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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제복의 계절

한국문인협회 로고 송인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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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다
산과 들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부잣집 담벼락에는 빨간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는 5월이었다. 영미가 탄 버스가 신촌역에 도착하자마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대여섯 명이 우르르 올라탔다. 그들 몸에서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났고 삽시간에 버스 전체로 퍼졌다.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데 전투경찰 서너 명이 버스 옆구리를 탕탕 쳐서 정지시킨 후 뛰어올랐다. 그리고 올라탄 대학생들을 후려갈기며 사정없이 끌고 내려갔다. 내다본 거리에는 최루탄에 쫓기며 굴다리 쪽으로 와∼ 흩어지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노인 몇 명만 혀를 끌끌 찰 뿐 사람들은 서로를 외면하거나 침묵했다.
영미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그녀는 자유고 나발이고 그저 자신의 삶만도 버거웠기에 시국에 관심도 없었고 학생 데모도 싫었다. 힘도 없어 보이는 그깟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좀 던지며 구호를 외친다 한들 세상이 바뀔 리 만무하다는 체념적인 상태였다. 민주주의가 어떻고, 공장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어떻고 하는 것도, 그저 부모 잘 만난 것들이 사는 게 편하니까 하는 짓거리로만 보였다. 어디서건 정부에 비판적인 소리를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는 무서운 세상이었다. 가족이 아닌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불안했다.
영미는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후암동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서울역 건너편 어딘가에 있다는 서울 병무청을 찾고 있었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그녀는 여군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운명처럼 며칠 사이에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길만이 새엄마가 있는 집을 떠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찾아 들어간 병무청에서 직원은 간절한 표정의 영미를 보자 안 됐는지 자상하게 입대 절차를 설명했다.
“여군은 자원입대고 징병제인 남자 군인과 달라서 자격이 엄격합니다. 건장한 신체는 물론이고, 장교는 4년제 정규대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하사관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에서 24세까지 미혼이어야 합니다. 키도 155센티 이상이어야 하고요. 키는 됐네.”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저 혹시 해군이나 공군에서는 여군을 안 뽑습니까?”
“네, 나중에는 생길지 모르지만, 현재 여군은 육군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필기시험과 면접, 신체검사에 합격한다 해도 신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절대 여군이 될 수 없어요. 여군은 육군의 모든 행정업무를 담당하거든요. 그게 전부 군사기밀이에요. 혹시 친인척 중에 빨치산이나, 뭐 그런 분∼은 안 계시죠?”
“네? 그럼요. 당연히 없지요.”
영미는 황급히 대꾸했다. 그녀의 공손한 대답이 흐뭇했던지 담당자는 다른 자질구레한 사항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설명했다. 병무청을 나서는 영미의 손에는 ‘대한민국 여군하사관 모집공고서’가 들려 있었다.
여군 부사관 제20기의 소집일, 서울 용산구 여군훈련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아가씨들로 와글거렸다. 대부분 고교를 막 졸업하고 온 단발이나 갈래머리 아가씨들로 예쁘고 세련된 이도 있었고 뚱보도, 말라깽이도 있었다. 영미는 이 세상에는 자신 말고도 대책 없는 아가씨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녀들은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알지 못했던 사이였지만,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느라 시끄러웠다. 영미는 곁에 선 통통한 아이를 툭 치며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어지간히 눈이 나쁜 건지 두툼한 돋보기 같은 안경을 낀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내 이름은 서경희야, 집은 서울이고. 너는?”
“나도 서울, 이름은 영미야. 진영미.”
동갑이란 걸 확인한 후 둘은 금방 친해졌다. 둘이 노닥대자 뒷줄에 섰던 키가 껑충 크고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이가 영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내는 갱상도에서 왔다카이. 니는 고향이 어데고?”
“나? 고향은 충청도고 지금 집은 서울이야.”
영미는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 쓰며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그래? 근데 니는 충청도 사투리를 안 쓰네. 니 벌써 서울 사람 다 된 기가?”
갑자기 옆줄에서 볼이 붉고 입술이 두툼한 애가 묻지도 않았는데 껴들었다.
“옴마야, 나는 전라돈디, 야들아, 반갑다. 글고 봉께 팔도에서 다 모였구마이.”
