 아닌 아버지를 둔 분조장 처녀”(「애국 돼지」), “분대장의 명령 받은 두 병사/ 마을로 내려온다/ 그들의 임무는/ 돼지 한 마리 슬쩍 해오는 것”(「땅속에 묻힐 행운」), “함경도에서 나서 자란 그녀/ 죽기 전 소원은 평양 한 번 가보는 것/ 서울시민이 되고/ 서울구경 나선다”(「북쪽 여자」) 같은 시를 봐도 북한의 실상을 조금은 알 수 있다. 당원과 비당원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군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 민간인 지역에 가서 돼지나 닭을 훔쳐 온다. 북한에서는 거주 이전의 자유와 여행의 자유가 없다. 고난의 행군 시절이 아니어도 북한의 경제는 자력갱생이 전혀 안 되고 있음을 이런 시가 알려 주고 있다.

 

계획경제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사라진 배급/ 나라 재산보다 우선은 내 목숨/ 무슨 짓 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노동자는 기계 뜯어 팔아먹고/ 운전사는 기름 빼서 팔아먹고/ 창고장은 자재 꺼내 팔아먹고/ 보일러공은 석탄 채서 팔아먹고/ 농민은 농장재산 훔쳐 먹고/ 날랜 놈 전깃줄 끊어 팔고(「제일 먼저 굶어죽은 사람」 부분)

 

아무리 북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말이 한두 사람이 아닌 다수의 탈북인이 한다면 안 믿을 수 없다. 탈북작가 김정애의 장편소설 「북극성」을 보면 북한에서는 핵심계급과 동요계급, 적대계급으로 나눠 놓고 차별대우를 하는데, 적대계급은 할아버지 때의 성분이 대물림되어 죽을 때까지 그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탈북인들은 북한에서는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남한에 대한 소식을 접했기에 자유를 찾아 남으로 올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남한의 방송, 예컨대 TV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한두 회만 보여 주어도 북한이 얼마나 폐쇄된 세계인지, 고립된 세계인지, 억압된 세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시집도 그랬지만 두 번째 시집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도 크게 세 묶음으로 나눠진다. 북한에서 살던 시절의 회고담, 위험했던 탈북 과정, 남한에 정착한 이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 이 세 가지가 주로 다뤄진다.

 

내 어릴 적 범 나올라/ 근처도 못 가던 뒷산// 산림보호원 눈 피해/ 걸리면 뇌물 찔러주고/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들/ 심심찮게 보이더니// 초록색 밤송이/ 다닥다닥 맺힌 밤나무 가지들/ 뽀얀 물 튕기는 연한 껍질의 하얀 밤/ 곯은 배 채우기 위해/ 도끼날에 무참히 찍혀 나간다// 배급소 문마저 닫히고/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드문드문 아담한 소나무들/ 허연 속살을 드러낸다// 삭정이 하나 안 남기고/ 여기저기 부대기 밭들 생겨나더니/ 산이란 이름 무색하게/ 한해살이 풀숲으로 변신한다(「우리 마을 뒷산」 전문)

 

북한 주민이 산림보호원의 눈을 피해 산에 가서 밤나무 가지를 도끼로 찍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소나무의 속껍질〔松肌〕도 식용으로 쓴다. 송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공출이 너무 심해 먹을 것이 없을 때 구황식품으로 쓰곤 했던 것인데 북한에서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나 보다. ‘부대기’는 화전(火田)의 평안도 사투리다. 남한에는 화전민이라는 존재가 1960년대까지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없다. 북한에서는 숲이 한해살이 풀숲으로 변하고 말았다니 그 참상이 짐작이 간다.
‘주체농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북한은 산악지역이 대부분이라 평야가 거의 없다. 북한에서 나는 농산물만 갖고는 인민의 배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야산을 개간해 밭을 만들기로 했다. 중국 윈난성의 예를 보고 뱅글뱅글 돌아서 올라가는 식으로 밭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다.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니 산사태가 나는 것이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밭을 만들 때는 농지를 확보했다고 뿌듯해했는데 큰비가 오면 산사태 나는 것을 막아 주던 나무가 죄 사라져 산 아래에 있는 마을마다 산사태가 났다는 얘기를 어느 탈북인의 강연 때 들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주체농법’이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한다. 북한은 많은 곳에서 지금도 화전민 농법이 이뤄지고 있나 보다. 숲이 사라지고 민둥산이 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단오가 한참 지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쑥/ 몇 번을 삶아내고 우려내도/ 소태처럼 쓰다// 강냉이 가루 한 줌 얼버무려/ 온 가족이 봄내 여름내 먹으니/ 쑥독이 온몸에 퍼져/ 열에 떠서 앓던 딸// 티 하나 없던/ 스무 살 처녀의 고운 얼굴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거멓고 우툴두툴한/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강성대국의 징표」 전문)

