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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처럼 가벼워지리니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율희

시인·동화작가·국제PEN한국본부 편집장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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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0년이다, 내가 문단에 등단한 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그래… 그동안 참 많은 세월이 지나갔구나. 마치 찰나인 것처럼 내 삶의 40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내가 시인이 되고 동화작가가 된 것은 운명적인 것일까? 나는 이번 생에서 작가로 살아야 했던 것일까? 쓰고, 쓰고 또 써야 했으니, 밤을 새우고서라도 써야 했으니, 바쁘고 아픈 와중에도 써야 했으니 작가로 살아야 했던 건 맞는 일일게다.
어린 시절부터 책이 참 좋았다. 그런 나를 위해 아버지는 수많은 책들을 사주셨다. 명작전집에서부터 월간 어린이 잡지까지.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나는 그 책들 속에서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책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인물들과 이야기들…. 그들과 함께 나의 상상력은 확장되었고 그들과 함께 나는 성장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내가 작가의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많은 상을 받았고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 글 잘 쓴다고 일기를 출판하자고 하셨지만, 부모님도 나도 작가의 꿈을 꾸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법조인이 되고 싶었고 그 일로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좌절되었고 나는 오랜 시간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때 역설적이게도 나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시 쓰기였다. 시 쓰기를 따로 배운 것도 아니었는데 대학 시절, 나는 공책에 가득 시를 쓰고 또 썼다. 시 공부를 위해 시집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김춘수 선생님의 시가 참 좋았다.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시를 너머, 무의미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시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언어 그 자체의 예술성과 형이상학적 깊이는 내가 공부해야 할 소중한 가치였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가 시인의 꿈을 꾼 것이. 나는 시적 감상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감정의 과잉도 극도로 자제했다. 그리고 일상의 정적인 풍경 속에 우주와 인간 삶의 통찰과 진리를 담아내려고 애썼다. 자연스럽게 나는 선시(禪詩)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선생님께 내 시들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손수 내게 엽서를 보내주셨다. 『현대시학』에 초회 추천해주시겠다고 했다. 『현대문학』에 하고 싶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 『현대시학』으로 빨리 등단하라고 하셨다. 그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추천해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완고한 아버지는 내가 시인이 되는 것을 크게 반대하셨다. 내 정신의 자양분인 수많은 책들을 읽게 해주셨던 분이 정작 시인의 길은 반대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 스스로 많이 공부해야 했고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 부족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시들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나를 꾸짖으셨다.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작품을 늦게 보냈냐고 하셨다. 순간 나는 울컥, 했다. 선생님께서 기다리셨다고 하신 말씀이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1986년 5월, 『현대시학』에 추천이 완료되어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아버지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소식을 알려드리자 뜻밖에도 크게 기뻐하시고 친구분들에게도 자랑하셨다. 그때의 감격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정원에 내어놓은 의자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다.
라벨의 찌가느가 그 나뭇잎 위로 쏟아진다.
흔들리는 가을
찌가느는 하늘빛이다.
-졸시 「가을」 전문

 

이 시는 김춘수 선생님께 추천을 받은 작품이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시다. 40년 동안 내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는 시이기도 하다.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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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운명의 신은 때로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곤 한다. 이번에는 나를 동화의 세계로 안내한 것이다.
시인으로 등단한 후 우연한 자리에서 박화목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박화목 선생님의 안내로 한국아동문학회의 많은 선생님들을 뵙게 되었다. 그때 뵈었던 분들이 엄기원, 김신철, 김영자, 송명호, 이상현, 김선태, 유창근 선생님 외 여러분이다. 선생님들의 권유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 쓰기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그때 아마도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동화의 세계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에게 자주 내가 만든 이야기들을 들려주길 좋아했는데 그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로 이어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밤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는데 시로는 풀 수 없었던 또 다른 상상의 세계를 나는 동화로 풀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밤마다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작품들을 모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자 했고 곧 나의 첫 창작동화집이 출간되었다. 바로 『노란장미 열한 송이』다. 그때가 1990년이다. 낮에는 기자 생활과 강의와 아이를 키우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시집보다도 오히려 동화집을 더 많이 발간하게 되었다.

 

등단 이후 가끔 김춘수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분당까지 가려면 최소한 3시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선생님을 뵙고 오는 날은 참 기분이 좋았다.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詩를 “땅에 꿇어 엎드려 드리는 기도, 언어, 말씀”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 가르침은 내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시로 등단했는데 오히려 동화의 세계에 더 몰입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면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셨던 것 같다. 문학의 본질은 하나이므로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그 격려에 힘입어 나는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께서 타계하신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 선생님의 시는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중단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선생님은 늘 내게 말씀하신다.

 

시는 칼이다
바람을 베고 사람을 베더니
세상을 베어버린다.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칼
세상이 가벼워진다.
-졸시 「시는 칼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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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0세부터 100세까지 읽을 수 있는 동화 쓰기를 지향했다. 동화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서사 장르이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내 책의 독자 대상을 어린이로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동안 동화의 화두로 책과 언어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인간 구원과 사회 현실 풍자에 대해서 천착해 왔다.
내가 생각하는 책이란, 인간이 책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궁극의 비전과 인간 자신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아의 신화와 인류의 신화를 일구어내는 가장 강력한 판타지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통한 인간 구원을 노래한 책으로 책도령 시리즈인 『책도령은 왜 지옥에 갔을까?』 『책도령과 지옥의 노래하는 책』과 「해달리 작은 책방」 등이 있고 언어와 소통에 대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나다를 찾아서- 우주도서관으로의 여행』이 있다. 언어가 사라져버린 205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소리’가 언어의 여신인 ‘나다여신’을 찾아 우주도서관으로 가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나는 작가란, 당대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와 동화를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기를 즐겨 한다. 「검은 여왕」을 비롯해 「참 슬프고 슬픈 날」 『거울이 없는 나라』 『코코코 나라』 외 다수의 작품들에서 세상을 풍자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을 써왔다.
또한 나는, 인간 본성의 나약함과 탐욕에 대한 작품을 즐겨 쓴다. 「요요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릇」 「선물」 「마법의 신발이야, 한 번 신어볼래?」 「어느 날 천사가 찾아오거든」 「꿀단지 안의 꿀」 「임금님만 사는 나라」 「푸른 씨앗」 『코코코 나라』 등에서 인간 본성에 관한 성찰 이야기를 썼다.
특히 『코코코 나라』에서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거짓말을 절대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거짓말을 멈춰야만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서 진실과 진리에 무관심하거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가치들을 왜곡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유하고 있다. 작년에 출간했던 『생쥐 동그라미의 여행』은 그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동그라미’를 통해서 둥글게 사는 삶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탐색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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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그 40년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무거운 어깨에 푸른 날개를 달아주련다. 고뇌와 좌절과 슬픔의 시간을 딛고 희망과 기쁨과 통찰의 시간을 새로 쓰련다.
김춘수 선생님을 비롯해 글로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문학의 길에 격려를 해주신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과 독자들께 보답하는 길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정진하고 겸손하게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작은 등불 하나 켜는 일, 시와 동화를 쓰는 내가 삶의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 종국에는 가벼워지겠지, 깃털처럼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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