그때였다. 그들 뒤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뒤에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굴리는 아이가 있었다. 보통의 키에 구릿빛의 매끈한 피부를 지닌 아이였다.
“니들은 여기가 좋아서 왔다고? 어이가 없네. 나는 여군 싫어. 난 우리 아빠한테 억지로 끌려서 왔어. 그래서 여기 오래 안 있을 거야. 이런 데가 뭐가 좋다고….”
그 아이는 주변인들을 경멸하듯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갑자기 생각난 듯 자신의 지원 사유를 말하느라고 더 시끄러워졌다. 그녀들은 자신의 잘난 점에 상대가 관심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지 짬짬이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각자의 입대 사연은 다양했다. 어떤 아이는 여군 제복이 멋져 보여서라는 다소 어이없는 소리를 했고, 어떤 아이는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떤 아이는 애인과 헤어져서, 또 어떤 아이는 명령 체계가 확실한 군대가 좋아서라고 했다. 동기가 다양했지만, 가장 많은 이유는 여군의 월급이 사회의 웬만한 직장보다는 나아서라는 것이었다.
북적대는 가운데 유독 모두의 시선을 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고 키가 크고 날씬했다. 웃음소리도 호탕한 그녀는 여유가 넘쳤다. 서울 출신으로 고교 시절 연대장을 지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대화는 그녀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때 어깨에 붉은 갈매기 세 개를 단 전투복 차림의 빼빼 마른 여군이 나타나 큰 소리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자자, 장정 여러분, 모두 조용히 하고 여기를 주목합니다.”
모두는 어리둥절한 채 그녀의 입만 쳐다보았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1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기초 소양을 검증하기 위한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받고 면접도 봅니다. 거기서 합격하면 신원조회가 있고, 거기에서도 문제가 없을 때 최종 합격하게 됩니다.”
명령에 따라 어설프게 움직이던 그녀들은 어둑해지는 밤공기를 느끼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밥과 국, 반찬이 담긴 누르스름한 플라스틱 식판이 정렬되어 있었다. 밥은 꿀맛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영미는 가족 중 유일하게 의지하던 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는 합동결혼식 후 형부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경북 어딘가에서 임지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다. 언니는 왜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그런 이상한 종교를 갖게 됐을까. 지금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걸까?’
영미는 입대를 결심했던 날 밤을 떠올렸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고교를 졸업한 지 두어 달이 지났건만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은 친구와 자취하면서 회사를 다니던 언니에게 들러 저녁을 먹은 후,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은 흘러간 경음악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고 많지 않은 승객들은 침묵 속에 환한 밤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영미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을 영원히 달리고 싶었지만 잠시 후 버스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어쩔 수 없이 내려섰다. 가로등이 희미한 골목을 돌고 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새엄마는 예상대로 술에 취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새엄마는 냉랭한 표정으로 취직도 안 하면서 집안일도 하지 않고 어딜 싸돌아다녔냐고 다그쳤다. 영미도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누가 취직하기 싫대요? 곧 취직할 거라고요. 그리고 우리 엄마 자리를 차지했으면 책임을 다 하셔야죠.”
미리 준비했던 말을 하는 데도 떨렸고 입에 침이 말랐다.
“뭐야? 이년 보소, 뭐라고? 아이고∼ 아이고∼ 이년 보소∼!”
새엄마는 얼굴이 허옇게 되어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자 안방에 있던 아버지가 뛰쳐나와 영미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뭐여! 이년이, 지금 니… 니 지금 느그 엄마한테 뭐라고 했냐, 이년이, 허∼.”
아버지는 씩씩대면서도 할 말이 없는지 연신 “이년이… 이년이…”만 되풀이했다. 주먹으로 몇 대 치다가 나중에는 발길질까지 했다. 영미는 그 주먹질이 아버지의 큰 덩치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약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건 마누라를 위로하기 위함과 딸에 대한 짠함이 뒤섞인 약한 발길질이었다. 그때까지도 건넛방에서는 새엄마 미숙이 “아이고∼ 아이고∼” 하며 타령조로 울다가 이따금 한 번씩 냅다 소리를 질러 대곤 했다.

 

경희가 영미를 툭 치며 물었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해? 근데 너는 어떻게 군대 올 생각을 했니?”