 

북한은 스스로 ‘강성대국’이라고 칭한다. 아마도 미사일을 수시로 쏘아 올리면서 김정은은 미국과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미국 본토까지 핵미사일을 쏘아 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불지 말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고 시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인민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미사일 한 발 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북한 전역에서 강냉이 가루에 쑥을 넣고 죽을 쑤어 먹는다. 그 와중에 쑥독이 온몸에 퍼져 열병을 앓게 된 딸의 얼굴이 엉망이 된다. 이것이 바로 강성대국의 징표가 아니냐고 이명애 씨는 북한 당국을, 아니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 3부자를 비판하였다.
북한에서의 삶을 회고하는 시는 이렇듯 먹거리에 대한 것이 많다. 배를 채우는 것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명절에만 먹는 흰쌀밥”(「설날」), “인민은 단 한 번도/ 이밥에 고깃국 달라 한 적 없다/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했다”(「이밥에 고깃국」), “간식거리 하나 없는 신세 한탄하며/ 왜정 때도 이보단 나았다고/ 엄마는 가만가만 이야기한다”(「엄마의 소녀 시절」), “한 끼 밥을 위해 허우적거리는/ 한 점 희망도 없는 내 인생”(「팔자를 앞지르다」) 등 북한 인민들에게는 나날의 삶이 온통 먹을 것, 즉 연명(延命)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가 많겠지만 이런 식의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시를 살펴보자.

 

두만강을 헤엄쳐/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길 없는 산을 넘고 넘어/ 이틀 밤낮으로 걸었다// 국경에서 얼마나 멀리 왔을까/ 참을 수 없는 배고픔/ 더 이상 발을 옮길 기운도 없다// 때마침 나타난 강냉이밭/ 이 빠진 이삭을 찾아/ 온 밭을 누벼도/ 잘 여문 팔뚝 같은 이삭들뿐/ 덜 된 녀석을 찾을 수 없다(「신세계」 전반부)

 

이틀 동안 한 끼도 못 먹으며 길도 없는 산길을 헤쳐나가면서 걸었다면 배가 무척 고팠을 것이다. 그때 강냉이밭에 이르렀다면 당장 따서 삶지 않은 상태로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풋강냉이’가 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밭고랑에 주저앉아/ 매끈거리는 비닐만 더듬는다”고 한다. 왜 이랬을까? 다 자란 강냉이를 생으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가? 남의 밭에 있는 강냉이는 사유재산이어서 도둑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굶주려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한 사람씩 증명서 검열을 받는 모습/ 독립운동가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검문소를 방불케 한다// 국경지역 공민증은 손에 들려줬지만/ 브로커의 도움은 여기까지다// 간단한 북쪽 말투 연습은 했어도/ 진정시킬 수 없는 가슴/ 말을 시키면 어떡하지?(「10호 초소」 부분)

 

탈북 과정을 그린 이 시 속의 정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중국 공안(경찰)의 감시를 피하는 위기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닌가 짐작이 간다. 중국 공안은 탈북인을 찾아내면 북한으로 넘기기 때문에 국경을 넘었다고 해서 탈북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국이나 제3국까지 가는 긴 여정은 국경을 넘는 데서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제목이 된 구절이 나오는 시는 「강제집결소」다. “희미한 동쪽 하늘/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든다”가 제7연인데, 강제집결소란 우리로 치면 구치소쯤 되는 곳이다. 경범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몇 달씩 강제노동을 시키는데 여기서 있다가 나가면 전과자가 되지는 않는다. 시인 자신이 이곳에서 겨울을 난 적이 있었나 보다. 북한에서 경범죄는 거의 다 먹는 것 때문에 생긴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국경경비대의 총구 앞에서도/ 쌍심지 켠 공안의 눈길 앞에서도/ 며느리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숙명처럼 여겼던/ 내 팔자를 앞질렀다(「팔자를 앞지르다」 끝부분)