영미는 차마 가정사를 털어놓진 못하고 “나중에”라고 속삭였다. 경희도 “나도 나중에”라며 미소 지었다.
장정들은 줄 맞춰서 훈련소의 회색 건물을 드나들며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1주일을 보냈다. 건물 1층에는 식당과 피엑스 그리고 학과실이 있었고, 2층을 오르는 계단 옆은 커다란 샤워장이었다. 2층은 여군단의 행정사무실이고 3층이 그녀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이었다. 필기시험은 쉬웠고 면접도 어렵지 않았다. 영미와 경희는 신체 건강하고 신원에도 결격 사유가 없었기에 최종 합격되었다.
그녀들은 이제 20기 하 후보생으로 불렸다. 명령에 따라 영내 미용실에서 일제히 머리를 잘랐다. 모두 짧은 커트나 단발로 비슷한 헤어스타일이 되었다. 첫날부터 전체를 유쾌하게 이끌던 김진옥은 자천 타천 학생장이 되었다.
입소식이 열렸다.
“단결! 선서! 하 후보생 김진옥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법규를 준수하며 상관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모두는 대표 김진옥과 함께 오른팔을 들고 선서했다.
여군 중령인 학교장의 훈시가 있었다.
“군인은 국가와 민족의 생존권을 지키고, 올바른 윤리관을 함양해야 하며 나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게 기본 덕목입니다. 에… 따라서 여러분은 다양한 이론과 지식을 습득하는 한편 군사훈련도 받게 됩니다. 또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도 가꿀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총 24주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후보생들에게는 엄청난 개인용품이 지급되었다. 각자의 치수를 재서 맞춰주는 정복과 사이즈별로 지급되는 블라우스와 정모, 전투복과 전투모, 실내복, 정장용 구두와 전투화, 슬리퍼도 있었다. 심지어 브래지어와 팬티 등 속옷과 생리대도 지급되었다. 세숫비누와 세탁비누, 수건, 칫솔과 치약 등 매우 다양했다. 사제 물건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 로션과 스킨 등 기초 화장품만 빼고 입대 시 착용했던 모든 물건은 박스에 담겨 각자의 고향으로 보내졌다.

 

대한민국 여군은 정부 수립 후 사회적 혼란기에 조직되었다. 초기에는 학도호국단 교사 32명이 임관됐고, 호국단이 폐지된 후에는 생포한 빨치산 여자 공비들의 전향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아 의용군이 창설되었다. 당시 3,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뽑힌 491명은 대부분 교사나 고교와 대학교 재학 중인 엘리트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1951년 ‘여군과’의 출발로 공식적인 여군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때 병과 휘장과 여군기도 제정되었다. 1960년에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에 여군훈련소가 재창설되었다. 여군은 특전 요원도 있지만 소수였고 대부분의 부사관은 육군본부와 각 군사령부의 행정 타자수와 당번직을 수행했다.

 

새로운 세계
“기상!”
선임하사의 기상 소리에 후보생들은 허둥거리며 일어났다. 집에서라면 곤히 자고 있을 새벽 5시였다.
“자, 지금부터 모두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5시 30분까지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실시!”
모두는 고양이 세수만 하고 후다닥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연병장에 집합했다. 첫 일조 점호였다. 점호는 밤사이 병력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 도열한 가운데 중대장이 단상에 오르자 학생장이 큰소리로 인원 보고를 했다. 총원 53명이었다.
중대장은 첫날부터 새벽 구보를 시켰다.
“군인은 강인한 체력이 기본이다. 자,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연병장 열 바퀴를 돈다. 구보 시작! 한낫 뚜울 셋 넷, 한낫 뚜울 셋 넷, 구보 중∼ 군가 한다. 군가는∼ 행군의 아침. 군가 시작, 한낫 뚜울 셋 넷!”
그녀들은 장정 시절 배운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나? 군가 다시. 한낫 뚜울 셋 넷!”
후보생들은 목청을 높였다. 장정 시절 터득한 건 군가란 음정이나 발음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목소리를 키우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았다. 운동장을 열 바퀴 돌고 난 후 기진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후 후다닥 양치하고, 신속하게 정복으로 갈아입고 또다시 연병장에 집결해 학과실로 이동했다. 날은 포근했고 건물 앞 화단에는 예쁜 장미와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고왔다.
6개월의 훈련은 지독했다.
이제까지의 게으른 생활은 아듀였다. 군대는 전혀 잡생각 할 틈을 주지 않았다. 화장실 갈 때만 빼고 언제 어디서건 오와 열을 맞춰 걸었고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단결!” 구호를 붙이며 경례해야 했다.
학과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잠시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지만, 이때도 누워서 편히 쉬는 건 아니었다. 건조대에 널었던 빨래를 걷어서 개키고, 캐비닛 정리를 하고 구두를 닦다 보면 일석점호 시간이 다가왔다. 점호가 끝나면 비로소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높은 강도의 훈련으로 파김치가 되었기에 모두는 곧바로 잠들어 버렸다.
각자에게는 개인 침대와 캐비닛이 주어졌는데 모든 후보가 침구 정돈을 가장 힘들어했다. 침대는 나무 프레임 위에 폭신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깔깔하고 얇다란 매트가 깔려 있었다.
기상하면 가장 먼저 흰 시트 한 장으로 매트리스를 감싼 후 밑으로 집어넣고 그 위에 시트와 모포를 반듯이 편다. 머리 부분의 시트를 모포 위로 예쁘게 접은 후 전체를 싸잡아 매트리스 밑으로 잡아당겨 넣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캐비닛 안도 완벽하게 정리해야 했다. 좌측 옷걸이에는 날이 서게 다린 정복과 블라우스, 전투복의 소매가 나란히 보이게끔 걸고, 우측 3칸의 선반에는 옷을 똑같은 사이즈로 접어 각을 세워 정돈해야 했다. 맨 밑 서랍에는 속옷 등을 정리했는데 그 모든 것에는 ‘각’이 필요했다.
군대는 단 한 명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잘못하면 단체로 ‘기합’이라는 이름의 얼차려를 받았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구보와 사역을 했다. 가장 괴로운 점은 턱없이 부족한 잠이었다. 군대의 상관들은 교육생들을 로봇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툴툴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평은 초기뿐이었고 얼마 후부터는 지치고 겁을 먹어 쑥 들어갔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전신이 땀범벅 되는 구보는 일상이었다. 샤워실 벽에는 빙 둘러 꼭지가 여러 개 달려 있었지만 모두 한꺼번에 씻기는 힘들었다. 물이 졸졸 나오는 샤워기 1대에 2∼3명이 붙어 서서 교대로 비누칠을 하고 물을 맞으며 머리와 온몸을 한꺼번에 씻었다. 옷 입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단 10분 안에 끝내야 했기에 염치 불고하고 비집고 들어가서 씻어야 했다.
“집합!”
그 소리가 들리면 채 비눗기를 씻어내지 못해도 어쩔 수 없었다. 둘둘 말린 팬티를 제대로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바지 지퍼만 올리며 뛰쳐나가야 했다. 여름이라 물이 뜨뜻미지근했기에 씻고 나가는 순간 바로 땀이 솟아올랐다.
청소도 큰 몫이었다. 건물 외부는 허름해도 내부는 후보생들이 늘 쓸고 닦아서 반질거렸다. 신주라는 계단 끝 미끄럼 방지 놋쇠 턱도 매주 광약으로 닦아대서 거의 흰빛으로 광이 났다. 각자의 흰 시트도 매주 빨았고, 커튼도 2주에 한 번씩 빨았지만, 모포는 냄새가 나도 빨지 못하게 했다.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빨래는 뽀송하게 잘 말랐다.
정장 구두와 전투화도 날마다 윤이 나게 닦았고 정복은 다림질해서 입었다. 종일 정신없이 돌다가 실신하듯 잠들어도 한밤중 “기상” 소리가 들리면 기계처럼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훈련소 지휘관들은 잠도 없었다.
점호 시 번호 붙이기는 날마다 연습하지만, 꼭 누군가는 실수했다. 단 한 번도 한 차례로 끝나는 법은 없었다. 학생장의 “번호!” 소리에 맞춰 숫자를 붙이다 리듬을 놓치면 멋쩍어서 처음에는 웃지만, 지휘관들의 엄한 눈초리와 호통에 쑥 들어갔다.