 

‘며느리’는 시인이 뒷집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 속에 나온다. 옛날에 찢어지게 가난한 어느 집 며느리가 고달픈 시집살이를 피해 장대비 억수로 퍼붓는 날 야반도주를 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저벅저벅 앞에서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며느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네 팔자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앞서가는 팔자를 무슨 수로 당하랴 싶어 며느리가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고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 이명애 씨는 그 며느리처럼 포기하지 않고 숙명처럼 여겼던 내 팔자를 앞질러 북한 탈출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후 남한에서의 삶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말부터 배워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외래어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다이어트와 디저트는 구별이 쉽게 되는데 터미널과 터널, 카드와 카트, 카센터와 카세트는 북한에서 안 쓰는 말인 모양이다.

 

다이어트는 식단 조절/ 즉 살을 뺀다는 뜻이라네// 불룩 나온 배는 부유함의 상징/ 삐쩍 마른 사람들 천지인 북쪽엔/ 이런 말 생겨날 리 없지// 디저트는 식후의 간식/ 쌀밥 먹으면 됐지/ 과일이나 과자를 또 먹는다?// 엘리베이터/ 아르바이트// 터미널/ 터널// 카드/ 카트// 카센터/ 카세트//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고//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홈에버 달라고 말했다가/ 온몸에 쏟아지는 눈길에 당황한다// 외운다고 외워지지도 않고/ 선뜻 물어볼 용기도 없는/ 두렵기만 한 외래어(「외래어」 전문)

 

70년 분단 세월은 남과 북의 언어의 거리, 생각의 거리, 소통의 거리를 너무나 멀어지게 했다. 특히 사용하는 언어에서 큰 차이가 남을 이 시가 증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외래어를 잘 쓰지 않는 것이야 그들이 내세우는 주체사상 때문이겠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도 김정은이고 디저트를 먹는 사람도 김정은일 것이다. 미사일 시험 발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 배곯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바뀔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사회주의 북한에만 있는/ 제도인 줄 알았는데// 남한에도 무료교육 의무교육/ 심지어 학교에서 점심밥도 준다(「무료교육 의무교육」 앞부분)

 

내가 출산했을 때/ 산모 미역 구할 길 없었던 친정엄마// 모래를 잔뜩 머금은/ 누렇고 두꺼운 돌미역/ 시루에 쪄내고 말리는 세월의 지혜로/ 부들부들한 미역국 끓여주셨다(「미역국」 부분)

 

지금 이 땅에서는 아무리 첩첩산골이라도 미역국 끓여 먹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산모가 미역국을 먹고 기운을 차리는 것이 우리네 풍속인데 이 풍속이 북한에선 사라졌다. 북한 땅에 자유의 봄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시도 몇 편 된다.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들 어울려/ 최고의 맛을 자랑하니// 남북한도 하나가 되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텐데……(「감자탕」 마지막 부분)

 

두 정상이 한 발씩 넘어갔다 넘어오듯/ 언제면 그 선 너머에/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을까!(「경계선」 마지막 연)

 