어느 날은 영미도 실수했다. 하필 번호를 대야 하는 그 순간 침을 꿀꺽 삼키느라 타이밍을 놓쳤다. 완장을 찬 주번사관이 거친 태도로 영미 앞에 서서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입술에 힘을 주고 배를 꿀렁거리며 외쳤다. “다시, 번호!” 그날도 수없이 리듬에 맞춰 번호 붙이는 연습을 했기에 동기들에게 미안했다.
쉬는 날이라곤 모든 후보생이 의무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일요일이 유일했다. 그날도 학과 수업만 없을 뿐, 사역은 있었다. 군대에서는 모든 잡일에 ‘사역’이라는 용어를 붙였는데, 주로 연병장 잔디 속 쑥과 잡풀을 뽑고 돌멩이를 주워내는 쉬운 일이었다. 그때가 사색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낮은 오뉴월의 햇살이 쨍쨍해도 저녁 무렵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기에 견딜 만했다.
후보생들도 월급은 받았다. 많지 않은 그 월급은 끼리끼리 PX를 드나들며 먹는 데에 쓰였다. 영미와 경희는 늘 함께였다. 화장실도 함께 갔고, 청소할 때도 같이 다녔기에 그녀들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훈련소에는 3개의 기수가 함께 교육받고 있었다. 키가 크고 다리가 곧았던 영미는 어느 날부터 기수 요원으로 뽑혔다. 매일 아침, 전 후보생이 도열한 가운데 기수 세 명은 국기함을 들고 게양대로 올랐다. 한 명은 국기함을 들고 중앙에 서고, 좌우의 두 명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 줄에 국기를 묶고 팔에 각을 세워 게양했다. 오후 5시, 학과가 끝나면 하기식을 거행했다. 국기를 접을 땐 펼쳐서 맞잡고 두 번을 접은 후, 대각선으로 접어 삼각형이 되게 만든 후 나무 상자에 반듯이 담아 지정된 장소에 갖다 두었다. 더위를 식혀줄 한 줌의 단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걸 즐길 여유도 없이 후두둑거리는 비를 맞으며 달려 나가 국기를 내려야 했다. 그때는 시간과 상관없었다.
훈련 기간 중에는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제식과 총검술, 화생방, 독도법, 군사 영어 등이었다. 그리고 타자 연습이 위주인 한글 시간이었다.
초기에는 기초 군사 훈련에 집중되었다. 각자에게는 카빈이라는 긴 소총이 지급되었다. 교관은 육사 출신의 남군 대위였고, 조교는 남군 병사였다. 그들은 총기 다루는 법, 부품의 이름, 분해 결합법 등을 가르쳤다. 조교가 총을 분해했다 결합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걸 2분 안에 끝내야 한다며 숙달될 때까지 무한히 연습시켰다. 총은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도록 끝에 솔이 달린 긴 막대에 기름을 묻혀서 깨끗이 청소했다.
5분 대기조 훈련도 자주 있었다.
5분 대기조는 명령이 떨어지면 5분 안에 완전 무장한 채 집결하는 훈련이었다. 잠옷을 벗고 전투복과 전투화를 착용하는 게 힘들어서 미리 전투복을 착용한 채 발을 침구 밖으로 내놓고 누웠다 일어나기도 했다. 모든 후보생이 시간이 지날수록 중대장의 잦은 지적질로 겁을 먹게 되었고 명령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기에 개인의 판단력은 점차 흐릿해졌다.
총검술과 화생방 등 특수 종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모두 여군 소위와 중위가 맡았다. 나이 든 여군 장교들과 달리 젊은 그녀들은 순수하고 긍지도 있었다.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들은 센 경쟁률을 증명하듯 모두 날씬하고 예뻤다.
기초 훈련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나자 모든 시간표가 타자 연습에 맞춰졌다. 타자기는 책상 앞에 바짝 끌어다 놓고 의자도 바짝 당겨서 앉았다. 독한 교관을 만나면 허리를 구부리거나 딴짓을 했다가는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여름이었다.