남북한이 한 팀을 이뤄 아시안게임에서 탁구 종목 우승을 이룩한 적이 있었다. 현정화, 리분희, 유승복 선수 등이 단일팀을 이뤄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했다. 시합 끝나고 남북한 선수들이 같은 단상에 올랐을 때 울려 퍼지던 노래가 <아리랑>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안 운 사람이 있었을까? 단일팀이 몇 차례 더 만들어졌더라면 여러 종목에서 수많은 승리와 우승을 일궈냈을 것이다.
「경계선」은 이 시집의 마지막에 실려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 2018년 5월에 남북한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은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여러 가지 일들이 성사될 줄 알고 기뻐했지만 김정은은 태도를 바꿔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무력 도발의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의 9·19 선언은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 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이 말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한반도에서의 긴장감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동질감이 점점 희박해지고 공통분모가 사라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인은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주린 배 부여잡고/ 무턱대고 강을 건넌 탈북자/ 불빛 환한 집 찾아 들어간다// 문 열고 내다보던 집주인/ 강 저편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얼른 들어오우 밥 먹었소?// 우리 엄마 말고 어느 누가/ 밥 먹었냐 물어본 적 있었던가!// 돼지고기 숭숭 썰어 냄비에 넣고/ 달걀 아낌없이 툭툭 까서 지지고/ 시뻘건 양념의 김치/ 김이 물물 나는 하얀 쌀밥/ 생애 처음 받아 본 진수성찬에/ 눈앞이 흐려진다// 주인이 꺼내준 옷으로 변장하고/ 변방대를 피해 산길로 접어든다/ 시내를 향해 밤낮을 걷다/ 또다시 밀려드는 허기 이길 수 없어/ 마을 귀퉁이 작은 대문 조심히 두드린다// 그 주인 역시 꺼낸 첫말/ 밥은 먹었소?// 배고파 탈북하는 사람/ 수없이 맞고 보냈을/ 옛 고구려 자손들의 따뜻한 한마디// 자기 배도 채우기 힘든 저쪽 세상엔/ 오래전 사라져 버린/ 우리 민족의 정다운 인사말(「밥 먹었소?」 전문)

 

탈북인들은 국경을 넘은 이후 ‘재중국 조선족’의 은밀한 도움을 받지 않으면 대한민국으로 올 수 없다. 중국에는 조선족 브로커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못된 사람도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조선족은 탈북인을 보자마자 “밥 먹었소?”라고 묻는 착한 사람이다. 밥을 해주는데, 탈북인에게는 ‘생애 처음 받아 본 진수성찬’이다. 감격해서 눈앞이 흐려진다. 또 다른 조선족 집에 갔을 때도 집주인이 똑같이 “밥은 먹었소?”라고 묻는다. “배고파 탈북하는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수없이 맞고 보냈을/ 옛 고구려 자손들의 따뜻한 한마디”에 화자는 감격한다. 북한에서 “밥 먹었소?”나 “진지 드셨습니까?”란 말이 사라졌나 보다. ‘미공급 시기’라고 부른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탈북인들을 잡으려 하지 않고 관대하게 대했다고 한다. ‘변방대’는 한·중 국경 지역에서 국경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는 중국의 국경경비대다. 이들에게 뇌물을 바쳐 탈북에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전역에 전산망이 촘촘히 깔렸고 그 여파로 근년에는 탈북인들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경상도에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인사말이 “니 밥 무운나?”였는데 국경을 벗어나서 “밥 먹었소?”를 듣게 되었으니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안타깝다. 북한은 우리 동포가 사는 곳이다. 우리가 매년 버리는 음식쓰레기를 생각하자. 외식하면서 밥과 반찬을 우리는 종종 남기는데 북한에서는 배가 고파 국경을 넘고 있다. 제3 시집도 거의 절반이 먹는 이야기다.

 

껍질째 먹어도 손색 없는/ 사각사각 달콤 시원한 사과배/ 이미 농익어 하루가 새로운데/ 평생 과일 구경 못하는 사람 부지기수인데…(「사과배」 마지막 연)

 

외할머니댁 늙은 배나무의/ 옛날 주병을 닮은 병배/ 마을 앞 과수원의 복숭아와 사과는/ 이삭 주워 먹어 봤는데// 기억을 총동원해도/ 귤이란 물건 그려낼 수 없다(「귤 껍질 1」 끝부분)

 

산모는 하루 300그램/ 아기 몫을 합치면 400그램/ 악착같이 빨아대는 아기 입심에/ 엄마는 껍데기만 남는다(「올가미」 제2연)

 

북한 주민에게 과일은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먹거리임을 알 수 있다. 생산되지 않기에 외국에서 들여와야 먹을 수 있는 귤은 북한에 있을 때 본 기억도 없다. 시인은 영양 공급이 충분히 되지 않아 바싹 마른 산모의 모습도 떠올린다. 그런데 남한에 와 보니 “이밥이 질려 잡곡 찾고/ 동서해 수산물 앉은 자리에서 먹고/ 냉장고엔 빈자리가 없는 지금”(「뜻밖의 사실」)이니 삶의 질이 천양지차다. 명절 밑에 장마당에 나온 푸른 국광을 아이들에게 처음 먹인 이야기는 눈물겹다.

 

장마당이 번성하더니/ 설 명절 밑에/ 중앙당 간부들 식탁에나 오를/ 사과가 등장한다// 강냉이 일 킬로그램 사백 원/ 사과 한 개에 백 원/ 큰맘 먹고 네 개 샀다// 명절날 아침/ 제 주먹만 한 국광사과/ 두 개씩 받아 든 아이들/ 난생처음 보는 퍼런 사과/ 씨 한 톨 안 남기고 먹어 치운다(「국광사과」 전문)

 

이런 사과 자체를 난생 처음 본다니 기가 막힌다. 씨 한 톨 안 남기고 먹어 치운다는 결구를 보니 윤동주의 동시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째로 송치까지/ 다 나눠 먹었소”가 생각난다. 1930년대에 쓴 「사과」의 전문인데 70년이 흐른 2000년대 초의 북한 사정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3권 시집을 읽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표제시를 살펴보자.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 사이버대 학생이 되어/ 입학식에 가는 길이다// 둘로 갈라진 긴 세월/ 변하지 않은 것은 떡 하나/ 우리말 우리 글// 같은 말을 쓰니/ 손짓 발짓 안 해도 되고/ 같은 글을 쓰니/ 대학 공부도 할 수 있다// 때마침 들어서는 환승 열차/ 덜커덩덜커덩/ 사십 대 끝자락의 나를 싣고/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환승」 후반부)

 

지하철을 타고 갈 때 환승하는 것처럼 이명애 씨는 남한에 와 환승하게 되었다. 만학도 대학생이 된 것이다. 시인이 되어 3권의 시집도 내게 되었다.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남·북한 언어의 이질감은 날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유문학』 2025년 겨울호에 이혜선 시인이 「한글, 남북한 소통과 통일의 과제」를 발표했는데 달리 쓰는 낱말의 예를 수십 개 들었다. 20개만 추린다.

 

외출복 / 가름옷
찌꺼기 / 감탕
장모 / 가시어머니, 장인 / 가시아버지 
헤어드라이어 / 건발기
콘돔 / 고무주머니
어묵 / 고기떡
대기실 / 기다림칸
라면 / 꼬부랑국수
마른 몸매 / 깔따구
무안을 당하다 / 꼴먹다 
퇴직한 사람 / 년로보장 
양계장 / 닭공장
땡땡이치다 / 뚜꺼먹다
간섭 / 간참
입덧 / 입쓰리
브래지어 / 가슴띠
시집간 딸 / 집안이
도시락 / 곽밥
교미 / 쌍붙임

 

영어와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이해되지만 순우리말도 많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2023년에 950쪽에 이르는 『미리 만나는 겨레말 큰사전』을 펴냈는데 남한과 북한이 달리 쓰고 있는 말이 엄청나게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육지 사람들이 예전 제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듯이 분단 80년에 언어의 이질화가 이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이 땅에 내려와 있는 탈북인들은 요즈음 많이 불안할 것이다. 2019년 11월에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태가 있었는데 모든 탈북인이 그때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남한과 북한의 대화 채널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면서도 이런 증언과 고발의 시, 적응과 부적응의 시를 쓴 이명애 씨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남쪽 독자들이 그녀의 시집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탈북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말이다. 북한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통일의 문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3의 법칙」이란 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한 명이 소리쳤을 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두 명이 말했을 때/ 하나둘 쳐다보았다// 세 명이 목소리를 내니/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백 명, 천 명, 만 명…// 그 위력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맞는 말이다. 탈북인 한 명이 낸 3권의 시집은 메아리가 되어 한반도에 있는 모든 산에서 메아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2권 시집을 대상으로 쓴 글 「북한의 현실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월간 시인』 2025년 10월호에 발표한 바 있다. 이 평론은 최근에 세 번째 시집이 나왔기에 그 글을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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