학과 시간 중 가장 괴로운 건 졸음을 참는 것이었다. 특히 움직임이 별로 없는 한글 시간이 가장 고역이었다. 허연 벽에 붙은 4대의 선풍기가 부지런히 돌았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얇은 회색 정복 상의가 땀에 젖어 등에 착 달라붙지만, 참다 보면 나중엔 거의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키보드의 자판을 암기하게 되자 한글 시간이야말로 사색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었다. 교본을 보는 척하면서 교관 몰래 딴짓하는 스릴도 있었다. 영미는 그 시간에 고향 친구에게 무수한 편지를 쳐댔다. 연습지에는 이런 유치한 문구들이 너절했다.
“인생은 모래성이다. 철없이 깔깔대던 시절이 그립구나. 내게서 꿈은 사라졌다. 가혹한 일이지만 어쩔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
혹은 누군가한테 배운 유행가 <대머리 총각>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노래를 치기도 했다.
“여섯 시 기상 나팔 눈깔 비비고, 8시 학과 출장 땡땡이 치네, 구보로 시작해서 오리걸음에, 선착순 쪼그려 뛰기 마구 시키네. 50분 학과 시간 길기도 길어, 10분간 휴식 시간 기다려지네.”
지독한 훈련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규칙적인 식사로 인해 모든 후보생은 피둥피둥 살이 쪘다. 영미는 언니 선미에게 1개월 후에야 편지를 띄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군대 시계와 게으름이 원인이었다.
선미는 군대라는 특수 세계에 동생을 들여보내 놓고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영미의 편지는 2개월 후에야 도착했다. 선미는 통닭과 음료수와 과자 등을 잔뜩 싸 들고 면회를 갔다. 7월의 태양은 이글거렸고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이었다.
선미는 영미의 편지에 적힌 대로 용산우체국 앞에 내려서 골목을 죽 들어갔다. 막다른 곳에 철망으로 막힌 군 위병소가 나타났다. 주말의 위병소에는 면회자로 몹시 북적였고 헌병들은 친절했다.
그날 영미는 경희 부모의 면회에 끼어서 열심히 통닭을 먹고 있다가 언니를 만났다. 미리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먹거리를 잔뜩 들고 들어서는 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선미는 살찌고 태평스러워 보이는 동생을 보자 안심하고 돌아갔다.
일요일이면 면회자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거의 매주 사역을 했다. 하늘은 푸르렀고 잔디에서 잡풀이나 돌을 골라내는 일이라 힘들지는 않았기에 끼리끼리 모여서 노닥대며 일했다. 군대는 누구도 확인할 길 없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했다. 영미는 경희의 말에도 허풍이 섞였다는 걸 느꼈지만 그게 자신을 포장하기 위함이라는 걸 느꼈기에 믿는 척했다.

 

화생방 훈련
가장 무섭다는 화생방 교육 시간이 되었다. 교관은 육사 출신 대위였고 조교는 병장이었다. 훈련 장소는 연병장 한쪽 귀퉁이에 서 있는 작은 시멘트 건물이었다. 다른 보호 장구는 없었고, 교관은 방독면 쓰는 법만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1조부터 건물로 들어가게 했다. 사면에 회색 페인트가 발라진 건물은 창이 없어 컴컴했다. 교관이 조교를 시켜 연막을 터뜨리게 했다.
1조에 속한 영미는 방독면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연막을 맞았다. 무슨 가스인지 모르지만 좁은 공간에 삽시간에 연막이 퍼졌고, 잘못 쓴 방독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얼굴 피부가 찢어질 듯 아팠고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가슴은 매운 고춧가루를 들이부은 듯 아렸다. 난생처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무조건 문을 향해 달렸다. 문 앞에는 조교가 버티고 있었지만 몸부림치는 영미를 막지는 않았다. 영미가 뛰쳐나가자 견디지 못한 다른 후보생들도 줄줄이 뛰쳐나갔다.
1조가 연병장 곳곳에 처박혀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토악질을 해대자 2조부터는 두려움 속에 각자 자신의 방독면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확인했거나 말거나 소용없었다. 2조나 3조나 뛰쳐나와 토악질해대는 것은 모두 똑같았다. 화생방 훈련은 끔찍한 공포를 주었지만, 교육 과정 중 단 1회뿐이라고 해서 다행스러웠다.
각개전투는 연병장에 넓게 펼쳐 서서 기본 총검술을 교육받았다. 각개전투는 백병전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땡볕에서 4㎏의 총을 들고 교관의 지시에 따라 ‘찔러’ ‘때려’ ‘돌려쳐’ 등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총검술 교육은 수차례 받았다.
포복 훈련일은 맑은 날 해 질 녘이라 서늘했다. 잔디가 짧게 깎인 연병장을 팔꿈치로 발발 기었다. 교관은 머리를 최대한 낮추는 걸 강조했다.
“포복은 각개전투 중 이동 기술이다. 높은 포복은 은폐물이 많은 지역을 통과할 때 쓰는 것이고, 낮은 포복은 최대한 몸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차이점은 배가 땅에 붙고 떨어지고다. 여러분들 윗기수는 얼음판 위에서도 훈련했다. 그러니 엄살 부리지 마라.”
모든 훈련은 교관과 중대장의 재량에 의해서였기에 기수별로 훈련 강도가 달랐다. 영미의 기수는 운이 나쁘지 않았다. 기타 독도법과 군사 영어 등의 수업도 받느라 일정은 아주 빡빡했다.

 

취사병의 시위
여군 훈련소의 취사병은 모두 남군 병사였다.
취사병들은 커다란 자주색 고무통에 쌀을 담고 물을 부은 후 삽으로 저어가며 대충 씻었다. 그리고 그걸 사각의 알미늄 틀에 얇게 편 후 물을 적당히 붓고 칸이 나눠진 전기 찜 기구에 넣었다. 밥이 되는 동안은 쿠릉쿠릉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다. 그렇게 찐 밥은 부슬거렸고 맛이 없었다. 국도 커다란 알미늄 원통에 끓였는데, 재료는 주로 무와 콩나물, 시래기 등이었다. 이따금 고깃국도 나왔지만, 고깃국에 고기 건더기는 거의 없었다. “소가 걸어서 지나갔다” “돼지가 헤엄치고 지나갔다”며 후보생들이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모든 국은 멀금했다. 반찬도 1식 3찬이라는 구호 아래 김치를 빼면 딱 2가지였다. 김치는 고춧가루가 적게 들어가서 희끄무레했고, 모든 반찬에는 참기름과 설탕 등의 양념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팠기에 잘 먹었다. 식후의 식판은 후보생들이 닦지 않았다. 식사 후 식판을 주방의 커다란 자주색 고무통에 넣으면 남군 취사병들이 그걸 닦았다.
어느 날, 밥을 늦게 먹은 영미가 주방에 들어가자 설거지통이 꽉 차 있었다. 공간이 없어 식판을 설거지통 옆 바닥에 두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한 취사병이 다가오더니 말없이 영미의 식판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어마어마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취사병에게는 그것도 짜증 나는 일로 보였다.
영미도 취사병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발길에 차인 자신의 식판이 저만치 밀려가는 걸 보자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일병 주제에’ 영미는 취사병이 찬 자신의 식판을 다시 뻥뻥 두 차례나 차버렸다. 완전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상급자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녀는 이전의 상황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영미에게 거친 욕을 퍼부었다.
“야, 이게 미쳤나? 니 지금 제정신이냐? 이런 미친년이!”
영미는 해명이 귀찮아 대꾸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스름 저녁 하늘에 희미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경희는 말없이 다가와 영미의 어깨를 토닥였다. 선선한 바람이 영미의 눈물을 말려주었다.
훈련 기간 도중 중대장이 바뀌었다.
깡마른 신임 중대장은 첫날부터 야멸차게 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내무반 스위치를 확 올리며 소리쳤다.
“기상! 지금부터 모두 전투복 차림으로 연병장에 집합한다.”
“기상!”
모두는 당황스러워 우물우물 소리쳤다. 한낮의 폭염이 시멘트 속까지 달궈버렸기에 해가 진 이후에도 아주 괴로운 날이었다. 무더위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겨우 설핏 잠든 후보생들은 때아닌 야밤 훈련에 허둥지둥했다. 연병장도 내무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간이 한 줌의 바람이 불었지만, 대기가 정체된 듯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밤중 훈련받을 때면 모두 브래지어와 슬립을 벗어 던지기 바빴다. 그것들을 착용하고 연병장을 돌면 화학섬유가 몸에 착 달라붙어 땀구멍을 막은 듯 참을 수 없어서였다. 처음 한두 명으로 시작한 브래지어 벗기는 어느새 너도나도 따라 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영미는 일어나자마자 베개로 가슴을 가린 채 후다닥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런닝을 입었다. 그리고 전투복 팔을 꿰며 깨갱이발로 전투화를 찾아 신고 뛰쳐나갔다.
“이것들아, 징그러워, 제발 브래지어 좀 하고 자란 말이다.”
내무반 가운데 통로를 지나다니며 후보생들을 재촉하던 선임하사가 딱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연병장을 열 바퀴째 돌자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쉬기도 힘들 만큼 지쳐버렸다. 구보를 마쳤을 때는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샤워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한밤중에는 샤워실을 이용할 수 없었기에 세면실에서 얼굴과 목, 팔과 겨드랑이만 씻고 들어가 끈적임을 참으며 잠을 청했다.
영미는 시트 속에서 다시 브래지어를 벗었다. 옆 침대에서도 누워서 브래지어를 벗느라 부스럭거렸다. 훈련받을 때뿐만 아니다. 더러는 평소에도 점호 끝나자마자 브래지어와 런닝셔츠를 벗어버리고 팬티 차림으로 잤다. 시트로 가슴과 배를 가려서 들키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고 들키는 날엔 단체로 얼차려를 받았다. 그러나 너무도 더웠기에 얼차려 후에도 또다시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팬티 차림을 고수하는 동기들이 있었다. 땀에 찌들었건 말건 모두 피곤한 상태라 잠시 후면 고른 코 고는 소리가 내무반에 조용히 퍼졌다.
착한 주번사관은 이따금 취침 점호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때도 가만히 누워서 지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점호받는 옆 내무반에서 들려오는 지적 사항마다 후다닥 일어나 해치우기에 바빴다. 서 있다 드나드는 것보다 침대에 누웠다 일어날 때가 더 정신없었다.
주번사관마다 체크하는 문제점이 달랐는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빨래였다. 빨래는 규정상 건물 뒤 건조장에 널어야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상관없지만, 흐려서 마르지 않을 때는 고역이었다. 덜 마른 빨래를 숨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캐비닛 속 서랍을 빼고 그 뒤에 쑤셔 넣기도 하고, 때로는 매트리스 밑에 펴서 숨기기도 했다. 방법이 다양했지만 그걸 또 대개의 주번사관이 알고 있었다.
군대란, 사회에서 제아무리 똑똑했던 사람도 바보가 되는 곳이었다. 날마다 익히고, 밤낮으로 지적받으면서도 완전무결해지지 않고 혼나는 것은 이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런 자조적인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피교육자는 언제나 춥고, 배고프고 덜 떨어졌다.”
그녀들은 추운 게 아니라 무진장 더웠고, 밥은 남겨서 혼이 났다. 그러니까 그 말은 군대의 피교육자는 한심하고 서글픈 존재라는 소리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그날 밤에는 두 차례나 칠면조 훈련을 받았다. 칠면조 훈련은 지휘관이 주문하는 대로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가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며 서는 훈련이었다. 초저녁에 한 차례 치렀기에 그대로 넘어갈 줄 알았다. 한데 자정이 지난 시간에 또다시 훈련을 시켰다.
신임 중대장은 칠면조 훈련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겠다는 듯 유독 색다른 주문을 했다. 한쪽 신발은 정장 구두, 다른 쪽은 슬리퍼, 또는 전투복 상의에 정복 치마, 그리고 실내화를 신으라는 등, 전혀 어울리지 않게 주문했다. 훈련이었지만 서로의 차림새에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북새통 속에 최대한 빨리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가도 앞에서 몇 명만을 남기고 또 다른 주문을 했기에 후보생들은 수없이 뛰어서 내무반을 드나들었다. 훈련이 끝나자 각자의 침대에는 옷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온몸이 땀범벅이었지만 대충 씻고서 누웠다. 잠들지 못한 동기들이 이곳저곳에서 부스럭거렸다. 영미도 몸이 천근이나 되는 듯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 잠들어 있는 동기들 모습이 보였다. 또다시 멀리 용산역에서 열차가 덜거덕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세다 영미의 눈도 스스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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